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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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사라져도 그 믿음이 불러일으켰던 과거 사물에 대한 물신 숭배적인 애착은 ㅡ 새로운 사물에 현실감을 부여하려는 힘을 상실해버린 우리에게 그 힘의 결핍을 감추려고 더욱 생생하게 – 살아남는 법이다. 마치 신이 머무르는 곳이 우리 마음속이 아니라 바로 과거 사물이며, 또 현재 우리 믿음의 상실이 ‘신‘의 죽음이라는 우발적인 이유 때문이라기도 한 것처럼. - P403~404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나는 열병 같은 사랑을 경험해본 적이 딱히 없다. 그렇다고 감정이 무덤덤한 편도 아닌데 왜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까. 나는 내 감정이 쉽게 끓어오르거나 흥분하길 잘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쉬워서는 안 된다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금방 사랑에 빠지고 불같이 뜨거운 사랑은 외면해왔는데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그런 사랑을 한 이들을 동경하기도 했다. 무덤덤한 사랑만 한 나로서는 불타는 사랑이 참으로 생경한 것이다.


2부는 스완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스완의 지독(?)한 사랑을 간접 경험한 느낌이다.


스완은 파리의 살롱에 가서 처음 오데트를 보았을 때 특별한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피렌체의 예술 작품, 예를 들어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의 주인공 같다고 느껴질 때부터 급속도로 그에게 사랑에 빠진다.(스완은 미술, 문학, 음악 등 예술 작품에 대한 조예가 상당히 깊음이 느껴진다. 이는 작가 프루스트와도 이어질 것이다)


‘피렌체 작품‘이라는 단어가 스완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마치 어떤 작품의 제목과도 같은 이 단어는 오데트의 이미지를 그녀가 지금까지는 접근할 수 없었던 꿈의 세계로 침투하게 했고, 거기서 그녀는 고귀함으로 적셔졌다. 그리고 그 여자에 대한 단순한 육체적 관점은 그녀 얼굴이나 육체, 그리고 다른 모든 아름다움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의혹을 불러일으키면서 그의 사랑을 약화해 왔는데, 대신 어떤 미학적인 요소를 평가 기준으로 삼게 되자 이런 의혹은 이내 사라지고 사랑은 보다 확실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입맞춤이나 육체의 소유가 시든 육체에 의해 주어졌을 때는 자연스럽고 하찮게 보이던 것이, 박물관 예술품에 대한 숭배가 이를 축성하러 오자 초자연적이고 감미롭게 보이는 것이었다. - P71



피렌체는 프랑스 발음으로 '플로렌스'로 '꽃'을 연상한다. 나는 이 작품을 피렌체에서 실제로 보았다. 그래서인지 '프리마베라' 하는 순간 어두운 꽃밭에 흩뿌려진 핑크빛 색채가 떠올랐다. 여러 다른 작품이 있었으나 우피치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단연코 '프리마베라(꽃)'이다. 이 작품을 보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1~2시간을 기웃거린 끝에 자세히 볼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전에 내가 생각하는 봄은 환하기만 한 생동함으로 인식되었다면 이 작품을 보고서는 그 이미지가 바뀌었다. 


이 때부터 스완은 오데트를 미학적 아름다움의 가치로 인식하며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마치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본적인 사랑에 대한 감정이란 같았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그에게는 오로지 그만 보이는 것, 그에 대한 모든 것이 알고 싶고 궁금한 것. 


삶의 다른 시기에는 어떤 사람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이나 행동에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보여, 누가 그런 것에 대해 수다를 떨어도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또 그 말을 듣는 동안에도 그의 주의력 중 가장 저속한 부분만이 관심을 기울였으므로, 그런 순간에는 자신이 가장 형편없는 사람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이 낯선 시기에는 개인적인 것이 너무도 심오한 그 무언가를 지니게 되었으므로, 한 여인의 아주 작은 일과에 대해 그의 마음속에서 깨어나는 듯 느껴지는 이 호기심은, 역사에 대한 그의 지난날 호기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수치스럽게 여겨왔던 모든 일들이, 예컨대 창문 앞에서 염탐을 하거나, 어쩌면 누가 알 것인가, 내일은 또 무관심한 사람들을 능숙하게 구슬려 말을 시키고 하인들을 매수하고 문에서 엿듣는다거나 할지, 여하튼 이 모든 일들이 필사본 판독이나 증언 비교, 기념비 해석처럼 진정한 지적 가치 있는, 진실 탐구에 적합한 조사방법인 것 같았다. - P155~156


사랑의 대상에 대한 탐구심은 자연스런 감정이겠으나 이것이 병적으로까지 깊어지면 집착? 또는 스토킹(!) 같은 형태로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나는 이런 감정이 불편하고 부당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반반이 아니더라도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감정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 뿐 아니라 상대에게는 위험한 신호로 느껴질 수 있다. 오데트를 사랑하는 과거의 자신에게 질투를 느낄 정도가 되려면 대체 어느 정도여야 할까.


