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dts] - 마블+와이드미디어 할인행사
패티 젠킨스 감독, 리 터제슨 외 출연 / 마블엔터테인먼트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극장에 가서 보고 싶었으나 끝내 보지 못했던 영화 <몬스터>를 보았다. 패티 젠킨스 감독. 여주인공 린을 열연한 샤를리즈 테론에게 2004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안겨준 영화다.

'몬스터'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이며 영화들이 꽤 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흥미진진한 만화 <몬스터>, 영화 <몬스터볼> <쓰리 몬스터> <몬스터 주식회사>.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이다.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몬스터'라는 단어에 매료되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주인공 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레이션과 함께 필름이 돌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어린 시절의 사진은 그것이 누구이든 사람들에게 큰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을 모르던 시절의 그 미소는 어떤 때는 가슴을 쥐어뜯게 만든다. '아아, 내가 이렇게 멀리 와버렸구나. 너무 많이 망가졌구나! 이제는 저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구나!'

린은 어린 시절 배우를 꿈꾸는 예쁜 소녀였다. 그런데 아빠가 자살하고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묘연해 열세 살부터 몸을 판다. 여덟 살 때 아버지의 친구에게 강간을 당했는데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고했으나 믿어주지 않고 도리어 야단만 맞았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을까. 그 뒤로도 아버지 친구의 유린은 계속되었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 창녀가 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 먹여살렸는데 동생들은 자라서 그런 그녀를 쫓아낸다. 남부끄럽다고...

어느 날 자신이 너무 많이 망가져버렸음을 깨달은 린, 더이상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죽기 전에 목이나 축이려고 바에 들어왔다가 운명의 친구 셀비를 만난다. 동성연애자인 셀비. 그때부터 셀비의 존재는 린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그녀는 누구를 그토록 좋아해본 일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셀비 역의 크리스티나 리치는 묘한 차가움과 중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얼굴. <아담스 패밀리>를 시작으로 <Now and Then> <슬리피 할로우> 등의 영화에 나왔다.

"일주일만 함께 있자. 나 같은 사람 다신 못 만날거야."(린)

"나 책임질 수 있지?"(셀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므로 창녀 짓을 때려치우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겠다는 린의 각오. 그러나 셀비의 친척 아줌마가 그랬듯이 사람들은 린을 딱 한 번만 보고도 그녀가 창녀임을 대번에 알아본다. 험상궂게 살아온 삶의 이력이 화인(火印)처럼 얼굴에 새겨진 것이다. 셀비는 돈을 벌어올 것을 참으로 당당하게 요구하고...궁지에 몰린 린은 어쩔 수 없이 다시 거리로 나가게 된다. 사무실에서 펜대를 굴리고 외모는 곱상하고 세련되기까지 한지는 몰라도 린을 몬스터처럼 흉물스럽게 쳐다보는 영화 속의 그 신사숙녀들이 내 눈에는 몬스터처럼 보였다. 어색해 죽겠는 걸 참고 취직하려고 애쓰는 린의 씰룩씰룩한 그 표정은 내 눈에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린의 독백. '나한테 상처를 준 건 오히려 선량한 사람들이었다....내가 뭘 믿을 때 얼마나 큰 인내심을 발휘하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다시 돈을 벌러 나선 린이 으슥한 숲에서 험악한(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그 장면) 꼴을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그놈을 쏴죽였을 때 나는 벌떡 일어나 "잘했다! 그런 놈은 죽어도 싸다."하고 소리를 쳤다.(실제로!)그런 일들을 겪고도 고상하게 인생의 의미나 읊조리며 사는 인간이 있다면 그야말로 몬스터가 아닐까!

살인을 계속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기진맥진 초주검이 되어 돌아오는 린.

"몸파는 일을 왜 그만둔 거야? 맨날 파티하자더니! ...별장은 어떻게 된 거야?"(셀비)

"넌 나와 달리 곱게 살아온 사람이야. 그런데 세상일 나몰라라하고 사는 건 좋은데 제발 내 말도 좀 들어줘!"(린)

린이 어떻게 벌어온 돈인지도 모르고(사실 짐작은 하고 있다)  흥청망청하는 셀비는 린이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다른 여자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 아아, 저런 것이 인생이라면 정말 그만 살고 싶다. 놀이공원의 대회전관람차는 린의 독백처럼 꽤나 상징적이다. '생각한 것과 다른 것에 삶의 묘미가 있지. 어릴 때 반짝반짝 불을 밝히고 있는 놀이동산의 대회전관람차처럼 말이야. 얼마나 그것을 타보고 싶었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막상 내 차례가 되어 탔을 때 토할 것 같고 너무 무서워서 내려버렸지.'

