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 아저씨의 소중한 선물
수잔 발레이 글 그림 / 지경사 / 1998년 7월
평점 :
절판



 

일본 치가사키현의 하마노고 초등학교는 복도와 교실을 구분하는 벽이 없다. 외양만 독특한 것이 아니다. 열린 학교다. 일본 전역에서 교사들이 이 학교를 찾아와 수업을 참관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이 학교의 초대교장 토시아키 오세이 교장(57세). 1960년대에 교사 생활을 시작하여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있다. 교사 생활뿐만이 아니다. 위암 말기로 3개월에서 기껏해야 6개월 살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는 이 사실을 숨기기는커녕 죽어가는 인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인생의 가치를 가르치는 데 활용하기로 한다. 세상에, 자신의 죽음을 교육 소재로 써먹는 교사라니!

그는 매일 아침 교문 앞에서 약 700여 명의 아이들을 웃으며 맞이한다. 그뿐인가, 틈만 나면 아이들 사진을 찍어 복도에 주르르 전시하는데...

그의 교육철학은 이것이다.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편에서...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교육이다. 교사들은 수업의 주제가 정해지면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에 나간다. 가령 '치가사키의 훌륭한 해양환경'이 주제라면 선생님과 아이들은 바다에 가서 고깃배도 타보고 수산물 가공공장도 견학하는 것이다. 이 수업을 맡은 교사는 공개수업에서 그 고장의 바다를 자랑하는 문안을 아이들에게 생각해 보라고 한다. 한눈에 봐도 개구장이인 한 소년이 이렇게 말하며 낄낄댄다.

"더러운 바다지만 최선을 다해 볼게요."(이 말이 나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교사는 당황하며 사람들이 가보고 싶은 바다가 될 수 있도록 문안을 써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교사들의 평가회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 오세이 교장도 점잖게 한마디 거든다.

"듣고 냄새 맡고 만진 모든 것들을 아이들이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교사의 틀에 맞춘 교육은 지양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한 명의 교사가 있다. 교사 생활 4년차인 모리타. 그가 지향하는 건 흥미로운 수업이다. 어디서 그렇게 멋들어진 티셔츠만 사서 입는지.(나는 그의 교육철학보다 그 티셔츠들을 산 가게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의 공개수업 은 '도덕'으로 가족의 재조명이었다. 그는 고심끝에 몇십 년 전 화산폭발사고로 가족을 잃고 입양 등의 방법으로 새로운 가족을 구성했던 역사적인 사례를 예로 들기로 한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약한 그는 아버지가 없는 한 아이에게 "너라면 새 아버지가 생긴다면 어떨 것 같니?"라고 차마 묻지 못한다. 상처가 될까봐. 보다못한 오세이 교장이 구원투수로 나서는데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싫지만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라고 간신히 한마디 한다.

어떤 아이의 대답은 나를 눈물짓게 했다. "죽도록 싫지만 전 어리니까 어른들의 말을 들어야 해요." 공개수업 후 교사 평가회에서 모리타 선생은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 한마디로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를 회피하기만 하고 문제를 직면하면 화가 났다는 선배 교사의 체험 고백이 그에게 조금 위로가 되어주었을까?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텅빈 교실에서 이 사람 좋은 교사는 흐느낀다.

"전 여러 면에서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불쌍하게만 여겨져요."(이 대목을 쓰는데 콧날이 시큰하다.)

어느 날 오세이 교장이 공개수업을 직접 하기로 했다. 그의 수업 과제는 '인생'.

"너희들이 알다시피 난 암에 걸렸다. 그러니까 가을에 난 아마 죽고 없을 거야."

아이들은 눈이 말똥말똥하다. 그러니까 아이들이지만...그는 그림동화 한 권을 준비해 와서 아이들에게 읽어준다. 수잔 발리의 <오소리의 작별선물>.

어느 날 늙은 오소리가 죽었다. 친구들이 모여 그를 회상한다. 여우는 넥타이 매는 법을 오소리에게서 배웠다고 고백한다.토끼는 빵 굽는 법을...오소리는 친구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를 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연결시켜 주는 걸까?" 교장의 물음에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대답한다. "추억이요." "끝이 없는 삶이에요." "영원!"이라는 대답까지 모두 나왔다. 아이들은 오세이 교장의 수업에서 사람들은 언젠가 누구나 죽으며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님을 배웠다.

