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김용균들 - 싸울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권미정.림보.희음 지음,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기획 / 오월의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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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참 잘 지었다 생각했다.
김용균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으나 김용균은 그저 단수가 아니다.
김용균이 사고를 당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법은 개정되었으나 기업은 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현장을 훼손하는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그래서 김용균만의 싸움이 아니고 김용균들, 복수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읽는 내내 갑갑함을 밀려오게 하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책이야말로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회사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 의식이 없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여전히 기업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데 그렇다면 한 명 한 명의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닌가?
언제까지 노동자들을 다치거나 죽게 할 셈인가.

이 책에는 사고를 맨 처음 발견한 동료, 김용균 어머님, 비정규직 노조위원인 세 명의 인터뷰가 실려 있고
각 인터뷰 마지막에는 독자들을 위한 가이드북을 실어놓아 도움을 준다.
첫 번째, '석탄화력발전소의 시작'에서는 한전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한전의 민영화와 외주화가 낳은 폐해가 어떻게 이 문제와 연결되는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두 번째, 김용균투쟁 62일 동안의 어머님이 하셨던 발언들을 발췌해 실어놓았다. 읽다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문화 활동가들이 김용균 추모제를 위해 참여한 배경과 과정, 소감 등을 실어 놓았다.

인구 씨는 30년을 발전소 정규직으로 일하다 용역업체인 한국발전기술(KEPS)에서 비정규직으로 3년간 일하다 사고를 만났다. 사고 당일, 인구 씨는 야간 근무조로 보통 주간에는 11시간 근무를 하고 야간은 13시간 일을 했다고 한다. 쉼 없이 돌아가는 발전소 업무로 노동자들은 한시도 쉴 수 없었다.

"직원을 정해진 기간에 뽑는 게 아니고 누구 한 명이 퇴직하면 빈자리를 채우는 식으로 공채를 하니까 교육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여유는 한 3일 정도 있는데 하루는 신체검사하고, 하루는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서류 작성하고, 하루만 현장 한 바퀴 돌고 다음 날 바로 일을 시작하는 거죠." - P22

신입 사원이 3일 만에 현장에 투입된다 한다. 문제는 현장을 도는 것은 하루 뿐이라는 것이다.

발전소는 유기적인 공정이 이루어져야 해서 노동자들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때문에 하청업체에서 고용한 노동자들도 원청사 업무에 맞추어 작업을 하며, 원청사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태안화력발전소의 컨베이어 벨트는 전체 구간이 수 킬로미터에 이르며, 60~80미터의 고공에 위치하는데다 얇은 금속판으로 만들어져 위험하다. 발전소 내부는 조명이 있어도 어둡고 분진으로 인해 앞을 보기가 어려운 열악한 환경이다. (손전등이 주어지지 않아서 핸드폰 플래시로 작업을 했다.)

한국서부발전은 민간 대기업 수준의 규모가 있는 회사다. 서부발전은 발전소의 재난과 사고를 방지하고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2012년 종합방재센터를 세웠다. 하지만 시스템만 존재할 뿐 재난에 적극 대응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무능했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태안화력발전소에서만 18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김용균 사고 후 2020년에도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고가 발생한 시점에 저희가 손을 쓸 수 있는 사건이라면 조사를 미루거나 변호사나 활동가가 동행해서 보호조치를 하지만, 대부분은 이러한 보호 없이 잔인한 상황에 노출됩니다. 특히 경찰조사는 사고가 발생한 직후에 주로 진행돼서 손쓸 틈도 없이 목격자 혼자 경찰서에 실려가서 조사받을 때가 많아요."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최진일) - P45

이인구 씨는 현장 감식반과 회사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후 경찰과 119 구조대, 고용노동부 조사를 거치면서 그 과정에서 그는 압박과 스트레스로 힘겨움을 겪었고 이것이 트라우마로 이어졌다.
그는 62일 간의 투쟁이 있어서 본인은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디에서도 잠을 자기 어려웠으나 분향소에서 상주로 지내는 동안에는 괜찮을 수 있었다.

