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끝내 남자친구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맙소사,
한다고 했는데, 최선을 다했건만.
저에게 무슨 하자가 있는 건가요.

 
2.

저는 추위가 가장 싫어요.
그리고 폭력이 싫습니다.

 
3.

세상이 언제든지 제게 사기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게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입니다.
말하자면  - 선제공격 같은 거죠.

  4.

천지 구분도 못하는 애에게 칼자루를 쥐어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망나니가 될 수도 있고 요리사가 될 수도 있고 무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지 플레이가 멋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칼끝을 다듬을 것입니다.
녹슬지 않도록, 잘.

  5.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기회를 딛고 일어서는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바닥에 엎드려 뺨을 대고 숨을 쉽니다.
그러면
지구는 정다운 소읍처럼 제 품에 안겨옵니다.

                      
--정한아(건국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

아이의 운동회에 참석하고 왔다.
운동회 하면 뭐니뭐니 해도 밥이지, 하여(아이가 김밥을 싫어하는지라)  흰 쌀밥을 짓고
심혈을 기울여 감자조림을 하고,  아껴둔 소고기장조림을 듬뿍 담고,
그리고 달걀 세 알을 삶아서 깠다.

아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어제 오후부터 심상찮은 대추리 소식.
달리기를 하고, 학년별로 준비한 공연을 펼치고, 눈앞의 모든 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땡볕 아래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다가 아이의 순서가 끝나는 것을 보고
혼자 비실비실 그늘로 이동했다.

<창작과비평> 봄호 부록이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인데
얇은 책자라 도시락 가방 속에 집어넣어 왔다.
'나를 위해 웃다'라는 제목의 소설 당선작.
국문과 4학년 여학생의 웃는 얼굴이 해사하다.
소설도 참 독특하고 재밌는데, 당선소감도 좋다.
1982년생,
출생연도를 확인하고 나니, 내가 세상 다 산 노파가 된 기분이다.

지구는 정다운 소읍처럼......

딸래미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구석에 숨어 
책이나 읽고 있는 꼬락서니라니!
나라 한쪽엔 난리가 났는데.........

(운동회에서 책 읽고 있었던 것보다 더 웃긴 건,  2학년은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도시락은 집으로 가지고 와 마이 도러 남친 엄마와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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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5-04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어떻게 쓰는건지 터득한 학생이네요...

Mephistopheles 2006-05-04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라 한쪽엔 난리가 났는데.........
전 밴트 마무리 하느라 정신 없네요..

치니 2006-05-04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회 때마다, 핑계를 대서 양호실에서 놀았던 기억이 새삼. ^-^;;
맛있었겠어요 도시락. 냠냠.
야곰야곰 읽는 소설집도 물론 맛있었겠고.

로드무비 2006-05-04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이왕 하던 일은 마무리 하셔야죠.^^
평택 소식 페이퍼들 속에 이벤트 소식, 조금 생뚱맞긴 해요. 히히~

새벽별님, 달걀은 아직 그대로.
전 아직 소풍이나 운동회, 여행길에 달걀을 삶아요.
무슨 의식처럼.^^;

진주님, 선제공격이라는 표현도 깜찍하고요.^^

로드무비 2006-05-0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소설은 정말 맛납디다.^^

mong 2006-05-04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좀 노파삘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상큼발랄한 글을 보면 싱긋 웃게 되네요 ^^

앗! 그러고 보니 저 처자 저번날 부산에서 온
선물이와 동갑이군요...풉

oldhand 2006-05-04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하수상해도 민초들의 삶은 또 그렇게 지나가는 모양입니다.
요새 등단하는 소설가들의 나이들을 보면 저도 흠칫 놀라곤 합니다. ^^

2006-05-04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6-05-04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 그대로 소읍에 사는지라 나라 한쪽의 난리쯤은 무시해도 괜찮다는 듯 살고 있네요. 혹시 전쟁이라도 나면 피난갈 일은 없어 좋겠지요. (하긴 한 방이면 끝나려나?)

검둥개 2006-05-05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운동회 달리기에서 늘 꼴등을 했어요. 그리고 저희 어머니는 정말로 김밥을 못 마셨답니다. ^.^ 로드무비님 잘 지내셨죠? 소설 제목도 좋고 당선소감도 무척 좋으네요. (특히 선제공격 부분이!)

mong 2006-05-05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77117

로드무비 2006-05-05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글고보니 77777이 다가오고 있네요.
우짜까요?ㅎㅎ

검둥개님, 와락=3 너무너무 반가워요.
그렇게 바쁘십니까?
달리기 꼴등은 또 저였죠. 항상.
저 그리고 김밥 사실 단단하게 못 말아요.
이상하게 대나무발로 해도 헐거운 것 있죠?
그래서 주하가 싫어하는 걸까?
저 당선소감 읽는데 이상하게 찌르르하더군요.^^

꽃양배추님, 님이 사시는 소읍이 어딘지 궁금합니다.
'소읍'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아요.
전쟁, 멀리 길 것 없이 바로 어제 같은 상황인데요, 뭐.
사는 게 무시무시합니다.

공부했던 아이님, 그랬군요.
잠시만 지둘리세요.^^

올드핸드님, 님이 그러실 정도니 전 오죽하겠습니까!^^
하수상하지 않은 세월이 없지만 어제는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mong님, 그 처자 정말 풋풋하고 이쁘던데.
뭐 제겐 몽님이 선물이 같은 존재로 보이니까요.
노파삘이라니, 떽끼!^^


2006-05-05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