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들을 위한 유쾌한 수다 - 고광애의 실버 상담실
고광애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지난해에 칠순을 맞은 엄마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책을 골랐다.
그리고 이번에도 보내드리기 전에 내가 먼저 읽었다.
얼마 전 인간극장에도 나온 홍영녀 할머니의 수필집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신간 소식을 보자마자
사무실에서 하던 일(신문 스크랩)을 덮어버리고 태평서적으로 달려갔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는 7순인가 8순에 한글을 깨치고 자신의 일기와 시를 써서 책으로 묶은 할머니를 보고
우리 엄마도 좀 자극을 받아 일기든 뭐든  써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모녀관계가 썩 돈독한 편이 아닌데도 간단한 메모와 함께 책선물은 가끔 해드린 편이다.
엄마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딸에게 격려차 편지를 써서 보내온 일이 있었는데
첫 문장이 이랬다.

--로드무비야,  너의 편지는 멍멍이가 먼저 개봉하여 잘 읽었다.

그때 우리집 대문 앞에는 찌그러진 개집과 함께 엄청나게 큰 똥개가 한 마리 버티고 있다가
식구들이 들어오면 좋아서 달려들었는데, 새침떼기 처녀였던 내 여동생은 그런 짓을 질색해서
부모님께 그 개와 자기 둘 중에 선택하라고, 안 그러면 가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었다.
이 소식도 그때 엄마의  편지에 들어 있었던가?
아무튼 개가 먼저 내 편지를 물어뜯었다는 걸 '개봉했다'고 멋지게 표현했던 우리 엄마였으니
내가 느끼기에 그의 문장력은 끝내줬고, 혹시 일기나 글을 좀 쓰시게 되면
홍영녀 할머니보다 더 잘 쓰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각설하고,
노년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리고 노년이 뭐 그리 먼 미래의 일도 아니지만,
스스로 '신중년'이라 부르는 60대 중반 지은이의 글들이 내게는 이 책 제목처럼 아주 가볍고 유쾌한
수다나 참견 정도로 느껴졌다.
노인 대상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고 여사의 실버 상담실'을 진행한다는 저자는 70대의 남편과 
90대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으며,  내가 좋아하는 영화감독 임상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자신도 엄연히 노인이고 그 모든 노인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털어놓고 나서
저자는 노인의 마음가짐과 행동수칙,  건강 문제, 나아가서는 죽음 준비의 필요성 등에 대해
조근조근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 어떤 말들은 꽤 경청할 만했다.
한마디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심플하게 살며 죽음을 준비하라는 거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시어머니의 혀'라는 잎사귀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뾰족뾰족한 식물이 있다는 정도. (그 이름이 절묘하다!)
나의 도(道)가 일정 부분에 이르른 것인가, 하는 의심을 슬쩍 하게 될 정도로
이 책의 모든 글들이 내겐 너무 무난하고 상식적으로 느껴졌다.
늙음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라면, 내 이미 서른 살 무렵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에도
기웃거린 전력이 있으니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가?

--우리는 내 집 찾아준 손님이 아무리 나와 여러모로 다르고 개성이 독특하다고 해서
그걸 고치라거나 나무라지는 않는다. 나와는 아무리 달라도 그것 모두 저 손님의 개성이려니 하고
봐넘긴다.  며느리들 역시 초대받아간 주인에게 왜 그리 구식으로 사느냐고 따져가면서 미워한다면
초대한 주인이 뭐가 되겠나. 그보다는 나를 초대해준 어르신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드리고 위로해 드리는 게 젊은 손님의 도리다.(96쪽)

이런 대목을 읽고 엄마가 관계에 대해 좀더 여유로운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연필로 희미하게 밑줄을 쳤다.

아무튼 '보청기 사용도 담담하게' 하는 제목으로 노화 현상을 순순하게 받아들이라는
요지의 글도 있고,  너무 구체적으로 노년의 삶을 다루고 있는 글들이어서인지
다 읽고 난 느낌은 가벼운 멀미와 함께  막막함의 물결이......

우리 엄마는 이 책을 어떻게 읽으실지 그것이 궁금하다.

--------------------
***리뷰 제목은 본문 속의 한 문장에서 따왔습니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03-01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지금 막 들어왔는데 아 딱 절묘한 타이밍인가 했더만 아니네요
다들 제가 글 올리길 기다리고 계셨나? ㅎㅎ
로드무비님
어머니에게 책도 선물하시는 군요.
아 막막함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로드무비 2006-03-01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걸 제가 알 리가 있겠어요?
나중에라도 뾰족한 수 알게 되면 제일 먼저 사야님께 달려갈게요.ㅎㅎ

Mephistopheles 2006-03-0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이 중년들을 위한 수다도 내주세요.....라고 하면..무리일까요..