오늘도 일터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일과 관련한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 병을 얻게 된 사람들을 '산업재해 피해 당사자'라고 한다(1차 피해자: 사망자, 신체적 부상이나 정신적 외상이 있는 생존자). 인구 씨처럼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피해자의 가족들(2차 피해자: 사망 부상 사고 목격자, 1차 피해자의 가족 친구, 사건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응급구조 업무, 의료인력 및 상담가, 사건을 취재하는 언론인까지(3차 피해자) 포함한다면 산재로 인한 피해 당사자의 범위는 생각보다 폭넓다. 그런데도 이 사회는 산재를 경험한 사람들이 사고 이후 어떻게 사는지 조금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만 같다. - P51

김미숙 씨는 사고 현장에 들렀고 회사 대표의 행태에 분노하고 열악한 환경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후 같은 현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에게 이런 곳은 당장 그만두라고 이야기했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더군다나 그녀 역시 몇십 년을 비정규직으로만 살아왔으니 아들을 잃고 나서 얼마나 뼈아팠을지 싶었다.

그녀는 아들인 용균 씨가 최소한 자신보다 는 나은 데서 일하길 바라왔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에서 지은 최신 시설에서 일한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아버렸다고, 믿어 버렸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물어보지도 못했다고, 현장이 어떤지, 일하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 말이다. 미숙 씨는 아들이 일하는 그 3개월 동안 자신이 멋모르고 편안하게 삼켰던 밥을 모조리 다 토해내고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 - P98

그녀에게 큰 울림이 되고 힘이 된 건, 그녀를 찾아와 직접 들려준 살아있는 목소리와 손안에 전해진 손수 쓴 편지였다. 그 중에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의 편지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힘을 얻을 수 있었고 김용균 재단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단지 김용균 한 사람을 기리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재 피해 유가족을 지원하고, 싸우는 유족 및 노동자, 또 이들에 연대하는 시민들의 힘을 모아 이 사회의 불합리한 관행과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했다. 다음 유족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미숙 씨와 기존의 유족들이 겪었던 일을 다시는 다른 이들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렇게 싸우면서 죽음의 행렬을 끊어내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며, 차별 없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재단의 최종적인 목표가 되기를 바랐다. - P121

2022년 2월 10일 대전지법은 김용균 사망사고에 대한 1심 공판에서 원청 대표인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이전의 상식이라고 통칭되는 것과 기업 중심으로 돌아가는 힘의 논리에서 나아가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이 때문에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고, 기업의 변화, 사회의 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발전소 비정규직 동료 이태성 씨는 한전 자회사인 한전산업개발 태안사업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다. 그는 입사 때 김용균이 하던 현장 운전원의 일을 했기에 김용균이 일하는 환경을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2018년 비정규직 노동자 연대 모임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를 전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 때 김용균도 손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고 참여하였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사진이자 유언이 되고 말았다. 사실 입사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아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가 손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은 것은 적극적인 행위를 보여준 것이므로 그는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동안 회사가 산재와 죽음을 돈으로 때우는 날치기 행태를 많이 보아왔다. 2018년 12월 14일 시민대책위원회가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브리핑을 진행했는데 사고가 난 기기를 포함해 설비 개선을 요구했지만 한국서부발전은 3억 원이 들기에 거부했다는 사실이 거론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수시로 회사에 개선 요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노조로 참여하여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당정 협의 합의안을 이끌어 냈다.

"저에게 합의서에 대해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죠. 나름대로는 부족하지만 성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부족한 것은 우리 발전 비정규직들이 책임지고 풀어가야 할 부분이고, 발전 비정규직들이 중심을 잡고 잘 서서 싸워야 할 몫이죠. 그래도 조합원 동료들이 인정하지 않았다면 합의는 없었을 거예요. 조합원들은 정부가 그렇게 발표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될 거라고 기대했거든요." - P213

그는 그동안 "너희 회사에서 생긴 일도 아닌데 네가 왜 그러고 다니냐"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회사의 압박도 심했다고 한다.

"서부발전에서 [제가 일하는] 한전산업개발로 압박이 갔었고, 회사에 저도 한 20년 넘게 있다 보니까 제 동기들 가운데 간부로 올라간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전화 와가지고 '안 하면 안 되냐' '왜 우리 회사 자료를 마음대로 이렇게 내보내냐' [말하기도 했죠]."

