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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ㅣ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06년 4월
평점 :
강아지 '말리' 그림이 인쇄된 사은품 컵이 탐나서 <말리와 나>라는 책을 주문했는데
요즘 침대 발치에 뒹굴고 있다.
박종호의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제 2권을 읽고 알라딘에 들어와
리뷰 제목을 뭘로 할까, 생각하니 '말러와 나'가 떠오른다.
구스타프 말러. 말러와 나......
클래식에 문외한인 내가 십몇 년 전부터 거의 유일하게 지니고 있던 음반이
말러의 교향곡 1번에서 9번까지 전곡이다.
10년도 전, 여동생네 가족이 미국에서 1년 동안 살고 돌아올 때 뭘 선물할까 하기에
말러의 교향곡을 1번에서 9번까지, 엄선해서 구해달라고 주문했다.
그 무렵 읽었던 어느 책에서 구스타프 말러를 소개받았고 '대지의 노래' 에 대해 알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천착과 철학, 대서사시 어쩌고 하는 표현에 사정없이 끌렸던 것.
그렇게 해서 말러는 나에게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30대 초반에 나는 죽음에 꽤 관심이 많았던 듯.
베토벤도 그렇고 슈베르트도, 브루크너도, 또 다른 작곡가들도,
아홉 개의 교향곡을 완성, 혹은 완성 직전 세상을 떠났다는 일화는
박종호의 이 책에서 읽었다. 말러는 그래서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아홉 번째 교향곡을 '대지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11년, 세상을 떠났다.
-- 카플란은 언제나 말러의 교향곡 2번만을 지휘한다.(146쪽 사진 설명 문장)
언제나 어디서나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만을 연주하는 지휘자!
20대 초반에 연주회장에서 우연히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을 듣고
"번개가 내 몸을 관통하는 것 같았"던 길버트 카플란은 언젠가 자신의 손으로 '부활'을
지휘해 보리라는 꿈을 품는다.
사업자로 큰 성공을 거머쥔 그는 1981년, 39세에 음악 공부를 시작했으니
그것은 오로지 말러의 교향곡 제2번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몇 년 뒤 한 호사가의 사치쯤으로 짐작하고 마음속으로 입을 비쭉이는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섰으니, 이후 그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의 초청으로
말러의 '부활' 을 연주하여 명실공히 '부활'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지휘자가 된다.
--저는 두 가지 부끄러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가 남들 앞에서 지휘를 했을 때 당할 부끄러움이요, 나머지 하나는
제가 지휘를 하지 않았을 때 두고두고 제 자신이 후회하게 될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저는 전자를 택했을 뿐입니다.(147쪽)
책에서 제일 인상 깊은 일화 역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과 연관된 지휘자
길버트 카플란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가장 큰 희열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이루는 데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얼마 전 한 친구가 내게 귀한 음반을 무더기로 빌려주었는데
마침 그 속에 말러의 교향곡 2번과 9번이 들어 있어 이 친절한 저자의 손을 잡고
곧바로 음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희열이라니......
이 책에는 저자가 독자에게 주는 깜짝선물이 달려 있으니, 자신이 사랑하는 클래식 곡들을
열 곡 선정하여 맛보여 주는 음반이다.
그가 사랑하는 한 곡 한 곡에 대한 에세이를 읽고 나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레코드 가게 진열장을 뒤지거나 음악실 소파에 깊숙이 파묻히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그러니 이 얼마나 살뜰하고 다정한 선물이란 말인가.
가령 몬티의 '차르다시'라는 집시 음악을 로비 라카토시의 밴드가 연주하는데
유장하면서도 현란하고 파워풀한 선율에 내 마음 한 자락이 공명했다.
몬티의 '차르다시'를 찾아 몇몇 연주를 들어보았는데 역시 라카토시 밴드만한 울림은 없었다.
'말러와 나'라는 제목을 잡고 나서 리뷰를 쓰다보니 이야기가 구스타프 말러에만 한정되었다.
아쉽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