2006-03-01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3-01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메일님, 메일을 보내신 것도 아니면서 왜 갑자기 메일 타령인가요?
가보니 0통이던데.^^;

메피스토님, 전 아직 청년이라!=3=3=3
마음이 그렇다는 거죠. 헤헤~~)

Mephistopheles 2006-03-0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랍쇼..오류가 났나 보군요 다시 한번 확인해 보세요 그럼..

kleinsusun 2006-03-01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인생 9단>하고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ㅎㅎ
"훈화" 목적으로 쓴 책들은 다 비슷비슷한거 같아요.
이 책 보다, 로드무비님의 위트 넘치는 어머니가 훨~씬 더 인생을 많이 아실 것 같은데요.^^

mong 2006-03-0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빠한테 속어, 비어 가르쳐 드리는게 큰 기쁨인데요 ㅎㅎㅎ
아빠가 젊은 시절 군 생활을 오래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 때문에 군인들을 '군바리'라 부르기 시작하셨고,
요즘은 안 그러시지만 60대 후반 때 전철에서 누가 자리 양보하는게
'쪽팔려서' 문가에 바짝 서계시고 그러셨다는~ 풉

sudan 2006-03-0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 없이 키우는 개라 멍멍이었던거에요? 아니면, 이름이 멍멍이였을려나. 사람 보고 좋아서 달려드는 몸집 큰 똥개는 생각만해도 귀여워요. 이름도 예쁘고.
어떤 리뷰는요, 절대로 이 책 읽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해요. 죽음은 몰라도 늙음에 대한 고민에는 그냥 눈돌리고 싶어서 그런가봐요.

플레져 2006-03-01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멍이와 개봉은 한 편의 영화를 연상시키는데요? 게다가 어머님의 한 줄은 명대사에 속하니... 영화 한편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
그냥... 젊은 사람 늙은 사람 안따지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로드무비 2006-03-01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개 이름이 생각 안 나서요.ㅎㅎ
저도 개 별로였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개가 좋더군요.
주하 비염 증상만 아니라면 조그만 놈으로 키워보고 싶은 생각도.....
이 책은 평이 좋아 엄마 드리려고 산 거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mong님, 아빠도 몽님도 너무 귀여우세요.
전철 안에서 자리 양보 받는 자세도 책에 나와요.
왜 참 얄미운 노인분들도 많잖아요.^^

수선님, 그 리뷰 기억나네요.
사실 그 책도 제가 사드릴까 망설였던 거였는데
님이 하도 단호하게 말씀하셔서......
그런데 이 책은 훈화까지는 아니고 '잔소리' 쪽에 가까워요.^^

메피스토님, 적극적인 땡스투 마케팅의 일환이든
배려이든 우정이든 뭐든 너무 고마워요.^^

이누아 2006-03-01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버이야기가 나오니 저번 주 토요일의 대화 한토막이 생각나네요.
나: "서른다섯살이 되니까 쉰살이 되는 게 받아들여져. 스물살엔 서른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나이였는데 그 스물살에서 15년이 지났고, 15년만 더 있으면 쉰살이네. 흰머리가 탓일까? 나이드는 게 받아들여져.
큰언니: 마흔이 넘으면 죽음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돼.
이 대화를 듣던 저보다 한 살 어린 새언니: 난 절대 쉰살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근데 전 지금에야 안 받아들여도 상관없지만 그 나이가 되면 안 받아들이고 어쩔건가 싶습니다.^^ 이변이 없다면 모두 쉰살이 될건데. 요즘은 쉰살은 노인도 아닌데..

2006-03-02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03-0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구..사회는 점점 고령화되어 가는데 복지정책은 엉망이구..게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지는 궁뎅이랑 뱃살을 좀 보라죠. 이완 정 반대로 의식은 또 을매나 강팍하고 보수적이게 변화할런지..크어엉~ 골골거릴 미래를 생각하자니, 제 인생이 좀 쩝스럽네요. 기냥 짧고 굵게 살다 가야겠어요, 훌쩍.

blowup 2006-03-03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홍영녀 할머니 책 사서 읽었어요. 그때...그러니까 홍영녀 할머니가 아직 건강하게 살아계시는거군요.^^
저희 엄마는 추리 소설 읽는 거 참 좋아하세요. 저보다 꼼꼼하게 읽으시고, 범인도 잘 알아맞히시고.^^ 눈이 침침해지셔서 오래 보기 힘드시지만, 엄마가 소설 읽고 있는 모습이 참 예뻐요.

로드무비 2006-03-03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죠?
제목에도 끌렸어요.
몇 달 전 인간극장에서 다시 홍영녀 할머니를 찍어서 방영했어요.
시골에서 텃밭 가꾸며 혼자 사시는데 정정하시더군요.
나무님 어머니가 건강하시고 눈도 괜찮아서
좋아하시는 추리소설 많이 읽으시기를......^^

복돌이님, 제 대사를 고대로 읊으시다니!=3
아니 사랑하는 님이랑 천년만년 사셔야지 무신 말씀입니까!
분홍 모드 다 알고 있는데 괜한 푸념이시넹.=3=

교무실님, ㅎㅎ 내일쯤 전화할게요.^^

이누아님, 이 책에 의하면 요즘은 65세에서 75세가 젊은 노인이래요.
65세까지가 중년이고요.
하긴 생물학적으로 나눈 나이가 뭐 그리 큰 대수이겠습니까만,
그래도 걸리는 게 있죠.
전 서른 살 이후의 삶을 상상해 보지 못하고 살았는데
이젠 나이에 대한 구체적인 자각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어느 날 눈을 뜨니 쉰, 예순, 이러면 좀 허무할 것 같아서요.^^

2006-03-04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3-04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