이후 대통령은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와의 만남을 가졌다. 장례를 치르고 1주일 지난 뒤였다.
특조위가 꾸려졌지만 활동이 중단되었다. 왜? 모든 조사 과정에서 회사가 개입해 조사 활동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발뺌하고 비싼 변호사 쓸 거라는 것도 예상했지만, 그건 얄미운 거고, 제가 더 화가 나는 건 누구보다도 더 뜨겁게 싸워야 되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주체로 서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 P235

사회가 열악한 일터를 계속 용인한다면 열악한 일터는 어디에나 있을 거다. 그리고 누군가는 거기서 일하게 된다. '우리가 김용균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김용균투쟁은 모두의 싸움이었고, 또 다른 김용균들과 앞으로도 해나가야 한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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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26 1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가슴 아프네요. 진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재는 제대로 보상고 받지 못하고 책임지는 곳도ㅠㅠ 복수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서 고개 끄덕이게 되네요.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나갈 세상인데 ㅠㅠ

거리의화가 2022-07-26 13:24   좋아요 2 | URL
미니님 읽는 내내 분통이 터졌어요. 너무 가슴이 아프고 이런 일이 아직도 소리소문 없이 벌어지고 다치거나 죽어야 사건으로 다뤄지며 회자가 되는 건지 싶어서요. 시민들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계속 기업과 국가를 압박해야 아이들이 최소한 비빌 언덕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2-07-26 16: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봐도 마음이 아픕니다.

거리의화가 2022-07-26 17:26   좋아요 2 | URL
네 마음아픈 책이지만 잘 정리가 되어있어서 많은 분들께서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희선 2022-07-27 02: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일하는 곳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텐데, 회사는 그런 걸 별로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한해에 일어나는 사고 아주 많을 것 같습니다 실습나간 학생도 사고로 죽기도 하니... 그런 일 없으면 좋을 텐데, 산업재해 끊이지 않는 일이군요 일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할 텐데...


희선

거리의화가 2022-07-27 09:14   좋아요 1 | URL
네. 희선님. 매체에 다뤄지는 경우는 극한 상황이고 오히려 회사에서 쉬쉬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는 풍조가 당연한 일이 되어서는 안될터인데 말이죠. 사건이 보도가 된다고 해도 사측에서는 돈으로 무마하려 하거나 심지어는 안하무인으로 노동자를 압박하는 행태가 참으로 기가 찰 노릇입니다ㅜㅜ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민음사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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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기차를 타고 우주를 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만화 은하철도999가 국내에 들어와 히트를 치고 주제가가 번안되어 불리던 시절이었다.
기차의 외양은 증기기차 모습인데 엔진은 '나 엔진이요~'하는 모습이 아닌 것이 신기했다.
엔진이 가동되면 형형색색의 부속품들에 불이 들어온다. 헌데 그 기관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석탄 에너지다.
메가로폴리스에 가면 우주로 갈 수 있는 것인가. 만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본 그림일 것 같다.

이욘 티히의 우주일지는 이욘 티히가 우주를 여행하게 되면서 겪은 기록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은 1950년대 말인데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미국이 핵을 사용한 후 위기 의식을 느낀 소련이 우주 산업에 천착하게 된 즈음이다.
미국과 소련의 본격적인 우주 전쟁이 벌어지고 지구인들은 당장 가닿을 수는 없어도 우주 여행이 더 이상 막연한 꿈이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이욘 티히가 본 우주는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있을 법한 세계의 모습이어서 놀라움을 자아낸다.
원래 있음직한 것을 그려내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인데 그걸 창조한 작가가 천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처음에 간 곳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있는 나를 만난다. 몇 시간 전의 나, 어제의 나, 미래의 나를 말이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방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들은 모두 나였는데, 각자 다른 날짜의, 다른 주의, 다른 달의, 아니 한 명은 무려 작년의 나인 것 같았다. - P40

어떤 곳에 가서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어느 기계에 들어가서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나오는 것이다. 단,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가 없다.

브주트 사회에서는 뛰어난 학자들이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에 봉착하면, 기계 속에 몇십 년이고 들어갔다 나온다는 것이다. 종종 재생되어서는 그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냐고 불쑥 물어본 뒤, 만약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으면 또다시 원소 분해 상태로 돌아가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이를 되풀이한다고 했다. - P324

개인적으로 가장 놀랍고 재밌었던 부분은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우주에서 개발한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가고 역사적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실제인듯 실제가 아닌 듯 과거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주지만 동시에 괴로움을 느끼게도 한다.

이욘 티히는 이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했으나 잘못 개발된 기계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이 된 경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동쪽에서 뜨던 태양이 서쪽에서 뜨고 멀쩡하던 무덤이 다시 들어올려져 시체가 돌아다닌다. 과거로 돌아가니 크던 키가 작아지고 나이도 젊어졌다.
이렇게 되면 내가 태어난 직후 아기 상태로 돌아갈 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도 갖게 한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실패했다. 시간 여행의 원자가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품고 우주 시작 밖으로 나가면서 그 안에 힘을 응축시켜 에너지를 얻게 되었지만 3명의 악당으로 인해 엉망이 된다.

