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자 - 전5권 한국만화걸작선
박기정 지음 / 바다출판사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 만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는 법이 없으니 너무나  궁금해서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박기정의 복간 만화 <도전자>를  지난 며칠 동안 완독했다.
1964년에서 이듬해까지 장장 15개월 동안 45권의 대본소 만화로 출판된 것을
바다출판사에서 '한국만화걸작선'이라는 이름하에,  다섯 권의 두툼한 책으로
묶은 것이다. (각 550여 쪽.)

관동대지진 때 홀로 살아남아 일본인 양어머니와 함께 일본이라는 타국에서 살아가는
17세 소년 백훈.  그 나라에,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호의적일 리가 없다.
속마음과는 달리 사사건건 양어머니에게 반항하고 그나마 한 명 친구로 여기던 오동추가
일본에 귀화하자 원수로 대한다.
두 소년은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우연한 기회에 발을 들여놓게 된 펑크난 시합 땜빵용 권투선수에서
진짜 권투선수가 되어 일생일대의 대전을 펼치게 되는데......

40년 전의 만화가 독자에게 주는 재미와 감동이 이렇게 생생한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오래 전 다락에서 아버지의 영화 스크랩을 본 적이 있다.
청년 시절 영화를 보고 나서 색연필로 직접 그린 한 컷의 영화장면과 함께
감상을 기록한 낡디낡은 16절지 묶음이었다.
그때 나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였는데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와서 그렇게
감상 기록을 남긴 청년 시절의 아버지가 너무 신기하고 애틋하게 여겨졌다.
호랑이 같기만 한 내 아버지도 한때는 소년이고 청년이었구나!
이 만화의 주인공 백훈과 오동추는 바로 우리 아버지 세대의 초상이 아닐 수 없다.

한 권 한 권 만화 뒤에는 1945년 언저리에 출생한 소년소녀들이 작가에게 보낸 독자편지들을
싣고 있는데 그것을 읽는 재미가 무엇보다 쏠쏠했다.
마당 손질을 하다가 잊고 있던 김치독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  몇십 년 된 묵은지가
가득 담겨 있는 기분이랄까.
더구나 그것들은 먹을 만할 뿐만 아니라 제법 맛있고 고소하기까지 했다.

--선생님, 하늘의 달은 시오야의 달 못지않게 밝군요. 누구를 그리다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시로써 써봅니다. 또 책도 읽습니다. 만일 시가 없고 책이 없었다면 어쨌을까요?
강열한 태양 때문에 살인을 해야 했다는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를 생각합니다.
(1965년 10월 10일  훈이의 친구 부산시 초량동 3동 669번지 정해원, 제5권  424쪽, 독자편지 앞부분)


반항기 가득한, 어두운 시절을 헤쳐 나가는 소년이 주인공인 액션만화의 효시라는 이 만화.
일본이라는 나라가 배경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 소녀들이 꽤나 왈가닥이고
마음에 드는 소년에게도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여차하면 귀뺨을 올려붙이는
장면들이 신선했다.

주인공 소년 백훈이 아르바이트로 접시닦이를 하는 레스토랑의 오트밀이니 하이라이스니 하는 
메뉴도 구미가 당겼고, 귀화를 하지 않으면 수입의 절반이  차이가 난다는
한국인 레스토랑 주인들의 대화를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재일 한국인들의 생활상도 짐작할 수 있었다.

등장하면서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발가락 사이를 판 자신의 손가락 냄새를 맡는
주변부의 한 소년 등장인물(인형이)의 행위에서  나는, 작가가 은밀히 도달하고자 했던 
사실주의의 고린내를 맡는 기분이었다.
그 냄새도 뭐 맡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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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2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5-12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터라겐 2006-05-12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이 혹시 텔런트 박원숙씨 아버지 아니셨던가요? 인물이 예전 이우정아저씨 (?) 이상무아저씬가.. 암튼 어려서 많이 보던 만화속 인물같이 느껴져요..

반딧불,, 2006-05-12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인터라겐님 제가 질문하고 싶었는데^^

반딧불,, 2006-05-12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2679666

 


에로이카 2006-05-12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로드무비님 스크랩은 집안 내력? 나중에 주하도? ^^

hanicare 2006-05-13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수산의 산문을 읽다가 이런 귀절을 봤어요. 여자친구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박기정의 도전자이며 넌 아직 그것도 안 보고 왜 사냐는 식의 취급을 당해서 과외알바도 잠시 미루고 만화방에서 도전자를 읽고....그 여자는 결국 한수산의 부인이 됩니다... 그 귀절을 읽고 한수산은 좋은데 박범신은 통 좋아지지 않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지요.
클래식음악에 철학책에 지적인 척 하는 위인들보다 젊은 한수산과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 유명한 도전자를 나도 맘만 먹으면 읽을 수 있는 거군요,가끔 세월 좋아졌다~란 생각도 듭니다.

2006-05-13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5-1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디서 읽은 것 같기도 하고.
한수산과 박범신은 서로를 인정하고 좋아할까요?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전 둘 다 안 좋아했는데 한수산의 산문은 좀 끌리는 데가 있었어요.
하니케어님과는 이상한 데서 만나는 부분이 있어요. ^ ,. ~
(어느 분께 빌려드리기로 했는데 하니케어님도 나중에 보실래요?)

에로이카님, 스크랩은 딱 두 해만 했어요.
생각하시는 것만큼 저 꼼꼼한 인간이 아닙니다.
주하는 덜렁입니다.
나중에라도 스크랩을 할 것 같진 않은데요? 헤헤~

반딧불님, 우와, 투데이 숫자가!
요즘은 방문객 숫자의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너무 뻥튀겨져서.
아무튼 재밌는 숫자 잡아주셨네요.

그리고 박원숙 씨 아버지는 아닌 게 확실해요.
이 작가는 지금도 중앙일보 캐리커쳐 담당이라고 들었거든요.
이상무 화백도 물론 이분의 세례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만화를 보니 그게 느껴지던데요?ㅎㅎ

인터라겐님, 대답 들으셨죠?
이우정 씨도 아시고, 새침한 얼굴로 만화방 꽤나 들락거리셨구만요.^^

소년기님, 왜 안 되겠습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그나저나 오랜만이어요. 반가워라!^^

다락방에서님, 그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니.
아무튼 엊저녁에 고기는 많이 뜯으셨어요?^^*




hanicare 2006-05-1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모처럼 부지런을 떨었더니.. 이런 횡재가
싸악(잠 깨는 소리입니다.)
히힛...나중에 로드무비님 빼도 박도 못하게 요기다 공증 받아야지.
꼭 빌려주세요~~~~~~~```

로드무비 2006-05-1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언제 흰소리하는 것 보셨수? 흥=3
(일찍 일어난 새가...그 말 맞아요.^^)

2006-05-14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개 2006-05-1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줄거리 적어놓은 글씨체를 보니 절로 미소가 나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