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cat in Paris 파리의 스노우캣
권윤주 지음 / 안그라픽스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섯 시에 일어나 책꽂이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올해의 첫 책, 무얼 읽을까? 새벽 미명에 일어나 앉아 정색을 하고 읽는 책이니만큼 신중하게 고르는 시늉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허공에서 몇 번인가 헤매이던 나의 손은 결국 <파리의 스노우캣>을 꺼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파리의 이 골목 저 골목 한가롭게 산보하는 스노우캣 뒤를 열 발짝쯤 떨어져서 어슬렁 딴전부리며 따라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가 다니는 곳은 커피향 낭자한 카페와 미술관, 예쁜 가게가 소소하게 등장하는  뒷골목이 다였다. 스노우캣이 먹다 흘리는 바게뜨 부스러기와 쇼콜라쇼(핫초콜릿) 찌꺼기는 내 입에 너무 달았다. 어디 한국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라도 한 냄비 시켜 먹었다면 염치불구하고 숟가락 들고 달려들었을 텐데......

<파리의 스노우캣>에는 사람 냄새가 없었다. 그 어떤 자기 성찰도......도움을 많이 받은 친구인지 후배인지가 한 명 나왔지만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스노우캣은 참으로 가배얍게 무심하게  목도리를 친친 두르고 파리 뒷골목을 배회하다가 다리가 아프면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건 아마 사람으로 태어나 꿈꿀 수 있는 최상의 여행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다가 무슨 상점 문짝에 붙은 공연(팻 메스니와 찰리 헤이든) 포스터를 보더니 덜컥 파리 체류를 두 달 연장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미련 없이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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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1-0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하. 정말 통쾌한 리뷰!!!! 추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요....제 친구중에(남자) 맨날 전공 바꿔서 학교만 다니는 애 있는데요,

(40살까지는 공부를 하며 인생을 설계한데요) 꼭 그 친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네요.

cool한 로드무비님의 리뷰, 맘에 들어요!

2005-01-03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1-03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통쾌한 리뷰라니 무지 기뻐요.

너무 감상이 짧아서 페이퍼로 올릴까 잠시 고민했는데...^^

.....님, 설마 이런 심통맞은 리뷰는 저밖에 쓸 수 없다는 그런 말은 아니겠지요?^^

릴케 현상 2005-01-0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제는 스노우캣 다이어리 사러 다녔더랬는데

깍두기 2005-01-0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히히힛, 나도 읽었으면 쫌 열받았을 거 같네. 그래서 오히려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얼마나 열받나 시험해보게...^^

나는 아무 미련없이 책장을 덮었다. 작가가 봤다면 가슴이 철렁할 대사네요. 님, 무서워요.(그래서 난 좋다고...^^)

로드무비 2005-01-03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그림 참 예쁘죠?

그래 다이어리는 사셨습니까?^^

깍두기님, 뭐 그렇게 나쁜 의미는 아니었답니다.

너무 자유롭고 여유로운 여행기에 샘이 좀 나서요.^^

2005-01-03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1-04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노우캣을 좋아해요...

하지만...님의 시니컬한 리뷰도 좋은 건 무슨 아이러닐까요~!

암턴 추천!!

로드무비 2005-01-04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님의 말씀만 들어도 배부릅니다. 고맙습니다.^^

복순이언니님, 제 리뷰가 시니컬하다고요? 그럴 리가요.('')(..)

ㅎㅎ추천 고마워요.^^

잉크냄새 2005-01-04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아무 미련없이 추천을 눌렀다.

리뷰의 형식과 내용이 참신하네요.^^

bluehawaii77 2005-01-04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했습니다.... 저랑 어찌나 똑같은 생각을 하셨는지...그리고 통쾌한 글..ㅎㅎ

2005-01-04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참신합니다. 호평이 아니건만 어쩐지 책을 보고 싶게 만드는..^^ 아, 제목도 멋있습니다.

로드무비 2005-01-05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아무 미련 없이 추천을 누르시다니! 앞으로도 계속 그래 주시와요.^^

안젤리나님, 처음 뵙습니다. 반가워서 달려가 봤더니 방금 서재를 만드셨군요.

이 책을 읽고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셨다는 분이니 기대가 됩니다.^^

참나님, 우리 1년 만이죠? 반가워요.^^

anidia71 2005-01-1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 기분을 정리해 주셨네요..


chika 2005-01-18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화악 와 닿아요. 저와는 정반대의 느낌인데도..참 좋은 리뷰야! 하는 느낌은 뭔지... 저도 몰라요!ㅋㅋ
저는 이 책 읽고 좋아라~ 한 사람중 하나인데요, 아마 그런 꿈이라도 꾸면서 사는게 좋아서 그랬는지도 모르죠. 가끔씩 그렇게 낭만적인 꿈을 꾸는 것도 좋쟎아요. 흐흐~
제가 아마 세상을 너무 편히 살아서 이런가봐요~ 이해해주세요~ ^^;;

2005-04-18 0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