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목소리 이토 준지 스페셜 호러 1
이토 준지 지음 / 시공사(만화)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이토 준지의 호러 스페셜 <어둠의 목소리>를 읽었다.  제5화 '글리세리드'와 제6화 '속박인'은 정말이지 섬뜩했다.

엊그제 저녁 반찬이 없어 고등어를 한 마리 해동해 굽다가 뒤늦게 생각나 가스레인지후드 통풍 스위치를 눌렀다. 남편이 현관문을 열었다가 자욱한 연기와 냄새에 놀라 도망갈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나는 멀쩡한 얼굴로 출근이나 퇴근을 하다가 회사나 집으로 가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려 깊은 산사로 들어가가버리는 사람들의 케이스가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물론 이유야 모두 다르겠지. 하지만 일단 우리집의 경우 그렇게 주의를 줬건만  번번이 잊어버리고 고등어 한 마리 구우면서 온 집 안에  연기와 냄새를 잔뜩 피우는 마누라에게 순간적으로 염증이 난 남편이  도망가버리면 나로서는 대책이 없는 것이다. 그 반대되는 입장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이럴수가!  우연히 올려다본 가스레인지후드 천장엔 기름때가 고체가 되어 고드름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깨끗이 닦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대신 앞으로 음식을 만들 때는 꼭 뚜껑을 덮고 요리를 하리라 결심했다. 가끔 저런 당장 해치워야 할 현안을 외면하고 알라딘 서재활동에나 매달리고 있는 자신이 가소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반성도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라......

--우리집은 항상 어둡고 기름에 절어 있었다. 아버지는 1층에서 작은 곱창구이집을 했는데 환기시설이 없어서 기름연기가 항상 온 집 안을 가득 메웠다. 그 때문에 기름때 가득한 벽......나날이 기름처럼 음험하고 뚱뚱해져 가는 오빠.(제 5화 '글리세리드' 중)

그 오빠라는 인간은 샐러드유를 병째로 마셔대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뚱뚱해져 가고...주인공 소녀는 무당처럼 집 안의 유도(油度)를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집 안의 유도가 100프로가 되는 날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제6화 '속박인'은 너무나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느 날 도시 곳곳에서 기묘한 광경이 벌어진다. 무슨 퍼포먼스도 아니고 하던 동작 그대로 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주택가 골목에 멈춰서버린 미노루라는 소년은 알고봤더니 어릴 때 너무나 사랑하던 강아지를 묻은 장소에서 화석이 된 것이 밝혀지고......

한 민간자원봉사단체의 봉사자인 소녀 아사노가 의문을 품고 추적에 나서는데......어느 날 자신의 방 침대 옆에 화석이 되어 있는 인간은 자신이 속한 민간자원봉사 단체의 회장.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아사노는 그가 바로 자신을 오래 전 강간했던 그 사람임을 깨닫고 경악한다.

속박은 애착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만화에서 말하는 것은 그것도 아니다. 속박의 원인은 죄책감이라는 것.  생각해 보면 수긍이 간다.

--속박인은 지금도 계속 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나는 회장님을 남겨둔 채로 그 아파트를 떠났다. 그리고 나는 또 이사를 간다.

나는 지금 무엇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을 다니고 있는 것일까?  이 만화를 다 읽고 떠오른 뜬금없는 질문이다.

딴소리 할 것 없고 가스레인지후드에 주렁주렁 고드름처럼 매달린 기름때나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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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3-26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토 준지 만화를 보면 처음엔 무섭고, 그다음 단계는 토할 것 같고.. 그걸 넘어서면 이 만화의 엽기적인 상황을 당연시하게 된다는..-.-;;
드디어 로드무비님도 이토 준지의 세계로 뛰어드시나요? ^^

하루(春) 2005-03-26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만화보다 로드무비님 집의 가스후드가 더 궁금하다는... -.-;;
드디어 로드무비님도 '곰팡씨'네 집처럼 되넌 건가요? ^^

2005-03-26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perky 2005-03-26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놈의 기름때는 왜이리도 안 닦이는지..어느순간부턴 기름기 있는 음식 해먹기가 싫어지더라구요..^^; 생활과 책 내용이 잘 조화된 리뷰 재밌게 읽고 갑니다.

아영엄마 2005-03-27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에 그 사람 작품 보고 무지 무서웠어요! 무슨 책이었더라?? ^^;

히나 2005-03-27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름 닦아내기 귀찮아서 몇 년째 생선은 굽지도 않고 있다는 ㅡ..ㅡ

로드무비 2005-03-27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nowdrop님, 아예 위를 안 쳐다봐야겠어요.
고등어 구이를 안 해먹고 살 수야 있나요.^^;;
아영 엄마님, 소용돌이 뭐 그런 제목 아닌가요?^^
새벽별님 이토 준지 책 중 제일 마음에 들었답니다.^^
퍼키님, 재밌게 읽으셨다니 기분 좋네요.^^
속삭이신 님, 우리 둘 어떤 면에서 정서가 좀 비슷한 것 같지 않아요?ㅎㅎ
하루님, 내년에 이 집에서 도망갈 겁니다. 기름때 범벅을 해놓고......ㅎㅎ
날개님, 이토 준지 책은 거의 다 읽긴 했는데 그저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마음에 쏙 드네요.^^

2005-03-27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