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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오마주
박찬욱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시드니 루멧은 최소한의 것에서 최대한의 감동을 이끌어낸다.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기보다는 '정의가 이길 때도 있다'는 깨달음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깨달음이 이렇게 소박할수록 감동은 절실하다.
(364쪽, <폴 뉴먼의 심판>,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영화)
박찬욱의 <오마주>를 재밌게 읽었다.
영화에서 받은 감동을 과장하지 않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명쾌하게, 또 통찰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책은 뭐니뭐니 해도 독자에게 미지의 감독과 영화를 소개하거나,
눈 뻔히 뜨고 놓쳤는데 까맣게 잊고 있던 영화를 다시 상기시켜 준다는 데
최대의 효용가치가 있다.
<박찬욱의 오마주>를 읽고 내가 수첩에 기록한 영화는 다음과 같다.
<가르시아> <'84 찰리 모픽> <제3의 기회>, 록 허드슨 주연의 <세컨드> ,
<이브의 모든 것> <죽음의 카운트 다운> <섹스의 반대말>
그런가 하면 한 번 본 것인데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한 영화들도 있다.
<아이스 스톰> <로드 투 웰빌> <네트워크> <사랑과 경멸> <글로리아>
<아이스 스톰>의 경우, 출장에서 돌아온 아빠가 "나 왔다!" 하니까 아들놈은,
"언제 가셨더랬어요?" 하질 않나,
또 추수감사절의 식탁에서 감사기도를 시키니까 마지못해 딸아이가 기도를 하는데,
"인디언과 민중이 학살당할 때 이렇게 잘 처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읊었다는 것이다.
화면이 하도 컴컴해서 아주 어렵게 본 영화로 기억되는데, 그런 주옥같은 대사가 있었다니.......
--과연 고다르는 고다르, 그는 적의 총으로 적의 심장을 겨눈다.
(159쪽 영화 <사랑과 경멸>)
다른 사람 같으면 200자 원고지 두세 장으로 지껄이고도 남았을 내용의 글을
딱 한 줄로 처리하는 능력이라니!
그나저나 보느라고 챙겨 봤는데, 세상에는 왜 그리 모르는 작가와 영화들이 많은지......
박찬욱이 생각하는 그동안 과대포장되어 소개된 감독과 영화들을 살펴보는 일도
무척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왕가위의 <중경삼림>에 대해,
'고독한 게 뭐 자랑인가? 고독하다고 막 우기고 알아달라고 떼를 쓰는 태도가 거북하다'(491쪽)
고 써서 나를 한참 동안 웃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