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이름 -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
권근영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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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분야의 책이 있다면 미술 쪽일 것이다. 미술 중에서도 그림이 그렇다.
미술을 잘 모른다. 학교 때도 미술 점수는 늘 바닥이었다보니 그 시간이 오는 것이 나중에는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점수를 얻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 교육 현장을 벗어나니 그제서야 조금씩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30대 이후 여행을 가면 박물관과 미술관을 보러 다녔고 외국 작가의 전시가 국내에서 열리면 종종 보러 가고는 했다.
2년 전 이사를 하면서 거리가 멀어지고 코로나 등의 여파로 전시회를 거의 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다.

책에서는 세 개의 주제를 바탕으로 다양한 여성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다.


- 호기롭게 길을 떠난 이들.

프리들 디커브란다이스.
10년도 훌쩍 지난 지난 이야기지만 독일 바이마르에서 만났던 바우하우스 건물이 생각났다.
바우하우스 하면 현대 건축에서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바우하우스의 교육 이념은 평등이었으나 결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여성들은 공방 등에서 일해야 했고 심지어 등록금도 더 비쌌다고 한다.
프리들 디커도 바우하우스 교육생 중 한 명이었다. 유대인이었던 그녀는 탈출에 실패하고 결국 수용소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나비 등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는데 죽기 전 이들은 그림으로나마 평화를 꿈꾸었을까.

엘리자베스 키스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이다 싶었는데 결정적으로 게일 신부의 이름을 보자마자 아!!! 했다. 키스의 책이 복원판으로 나온 것도 알고 있었고 게일 신부의 책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
키스 자매들은 이방인으로 낯선 땅 조선에 왔다가 눌러 앉아 조선의 골목을 누비며 조선 민중의 삶을 주목했다. 특히 여성들의 그림이 많은 것이 눈에 띤다.
키스 자매들이 보기에 조선인 여성들은 임신 및 육아, 가정 살림까지 많은 것을 감내하며 힘겹게 사는 것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그녀들의 시선이 따뜻하다는 게 느껴져서 좋았다. 이걸 보며 키스 올드 코리아 복원판을 구입해야겠다 생각했다.

노은님 
타국에 가서 하마터면 꾸준히 그림을 그려 이름을 알린다는 게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저자는 노은님이 파독 간호 경력 2년으로만 알려지고 이후 긴 예술 활동에 대해서는 주목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힘찬 걸음을 표현한 <큰 걸음>은 방향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그녀의 다양한 작업을 만나고 싶다.

정직성
정직성은 예명이다. 들으면 바로 꽂히는 이름이라 한 번 각인되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림에만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예술 세계를 보니 그녀는 한계를 모르는 예술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단 서울의 연립주택을 표현한 그림을 보면서 현실을 예술로 이토록 잘 승화시킬 수 있구나 해서 놀라웠는데 이런 작업은 계속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다.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바뀌는 서울의 도시 풍경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의 모습이 담긴 프로필의 문패도 인상적이었다.

- 거울 앞에선 이들.

베르트 모리조
인상파 여성 멤버인데 주로 마네의 그림에 모델로 많이 등장했다.
파리 살롱전에서 6번이나 당선된 이력을 가진 화가인데 왜 나는 마네의 이름은 알면서도 그녀의 이름은 알지 못했을까.
책에서는 몇 개의 작품이 나오지 않지만 모리조 이름으로 검색한 그림들을 보니 하나 같이 다 화사하고 예쁘다.
인상파 그림의 특징을 잘 담고 있으면서도 주변의 환경을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든다.

파울라 모더존베커
누구의 아내도 엄마도 딸도 아닌 파울라 모더존베커.
<옆으로 누운 엄마와 아이>는 엄마와 아이의 유대성과 친밀감이 잘 느껴졌다. 그 시기는 지금보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웠을것이다.
그녀의 그림들 속 얼굴의 눈동자가 동그랗고 크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찾아보니 아이를 낳고 얼마 안 되서 찍은 사진 속 모습과 일치한다.
아이를 낳고 얼마 안 되서 색전증으로 사망했다니 31살의 짧은 생애가 너무도 안타깝다. 더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

버네사 벨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가 화가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녀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못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버지니아 울프와 노년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이다.
유명 작가였던 언니의 그늘에 가려진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본인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해진다.
버지니아 울프는 삶을 일찍 마감했으나 상대적으로 버네사 벨은 꽤 오랜 삶을 살았다.

천경자
몇 년전 근대 여성에 대한 전시로 <신여성 도착하다> 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여기에서 천경자를 처음 만났다. 도록도 집에 갖고 있는데 신여성들의 다양한 예술 활동에 주목한 전시여서 정말 흥미롭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천경자의 작품은 고전 기법의 그림부터 서양화까지 스펙트럼이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뱀 여러 마리가 인간의 머리 위에서 또아리를 틀고 왕관 형태를 하고 있는 그림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충격이다. 다시 봐도 놀라운 그림이다.
박경리 선생님과 가까운 사이였다라는 것은 몰랐는데 그녀를 묘사한 글을 보니 정말 잘 표현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경자의 예술세계는 자유로움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영숙
이 책에서 여러 예술가를 만났지만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라면 박영숙이다. 그녀야말로 스스로 한계를 가두지 않고 뻗어나가는 예술 활동을 하신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진 작가인 그녀는 주변 인물들을 사진으로 담기도 하고 제주의 곶자왈에서 시간을 보내며 생태 환경적 사진을 담아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마녀와 미친년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여성을 매도하는 단어로 쓰인 마녀, 미친년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예술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운동가로까지 나아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되찾은 이름들.

유딧 레이스터르
최초의 여성 직업화가였던 유딧 레이스테르의 이름은 230년 만에 되찾게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거래하려던 그림은 그녀의 것이었으나 나중에 밝혀져 고소를 당했다고.
직업 화가였던 만큼 팔레트와 붓을 들고 있는 그림들이 눈에 띈다.
그녀의 그림을 보고 느낀 건 인물들의 표정이 하나 같이 생동감 있다는 사실이다. 익살스럽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다.
바로크 시대 화가로 정물화도 있으나 대부분 다양한 인물들을 그렸다. 섬세한 붓터치가 눈길을 끈다.