사람들은 어릴 때 현실 속의 나와는 다른 사람을 꿈꾼다. 나의 가능성을, 그리고 자신이 원석(原石)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으로 가공시켜줄 누군가의 출현을 기대한다. 어린 시절의 린처럼. 그러나 린은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12년 동안 복역하다가 2002년 사형됐다. 이 영화는 실화이다.  법정에서 린에게 손가락을 가리킴으로서 우정을 배신한 셀리는 그 뒤 단 한번도 린을 찾지 않았다고.

사랑에 있어서의 승리자는 오히려 그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린이었다. 그 사실이 내게 조그만 위로가 되어주었다. 샤를리즈 테론은 보기만 해도 신산스러운 그 표정으로 린을 200프로 소화해 냈다. 셀비 역의 크리스티나 리치도 적역이었다. 영화 <몬스터>는 어제 오후 나를 넉아웃시켜버렸다. 린의 인상적인 대사처럼......

"사람들은 매일매일 나가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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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6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4-09-1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장에서 보려고 했는데, 개봉한 곳도 별로 없었고 너무 빨리 끝나버렸지요. 아우, 보고싶어라. 이번 주말용으로 찜했습니다.

깍두기 2004-09-16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지 보고 싶네요. 전 집에서 비디오를 보면 중간에 잠들어버리는 경향이.....^^ 누군가가 늙었다는 증거라고 그러데요.

내가없는 이 안 2004-09-1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슬프고 가혹해서 전 못 보겠어요. 이 느낌이 맞나요, 아닌 로드무비님이 리뷰를 너무 잘 쓰신 건가요? 농담 아님.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진짜로 못 보겠음. ㅠ.ㅠ

미누리 2004-09-16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몬스터 주식회사 이야기 쓰고 여기와서 몬스터를 또 보게 되어 놀랐습니다. -__-;;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혼자 머쓱해서 답글 달고 간다고 덧붙이러 왔습니다.

로드무비 2004-09-16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 님은 이 영화 보지 마세요.
좀만 기다렸다가 보세요. 아셨죠?^^
블루님, 이 영화처럼 이상하게 땡기는 영화들이 있잖아요.
님도 저랑 성향이 비슷하신 건지...
깍두기님, 저는 빌려다놓고 못 보고 갖다준 영화가 한 박스는 될 겁니다.
그래도 꼭 보세요. 졸 틈이 없을걸요?^^
이 안님, 그렇게 여리셔서 어떻게...
저는 정신이 번쩍 나는 것 같은 이런 영화를 좋아해요.^^
미누리님, 저도 님 방에 놀러갈게요.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반가워요.^^

숨은아이 2004-09-16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몬스터"라는 말, 저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래서 이 영화 볼 생각도 안 했는데... 이 영화 봐야만 할 것 같네요. 울면서 이 여자의 명복을 빌어줘야만 할 것 같아요. 웅~ 일케 가슴이 미어지게 글을 쓰시다닛.

하얀마녀 2004-09-1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볼 마음 없었는데 리뷰를 읽고 나니 보고 싶어지네요.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어찌 그리 잘 쓰셨나요. ^^

로드무비 2004-09-16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울고 싶은날 이 영화 보세요.
정신이 번쩍 날 거예요. 전영경 씨 시는 내일 올릴게요.
하얀마녀님, 헤헤 제가 좀 잘 썼죠?
마음 가는 대로 썼더니...^^

마냐 2004-09-17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고...보고 싶은 영화, 아직도 못보고 있었네요.
알라딘은 요즘 책 뽐뿌에 음반 뽐뿌에 영화 뽐뿌까지 정신이 없네요. ^^

로드무비 2004-09-17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영화 리뷰도 보고 싶네요.^^

2004-09-17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너무 빨리 끝나버렸어요. 몇군데 개봉도 않고...전 이상하게 극장에서 보려고 맘 먹고 있던 것을 못 보면 비디오로 보기가 싫어서...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