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이성과 감성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권민정 옮김 / 시공사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성과 감성을 읽으면서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얼마 읽지 않았을 때 어렴풋이 느꼈다.

동생 메리앤은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
반면 언니 엘리너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려고 노력한다.
엘리너는 이성, 메리앤은 감성을 대표한다 볼 수 있다.

나는 감정이 얼굴과 표정에 드러난다는 말이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데 좋은 감정이면 문제가 되지 않으나 불쾌하거나 싫은 감정이면 문제가 되곤 했다.
직장 생활을 해오면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문제의 소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후로는 상황에 따라 감정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하게 됐다.

소설을 읽으면서 종종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역시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거론되는 말들이었다.
나는 이것이 너무 불쾌하고 싫었다.

또한 듣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내뱉는 말들도 불쾌했다.
내가 듣는 말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데, 내가 보는 상황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는데 이를 그대로 남에게 전달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소설에서 군데 군데 그런 장면들이 여럿 보인다.
이것이 상대에게 비수로 다가갈 수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여성들의 환경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대목들도 나온다.
이동에 있어서 보호자가 있어야 하는 등의 제한이 있고
기본적으로는 우아하고 교양 있는 태도를 으레 지녀야 하는 것 등이다.
또한 결혼에 있어서 경제적 조건이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을 볼 때는 오늘날과 다를 바가 없구나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했다.

여자는 온순하고 고분고분해야 하고 조용하고 말을 많이 하면 안되며 얌전해야 한다고 은연 중에 강박당해왔다.
나는 그것에 반하는 마음이 늘 있었으나 무섭고 두려워서 행동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다만 나는 조심성이 없다는 이야기와 여자답지 못하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대체 왜 여자다워야 하는지 아직까지도 의문이지만 나는 그 자체로 나인데 왜 나를 컨트롤하려고 하는거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그래서는 시집을 못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옆지기를 만나기 전에는 결혼 생각이 1도 없었다. 세상 일은 알 수 없어 결국 나도 결혼이라는 걸 했지만 여전히 결혼이란 제도로 인한 구속성과 제약성은 여성을 제한시키는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엘리너의 입장에서 전체적인 논지를 끌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여성의 입장에서 상황이나 감정이 묘사되고 있구나 싶은데 그래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성들이 전체적으로 완벽함을 지닌 인물이 없다.
빈틈이 있다는 것인데 이는 의도적인 장치일 것 같기도 하다.


저와 모든 점에서 취향이 일치하지 않는 남자와는 행복해질 수가 없어요. 그는 제 모든 감정을 공유해야 돼요. 똑같은 책, 똑같은 음악이 우리를 매료시켜야 해요. 아! 엄마, 어젯밤에 우리한테 책을 읽어줄 때 에드워드의 태도 보셨어요? 얼마나 생기 없고 얼마나 단조롭던지! 저는 언니가 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언니는 너무나 침착하게 참아내더라고요, 거의 눈치도 못 채는 것처럼. 저는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들었어요. 제가 그 아름다운 구절들에 얼마나 자주 열광했었는데, 그걸 그렇게 아무 감정 없이 밋밋하게, 끔찍할 정도로 무심하게 읽다니요!

친밀함을 결정하는 건 시간이나 기회가 아니야. 오로지 성향이지. 어떤 사람들은 서로 친해지는 데 7년으로도 부족하고, 어떤 사람들은 7일만으로도 충분해.

그녀는 자제력이라는 문제를 아주 간단히 정의했다. 애정이 강렬하면 자제력을 발휘하기란 불가능하고, 애정이 담담하면 자제력은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언니의 애정이 실제로 담담하다는 것, 이것은 비록 인정하기는 창피하지만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진실하지 않고 무지하기까지 한 상대, 지식이 부족하여 서로 동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대, 그리고 다른 이들을 대하는 태도로 보건대 자신에게 쏟는 모든 관심과 존경심도 아무 가치 없게 느끼도록 만드는 상대, 이런 상대와 함께하면서 지속적인 만족감을 얻기란 불가능했다.

젊은 남자가 말이오, 누가 됐든 간에, 예쁜 아가씨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약속했으면, 단지 자기가 가난해지고 더 돈 많은 아가씨가 받아준다고 해서 약속을 팽개치고 달아나면 안 되지. 그런 형편이라면 자기 말을 팔고, 집을 세주고, 하인도 내보내고, 당장 재정 상태를 확 뜯어고쳐야 되지 않겠소?