힐마 아프 클린트
칸딘스키, 몬드리안보다 앞선 최초의 추상화가였다고 한다.
근대의 문, 과학이 떠오르던 시기 그녀는 영속성과 영적 세계에 경도되었다.
미래를 위한 그림을 보면 이집트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데 마치 태양을 향한 영적 숭배의 신성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상상 속의 현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양식으로 추상적인 방식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혜석
나혜석은 근래 들어 많은 자료 등으로 조명되면서 회자되는 여성 화가다.
다만 작가의 말처럼 예술보다는 개인적인 삶에 치중하여 주목하거나 나아가 비난받는 점이 강해서 마음이 좋지가 않다.
그림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논외로 친다면 어쨌든 그녀는 당시로서 조선의 서양 화가라는 타이틀 자체가 희귀할 때 그림을 그렸으므로 그것만으로도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 전시회도 열고 많은 문화계 인물들과 교류를 했다. 여성으로서 견뎌내야 하는 환경적 부당함에 대해서 끊임없는 주장을 펼쳤던 그녀는 페미니스트 선구자라고 평가될 만하지 않을까.

아델라이드 라비유귀아르
아델레이드는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활발히 활동했던 화가였다.
<두 제자와 자화상> 마리 가브리엘 카페와 마리 마거릿 카로 두 제자와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두 제자도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회원의 일원이다.
팔레트와 여러 개의 붓을 들고 있는 화가와 뒤의 두 명의 제자들의 서로 다른 시선이 재밌으면서도 나는 이런 그림 구도 자체가 생경했다.
무엇보다 아델라이드는 남성 일색이던 아카데미에 많은 여성 화가들이 입학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끊임없이 여성 권리의 신장을 위해서 노력했던 인물이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
바로크 화가였던 젠텔레스키. 그녀의 그림을 보면 카라바조가 떠오른다. 카라바조보다 그녀가 먼저 활동했다면 젠텔레스키풍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당시 여성 화가들이 무대에 설 기회가 아주 제한적이었을텐데 젠텔레스키는 그림으로 당당히 피렌체 예술 아카데미에 여성 첫 회원이 되는 쾌거를 이룬다.
하지만 아버지의 지인으로부터 그림을 도와주다가 성폭력을 당하는 사건 이후 법정 싸움까지 가게 되는 수모를 겪는다. 이 때문에 그녀의 작품에 유독 유디트가 많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스로 주장하고 쟁취할 줄 알았던 젠텔레스키. 그녀는 많은 작품을 남기며 당대 최고의 화가로 성공한다.


다뤄진 예술가들 중 아는 이름이 얼마 없다는 게 민망하고 죄송했다.
그동안 가려지고 없어진 여성 예술가들의 이름이 얼마나 많았던걸까.
당연히 이 책에서 다뤄지지 않은 수많은 이름들이 있을 것이다. 그 이름들을 찾아내는 작업들이 꾸준히 이어져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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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02 21: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이렇게 여성화가들을 주목하며 그들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책들이 간간히 나와서 너무 좋네요.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를 보면 여성이 파악하는 유디트가 남성들에 의해 왜곡된 유디트와 얼마나 다른지 확 와닿더라고요.
이런 책들이 더 많이 나오면서 위의 화가들 각자에 대한 책들도 다 나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에 젠틸레스키에 대한 책은 나왔네요. ^^

거리의화가 2022-06-03 08:56   좋아요 2 | URL
젠텔레스키 유디트의 묘사와 표현이 기존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책에서도 언급이 나옵니다.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피해를 겪으면서 충격이 컸을텐데 주저만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타개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최근 들어 여성에 주목하는 여러 작업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지나치지 않도록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젠텔레스키 책은 구입했고 이 달에 읽을 예정이에요. 그녀의 삶과 예술 활동에 대해서 더 많이 들여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scott 2022-06-03 0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클림트 누이들도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는데 남아 있는 작품이 없고
까미유 끌로델의 뛰어난 조각품들은 몇 점 없고(로댕의 작품 상당수가 그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

마녀와 미친 *이라는 소리를 ㅠ.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여성 예술가들
부지런히 발견 되어 이름을 되찾아야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6-03 08:57   좋아요 3 | URL
스콧님 말처럼 역사 속에 묻혀 버린 여성 예술가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작업들이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봐요. 여성들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강해지고 있는 현재 앞으로도 이런 책과 자료들이 많이 나와주길 바랍니다!

새파랑 2022-06-03 06: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화가님이라고 닉네임을 지으신 이유가 있으시군요~!! 저도 학교다닐때 미술만 ˝미˝ 였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03 08:59   좋아요 3 | URL
ㅎㅎㅎ 화가라는 닉네임은 제가 지은 것이 아니라 누가 붙여준 것입니다. 미술에 미 자도 모르는데 음... 닉네임을 바꿔야 하는게 아닌지ㅋㅋ 근데 거의 20년 넘게 쓴 닉네임이라 바꾸기도 뭣하긴 합니다ㅎㅎ 미술 점수 정말 미 이상 받아본 적 없는 것 같아요ㅋ

mini74 2022-06-03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랑 같은 ㅎㅎㅎ 그림은 매번 졸라맨 수준인데 ㅠㅠ 학교를 떠나니 그림이 좋더라고요. 의도적으로 묻힌 여성화가들, 폄하된 여성화가들의 제자리 찾기는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는데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너무너무 잘 읽었어요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2-06-03 13:08   좋아요 0 | URL
ㅎㅎ 졸라맨^^; 저는 사람을 그린다고 그리면 매번 얼굴 몸통 다리 삼분할만... 표정도 없고 똑같습니다ㅋㅋ
학교라는 환경이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을텐데 점수와 성취로 학생들을 몰아가는 영향이 큰 것 같아요. 편한 마음으로 보니 그림이 좋아지더라구요~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던 여성 화가들의 이름들 저라도 열심히 부르짖고 다녀야겠습니다!ㅎㅎ 미니님 감사해요~^^*
 
역사의 원전 (컬러 도판 양장본) - 역사의 목격자들이 직접 쓴 2,500년 현장의 기록들
존 캐리 엮음, 김기협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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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르타주(reportage) 선집을 편집하기 위해서는 르포르타주란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고, 또 좋은 르포르타주를 선정하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 - P12
과거에 관한 모든 지식, 추측이 아닌 확실한 지식이란 "내 눈으로 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여기에 모아놓은 구경꾼, 여행가, 전사, 살인자, 희생자, 그리고 직업기자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다음 장점은 문체의 힘이다. 목격자의 기록은 숨이 빠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진실의 느낌을 준다. 정교하지만 생명이 없는, '객관적'으로 재현된 역사 서술과 다르다. - P12

