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나에게서 온 편지>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검색해 봤더니
바로 내가 열광해 마지않는 종류의 영화였다.
광화문이나 안국동 아니라 전라도 광주라도 바로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럴 수가, 우리 동네 극장에 오늘내일 딱 이틀 상영 일정이 잡혀 있는 거다.
냉커피를 타고 싶었는데 시간에 쫓겨 냉동실 생수병에 꽝꽝 얼려 두었던
양파 끓인 물을 가방에 던져넣었다.
급한 마음에 무단횡단도 불사하고 싶을 정도인데
아뿔싸, 건널목도 아닌 곳에서 흔들흔들 몸을 흔들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그녀와 마주쳤다.
비교적 젊은 나이(60대 초반?)에 풍을 맞은 것으로 짐작되는 우리동네 주민이다.
냅다 달려가 팔짱을 끼고 그녀를 아파트 쪽 인도로 안내하는데,
반가운 빛을 숨기지 않고 묻는다.
자신은 치료차 D대 병원에 다녀오는데 이 더운 날씨에
어디에 가느냐고......
"극장에 갑니다" 했더니 영화 제목을 묻길래 "프랑스 영화"라고 얼버무렸더니,
차들이 씽씽 다니는 차도 한가운데서 "나도 프랑스 영화 봤는데!" 하는 것이다.
궁금해서 "제목이 뭔데요?' 물었더니, <아무르>라고 했다.
그리곤 묻지도 않았는데 인도영화도 봤다고 덧붙이는 것이다.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이라는 제목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아무리 외롭다곤 하나, 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영화 취향이 같은 친구를 만났다곤 하나,
차들이 씽씽 다니는 도로 위에서 계속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두 영화 모두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바로 달려가 보았다.
<아무르>는 개봉 몇 주 전 , 광화문의 한 극장에서 무슨 행사의 일환으로 봤는데
영화가 끝난 후, 표를 구하지 못한 60대 초중반의 여성이
로비에서 우리 일행을 붙잡고 간절한 얼굴로 물었다.
'영화 어때요?" 라고.
그 얼굴에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박함이 흘렀다.
영화 시작 전 자리를 잡고 앉아 꽁꽁 언 생수병을 꺼내 한 모금 마셨더니
이상하게 건건찝질하다.
한참 생각해 보니 멸치와 무와 다시마와 대파와 표고를 넣고 끓인 육수 얼린 물.
나는 냉커피 대신 조금씩 녹는 육수를 감질나게 마시며 영화를 보았다.
사는 게 황송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