순간의 상황에 의해, 어떤 자질이든 때로는 실제 가치보다 높게 평가될 때가 있다. 때때로 엘리너는 사람들의 오지랖 넓은 애도에 지친 나머지,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는 올바른 예의가 친절한 품성보다 더 필수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종류를 막론하고 빈곤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대화의 빈곤이라면 모를까. 이 점에 있어서는 결핍의 정도가 심각했다. 존 대시우드는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을 별로 하지 않았고, 그의 아내는 더욱 심했다. 하지만 이것이 특별히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었으니, 손님들 대다수가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유쾌한 상대가 되기에는 거의 대부분이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결격 사유를 지니고 있었다. 타고난 것이든 교육에 의한 것이든 분별력이 부족하다거나, 우아함이 부족하다거나, 생기가 부족하다거나, 침착함이 부족하다거나.

사람들이 돈이나 지위를 가지고 야단법석을 떠는 걸 보면 이해가 안 돼. 에드워드 씨와 루시가 결혼하면 안 되는 이유가 대체 뭐요

엘리너는 자신의 불행 앞에서도 타인의 불행을 마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위로해야 했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거듭 확인해주고,에드워드는 신중하지 못했을 뿐 아무 잘못도 없다고 열심히 옹호하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위로를 건넸다

한쪽에서는 메리앤이 천사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윌러비’ 하고 부르는데…… 그 목소리라니! 아! 하느님! 그녀는 제게 손을 내밀면서, 그 매혹적인 두 눈에 절절한 근심을 가득 담은 채 저를 바라보며 해명을 부탁했지요!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는 소피아가 악마처럼 질투심에 사로잡힌 채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2-06-01 1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어서 기억이 잘 안나는데 화가님 리뷰 보니까 어렴풋이 떠오르네요~! 역시 사람사이에 중요한건 성향인가봐요~! 저도 이성 보다는 감성쪽 입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01 15:42   좋아요 3 | URL
이제야 이 책을 읽다니 참 문학에 취약한 저인 듯해요^^;
저는 관계에 있어서 성향이 비슷해야 끌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새파랑님 감성 쪽이실 것 같았습니다!ㅎㅎ

바람돌이 2022-06-01 10: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실 우리 모두 이성과 감성 그 어느 중간쯤에 다 있잖아요.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한사람에게서도 감성과 이성의 비중이 달라지는 때도 많을거구요. 이 책은 그런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섬세하게 포착해낸게 백미였던듯 해요. 물론 읽은지 너무 오래 돼서 잘 기억도 안나지만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6-01 15:45   좋아요 3 | URL
그렇죠~? 이 책에서도 엘리너와 메리앤이 각 성향을 대표하기 위해 인물을 배치했겠지만 100% 이성이다 100% 감성이다 이렇게 나눌 수는 없다고 봐요. 엘리너가 참다 참다 폭발해서 감정샘을 터트리는 경우도 몇 차례 있었구요. 인간의 이중적인 면을 섬세하게 잘 다룬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계속 읽으면 더 잘 알게 되겠죠^^; 감사합니다.

청아 2022-06-01 1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국은 아직까지도 보수적인 국가로 느껴져요. 여왕의 존재도요. 제인 오스틴의 시대에는 훨씬 더했을 듯 합니다. 그 안에서 이런 훌륭한 작가가 나오고 메리 울스턴크레프트같은 페미니스트가 나왔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랍네요^^*

거리의화가 2022-06-01 15:47   좋아요 3 | URL
미미님 맞습니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왕실이 존재하고 예의와 법도 이런 것을 여전히 따지는 문화인 듯 싶어요. 그 시대는 당연히 더했겠죠. 여성에 대한 제약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테고 기회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았을텐데 그런 환경에서 많은 문학인이 탄생하고 행동하는 여성들이 나온다는게 놀랍기만 해요! 실제로 영국의 여성 참정권이 1918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지기도 했고요.

mini74 2022-06-01 11: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국이란 나라가 커튼 뒤에서 옆집 앞집 살펴보고 뒷이야기 앞이야기 하다가 살인사건도 해결하고 연애도 하고 ㅎㅎ 이런 글들이 좀 많은거 같아요 옆집 살펴보닌 백미러같은 유리가 집앞에 붙여져 있는 영국의 전통 시골집 사진보고 웃었던 적도 있어요 억압속에서 모든 욕망을 말로 풀어내는 듯한 ~ 화가님 글 읽으니 새롭게 다가오네요. 온순과 고분은 노예와 가축의 미덕이다란 글 생각나요.ㅠㅠ 저도 그 말 참 싫어요.

거리의화가 2022-06-01 15:49   좋아요 3 | URL
ㅋㅋ 아우 진짜 왜 이렇게 남 이야기 하길 계속 해대는지 너무 싫었어요 그 상황 자체도 그렇고. 물론 그런 것 때문에 사람들이 만나기도 하겠지만은ㅎㅎ 백미러 같은 유리가 붙어 있다구요?ㅋㅋ 상황을 알 만하네요.
이런 억압 속에서도 여성들이 꾸준히 글을 쓰고 권리를 주장하며 성취한 역사. 멋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