나는 프로젝트 이후의 역사에서 발전과 선은 오로지 내 덕이라고 선언했다. 그 말은 바로, 내가 조치한 수많은 귀양의 선한 영향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인류는 나에게 호메로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보스코비치,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스, 스피노자, 그리고 수 세기 동안 창조적 활동을 수행해 온 무수한 이름 없는 이들에 대해 감사해야 하리라. 귀양자들의 운명은 혹독했지만, 그들은 마땅히 벌받을 만했고, 또한 내 덕분에 역사 앞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보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들은 결국 역사의 발전을 도왔다. - P284

우주에서도 의회가 있고 선택의 순간들이 있다.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무질서와 혼란, 전쟁을 보면서 이를 악용하여 질서 유지를 핑계 삼아 독재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 끔찍하다.

'이 나라에서는 현재 혼돈이 가능합니다. 무질서가 판을 치고, 더 이상 법을 존경하지 않죠. 기계가 우리 행성에 우주 최고의 질서를 가져오기를, 완벽하고도 절대적인 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해 주기를 바랍니다.' - P336

타임머신은 이제는 진부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작가가 묘사하는 타임머신은 다른 느낌이었다.
역사를 다시 만나고 그 속에서 인간의 쓸데 없는 싸움과 인간이 행하는 잘못을 교묘히 드러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 방식을 통해 인간의 욕심과 오만함이 얼마나 우주를 망쳤는지 이야기한다.

언제나 그랬다. 시간 기술의 개입은 늘 다른 현상들을 눈사태처럼 불러일으켰고, 이것들은 적절한 수단을 쓰지 않고서는 제어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또 다른 동요를 일으키고, 이렇게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P268

우주는 오염되고 인간들이 버린 폐기물이나 쓰레기로 넘쳐나는 결과를 낳는다.
작가는 우주를 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으나 마치 현재의 지구를 들여다본 것 같은 혜안을 보여준다.
이쯤되면 SF작가가 아니라 미래학자가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였다.

우리는 가능한 한 전자두뇌들에게 인간의 이런 끔찍한 모습을 알려 주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제 지구의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 범죄의 역사로 물든 기계들이 프로시온 행성 주변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계정신병리학이 지금으로서는 무력하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 P95

그래서 소설을 읽는 재미는 보장할 수 있지만 섬뜩함도 느끼게 하는 것도 있었다.
렘의 연작 소설인 <솔라리스>와 <우주 순양함 무적호>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소설을 소장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정말 드문데 이 책은 그럴 가치가 있다 생각했다.
별점 5를 준 이유다.


이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을 기억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할 때다. 단 한 순간도 지체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서, 나는 우주를 구하고자 경종을 울린다. - P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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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7-25 2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 책상 머리에서 째려 보고
있는 책이네요. 도대체 언제
읽을 건데라고 하듯이요.

소설에 나오는 우주를 지구별
로 등치하면 별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환경오염으로 지구별이 날로
뜨거워진다는데 정부에서는
대책이 1도 없어 보입니다.

하다 못해 우리가 사는 지구
별일 지키자는 캠페인이라도
할 것이지.

거리의화가 2022-07-26 09:29   좋아요 2 | URL
책상머리에 있는 책이라면 조만간 읽게 되지 않을까요?ㅎㅎㅎ

말씀하신대로 우주=지구로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로 오늘날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게 하더군요. 환경오염은 저 멀리에 간 듯 싶어요. 전쟁으로 인해 고물가에 에너지 문제가 심각해지니 다시 원전 재가동하고 이웃 나라에서도 원전수 내보낸다 그러고 있고요. 경찰이니 검찰이니 밥그릇 싸움만 하는 통에 한숨만 나옵니다ㅜㅜ

희선 2022-07-26 00: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주를 구해야 한다고 하는 말은 지구를 구하자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사람이 우주에 쓰레기를 버린다는 말이 있기도 하군요 그건 둥둥 떠다니고 아주 사라지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우주로 가지 못하니 지구를 지켜야 할 텐데... 다른 시간의 자신을 만나면 정신 없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7-26 09:31   좋아요 2 | URL
네. 들어보니 우주에도 오래된 인공위성 잔해 같은 것은 떠다닌다고 하더군요. 지구의 쓰레기 문제, 그리고 토양 오염 문제 등은 점점 심각해지니 참 안타깝습니다.
ㅋㅋ 생각해보니 다른 시간 속의 나가 수백명이 있다면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하네요^^;;;