르포르타주의 현장성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현장 기록만으로 제한하는 것은 너무 답답한 노릇이다. 황급한 기록은 예리한 위기감을 전해줄 수 있지만 역시 너무 황급한 것이기 쉽다. 그래서 사건으로부터 한참 지나 작성된 자서전이나 여행기 등에서도 많이 선별해 실었다. - P13

현실로부터 후퇴하려 하는 언어의 타고난 속성에 저항하는 노력이 훌륭한 르포르타주의 요건이다. 물론 아무리 뛰어난 르포르타주라 하더라도 언어의 울타리를 아주 벗어날 수는 없다. 르포르타주 역시 언어의 한 부분이다. '텍스트'만이 서로 뒤얽혀 있을 뿐, 접근할 수 있는 별도의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리가 현대 비평론에 횡행하고 있다. 설령 이 공리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훌륭한 기록자는 이 공리에 대항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해야 한다. 자기 기록을 독자들이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건의 특징을 잘 뽑아냄으로써 기록의 전달을 넘어 목격의 전달에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 P15

이 책은 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목격자들이 현장을 보고 겪은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기록자들의 면면을 살펴본다면 투키디데스, 플라톤, 아메리고 베스푸치, 귀스타브 플로베르, 알렉상드르 뒤마, 폴 고갱, 조지 버나드 쇼, 로자 룩셈부르크,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등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들의 글도 담겨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한 목격자의 기록', '정부 첩자의 보고', '어느 독일 사병', '《타임》 특파원' 등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기원전부터 현재까지 2500년의 역사를 하나의 책에 담았다니 이를 모으고 편집한 것이 놀라웠다. 총 181개의 글이 담겨 있고 각 글들의 분량은 짧은데 사건을 훓어보기에는 충분하다. 하나의 기록을 읽고 사건에 관심이 생겼다면 관련 책이나 동영상, 자료 등을 이용해 세부적으로 들여다본다면 이 책의 목표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대부터 중세, 근세,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중 중세와 근세의 역사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1800년 이후의 역사가 챕터의 2/3 정도를 차지한다. 원서의 꼭지 수로 60%, 분량 중 70% 정도만 책에 담겼는데 한국 일반 독자들에게 관심을 끌기 어렵거나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제외해서라고 한다.

책의 장점이라면 사료 소개에 그치지 않고 사건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자의 해설이 각 기사 뒤에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원 저자의 주석은 기사의 앞머리에 편저자주로 담겨져 있지만 거의 없거나 짧은 경우가 많아서 만약 역자의 해설이 뒷 부분에 없었다면 기사를 이해하고 배경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책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은 추가 자료를 찾으면서 공부도 되었다.

네로는 안티움에 있었다. 그는 집 잃은 이재민들을 위해 마르스 광장을 개방했다. 아그리파의 공공 건물과 자기 정원들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많은 난민들을 위해 긴급 수용시설도 만들었다. 오스티아와 인근 도시들로부터 식량을 운송해 왔고 곡식 가격은 1파운드에 4분의 1 세르테르스 이하로 묶였다. 그러나 이렇게 서민 위주의 정책을 취해도 그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하나의 풍문 때문이었다. 도시가 불타는 동안 네로가 자기 개인 무대에 올라가 현재의 재앙과 과거의 재앙을 비교하면서 트로이 멸망의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 풍문이었다. - P44~45

'네로=폭군' 으로 단순 치환하여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 날은 로마에 화재가 발생하여 숲과 각종 집들을 태우는 등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타키투스의 네로에 대한 설명을 보면 네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과장되거나 조작된 기록으로 피해를 입은 측면이 있어 보인다. 기록의 말미에는 로마의 열네 구역 중 다치지 않은 것은 넷뿐이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얼마나 큰 화재였는지 알 수 있다.

죽음의 공포로 인해 모든 물가가 낮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이나 어떤 재산에도 마음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에 40실링 값을 부르던 말 한 마리를 반 마크(6실링 8펜스)에 살 수 있었고, 살찐 황소 한 마리에 4실링, 암소 한 마리에 12펜스, 암송아지는 6펜스, 살찐 숫양은 4펜스, 암양은 3펜스, 새끼양은 2펜스, 큰 돼지 한 마리를 5펜스에 살 수 있었으며, 한 스톤(약 10킬로그램)의 양털은 값이 9펜스였다. - P100

14세기 흑사병 유행으로 유럽 인구의 1/3 정도가 희생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이 기록을 통해 발견한 재밌는 지점은 흑사병 이후의 경제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염병의 결과는 경제의 충격이었다. 사람이 줄어드니 생산량도 줄었을 것이고 이는 광범위한 사회 경제적 변화를 이끌게 되었다. 생산은 해야 하는데 사람이 줄어들어 인건비는 상대적으로 상승하고 임금노동은 발전하게 되었다는 측면도 있다. 이를 기록한 인물은 헨리 나이튼이다. 1396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흑사병 발생 한참 이후이기 때문에 직접 겪은 일은 아니고 다른 사람의 기록이나 구술을 정리하여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전쟁을 좋아하고 잔인한 성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 싸움터에 살아남은 자들은 자기편 사람들의 시체는 모두 매장하지만 적의 시체는 잘라서 먹는다. 포로로 잡은 자들은 집으로 데려와 노예로 삼는다. 어떤 때는 악마 같은 광기에 사로잡힌 자들이 어떤 의식을 행하며 그들을 활로 쏘아 죽이고 잡아먹어 버린다. 그들은 이런 짓을 앞에 말한 노예, 그리고 노예가 낳은 아이들에게 행한다. 그들을 수없이 훈계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그런 습속을 고쳤는지는 알 수 없다. - P144

기록의 주체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아메리고 베스푸치다. 1502년 남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때의 기록인데 그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까지 유럽인들은 아메리카를 아시아의 동쪽으로 인식했다.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유럽인들은 처음 만난 이들을 자신들처럼 문명인으로 개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은 문명인이고 이들은 미개인이라는 발상, 그것은 후에 수없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우물에 들어가는 것처럼 손에 촛불을 들고 밧줄을 타고 내려가자 시체들을 밟고 돌아다녔다. 온갖 종류와 크기의 시체들이 있었고, 작은 토기 항아리 안에 처리되어 들어 있는 것도 있었다. 항아리들은 큰 시체들의 발치에 놓여 있었다. 나는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그런 물질로 변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온갖 부위를 다 부러뜨려 보았고, 구경거리로 삼기 위해 여러 개의 머리와 손, 팔, 그리고 발을 집에 가져왔다. - P208

1625년 존 샌더슨이라는 런던 상인이 이집트 카이로에 방문했다가 피라미드 등을 보고 기록한 것이다. 충격적인 만행과 약탈. 남의 나라 물건을 이렇게 마구잡이로 헤쳐도 되는 건지도 의문이고 막 가져간다니... 이것을 보면서 문화재 개념이 없던 한국의 과거도 떠올랐다. 신라 왕릉, 백제 무령왕릉 발굴 등에서 보인 진지하지 못했던 발굴 모습 말이다.

