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쿨루스 1
야마모토 히데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시내의 최고급호텔과 노숙자들이 진을 치는 공원 사이에 차를 세우고
엄지손가락을 빨며 자궁 속 태아의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자는 나코시.
그는 공원의 노숙자들에게 '자가용 형씨'로 불린다.

공원의 수돗가에서 얼굴을 씻으며 노숙자들과도 격의없는 인사를 나누는 그에게는
자신은 저들과 다르다는 남모를 자부심이 있다.
어느 날 돈이 떨어지고 자동차 기름이 떨어지고 거기다 견인까지 당하자
'두개골에 구멍을 뚫게 해주면 거액을 주겠다'는 피어싱에 문신이 장난이 아닌 
무시무시한 펑크족 청년의 인체실험 제안에 응하게 되는데,
알고봤더니 그는 유명한 병원집 자제에, 꼴에 의사이다.
의학, 심리학, 오컬트를 포함하여 수상한 정신세계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을 연구하고 있다나.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수술(트리퍼네이션)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과연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제6감(식스 센스)이 갑자기 생겨 유령을 볼 수도 있고
초능력이 생기는 사례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오싹.

스포일러의 위험이 있는 이야기를 다소 길게 소개한 것은 <호문쿨루스>의 경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수술 후 나코시의 눈에 비친 사람들.
거리에서 먼지가 들어간 오른쪽 눈을 비비는데 문득 이상한 세상이 펼쳐진다.

머리통 뚜껑에 해당하는 부분이 비스듬하게 3분의 1쯤 날아가고 없는 사람,
아주 뚱뚱한 청년의 몸피는 철판처럼 얇아 여기저기 구부러지고,
옷은 그대로인데 상체와 하체의 위치가 바뀌어 다리를 번쩍 들어올리고
물구나무 서듯 두 팔로 걷는 처녀.
제각각 기괴하게 비틀리고 변형된 모습으로 보이는 사람이 절반, 나머지가 반.

갑자기 벌어진 눈앞의 광경에 놀라  비틀거리다가 정면으로 부딪힌 사람이 있었으니,
남의 새끼손가락 자르는 게 취미인  야쿠자 패거리의  우두머리.
평소라면 도망가기 바빴을 험상궂은 얼굴의 그 떡대는 이상하게 그의 눈에
거대한 로봇 속에 갇혀 벌벌 떠는 소년의 형상으로 비친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 마주친 건너편 테이블의 할머니 둘 중 한 명은
목이 없고 얼굴이 몸통에 바로 달라붙어 있다.
언젠가 사귀던 남자에게서 목이 졸린 경험이 있어 그 상처를 꽁꽁 숨긴다는 것이
그만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단, 나코시의 눈에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 할머니는 화장과 옷차림이 요란한 늙은 여인에 불과하다.

다음은 나카시의 눈에 금방이라도 부서질 모래성처럼 보이는 한 소녀에게
다각도로 인간을 연구한다는 의사 청년이 하는 말.

-- '진정한 자기자신'이 없는 게 아냐. 진정한 자기자신을 아는 게 무서운 거지.
(...) 부모에게 저항하려고 해도 그 저항이 다시 매뉴얼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도
눈치채고 있는 거겠지?  매뉴얼이나 방정식의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끝없이 자기자신을 잃어가지.(제4권)

인간의 숨겨진 상처와 억압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무섭고 매혹적이다.
나카시의 눈에 나는, 그리고 이 리뷰를 읽는 당신은 어떤 형상으로 비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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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6-11-0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한번 잡으면 다시 놓기 어려운 만화죠. 하지만 근 1년째 다음권 출간이 지연되고 있다는 거. 여하튼 요거 만화역사에 일획을 그을만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

Mephistopheles 2006-11-0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 은근히 섬짓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개개인의 아킬레스건이 눈에 보인다니... 식스센스..
그리고 여자의 마음속 목소리가 들리는 왓위민원트도 생각나더군요..^^

로드무비 2006-11-08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뷰리풀말미잘 님, 작가는 왜 그렇게 뜸을 들이고 있을까요?
너무 재밌어서 저도 단숨에 읽었습니다.^^

메피스토 님, 은근히가 아니라 노골적으로요.
그런데 님의 아킬레스 건은 뭔가유?=3=3=3
(도대체 안 본 영화가 있긴 한지 궁금 & 감탄.)

