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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크레딧 -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
김주희 지음 / 현실문화 / 2020년 7월
평점 :
이 책은 2000년대 이후 한국 성매매 산업이 신용(크레딧)이라는 신뢰의 가면 아래 활용되는 방식으로 여성들을 어떻게 착취해왔는지 담고 있다.
대략 2000년 전후(IMF 경제 위기 이후)로 한국의 성매매 산업의 모습은 변화되었다.
이전에는 포주-여성 간에 일대일로 예속된 관계여서 소득-부채라는 단순한 개념으로 설명되었다.
하지만 근 20년 동안 성매매 산업의 모습은 복잡해졌다.
여성이 다음 업소로 이동할 때 업주가 차용증을 함께 넘겨 여성들이 마치 교환 가능한 상품처럼 가치를 끊임없이 요구하게 만든다.
또 대부업자는 여성들을 위한 고금리의 일수 상품을 매매하고 여성들의 개인 정보를 노출시킴으로서 향후의 협박을 위한 도구로 만든다.
여기 일수 대출은 대부업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룸살롱, 부동산 중개업자, 임대 소득자 모두가 가담해 있다.
거기에 신자유경제의 심화로 정부는 가계 대출에 눈을 돌린다.
기업의 대출은 줄이는 대신 가계대출을 확산하고 신용카드를 마구 찍어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약한 고리인 노동자, 빈민, 자영업자들이 대상이 되었다.
매춘 여성에 대한 대출 상품도 이러한 대출 확산 과정에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높은 수수료와 이자, 대출 원금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금융계는 여성들의 몸을 담보로 하여 그 돈을 갚을 수 있다 판단하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심지어 그 상품은 채권화되어 떠돈다.
게다가 성매매 업소는 등급화라는 미명 하에 여성의 가꾸기를 종용한다.
여성 스스로가 부족함을 느끼게 만들어 다이어트, 성형 등에 끝없이 노출시키게 만든다. 업주는 여성이 예쁘지 않으면 들어올 때부터 성형을 권고한다.(강남의 수없는 룸살롱과 성형외과들을 보면 답이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기억이 자꾸만 떠올라서 괴로웠다.
가난하고 돈이 없어 수없이 좌절해야 했던 그 날들이 떠올라 힘들었다.
20대 청년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여성들의 선택지에 성매매가 들어간다는 현실이 이해도 되지 않을 뿐더러 가슴아팠다.
사회적 시스템이 철저하게 성매매를 위해 돌아가는 현실에 결국 남성 성 구매자들이 있다.
이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 현실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아서 씁쓸해진다.
성매매 집결지 현장에서 성매매 여성들과 면식 관계를 맺고 있는 사채업자는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유흥업소 특화대출' 상품을 알선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채권을 현금화하기 위해서 직접 채권을 저축은행이나 캐피탈회사에 팔기도 한다. 그러므로 미등록 대부업체나 사채업자로부터의 대출과 같은 비공식 경제 부문 역시 현재의 금융화된 공식 경제 영역에 일정 부분 연계 포섭되어 작동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 P184
성매매에서 남성들은 자신들의 지불 규모, 업소 위치, 접대 방식에 근거하여 적당한 등급의 업소를 선택하고 '초이스' '뺀찌'와 같이 선택의 합리성을 보충하는 장치들을 통해 성매매를 규칙에 의거한 게임과 같은 과정, 합리적 구매의 과정으로 집단적으로 내면화한다. - P238
성매매는 단순히 개별 남성과 개별 여성의 성적 실천, 성적 계약의 문제가 아니라, 구매자로 동질화된 남성이 차별적이고 위계화된 가치를 가진 여성 개인과 이들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공정 가격'으로 구매하는 관념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성매매 산업이 그 규모와 신용을 유지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성구매의 합리성이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 P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