나는 그들이 위협했던 대로 다시 데려가 고문을 가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기 병사의 연약함을 알아보시고, 행여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짧은 투쟁만을 내려 주셨던가보다. 나보다 굳센 분들, 월폴 신부님이나 사우스웰 신부님 같은 이들에게는 그분들이 승리를 거둘 정말 힘든 싸움을 내려주셨다. 그분들은 '짧은 동안에 먼 길을 갔다.' 더 긴 세월을 살아가며 내 부족한 점을 채우고 내 피로 일거에 씻어낼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하나의 영혼을 수많은 눈물로 씻어내도록 남겨졌다. 이것은 주님의 기쁨을 위한 것이니, 그분의 눈에 좋으신 것이라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 P237

16세기 초반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가톨릭교회는 대응을 필요로 하였다. 예수회는 가톨릭 개혁 중요 주체 중 하나로(우리 나라 천주교에도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곳이라고 알고 있다.) 1534년 세워져 1540년 교황의 인가를 받았다. 1570년 엘리자베스 여왕과 교황청의 사이 갈등이 벌어지면서 잉글랜드에 가톨릭교회를 부활시키려고 할 때 예수회에도 이 일에 관여하게 된다. 이 글은 헨리 가네트라고 예수회의 가담 인물 중 하나였다. 16세기 말 잉글랜드에서 고문은 줄어드는 추세였다고 하지만 이 글에서 보는 대로 종교 갈등으로 인해 추세가 잘 지켜졌을 것 같지는 않다.

함께 가는 브라만들은 여인에게 결단과 용기를 보이도록 권면하는데, 많은 유럽인들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무슨 약을 마시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 약을 마시면 신경이 마비되어 죽음의 준비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두려움과 걱정을 막아 준다는 것이다. 불행한 여인들이 불에 타 죽겠다는 결심을 끝까지 지켜내느냐 여부는 브라만들의 이해 관계에 직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팔과 다리에 끼고 있던 팔찌와 발찌, 귀걸이와 반지 등은 화장 후 재를 뒤질 브라만들에게 소유의 권한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여인의 신분과 재산 수준에 따라 이런 장신구들은 금제가 아니면 은제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구리나 주석으로 만든 장신구를 걸친다. - P258

1650년 경 장-바티스트 타베르니에가 쓴 글이다. 인도 브라만 여인들은 남편이 죽으면 애도를 하고 며칠 후 삭발을 한 뒤 몸을 꾸미던 장신구를 없애버리고 홀로 살아가야 했다고 한다. 이것이 싫어 대부분의 여자들이 장례 시 남편과 함께 불에 타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하는데 우리 과거의 순장이 생각나기도 해서 씁쓸했다. 실제 브라만들은 남편을 따라 죽을 것을 장려했다고 하지만 그 여인의 삶은 대체 무엇인지 곱씹게 되고 이내 착잡해진다.

군중의 열광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죄수들이 달아나고 애커먼 씨 집이 벽돌 벽의 껍데기만 남은 뒤, 폭도들은 집 안의 불길을 다른 용도에 쓰기 시작했다. 건물 전체가 빨갛게 달아올라서 문과 창문이 마치 화산 분화구처럼 보였다. 폭도들은 얼마간 애를 쓴 끝에 채권자 감옥에도 불을 지르고 문을 부숴 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탈주시켰다. - P323

영국의 조지 폭동에 대한 글이다. 7년 전쟁(1756~63)을 통해 식민지 싸움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한 대영제국이 가톨릭 교도들에 대한 억압과 제한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가톨릭 구호법을 1778년 이후 취하게 되었다. 당시 의회 내 힘이 없던 조지 고든이 대중의 반 가톨릭 정서에 기대 가톨릭 구호법 철폐를 주장하며 소동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영국의 가톨릭교에 대한 탄압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특히 아일랜드와의 갈등은 종교로 인한 것이 크다. 뿌리 깊은 종교 갈등의 시작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는 글이다.

당신의 몸에 상당한 기형이 생긴 것은 이 노동 때문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언제부터 생긴 것인가요?
열세 살 때 생기기 시작했고 그 후로 심해졌습니다.
공장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체격과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었나요?
네, 동네에서 뛰노는 아이들 중 누구 못지않게 바른 체형이었습니다. - P390

1815년 영국 의회 조사단에 제출된 한 여공의 증언 기록이다. 당시 공장의 근로조건은 매우 열악했고 기형이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이를 보고 있자니 한국의 과거의 공장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의 열악함이 오버랩되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그나마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함이 생긴다.

버지니아주 피터스버그 부근에서 토지와 기타 재산의 매각장에 갔다가 뜻밖에 노예를 파는 공개 경매를 구경했다. (...) 이제 자기들이 팔려가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영원히 떨어지게 된다는 끔찍한 사실을 깨닫고 그들이 보인 반응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여자들은 갓난아기를 낚아채듯 안고 소리를 지르며 오두막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이들은 오두막과 나무 뒤로 몸을 숨겼고, 남자들은 절망감에 싸여 말없이 서 있었다. - P417

1846년 미 버지니아에서 엘우드 하비는 노예 매매 현장에 와 있었다. 아메리카 노예는 그야말로 상품이었다. 그들은 주체로서 기능할 수 없어서 사고 파는 매매의 객체로서 취급받았다. 특히 아메리카 지역의 노예는 학대 피해도 많았다고 한다. 사람이 인격적인 주체로서 대우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우리는 과거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노예제 자체는 사라졌다고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노예는 여전히 존재하기에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옷과 옷깃, 애들 양말, 부인용 둥근 모자 따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피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나무기둥의 칼자국에는 칼날에 묻어 옮겨진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붙어 너펄거리고 있었습니다. 보기에 너무나 괴로운 광경이었습니다. - P456