교장은 평가회에서 교사들에게 말한다. 자신의 몸이 날로 쇠약해지는 걸 아이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자신의 고통과 두려움을 , 그리고 자신의 이 모든 노력은 두려움의 이면일지도 모른다고...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았으면 한다는 그의 고백은 정말 얼마나 통렬하며 인간적인가.

그 며칠 후 2학기 수업이 모두 끝나고 오세이 교장은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1월에 만나자는 인사를 한다. 교무실의 교사들에게도. 하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 인사였다. 그의 병은 급격히 악화되어 이틀 뒤에 사망한다.

다큐멘터리답게 어디까지나 다큐멘터리적으로 감상을 써보았다. 줄거리의 나열로만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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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1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icare 2004-09-0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그의 교육철학보다 그 티셔츠들을 산 가게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ㅡ너무 귀여우세요.
전 여러 면에서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불쌍하게만 여겨져요.-저는 능력도 인간성도 모두 부족해요. -_-;

로드무비 2004-09-0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주신 님, 이 서재도 참 재밌네요. 친했던 사람과 멀어지기도 하고
몰랐던 사람과 친구가 되고...서재 소사이어티예요.ㅋㅋ
죽음을 저는 아직 입에 올릴 수 없습니다. 잘 죽고 싶어요.
님의 코멘트가 많은 힘이 됩니다.^^

밥헬퍼 2004-09-0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남는 글입니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를 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할 때마다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저의 확신과 고백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것을 읽다니....지난 봄에 다녀온 키노쿠니학교도 문득 생각이 나네요. 교육문제는 여건은 달라도 근본적으로는 같은가봐요..끊임없이 대안을 찾아야 하는... 그리고 볼 시간이 없어 안타까운 EBS 다큐도...잘 읽었는데 집에서 한번 더 읽어보려고 가져갑니다.

nrim 2004-09-0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보았어요..
마지막 부분에.. 오세이 교장이 학교를 떠날때 그 뒷모습이 어찌나 슬퍼보이던지....
뒤이어 상영되었던.... 팔려가는 소녀들과.. 울란바토르의 가출 소년들은.. 정말 가슴이 아프더군요... 보고나서 잠을 이룰수가 없었어요.

로드무비 2004-09-0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헬퍼님, 어젯밤에 당장 쓰고 싶었는데 하룻밤 묵혔다가 썼어요.
좀 냉정하게 쓰려고요. 님이 다녀오신 키노쿠니학교도 궁금하네요.
한번 더 읽어보시겠다니 감사할 뿐입니다.
느림님, 안 그래도 느림님도 이거 보고 계실까? 하고 잠깐 생각했어요.
열렬한 다큐 팬이신 것 같아서...헤헤.

urblue 2004-09-0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추천만 꾹 누릅니다.

로드무비 2004-09-01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케어님, 저는 그런 제가 못마땅한데 귀엽게 봐주시다니!
저는 모든 것이 부족해서 하나하나 열거할 수도 없을 지경이랍니다.^^

로드무비 2004-09-0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추천도 좋지만 코멘트 좀 남기시지.^^;;;

밥헬퍼 2004-09-0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도착했네요. 제목만으로도 대 만족입니다. 제가 즐겨먹는 점심이 바로 3,500원하는 도시락인걸 어찌 아셨는지...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숨은아이 2004-09-0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다큐는 어떤 목적의식 없으면 잘 보게 되지 않던데, 로드무비님 글 보니 이런 걸 못 보는 게 안타깝네요. 추천 누르고 가져가서 보려구요. 그런데... 쭈삣쭈삣... 이 다큐영화랑 "오소리 아저씨의 소중한 선물"이랑 저 귀여운 계란 한 판이랑 어떤 관계가 있나요?

로드무비 2004-09-01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 아이님, 별 뜻은 없습니다.
제 딴에는 획일화된 교육을 상징하는 의미로 계란 한 판 사진을
집어넣었고요. 좀 어이가 없죠?
<오소리 아저씨의 작별선물>을 번역하여 나온 것이
<오소리 아저씨의 소중한 선물>입니다.^^
추천 고맙습니다.

깍두기 2004-09-0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다시 볼 수 있나요? 전 꼭 봐야만 하겠는데.

로드무비 2004-09-0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뭐래요? 흥.
주하 예쁘다고 칭찬 남기지 않아서 삐친 로드무비.
헤헤헤 깍두기님, EBS 들어가서 한 번 보세요.
저는 자료 찾는데 영 젬병이라!

반딧불,, 2004-09-03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이것 어디서 찾으셨어요??
절판된 귀중한 것인데요...책 넘 좋지요??

2004-09-06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