새파랑 2022-07-26 06: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f작가가 아닌 미래학자가 맞는거 같아요 ㅋ 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의 상상력은 엄청나다는 생각이듭니다~!! 스타니스와프 렘 리뷰를 보면 책이 상당히 흥미로운거 같아요. 화가님은 은하철도 999세대시군요 ^^

거리의화가 2022-07-26 09:32   좋아요 3 | URL
ㅋㅋ 맞습니다. 작가 소개 보니 미래학자라고도 적혀 있더라구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고 그럴듯하게 쓰는 걸 보면 작가의 능력이 뛰어난 듯 싶어요. 새파랑님도 읽으시면 좋아하실 책이 아닐까요~?ㅎㅎㅎ
네. 아무래도 그 세대가 맞겠습니다ㅋㅋㅋ 흐흐 오래 살았군요. 쩝.

mini74 2022-07-26 14: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솔라리스 넘 재미있어서 영화를 찾아봤는데 구소련 영화?가 유투브에 뜨더라고요 .음.....책이 더 좋았습니다. ㅎㅎ 저도 이 책 사서 지금 읽고 있는 중입니다 화가님...저도 은하철도 999와 천년여왕, 하록선장 세대입니다. ㅋㅋ

거리의화가 2022-07-26 14:09   좋아요 0 | URL
앗 구소련 영화요? 솔라리스도 여러 분께서 올려주신 리뷰 보고 재미나서 아무래도 사야할 것 같아요^^; 2달 정도 있다가 사는 걸로...ㅋㅋㅋ 영화보다는 역시 책이 좋지요.
오~ 이 책 읽고 계시는군요. 미니님 감상도 기대됩니다~ㅎㅎ 메텔과 철이, 하록선장, 천년여왕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ㅎㅎㅎ
 
김용균, 김용균들 - 싸울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권미정.림보.희음 지음,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기획 / 오월의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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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일터의 현실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것을 개선하려는 기업, 국가, 국민들의 의지가 없다면 결코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한다. 내가 당신이 될 수 있고 당신은 우리가 되며 모두가 된다. 법은 최소한의 보호막일 뿐 결국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들이다. 모두의 투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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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민음사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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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년전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우주를 구하자는 말은 지구를 대입시켜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기발한 상상력에 놀라다가도 군데 군데 지구의 현실이 보여서 공포로 다가오기도 했다.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망가질 지구의 안타까운 미래를 엿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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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새
정찬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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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1일 장국영은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투신자살했다. 나는 그의 팬도 아니었지만 당시 장국영의 죽음은 국내에도 큰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베르테르 효과'로 많은 팬들이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나도  비슷한 시대를 함께 산 사람으로서 그가 세상에 없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 한동안 멍한 공전의 상태가 계속되었었다. 


느낌이 묘했다. 왜 그랬을까. 현실과 허구가 섞여 있어서 오히려 다 읽고 나니 꿈을 꾸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현실과 가상이 섞였지만 실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었다.


소설에 현실人 첸카이거와 아이리스 장이 중심 인물로 등장하고 배경 인물에 장국영, 마오쩌둥, 미시마 유키오, 최승희,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이 나온다. 물론 나머지는 허구의 인물들이다.


극을 이끄는 중심 인물은 기자이고 베이징 특파원이다. 그는 극의 모든 인물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14살의 첸카이거는 마오쩌둥을 만나 문화혁명을 겪고 그의 아버지는 국민당 가입 전력 때문에 고초를 겪는다. 혁명을 꿈꾸었던 소년은 대약진 운동 이후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게 된다. 이런 첸카이거의 개인적 경험은 패왕별희가 탄생하는 데 배경이 되었고 영화는 대중이 원하는 것과 권력이 원하는 그림이 달라 생기는 비극을 이야기한다.

워이커씽은 첸카이거와 장국영과의 연결 고리가 있다. 워이커씽은 또 아이리스 장과 연결 고리가 있다.

아이리스 장은 난징 대학살을 조사하며 많은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듣기도 한다. 

그들은 문화혁명, 대약진 운동, 난징 대학살 같은 굵직한 사건을 배경으로 개인의 이야기를 버무려 내놓는다.

현실의 인물들과 가상의 인물들은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서로를 담고 치유한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동안 자주 본 두 권의 책이 있다. 『The Rape of Nanking』 과 『나의 홍위병 시절』이다.