세포이 항쟁은 1857~58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조직한 인도인 군대가 일으킨 봉기를 영국인들이 '세포이 항명사태Sepoy Mutiny'라 부른 사건이다. 당시 벵골에 13만명의 세포이 병력이 있었는데 인도 전체 영국군 주둔 병력은 불과 2만 3천명이었다고 한다. 탄창에 쇠기름과 돼지기름을 재료로 한 윤활유가 발라져 있는 것에 모욕감을 느낀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수령을 거부하자 이들을 감옥에 가두었고, 세포이 병사들이 감옥에 쳐들어가 이들을 구해 오면서 항쟁이 시작되었다. 종래 영국의 인도 지배가 얼마나 문화적 이해와 종교적 이해가 무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빗물에 흠뻑 젖은 천 조각 아래 동료들 틈에 끼어 찢어진 그물침대에 누워 있던 내 눈에 로턴 장군의 키 큰 모습이 들어왔다. 장군은 잿빛 여명을 배경으로 진흙탕 길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스페인군이 참호와 요새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산티아고 데 쿠바를 향해 미국군이 밤새 행군해 온 길이었다. 4세기간의 영광과 치욕으로 점철된 스페인의 서반구 지배를 종결시킬 전투가 이제 시작할 참이었다. - P503

1898년 스페인과 미국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선전포고에서 강화조약까지 6개월도 걸리지 않은 전쟁이지만 이 전쟁 이후 스페인의 힘은 약화되고 미국이 열강 세력에 들어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7월 1일 쿠바의 엘 카네를 점령하기 위해 전투가 벌어진다. 약 6천 명의 미군과 3천 명의 스페인 군과 쿠바 동맹군이 맞붙었다고 한다. 왜 쿠바에서 전투가 벌어졌을까. 미국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당시 경제 개발이 활발하던 스페인령 쿠바를 빼앗아 오기 위함이었다.

6월 28일은 모든 세르비아 사람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는 특별한 날이다. '비도프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날이다. 1389년 옛 세르비아 왕국이 터키에 정복당한 암셀펠데 전투가 있었던 날이다. 또한 2차 발칸전쟁에서 세르비아군이 터키군에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두어 과거의 패배와 오랜 예속의 빚을 갚은 날이기도 하다. 새 압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드가 바로 그 날짜에 세르비아의 턱밑에 와서 우리를 짓밟는 수단인 군사력을 시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의 결정은 거의 즉각적으로 떨어졌다. 폭군에게 죽음을! - P551

사라예보에서 페르디난드 대공이 암살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 침공의 구실을 얻으면서 1차 대전의 발발로 이어진다. 암살 범인은 19살 프린치프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였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 전쟁, 프랑스 전쟁 승리를 이끌며 근대 독일의 문을 열었다. 그가 사임할 때까지 독일은 일류 강국의 대열에 섰고 과거의 지역 맹주였던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주도권 하에 있었다. 비스마르크가 이끈 철혈 정책은 민주적 요구를 무시하거나 압제하는 것으로 민족주의자들의 불만과 요구는 커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녔을 것이다. 알다시피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전 세계는 극심한 전쟁 피해를 겪었고 이후 경제 대공황까지 이르게 하는 기원이 된다.

매일 오후 독일의 과자가게와 찻집에 프랑스 손님들이 몰려드는 것은 볼 만한 풍경이었다. 독일인들은 아주 좋은 과자, 사실 기막히게 좋은 과자를 만들었는데, 지금처럼 마르크 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스트라스부르의 프랑스인들이 제일 작은 프랑스 동전, 1스우짜리로도 살 수 있는 것이다. 독일 과자집에 몰려든 프랑스 젊은이들이 크림을 채운 보드라운 독일 케이크를 한 조각에 5마르크씩 배가 터지도록 꾸역꾸역 처먹고들 있는 돼지우리 같은 광경은 환율의 마술이 만들어낸 것이다. 문 열고 30분이 지나면 과자집 재고가 동나버린다. - P623

글의 표현력이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22년 9월 19일 기록한 글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은 배상금 지불 문제로 마르크화의 가치가 급락하였다. 기록의 장소는 독일 국경에 있는 스트라스부르다. 이곳은 1870년 전쟁으로 독일 땅이 되었는데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프랑스 땅이 되었다. 헤밍웨이는 당시 《토론토 스타》 특파원으로 유럽에 체류 중이었다고 한다.

방송에서 펄 하버 근무자들은 모두 즉각 출근하라고 하고 있어, 하고 말했습니다. 포치로 나가보니 하늘 높이 대공포화의 폭발이 보였습니다. 내 입에서 "저런, 저런!" 소리가 튀어나왔죠. 우리 집은 4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오토바이를 집어타고 5분인지 10분인지 뒤에 기지에 도착했지요. 난장판이었습니다. - P677

하와이 오아후섬에 정박해 있던 미 태평양 함대는 일본의 기습 공격을 받는다. 진주만 공격은 미국이 2차대전에 뛰어드는 계기가 된다. 이 글은 1941년 12월 7일 16살이던 진주만 해군 조선소에서 배관 견습공으로 일하던 존 가르시아라는 사람의 기록이다. 당시 일본은 동남아시아 침략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미국과의 대결은 회피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이 인도차이나에 진주하는 것에 대해서 미국이 항의하고 석유 금수조치를 가하자 대결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기습 공격이 감행된 것이다.

문이 열릴 때 시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올 정도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근육이 매우 수축되어 있어서 서로 떼어내기가 몹시 힘들었지요. 죽음을 앞두고 몸부림을 심하게 쳤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가스실에 시체가 1미터 반 높이로 꽉 채워져 있는 광경을 본 사람은 절대 잊을 수가 없습니다. (...) 모두 악마의 졸개들이 되어 있습니다. 살로니카에서 온 계리사고, 부다페스트에서 온 전기 기술자고, 다 똑같아집니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이들에게, 일하는 동안에도 몽둥이와 고무봉 세례가 계속 쏟아집니다. 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자들은 구덩이 앞에서 사람들을 쏘아죽이고 있습니다. 가스실이 꽉 차 있어서 미처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한 시간 반이면 모든 작업이 끝납니다. - P747

1944년 8월 유대계 루마니아인 의사의 증언 기록이다. 이 곳은 악명높은 비르케나우 수용소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아우슈비츠 주임 의사로 임명받아 수감자에 대해 각종 의학 실험을 감독한 요제프 멩겔레(1911년 생)는 전쟁 후 남아메리카로 탈출했단다. 기록을 읽는 것만으로 당시의 상황이 그려져서 힘들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런 피해를 당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가스 처형장에서 사라진 많은 이들. 그리고 그 전 수없이 많은 의학 실험들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이 있었다. 이는 어떤 것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일 것이다.

