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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장래 희망이 '선지자'인 이란의 한 소녀가 있다. 이름은 마르잔, 나이는 막 열 살이 되었다.
소녀는 자신만의 경전을 만든다.
그런데 그 계명들이 참 마음에 든다.
아빠는 캐딜락을 모는데 주변에는 차 없는 사람이 너무 많고,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정성껏 돌보아준
가정부가 한 식탁에서 식사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지은 계명이다.
--제 6계명, 모든 사람이 차를 가져야 한다.
--제 7계명, 모든 가정부들은 주인과 한 테이블에서 식사해야 한다.
'어떤 노인도 아파서는 안된다'는 제 8계명에 감복한 할머니가 소녀의 첫 제자가 되어준다.
마르잔은 이렇듯 다정다감하고, 총명하고 정의로운 소녀이다.
이슬람 혁명이 일어난 다음 해(1980년), 학교에서는 베일을 써야 한다는 명령이 내려졌다.
혁명이 나던 해 소녀는 선지자로서의 운명을 잠시 밀어놓고 이마에 띠를 두르고 친구들과 마당에서
시위를 벌였으니,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가이기도 하다.
<페르세폴리스>의 소녀는 이란에서 열네 살 때까지 살다가 오스트리아로 떠나 혼자 살게 된다.
소녀의 부모는 자유분방하고 정의에 기초하여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어린 딸의 신변에
위험이 닥치는 걸 더이상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청재킷과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좋아하는 가수의 포스터를 사서 자신의 방 벽에 붙여놓을 수
있는 그 정도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정도면 괜찮게, 청재킷을 입고 거리에 나갔던 소녀는 큰 봉변을 당할 뻔한다.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학교에서는 퇴학 당하고.
미래의 제국주의자들을 길러내는 구실을 할 뿐이라고 대학을 폐쇄하는 나라에서
무슨 꿈을 꾸고 어떤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여성이 베일을 쓰고 다니지 않는다고 거리에서 끔찍한 공격을 일삼는
근본주의자들이 활개치는 나라에서......
그런데 어린 소녀 마르잔의 눈에 비친 1980년대 이란이라는 나라의 이모저모가
뭐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는 느낌이다.
'베일'로 상징되는 여성에 대한 구속과 억압만은 상상을 불허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변증법적 유물론에 관한 만화를 제일 좋아하던 소녀 마르잔은 그렇게 부모와 헤어져
타국에서 혼자 성장, 잊을 수 없는 조국 이란의 초상을 <페르세폴리스>라는 만화로 완성했다.
마르잔이 짝사랑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가족과 함께 이민 가버린 소년,
소녀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따랐던 아누쉬 삼촌, 또 옆집 총각과 창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고
마르잔의 대필 편지로 사랑을 키워나가다가 가정부임이 밝혀져 사랑을 잃는 메흐리라는 처녀 등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이나 에피소드들도 흥미롭다.
참, 소녀의 따뜻하면서도, 쿨하면서도, 너무 인간적인 부모를 빠트릴 수 없다.
이라크전 때문에 생필품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슈퍼마켓에서 사재기 소동이 일어나는데
머리 끄뎅이를 잡고 싸우는 두 여인을 보자 그 앞에서 있는 대로 경멸해놓곤
슬그머니 쌀을 한 봉지 더 사러 가는 엄마나, 역시 차에 기름을 꽉꽉 채우지 못해 조바심을 내는
아빠를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흑백의 단순하지만 강렬한 느낌을 주는 그림들이 몇몇 장면에서는 판화작품과 같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 만화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