제1장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과 미중갈등 그리고 한반도(2023)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시각에서 과거와 현재의 미중관계를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의 하나는 미국의 동아시아 경영이 그 근간에서 일본과의 유서깊은 연합에 기초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이다. - P39
전후 동아시아를 ‘냉전체제‘론이 아닌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의 한 가지 의미는 전후 동아시아 질서 재편성의 주된 동력을 미소관계가 아닌, 중국과 미일동맹의 관계에서 찾 - P43
는 데 있다. 또한 냉전-탈냉전의 이분법을 넘어서, 그 두 시기를 관통하는 변화와 함께 본질적 연속성을 주목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미소 냉전의 직접적 투영이였던 유럽의 국제질서와 다른 전후 동아시아질서의 고유성과 통시적인 연속성을 개념화한 것이다. - P44
제1국면은 미국과 서방이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 기조에입각한 중국 경영을 통해 세계자본주의의 활력을 도모한 국면이다. 다른 한편 이 시기에 미국이 21세기형 군비경쟁을 선도하고 중국의부상에 대비하기 위해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본격화하면서 중국과의 군비경쟁이 본격화된다. 이 시기에 지속된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중국의 국력 팽창과 군사력 확충을 뒷받침하면서 흔히 ‘세력전이‘(power transition)라고 불리는 세력균형의 중대한 변화가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에 가시화했다. 중국의 국력 팽창은 중국 지도자들의 ‘영토적 자기정체성‘의 확장을 스반했다. - P50
2011년 무렵에 오바마 행정부가 공식화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2000년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속 미중 긴장의 제2국면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국면의 미중 갈등의 발전은 중국의국력 확대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지정학적 긴장의 재충전, 그리고미사일방어망 구축과 이를 위한 미일동맹의 강화와 같은 미국의 대응이 상호작용한 결과였다. 제2국면의 대분단체제 속 미중 갈등은 그처럼 지정학적 긴장의 재충전을 반영한 것이지만, 중국과 일본의 정치사회적 상황과도 연결되어 있다. - P50
대분단체제 제2국면에서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신냉전의 막이 올랐다. 푸틴의 러시아가 2014년 서방과 대립을 각오하고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한 행동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서 미일동맹과중국 사이에 더 심화된 긴장이 만들어낸 국제정치적 공간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전후 냉전기에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미중 갈등은 미소 냉전을 큰 배경으로 삼아 전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2010년대에는러시아와 서방 사이의 신냉전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를 큰 배경으로 삼아 미중 갈등에 의지해 전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P51
제3국면에서 미국의 중국 견제는 군사적·지정학적 성격을 넘어서 지경학적 성격을 추가한다. 코로나19라는세계적인 팬데믹 사태로 말미암은 공급망 교란이 중요한 배경으로작용하기도 했지만, 그 본질에서는 미국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기조를 버리고 중상주의적인 보호무역주의로 퇴행한 것을 뜻했다. - P52
대분단체제 기축에서지정학적 긴장이 커지는 가운데 동아시아 전반에서 군사적 긴장과군비경쟁이 심화하는 것과 때를 같이한다. 또한 중국의 권위주의 강화는 미국의 트럼프주의와 대중국 중상주의(mercantilism) 흐름과상호작용하며 서로를 정당화하고 있다. 중국 권위주의 강화 흐름은 타이완해협 소분단체제에서 2016년타이완 독립 세력인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의 집권과 상호작용하고, 홍콩 민주화 운동을 촉진했다. - P57
러시아가 서방에 의한 경제제재를 각오하고 전쟁 도발을 감행한 결정적인 배경은 G2로서 세계의 공장이자 러시아 경제 최대 버팀목이며 에너지자원의 주요 수입국인 중국이 미국과의 사이에 군사적 긴장뿐 아니라 경제 전쟁 상태에 돌입한 상황이다. 푸틴이 2022년 2월 우크라12 - P58
이나 침공 직전에 중국 시진핑과 ‘무제한적 동반자관계‘(no limitspartnership)를 담은 공동성명을 확보한 사실은 그 단적인 표현이었다. - P59
한미동맹의 의미와 역할은 애당초의 취지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을억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한정해야 한다.
한국이 일본처럼 미국과 일심동체가 되지 못하면 한국은 미국에의해 버림받고 말 것이라는 불안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동아시아전략, 결국 중국경영전략은 일본과의 연합을 통해서만, 그것에 의존해서만 가능하다. - P69
투키디데스의 역사서술에 따르면, 기원전 431년에 시작해 404년에 아테네의 패배로 끝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 패배의 치명적인 이유 중 하나는 오늘의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있는 시칠리아섬의 시라쿠사를 정복해 그것을반으로 스파르타를 압도하고자 원거리 군사적 모험을 강행한 것이었다. 그 결과 아테네는 시칠리아에서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을 뿐 아니라 아테네 자체의 안전까지 위협받는 이중 전쟁 (dual war)의 압박에 직면한다. 투키디데스는 그것을 펠로폰네소스전쟁 자체의 중요한 분수령으로 파악했다. - P72
북한이 핵을 사용하는 상황이 되면, 미국 역시 핵으로 보복하게 될 것인데, 그때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핵사용 협의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또한 핵무기의 특성상 미국 대통령마저 핵무기 사용에서 깊이 숙고할 시간적 여유가 불가능한 상황인데, 워싱턴선언에서 설치하기로 합의한 한미 간 ‘핵협의그룹‘ (NCG)이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 P75
워싱턴선언에서 한국 언론이 그다지 강조하지 않은 내용은 "한미동맹은 비상사태 시 미국의 핵무기 운용에 대한 한국의 재래식 지원(conventional support)을 공동으로 실행하고 기획하도록 노력할것"이라는 대목이다.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을 보유한 미국이 한반도의 위기 상황에서 그것을 ‘전시‘(戰時)라고 규정하면, 한국군 전체는 미국의 작전권 대상이 된다. 그 상황에서 핵무기 사용 여부는 미국이 결정하는데, 이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재래식 인적및 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보다 효과적인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이야기다. 또한 핵확장 억제 적용을 위한 합동연습과 훈련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가능성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이아니라, 핵전쟁 가능성을 더욱 기정사실화하고 그것을 촉진할 가능 - P77
성이 높은 활동, 특히 미국의 결정과 집행을 하위 파트너로서 뒷받침하는 활동들을 강화한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이다. - P78
우리는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 다른 길은 2018년에 우리에게 열려 있었으나노크만 했을 뿐 멈추고 만, 그래서 가지 않은 길이다. 가지 않은 길은북한이 안심하고 비핵화를 진행할 수 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최대한확고한 안전보장의 장치를 북한 비핵화 조치들과 연계해 그 단계적실천의 약속을 조약화한, 마이크 폼페이오가 2018년 5월 24일 상원청문회에서 밝혔던 그 평화조약의 가능성을 새롭게 되살려 창의적으로 모색하는 길이다. - P84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의 미래를 포기하고 체념하면서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협을 ‘뉴 노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이 의미하는 바의 심각성을 충분히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도화될수록, 의도된 것이든 오인이나 우연에 의한 것이든 이 땅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걷잡을 수 없이 핵이 교환되는 세계사상 최초의 핵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에서 한미동맹과 북한 사이의 핵전쟁은 한반도 평화의 파괴에 그치지 않고 이 땅에서의 지속가능한 삶자체가 불가능한 생태문명적 파멸로 연결될 것이다. 우리가 북한 핵무장을 더 강한 핵위협과 선제타격 능력으로 대처한다는 발상을 넘어서 한반도 비핵화의 비전과 그 실현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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