어린아이였다. 거의 발가벗은 몸에 오물만이 잔뜩 덮여 있었다. 아이는 가마니 틈에 헤쳐 낸 보금자리 속에 자기가 배설한 오물 위에서 누워 있었다. 팔꿈치를 짚고 일어날 기력조차 없었지만, 갈라진 입술을 말아 올리고 피 흐르는 잇몸을 드러내며 성난 고양이 새끼처럼 신부를 향해 으르렁대고 침을 뱉을 기운은 있었다. 목은 빗자루 손잡이보다 많이 굵지 않았고, 굶주린 아이들 특유의 엄청난 올챙이 배였다. 빈약한 목과 튀어나온 큰 눈을 보면 둥지 안의 새끼병아리가 겁먹은 모습과 같았다. 신부가 조심스레 팔에 안아 트럭으로 데려오는 동안 이 끔찍스러운 존재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할퀴고 깨물려는 미약한 시도를 계속했다. (...) 오전 11시에 신부가 고아원에 돌아올 때는 트럭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이 바로 전쟁의 진짜 희생자들입니다." - P804~805

1950년 12월 한국전쟁이 한참 벌어지고 있을 때의 기록이다. 르네 커트포스라는 사람의 기록인데 당시 블레델 신부는 서울 강변로 골목 곳곳에서 수없이 남겨진 고아를 발견한다. 부모를 잃고 정처없이 방황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죽은 부모 위에서 울부짖을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아이들을 목격한 신부님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었을 것 같다. 전쟁이 벌어지면 안되건만 여전히 이 세계는 전쟁을 멈출 줄 모른다. 과거는 말해주고 있다.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우리는 근대 역사 기법에 익숙하다. 사료를 증명하려고 하고 의도를 해석하려는 행위 등 말이다. 이 책은 르포르타주의 다양한 글들을 통해 현장감을 드러낸다. 물론 기록한 사람들의 의도성이 있을 수도 있으나 상대적으로 목적을 가진 역사서에 비해서 의도성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의 경우 현대까지도 역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끌어안는 시도들이 비일비재하였다. 이념으로 선을 긋고 사료를 왜곡하여 구미에 억지로 맞추는 일이 많았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런 한계를 지나 대안적인 역사의 흐름이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나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역사의 연구와 교육만이 사회의 지원을 받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억압을 받았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함께 겪어온 것이다. - P829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 따지기에 앞서, 냉전의 논리가 더 이상 우리의 갈 길을 정해 주지 않는 새로운 상황을 다 함께 맞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와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역사학의 집단식중독에서 사람들이 벗어날 수 있는 효과적 처방이 나오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의 원전』 같은 책이 치료의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 P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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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01 15: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현장성이라는 측면에서 사료로서의 의미가 큰 책일것 같네요. 아까 페이퍼에서 이 책 소개 보고 관심이 갔는데 화가님의 이 글을 보니 확실하게 봐야겟다는 생각이 듭니다. ^^ 항상 좋은 책 소개 감사드려요.

거리의화가 2022-06-01 16:04   좋아요 3 | URL
네 저도 이 책 생각 이상으로 좋았어요. 바람돌이님께 도움이 되어서 기쁩니다! 항상 저도 감사드려요.

새파랑 2022-06-01 17: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목차만 봐도 엄청나네요~! 조지 오웰과 헤밍웨이 찾아보니 딱 있네요 ㅋ 르포르타주가 확실히 현실감이 있고 재미도 있는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2-06-01 21:34   좋아요 0 | URL
정말 다양한 기록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헤밍웨이, 조지 오웰 소설로는 익숙하겠지만 다른 양식의 글을 만나니 새롭더군요 비문학과 문학은 다르니까요 그럼에도 확실히 위트 있는 글체라는 게 느껴졌습니다ㅋ 현장감 넘치는 글들이어서 저도 재미나게 읽었답니다^^*

mini74 2022-06-01 17: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국주의의 정당성을 위해 식인문화를 부각한 면도 있다고 읽었어요. 그들의 제례나 매장풍습을 과장하거나 오해를 내버려두는 식으로 ㅠㅠ 네로 이여기가 의외네요. 전쟁고아 이야기는 슬프고.ㅠㅠ 저도 이 책 찜입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01 21:3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미니님 제국주의자들의 위계 질서를 드러내려고 의도한 부분도 클 것 같습니다 네로는 정말 의외였어요 그러고 보면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쟁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오는데 특히 뒷부분 현대전은 아무래도 더 비극적입니다ㅜㅜ 무기가 탄탄해질수록 피해가 더 크니. 미니님도 요 책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eBook] 이성과 감성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권민정 옮김 / 시공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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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을 읽으면서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얼마 읽지 않았을 때 어렴풋이 느꼈다.

동생 메리앤은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
반면 언니 엘리너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려고 노력한다.
엘리너는 이성, 메리앤은 감성을 대표한다 볼 수 있다.

나는 감정이 얼굴과 표정에 드러난다는 말이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데 좋은 감정이면 문제가 되지 않으나 불쾌하거나 싫은 감정이면 문제가 되곤 했다.
직장 생활을 해오면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문제의 소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후로는 상황에 따라 감정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하게 됐다.

소설을 읽으면서 종종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역시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거론되는 말들이었다.
나는 이것이 너무 불쾌하고 싫었다.

또한 듣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내뱉는 말들도 불쾌했다.
내가 듣는 말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데, 내가 보는 상황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데 이를 그대로 남에게 전달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소설에서 군데 군데 그런 장면들이 여럿 보인다.
이것이 상대에게 비수로 다가갈 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여성들의 환경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대목들도 나온다.
이동에 있어서 보호자가 있어야 하는 등의 제한이 있고
기본적으로는 우아하고 교양 있는 태도를 으레 지녀야 하는 것 등이다.
또한 결혼에 있어서 경제적 조건이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을 볼 때는 오늘날과 다를 바가 없구나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했다.

