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전영경 시인의 시(아, 황량)를 오래 된 수첩에 올리다가 코멘트가 어째 술 이야기로 빠져버렸다. 대구뽈탕에 뽈찜에 당장이라도 종로 뒷골목에서 모일 것처럼 수다를 떠는데 세상에, 우리의 수암님까지 가세하시는 게 아닌가! 그 골목 빈대떡이 뭐 어떠시대나!

그날은 마침 술마시기 딱 좋은 날, 금요일 저녁이었다. 한달에 두 번은 꼭 가는 동네 꼼장어집에서 퇴근한 동생 부부랑 남편이랑 꼼장어구이를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술이 엄청나게 달았다. 움직이기도 귀찮고 그냥 그집에서 전어구이를 시켜 술을 계속 마셨다. 숯불에 구운 전어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입에서 살살 녹았다. 세살짜리 조카녀석이 제 엄마 품에서 자길래 집으로 데려다주고 우리는 딸아이까지 데리고 포장마차에 갔다. 즉석에서 회를 쳐주는 집인데 우리는 소금구이 새우를 세번째 안주로 골랐다.

남동생이 내 알라딘 서재에 들어와 봤다고 했다. 제 누이가 밥먹다가도 슬그머니 나가서 컴퓨터 앞에 앉고 하는 꼴을 몇 번 보더니 조금 궁금했던 모양이다. 녀석과 지 마누라  흉 안 보기를 잘했지.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책장수님에, 부산 사는 여동생에, 이제 남동생까지......나는 알라딘에서 빼도박도 할 수 없다. 아, 방을 하나 새로 만들어야 하나?

맥주를 사들고 와 집에서 계속 마셨다. 모처럼 아주 뽕을 뺐다. 몇 년 전 나와 어쩌다 헤어진 친구가 있는데 며칠 전 일 관계로 연락을 했더니 내 남편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다짜고짜 울더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나도 울었다. 남편이 연락할 마음이 없냐고 묻길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왜 우냐고......우는 건 우는 거고 상관하지 말라고......

이 나이쯤 되면 사람 관계 맺히고 닫히는 일 없이 잘 풀려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똑같다. 너무 좋아하는 사람은 만들면 안되겠다. 나는 사람 때문에 우는 게 낭패스럽고 민망하다.

토요일은 숙취로 하루종일 엎드려 있다가 오후에서야 꼼지락거릴 수 있었다. 오래 전 읽었던 윤태호의 <로망스>가 눈에 띄길래  꺼내어 읽고 30분 만에 리뷰를 하나 써제꼈다. 뿌듯했다. 공친 하루가 아닌 것이...... 그리고 어제 아침엔 신경림 시인의 산문집 리뷰를, 또 오후엔 알라딘에 주문한 책이 도착하여 <나른한 오후>를 읽자마자 흥이 올라서 또 리뷰를 썼다. 맹세컨대 리뷰를 쓰려고 책을 읽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서재순위 30이나 적립금 5000원이 머리속에 아주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오늘 아침 서재순위를 확인하니 아홉 번짼가 열 번째다. 별로 무리한 것도 아니었는데 사실은 무리였던 것일까?  왠지 자기 자신에게  질리는 기분이 든다. 머리도 무겁고 코도 맹맹하고.

리뷰를 쓰기 위해 책을 읽지는 않겠다. 책을 읽고 별 흥이 없는데도 리뷰를 쓰겠다고 낑낑대지는 않겠다. 이것이 오늘 아침 나의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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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09-2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아... 암튼 서재 순위에 올라가시는 분들 보면 그냥 대단하단 생각뿐입니다. 로드무비님 어제 올리신 리뷰 다 멋있었어요. 그런데 저도 뭔가 경험을 하나 하고 나면 서재에 글을 써야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요. ^^ (물구나무선 당나귀, 아이 이쁘다.)

▶◀소굼 2004-09-20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요르녀석..푸우에서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
리뷰쓰려고 책읽는거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전;;둘다 못하고 있다는- .-;;
다행히 전 가족들한테는 알라딘은 아직 모르는 곳이라;;홈페이지 쪽은 다 알아버려서 자멸상태-_-;

로드무비 2004-09-2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소굼님, 저도 이요르 제일 좋아해요.
좀 멍청하게 생긴 아해들이 좋은 건 동병상련의 뜻이랄까.

2004-09-2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술빨이었어~~^^:;; 리뷰를 쓰려고 책을 읽으면 스트레스죠..즐거움이 아니라..책을 즐겁게 읽어도 리뷰가 안써질 때가 있고 책을 그냥저냥 읽었는데도 리뷰가 술술 나올 때는 허걱 이 구라를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고민하게 되죠..음 암튼 가을 전어 냄새가 여기까지 풍겼다는 사실만 알아 주십쇼..오늘 날씨 구리구리하네요..폭 쉬세요.

아키타이프 2004-09-20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라딘에 서재를 만들고 제일 난감했던게 <리뷰>에 대한 압박이었습니다.
책을 읽을때는 : 집중해서 얽고 리뷰 적어야지(헉-_-;;), 라는 머리속에 꼬릿표가 붙어서 책읽다가도 내가 좋아서 읽는건지, 리뷰를 적기 위해서 읽는건지 혼란스러워서, 그 혼란이 더 마음을 어지럽혀서 진작 저만의 글읽기가 안되고 있다지요.
알라딘를 좀 등한시 하는 경향이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좀 귀여운 변명 아닌가요(헤~)

_ 2004-09-2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는 10편당 5천원때문에 썼다가, 그러다가, 이주의마이리뷰를 노렸다가, 다음에는 구 명예의 전당을 노리면서 리뷰를 써나간거 같아요. 그러다가, 한계점에 다다러서, 푸웅~하고 가라앉아버렸고, 저도 이제는 책을 보고, 뭔가 기억에 남는 책만 남기고 있습니다. 목적의식을 버렸지요. 서재를 잠시 떠나 있는동안 있었던 개인적인 일들을 그냥 책과 연관시켜 적어내고(다수에게 공개하는 리뷰로는 분명히 부적절함을 알지만;) 있었는데, 이제 그것도 바닥이 나나 봅니다. 크흐,

바람구두 2004-09-20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나는 왜 쓰는 거지? 흐흐. 노리는 게 뭘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superfrog 2004-09-20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밑으로 툭, 떨어지고 나니 홀가분해요..^^
이제 숙취는 다 사라진 거죠? 비오는 오후가 스산하기만 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로드무비 2004-09-2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 맞아요. 술빨로 주말에 리뷰 세 편 썼어요. 그런데 님은 뭔빨로 그렇게
많이 쓰셨대요? 흥=3 잘 쉬고 있어요. 저녁에 전어 사서 드세요.
가하님, 리뷰 쓰기 거시기하면 페이퍼 쓰심 되잖아요.
알라딘에서 님이 틀어주는 음악과 얘기 더 많이 듣고 싶어요.^^
바람구두님, 자기만족이든 뭐든 사람들마다 노리는 게 있으니까 긁적이는 거겠죠.
그런데 님은 글 안 쓰시면 안 될 분 같습니다.
앞으로도 부탁드릴게요.
(부탁 받고 글쓰면 저는 기분좋던데......)
금붕어님, 술...그거 괴로워요.
감기가 옴팡지게 걸렸습니다.
자업자득이죠, 뭐.
금붕어님도 쾌적한 오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