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인간이 아직 모르는 문제, 문제가 되는지 아닌지도 미처 모르는 문제들에 대한
숨은 해답들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위대합니다.
종 다양성이니 생물 다양성이니 하는 것이 소중한 이유가 그겁니다.
은행나무 잎에 혈액순환 촉진성분이 있는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새끼누에에서 혈당 강하제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된 일입니다.
이렇게 보면 어떤 잡초도 '잡초'가 아닙니다.
잡초라고 해서 뽑아버리고 다 죽여 없애면 우리가 모르는 문제에 대한
비장의 해답들을 없애는 일이죠.
-도정일, 최재천의 <대담> (2005년, 휴머니스트 刊) 258쪽
<대담>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이상하게 한번에 진도가 확 나가지 않는다.
위에 소개한 부분은 어젯밤 읽은 부분.
그리고 조금 전 '영혼은 존재하는가'하는 주제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과학도로서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절대 함께 갈 수 없다고 믿는 통념에 대해 말하며
최재천 교수는 대니얼 데넷의 <자유도 진화한다>에서 한 귀절을 인용하고 있다.
'유전자 결정론이 결코 인간의 자유의지를 속박하지 않는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전자가 우리로 하여금 자유의지를 갖게끔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저자 이름과 책 제목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
이 책을 읽을 때 어떤 잡초도 잡초가 아니라는 최재천 교수의 말이
특별히 마음에 와닿았다. 어제 낮 <위대한 밥상>을 읽은 여파이기도 할 것이다.
십몇 년 전 업무상 부산의 소설가 요산 김정한 선생님 댁을 방문했을 때,
그분이 주장하신 것도 그것이었다.
요즘 문학 하는 사람들은 걸핏하면 자신의 글에 '이름모를 새'니 '이름 모를 꽃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건 아주 잘못 된 것이라고.
세상에 이름 모를 꽃이나 이름 모를 새는 없는 것이고, 적어도 문학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무식을 그렇게 뭉뚱거려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다운 말씀이었다.
<대담>의 '잡초'에서 갑자기 김정한 선생이 오래 전 말씀하신 '이름 모를 꽃'으로 생각이 넘어갔다.
그런데 그 말씀을 댁을 방문한 내가 예뻐서 특별히 해주신 줄 알았더니(꿈도 야무지지!),
언젠가 선생의 어떤 글을 읽는데 그 내용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어느 여름 소설가 이문구 선생님 댁에 수박 심부름을 자청하여 간 일이 있었는데,
그분도 김정한 선생님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이 인상깊게 들은 '이름 없는 꽃'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이고, 이제 두 분 다 고인이 되셨구나!
뜬금없지만 갑자기 생각이 나서 기록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