여자는 온순하고 고분고분해야 하고 조용하고 말을 많이 하면 안되며 얌전해야 한다고 은연 중에 강박당해왔다.
나는 그것에 반하는 마음이 늘 있었으나 무섭고 두려워서 행동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다만 나는 조심성이 없다는 이야기와 여자답지 못하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대체 왜 여자다워야 하는지 아직까지도 의문이지만 나는 그 자체로 나인데 왜 나를 컨트롤하려고 하는거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그래서는 시집을 못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옆지기를 만나기 전에는 결혼 생각이 1도 없었다. 세상 일은 알 수 없어 결국 나도 결혼이라는 걸 했지만 여전히 결혼이란 제도로 인한 구속성과 제약성은 여성을 제한시키는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엘리너의 입장에서 전체적인 논지를 끌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여성의 입장에서 상황이나 감정이 묘사되고 있구나 싶은데 그래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성들이 전체적으로 완벽함을 지닌 인물이 없다.
빈틈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의도적인 장치일 것 같기도 하다.


저와 모든 점에서 취향이 일치하지 않는 남자와는 행복해질 수가 없어요. 그는 제 모든 감정을 공유해야 돼요. 똑같은 책, 똑같은 음악이 우리를 매료시켜야 해요. 아! 엄마, 어젯밤에 우리한테 책을 읽어줄 때 에드워드의 태도 보셨어요? 얼마나 생기 없고 얼마나 단조롭던지! 저는 언니가 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언니는 너무나 침착하게 참아내더라고요, 거의 눈치도 못 채는 것처럼. 저는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들었어요. 제가 그 아름다운 구절들에 얼마나 자주 열광했었는데, 그걸 그렇게 아무 감정 없이 밋밋하게, 끔찍할 정도로 무심하게 읽다니요!

친밀함을 결정하는 건 시간이나 기회가 아니야. 오로지 성향이지. 어떤 사람들은 서로 친해지는 데 7년으로도 부족하고, 어떤 사람들은 7일만으로도 충분해.

그녀는 자제력이라는 문제를 아주 간단히 정의했다. 애정이 강렬하면 자제력을 발휘하기란 불가능하고, 애정이 담담하면 자제력은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언니의 애정이 실제로 담담하다는 것, 이것은 비록 인정하기는 창피하지만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진실하지 않고 무지하기까지 한 상대, 지식이 부족하여 서로 동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대, 그리고 다른 이들을 대하는 태도로 보건대 자신에게 쏟는 모든 관심과 존경심도 아무 가치 없게 느끼도록 만드는 상대, 이런 상대와 함께하면서 지속적인 만족감을 얻기란 불가능했다.

젊은 남자가 말이오, 누가 됐든 간에, 예쁜 아가씨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약속했으면, 단지 자기가 가난해지고 더 돈 많은 아가씨가 받아준다고 해서 약속을 팽개치고 달아나면 안 되지. 그런 형편이라면 자기 말을 팔고, 집을 세주고, 하인도 내보내고, 당장 재정 상태를 확 뜯어고쳐야 되지 않겠소?

순간의 상황에 의해, 어떤 자질이든 때로는 실제 가치보다 높게 평가될 때가 있다. 때때로 엘리너는 사람들의 오지랖 넓은 애도에 지친 나머지,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는 올바른 예의가 친절한 품성보다 더 필수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종류를 막론하고 빈곤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대화의 빈곤이라면 모를까. 이 점에 있어서는 결핍의 정도가 심각했다. 존 대시우드는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을 별로 하지 않았고, 그의 아내는 더욱 심했다. 하지만 이것이 특별히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었으니, 손님들 대다수가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유쾌한 상대가 되기에는 거의 대부분이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결격 사유를 지니고 있었다. 타고난 것이든 교육에 의한 것이든 분별력이 부족하다거나, 우아함이 부족하다거나, 생기가 부족하다거나, 침착함이 부족하다거나.

사람들이 돈이나 지위를 가지고 야단법석을 떠는 걸 보면 이해가 안 돼. 에드워드 씨와 루시가 결혼하면 안 되는 이유가 대체 뭐요

엘리너는 자신의 불행 앞에서도 타인의 불행을 마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위로해야 했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거듭 확인해주고,에드워드는 신중하지 못했을 뿐 아무 잘못도 없다고 열심히 옹호하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위로를 건넸다

한쪽에서는 메리앤이 천사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윌러비’ 하고 부르는데…… 그 목소리라니! 아! 하느님! 그녀는 제게 손을 내밀면서, 그 매혹적인 두 눈에 절절한 근심을 가득 담은 채 저를 바라보며 해명을 부탁했지요!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는 소피아가 악마처럼 질투심에 사로잡힌 채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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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6-01 1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어서 기억이 잘 안나는데 화가님 리뷰 보니까 어렴풋이 떠오르네요~! 역시 사람사이에 중요한건 성향인가봐요~! 저도 이성 보다는 감성쪽 입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01 15:42   좋아요 3 | URL
이제야 이 책을 읽다니 참 문학에 취약한 저인 듯해요^^;
저는 관계에 있어서 성향이 비슷해야 끌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새파랑님 감성 쪽이실 것 같았습니다!ㅎㅎ

바람돌이 2022-06-01 10: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실 우리 모두 이성과 감성 그 어느 중간쯤에 다 있잖아요.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한사람에게서도 감성과 이성의 비중이 달라지는 때도 많을거구요. 이 책은 그런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섬세하게 포착해낸게 백미였던듯 해요. 물론 읽은지 너무 오래 돼서 잘 기억도 안나지만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6-01 15:45   좋아요 3 | URL
그렇죠~? 이 책에서도 엘리너와 메리앤이 각 성향을 대표하기 위해 인물을 배치했겠지만 100% 이성이다 100% 감성이다 이렇게 나눌 수는 없다고 봐요. 엘리너가 참다 참다 폭발해서 감정샘을 터트리는 경우도 몇 차례 있었구요.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섬세하게 잘 다룬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계속 읽으면 더 잘 알게 되겠죠^^; 감사합니다.

미미 2022-06-01 1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국은 아직까지도 보수적인 국가로 느껴져요. 여왕의 존재도요. 제인 오스틴의 시대에는 훨씬 더했을 듯 합니다. 그 안에서 이런 훌륭한 작가가 나오고 메리 울스턴크레프트같은 페미니스트가 나왔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랍네요^^*

거리의화가 2022-06-01 15:47   좋아요 3 | URL
미미님 맞습니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왕실이 존재하고 예의와 법도 이런 것을 여전히 따지는 문화인 듯 싶어요. 그 시대는 당연히 더했겠죠. 여성에 대한 제약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테고 기회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았을텐데 그런 환경에서 많은 문학인이 탄생하고 행동하는 여성들이 나온다는게 놀랍기만 해요! 실제로 영국의 여성 참정권이 1918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지기도 했고요.

mini74 2022-06-01 11: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국이란 나라가 커튼 뒤에서 옆집 앞집 살펴보고 뒷이야기 앞이야기 하다가 살인사건도 해결하고 연애도 하고 ㅎㅎ 이런 글들이 좀 많은거 같아요 옆집 살펴보닌 백미러같은 유리가 집앞에 붙여져 있는 영국의 전통 시골집 사진보고 웃었던 적도 있어요 억압속에서 모든 욕망을 말로 풀어내는 듯한 ~ 화가님 글 읽으니 새롭게 다가오네요. 온순과 고분은 노예와 가축의 미덕이다란 글 생각나요.ㅠㅠ 저도 그 말 참 싫어요.