『나의 홍위병 시절』은 첸카이거의 에세이로 마오쩌둥의 문화혁명과 대약진 운동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The Rape of Nanking』 은 아이리스 장이 쓴 아시아 태평양 전쟁 역사로 난징 대학살을 파헤치며 영어로 쓴 최초의 논픽션이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 완벽한 독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중국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사건을 깊숙이 건드리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소설이라서 좋은 점은 우리가 이전의 역사에서 바라던 추측성 결론을 대리 실현해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문학은 스포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야 하므로 기본적인 감상과 인상적인 문장으로 일갈한다.



"'내가 정말 궁금했던 게 내 삶의 마지막 장면이었어. 그래서 난 눈을 뜨고 죽을 거야.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이 새는 나는 것 이외는 알지 못해. 날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 P90


"나치 추종자들이 일본의 천황 이데올로기를 국가 형태와 국가 의식, 종교적 광신의 유일무이한 민족적 혼융이라고 하면서, 나치즘이 추구하는 것을 일본은 본능적 기질로 성취했다고 경탄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인에게 역사란 어쩌면...

일종의 그림자놀이일지도 모릅니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실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P48


"사춘기의 육체는 일생에서 절정의 시기이오.  육체의 절정기에 있는 소년들의 가없는 에너지를 마오는 꿰뚫어보았던 것이오. 발이 줄에 묶인 새처럼 빙글빙글 돌다가 노천주점에 앉아 있는 나에게로 다가온 열네살 소년이 마오에게는 식량이었던 거요." - P95


생명체의 진화는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과정이었어. 컴컴하고 차가운 바닷속보다 밝고 따뜻한 햇볕이 있고 산소가 풍부한 육지가 살기에 훨씬 좋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사람이라는 생명체도 생겨난 거야. 그러니 우리의 고향은 바다지. 육지에 올라온 수많은 생명체들 가운데 유독 한 생명체만은 다시 바다로 돌아가 자신의 몸을 바꾸어나갔어. 가느다란 꼬리는 꼬리지느러미로, 앞다리는 가슴지느러미로 변하고, 뒷다리는 짧은 뼈의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면서 바다에 살 수 있도록 생체 기능이 변화되어갔어. 그 생명체가 고래야. - P119


"줄 위에서 난징을 내려다보면 거무스레한 땅에 쌓인 시체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소. 죽은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갓난아기까지 보인다고 했소. 그걸 보고 있으면 자신의 얼굴이 파래지는데 꼭 죽은 얼굴 같았다고 했소." - P167


"유령은 언제나 한조각 꿈처럼 나타나. 그는 말 너머의 세계에 있음에도 말로써 자신을 표현하려고 해. 하지만 그의 말은 말의 그림자일 뿐이야. 우린 알고 있어. 말의 그림자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상처와 그리움이지. 때때로 그가 반딧불이처럼 느껴지기도 해." - P200


"꿈속에 있는 나는 내가 모르는 나였어. 뺨을 적시는 눈물은 내 눈물이 아니었던 거야. 꿈속의 내가 흘리는 눈물이었지. 꿈속의 나는 허공에 매달린 이를 올려다보며 울고 있었어." - P214


꿈이 아무리 순결할지라도 조직화, 집단화되는 순간 그 순결은 갈기갈기 찢기고 마는 것이오. 인간이란 존재는 이토록 비극적이오. 역사란 비극적 존재가 그리는 집단적 삶의 궤적이오. 이 비극 앞에서 위로가 되는 몽상이 있소. 장자의 몽상이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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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7-23 10: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발없는 새‘ 하면 역시 장국영이랑 아비정전 생각나는데 그 내용이 맞긴 맞네요~!!

거리의화가 2022-07-23 10:29   좋아요 3 | URL
네 작가가 팩트에서 소재를 가져오긴 했지만 허구가 배합된 분명한 소설입니다^^ 장국영 이야기는 아무래도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어요 저와 비슷한 시대를 산 사람이니까. 아비정전에서 따온 문구 맞습니다 역사를 알고 보면 더 재미날 소설이겠다 싶어요 그래서 전 좋았구요.

희선 2022-07-24 02: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을 보면서 다른 책 두 권에 관심을 가지셨군요 거리의화가 님이 좋아하실 책이군요 언젠가 보실 것 같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7-24 09:16   좋아요 2 | URL
작가가 두 책을 참고해서 썼다고 해요 그래서 저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둘 다 체험 에세이, 르포 논픽션이라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듯합니다. 언젠간(!) 보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