"우리는 우리가 가진 행복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불행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생활이 이미 몇 해 전부터 계속되며, 그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이 생활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며, 날마다 아무런 기쁨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만남을 기다리느라 그의 연구나 쾌락, 친구, 결국에는 그의 삶마저 희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지, 그녀와의 관계를 미화하고 파국을 막아 온 것이 오히려 그의 운명을 해롭게 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바람직한 사건은 그가 꿈속에서만 일어났다고 그토록 좋아했듯 그 자신이 떠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았다. 우리는 자신의 불행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만큼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고 그는 중얼거렸다. - P286


사랑의 시간은 느끼기에는 너무 짧은 것인지 모른다. 그에게 연적이 나타났다. 그 이후는 예상할 수 있듯 그녀의 모든 행동이 마치 불륜의 경고등처럼 느껴진다. 이전에 했던 같은 행동도 다르게 보이는 것, 이는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스완의 사랑의 삶은, 그 질투의 충실함은 모두, 오데트에 대한 수많은 욕망과 의혹 들의 죽음과 배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만일 스완이 오랫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 해도, 그동안 죽어 간 욕망이나 의혹은 다른 것들로 대체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데트라는 존재는 스완의 마음에 다정함과 의혹의 씨앗을 번갈아 계속해서 뿌렸다. - P314


3부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이다. 화자는 상상 속에서 여러 기차 역에 정차하며 그 이름들을 싣고 도시의 모습을 탐색한다. 

내가 "피렌체, 파르마, 피사, 베네치아에 간다."라는 말을 했을 때, 만일 내가 내 생각 속에 들어 있는 것에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어떤 감미로운 것, 이를테면 자신의 모든 삶이 겨울날 오후가 끝날 무렵의 시간 속에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에게 저 찬란한 미지의 것, 봄날 아침과도 같은 그 무엇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러한 비현실적이고 언제나 변함없이 비슷한 이미지들이 낮과 밤을 채우면서, 당시 내 삶을 이전 삶과 구별 지었다. - P346


우리에게 피렌체 하면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둥근 돔을 가진 대성당이 떠오르지만 화자는 그 본질을 지오토의 종탑에서 찾는 것이 흥미로웠다. 내 생각에 피렌체는 워낙 문화 유산이 많은 동네라 도시 곳곳이 모두 박물관이기는 하다. 이름이 각인되는 것은 경험의 전후에 따른 과정이자 결과이다. 경험을 함으로써 그 이름은 더욱 각인된다. 이는 사실 1부와도 연결되는 맥락이라 여겨졌다. 풍경이 개인에게 각인되는 것처럼 범용적 이름이 아닌 자신에게 정의된 의미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규정짓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말은 사물에 대해 분명하고도 친숙한 작은 이미지를 제시한다. 목수의 작업대나 새, 개미집이 어떤 것인지 아이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유사한 작품들 가운데 표본으로 택해 학교 벽에 걸어 놓는 그림과도 같다. 그러나 이름은 사람들과 도시들에 대해 - 도시도 사람처럼 개별적이고 유일하다고 믿게끔 우리를 길들인다. ― 모호한 이미지를 제시한다. 그 이미지는 사람이나 도시로부터, 또는 찬란하거나 어두운 울림으로부터 색깔을 끄집어내, 마치 사용 방법의 제한이나 장식 디자이너의 변덕 때문에 하늘과 바다 뿐 아니라 보트, 성당, 행인도 온통 푸른색이나 붉은색으로 칠해진 포스터처럼 단조롭게 칠해진다. - P341



화자는 샹젤리제에서 '질베르트'라는 인물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질베르트는 2부에 나왔던 스완과도 연관 있는 인물이다. 다만 질베르트는 스완과 스완 부인을 만나게 하기 위한 징검다리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하다.


우리는 샹젤리제를 향해, 온통 빛으로 장식되고 군중으로 넘쳐흐르며, 햇빛 때문에 떨어져 나온 발코니들이 흐릿하게 금빛 구름마냥 집 앞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거리를 지나갔다. (...) 