거리의화가 2022-06-01 15:49   좋아요 3 | URL
ㅋㅋ 아우 진짜 왜 이렇게 남 이야기 하길 계속 해대는지 너무 싫었어요 그 상황 자체도 그렇고. 물론 그런 것 때문에 사람들이 만나기도 하겠지만은ㅎㅎ 백미러 같은 유리가 붙어 있다구요?ㅋㅋ 상황을 알 만하네요.
이런 억압 속에서도 여성들이 꾸준히 글을 쓰고 권리를 주장하며 성취한 역사. 멋진 것 같습니다!
 
역사비평 138호 - 2022.봄
역사문제연구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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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는 기획으로 비동맹주의의 실험과 유산을 다루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 질서와 평화를 모색하기 위한 방향으로 아시아 각국의 비동맹주의에 대한 것이다. 해당 글들은 1961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렸던 제1차 비동맹회의 이후 60년이 지난 2021년 한국냉전학회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것들이다. 인도 총리 네루는 냉전의 세계화에 맞선 비동맹운동으로서 아시아지역화를 통한 신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전쟁이 국제전으로 비화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 전쟁 종식을 위한 한국과 중국 간 중재 노력과 UN을 통한 평화를 주장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미얀마 지도자 우 누는 냉전 이후 양극화하는 지역 질서 속에서 사회안정에 나서기 시작한 지역의 약소국들이 편 가르기에 맞선 강대국 정치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가 주장한 중립주의와 비동맹주의는 탈식민 국가와 민족이 생존을 위해서 유일한 길로 택한 것이었는데 그 길목에 있던 한국전쟁은 인민들이 폭력과 생명파괴를 겪은 현장 중 한 곳이었다. 1947년 뉴델리에서 아시아관계회의가 열렸다. 이후 동아시아에서 국공내전이 격화되고 동남아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이 고양되었으나 정작 아시아관계회의 상설기구는 활동하지 못했다. 2차 회의가 1949년 뉴델리에서 개최되었는데 여기에는 조선대표가 참가하지 못했다. 조선의 참여로 첫 국제회의 참가 기회여서 국내외적 관심이 높았지만 미군정이 독단적으로 대표를 선정하면서 여운형이 대표에서 사퇴하였고 3명의 대표는 회의에 늦게 도착하면서 실질적 토의에 불참하여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만다. 


지속적으로 연재 중인 세종 시대에 대한 조명은 이번에도 있었다. 이번 호 내용은 세종 시대의 여진 정벌에 대한 조명이었다. 세종의 외교적 성과 중 영토 확장에 대한 부분 중 흔히 배우는 것이 4군 6진 개척이다. 해당 투고에서는 세종대 대외정벌에 대한 이해가 외부 세력의 침입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 맞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어 충격을 주었다. '그럼 아니란 말인가?' 세종 시기는 아무래도 조선 시기 중 가장 훌륭한 업적이 많았던 시기이기 때문에 실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심하게는 신성시되는 면이 있다. 1434년 12월까지 여진족이 여러 차례 조선 변경 지역을 침입한 적은 있으나 피해가 적었고 조선 조정에서는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았다. 1432년 12월 평안도 감사는 여진이 여연을 침입해 약탈 행위를 하고 도망가던 것을 추격해 일부 백성과 우마 등을 탈환했지만 끝까지 추격하지 못하자 이를 조정에 보고했다. 이에 세종이 분노했고 세종은 여진 세력을 응징하기 위해 추격 여부를 논의했다. 세종은 여진 세력에 대한 정벌을 단행하기 위해 그들의 흉악함을 증명해야 했으나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여연을 침입한 세력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조정 관리들은 정확한 상황 확인이 먼저라고 이야기했으나 세종은 명에 주본을 작성하도록 지시하며 여연 침입 세력을 여진으로 특정하여 조선에 피해를 끼친 것으로 적었다. 결국 조선은 세종 뜻대로 파저강 일대에 대한 대규모 정벌을 단행한다. 정벌군 규모가 1만 5천이었다. 세종은 죄지은 자를 정의로운 군대로 응징한다는 정벌 취지를 내세웠으나 대상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었던 상황을 은폐한 채 진행되었던 것이기에 정벌 취지에 부합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특집으로 경제 관련 투자 권하는 사회 투고들이 실린 것이 눈에 띄었다. 주식과 코인 투자가 한국 사회에서 최근 몇 년 사이 붐을 일으킬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겠으나 이것이 투기로 이어지고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많아진 것은 그에 대한 환기가 필요해 보인다. 최근에는 루나와 테라 코인의 주가 폭락 사태가 있었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20세기 주식 시장의 역사와 투자 기법들의 역사를 다루어 준 것은 적절했다고 보인다. 과거 사례로 다양한 투자와 투기 모습의 사례도 제시해준다. 1920년대 미 플로리다에서 일어났던 부동산 붐과 과열 투기, 1980년대 중후반 일본에서 나타났던 투기의 모습, 토지독점에 기초한 부동산 재벌의 도시지배로 홍콩이 극단적인 양극화 도시가 된 모습, 중국의 주식투자 열풍까지 보여준다. 나는 홍콩의 과거와 현재를 부동산 재벌과 관련지어 분석한 투고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홍콩은 부동산 재벌이 땅까지 독점하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크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집을 사지 못하고 쪽방 신세가 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는데 2014년 우산혁명에 이어 이후 송환법 제정까지 이것과 무관하지 않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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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원전 (컬러 도판 양장본) - 역사의 목격자들이 직접 쓴 2,500년 현장의 기록들
존 캐리 엮음, 김기협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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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가진 역사 서술로 이루어진 근대 역사학의 논리에서 벗어나서 정치적 색을 지운 역사를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듯. 당시 사람들의 기록들을 모아놓은 책으로 역사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기록한 사람들의 의도와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면 효과가 더 큰 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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