2006-11-08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1-08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만나러 갑니다 님, 아마 제 4권의 제가 소개한 저 대사에도
답이 있을 거예요.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 중에는.
질문 자체의 매뉴얼화.
묵직한 저 질문 자체가 되려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고요.
전 무척 좋았습니다만.

25일입니다.
바쁘시군요.
그럼 나중에 부탁할게요.^^

Mephistopheles 2006-11-0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아서 뭐하시게유~~~~=3=3=3=3=3

릴케 현상 2006-11-08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권만 읽고 요즘 만화를 못 보고 있었는데... 한방에 다 봐야겠네요^^

로드무비 2006-11-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호호, 한방에. 그러셔야지유.^^

메피스토 님, 흥=3 비밀!^^

nada 2006-11-0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서워요. 두개골에 피어싱이라니. 나카시 눈에 저는 밥통을 이고 다닐 것 같으네요. 요즘 왜 이렇게 밥을 마니 먹는지..=3=3

2006-11-08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개 2006-11-08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만화 딱 3권까지만 좋았어요.. 4권 5권 읽으면서 좀 실망했고 6권은 읽지도 않았다는...ㅡ.ㅜ

에로이카 2006-11-09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의와 상관없이 정신분석 당한다는 기분, 타자에 의해 성찰당하는 자아란... 정말 무섭고도 매혹적인 폭력이군요. 아마 그런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은 옷을 입어도 그 속의 알몸까지 볼 수 있다는 안경을 쓴 사람이 옆에 있는 거 같겠네요. 나는 쓰고 싶지만 (그래서 매혹적) 다른 사람이 써서는 안되는 (그래서 무서운) 그 안경... 이 만화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6-11-0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무섭고 매혹적이다'고 무심코 썼더니 님이 멋지게
보충설명 해주시는군요.
이건 어때요?
둘이 동시에 그 이상한 안경을 쓰고 있는 거예요.
공평한 건가요, 최악인가요?ㅎㅎ

이 만화 재밌어요.
날개님 말씀처럼 뒤로 가면 좀 질리는 부분이 있는데
그래도 전 최고라고 우기고 싶어요.
작가가 6권을 끝으로 1년 넘게 뜸을 들이고 있는 이유가
희미하게 짐작됩니다.
기회 있으면 읽어보시길.^^

날개님,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알겠어요.
1권의 흡인력은 정말 무시무시하죠?
뒤로 갈수록 중언부언도 그렇고 밀도가 좀 떨어지는데.
그래도 전 재밌게 읽었다는 말씀.
모래소녀와의 차 안의 대화와 행동은 역겨웠어요.

곧 저녁이 오네요 님, 어제는 꼬막을 삶아서 양념간장을
끼얹어 먹었어요. 김치찌개랑.
님은 멋진 저녁시간 보내셨는지요?
'당신은 언뜻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이 너무 여려
세상살기가 힘든 타입입니다.'
어떤 설문 문항에 이런 게 있으면 열 사람 중 아홉이
동그라미를 치지 않을까요?
너무 일반화시켜 버리면 재미없지만.^,.~

꽃양배추님, 밥통이 술통보다는 낫겟지요?=3=3=3

페일레스 2006-11-0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6권까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말이지 작가가 어떻게 전개해 나갈까 매일밤 머리 싸매고 고민할 거라는 짐작이 들 정돕니다. 이 고비를 잘 넘기면 진짜 걸작이 될 것인데... 어 제 팔이 로봇팔로 보여요!!! 농담입니다 -_-;;;

2006-11-10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1-1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수록 무서운 아이 님, 왜 남자들이 님을 보고 겁을 먹었을까요?
화사하고 다정한 님의 얼굴에 말입니다.
전 그런 말 한 번 들어보는 게 소원이랍니다.
하도 얼빵하여......
그리고 우짭니까? 이 책은 동네 대여점에서 빌려 읽었답니다.
다른 책 몇 권 골라보세요.^^

페일레스 님, 제 생각과 같군요. 호호~~
이 고비를 잘 넘기면......
우리 함께 작가를 위해 기도합세다.^^

비로그인 2007-02-27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호문쿨루스]라... 그렇구나. 나는 '모래성 인간' 이었던가.
오늘도 또 하나 '로드무비의 강'에서 멋진걸 건졌다.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