질베르트를 사랑하던 시기에는, 나는 ‘사랑‘이 실제로 우리밖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사랑은 기껏해야 우리에게서 장애물을 멀리 치워줄 뿐이지만, 우리가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하는 질서 안에서 행복을 제공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 주도로 고백의 감미로움을 무관심한 척하는 태도로 바꾼다면, 내가 자주 꿈꾸어 오던 기쁨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내 멋대로 꾸며낸, 별 가치 없는, 진실과도 통하지 않는 사랑을 만들어내, 사랑의 예정된 신비로운 길을 따르는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P362


우리가 알았던 장소들은 단지 우리가 편의상 배치한 공간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 장소들은 당시 우리 삶을 이루었던 여러 인접한 인상들 가운데 가느다란 한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아! 집도 길도 거리도 세월처럼 덧없다. - P407


2권은 1권보다 풍경에 대한 인물 묘사는 적은 편이고 대신 인물의 말이나 행동을 통한 심리 묘사와 예술 작품에 대한 대화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알 듯 말듯 아리송하고 모호하고 잡히지 않는 프루스트의 시간 여행 두 번째가 이렇게 끝이 났다. 이제 두 번째 권인데 여전히 전체적인 윤곽은 잡았다 할 수 없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느낌을 갖는다. 부디 점점 더 나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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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2-27 2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사진 자료와 곁들여 피렌체에 대한 선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2 권은 두렵습니다.^^;;;
심리 묘사와 예술 작품에 대한 대화가 더 많다니.....시작이 두렵달까요?ㅋㅋㅋ
그래도 끝까지 읽어내시고, 정리하여 쓰신 리뷰에 무한 애정을 보내 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3-02-28 13:11   좋아요 1 | URL
나무님. 기회가 되면 나중에 꼭 피렌체 함 가보셔요^^ 저에게는 로마만큼이나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제가 괜히 두려움 안겨드린 것 같은데 1권 읽으셨으니 충분히 읽으실 수 있을 거에요.
무한 애정 주신다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어쨌든 목표한 대로 한 달에 한 권 2번째를 무사히 끝내서 기뻐요.

페넬로페 2023-02-27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완의 깊은 예술적 조예를 거리의화가님께서는 글로, 피렌체의 사진으로 풍부하게 해주셨네요.
처음 읽었을때는 스완의 사랑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재독하니 더 잘 보이는 것 같았어요.
질투가 프랑스식 사랑의 종류라고도 하더라고요~^

혼자 읽으시면서도 이렇게 많은 걸 느끼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거리의화가 2023-02-28 13:14   좋아요 1 | URL
역시 이 책은 재독을 해야 하나봐요. 저는 처음이라 뭐가 뭔지...ㅎㅎ 사실 프루스트 글의 어려움이 현실인지 꿈인지 까딱하면 놓치게 되는 것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재독할 때는 스완의 감정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오면 좋겠네요. 언제 재독할지는...ㅎㅎㅎ
페넬로페님 별말씀을요. 저는 그저 읽을 뿐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아요. 암튼 그래도 완독했다는 것이 어디냐며 자족합니다^^; 아마도 올해 내내 이 시리즈를 붙잡고 있겠죠!^^*

희선 2023-02-28 0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보고 예술작품으로 여기기도 하다니... 상대는 그걸 알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별걸 다 생각했네요 자신이 보기에 예술작품만큼 아름다웠다는 거겠지요 좀 부담스러울 것 같겠습니다 스완은 여러 가지를 잘 알았군요

두번째 보셨으니 앞으로 세번째 보시겠네요 그것도 잘 보시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2-28 13:16   좋아요 1 | URL
제가 스완에게서 느꼈던 부담스러움은 스완에 대한 사랑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사람이 사랑할 때는 뭔가 계기가 있긴 하잖아요. 스완은 예술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 그것이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여전히 모호하지만...ㅎㅎㅎ

네. 3권은 3월에 읽을 예정입니다^^

새파랑 2023-02-28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잃시찾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뒤로 갈수록 더 좋았던거 같아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ㅋ

아리송하고 모호하다는 표현이 딱 맞는거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3-03-01 08:31   좋아요 0 | URL
프루스트에 녹아들어가셔서일까요? 저도 뒤로 갈수록 더 좋아지면 좋겠습니다. 문장들이 정말 멋진 것들이 많아서 저도 필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2023-03-08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8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3-09 0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축하합니다 피렌체에 가 보셔서 그때 사진을 다시 보기도 했겠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고 지난 시간을 떠올려 봤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3-09 08:48   좋아요 0 | URL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전이라 그 때는 그곳 풍경을 보느라 바빴습니다^^; 더 알고 갔다면 훨씬 즐거운 감상길이 되었을텐데 말이죠. 희선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3-03-09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렌체! 가슴이 뜁니다^^
순조로우면 올해 가볼수 있으려나?! 하고 있어요.

거리의화가 2023-03-09 11:10   좋아요 1 | URL
가슴뛸 만한 것들이 가득한 곳이죠. 그레이스님 올해 그곳에 가셔서 경험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