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제발 잡히지 마 -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기록
이란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 450만 이주노동자 중에서 절반이 모루 아빠와 같은 미등록 노동자다.
해마다 10만 명 정도 되는 이주노동자를 새로이 들여온다. 땀흘려 일해온 미등록노동자는
버려둔 채로.
새로운 사람들은 계속 들어오고, 오래 된 노동자들은 계속 쫓기고 강제로 추방당한다.
(...) 모루가 아빠에게 숨죽여 했다는 말을 전한다. "아빠, 제발 잡히지 마."(49쪽)

신문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어쩌다 집어든 책을 펄쳐도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우울한 현실이
두루마리 휴지처럼 끝없이 늘어진다.
가령 '976명 해고해 놓고 841명 신규채용 계획'이라니,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에 실린 <쌍용차, 구조조정 본색 드러났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어떤가?
'이 치졸한 나라가 필요할 때만 쥐어짜듯 부려먹고 매몰차게 내치는'(170쪽) 건
미등록 이주노동자뿐만이 아니다.
그건 바로 이 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운좋게 지금 현재 정규직 노동자라고 해도 또 안심할 것은 못 된다.
일터에서 언제 내쫓길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벌 수 있을 때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그악스러워지고, 이 책 속의 작은 제목처럼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울' 정도.

누구나 기피하는 험한 일들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을, '국가적 필요에 따라 해외노동력을
도입하면서 그에 대한 대책은 전혀 마련하지 않고' 큰 시혜나 베푸는 듯 구박하고
함부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몇푼 되지 않는 임금을 떼먹는 건 예사요, 차일피일 미루고 주지 않는 퇴직금을
함께 받으러 갔더니 모 회사의 부장, 뚫린 입이라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말입니다. 억울해요, 정말. 이 친구는 일은 잘해요. 저는 인정할 건 인정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신경 많이 썼어요. 얼마나 잘해줬다구요.  어떤 때는 닭고기도 사다가
기숙사에 넣어주고, 얘들은 돼지고기 안 먹잖아요. 그러니까 꼭 닭고기로 사다줬다구요.
어떤 회사가 우리처럼 그렇게 신경 쓰겠어요. 그런데 이게 뭐예요. 짜식이 뒤통수나 치고,
허이구 참 기가 막혀서. 퇴직금은 무슨 퇴직금이에요. 외국인들 주제에, 배은망덕하기는..."
('퇴직금 소동' 54쪽)

임금을 떼먹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냐는 뜻이다.
특별한 악인의 말이 아니다. 그는 아마 눈을 껌뻑껌뻑, 꽤나 선량한 얼굴의 주인공일 것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는 또 누군가에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저런 말을 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주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할까,
책장을 확 덮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절통하고 기막힌 삶의 기록들이 넘쳐나는데,  
닭고기를 가끔 사줬다고 자화자찬하는 어느 부장의 이야기가 귓가를 계속 맴돌았다.

저자 이란주 씨는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로 '최초의 이주노동자 인권선언'이라 불리는
외국인노동자의 삶의 이야기집 <말해요 찬드라>를 펴낸 후 몇 년 만에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말 많고 탈 많던 산업연수 제도를 몰아내고 고용허가제를 통해 일부는
합법적인 신분으로 바뀌게 되었다고는 하나 결국 맨몸뚱이로 내쫓기는 건 마찬가지.
그 모든 것은 허울좋은 변화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에피소드 하나하나, 민망하고 미안해서 차마 글로 옮겨적고 싶지도 않다.
특히 강제단속과 추방 장면은 호러 영화처럼 소름이 돋을 정도.
그러니, 위에 잠깐 소개한 '퇴직금 소동'의 차 부장님  대사 정도는
아주 귀여운 에피소드라고 할까.

"사장님한테 자꾸 돈 달라고 하지 마. 사장님도 힘들어."('그가 미쳐버린 사연' 122쪽)

정신병원으로 다시 들어가며 아내에게 이렇게 당부하는 한 이주노동자의 말이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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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9-06-10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감사합니다. 꼭 읽어봐야 겠네요!

로드무비 2009-06-10 21:27   좋아요 0 | URL
아이고, 제가 감사합니다요.^^

balmas 2009-06-1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제목과 마지막 이주노동자의 말이 정말 눈물겹습니다. 눈물이 찔끔 나네요.

로드무비 2009-06-11 10:33   좋아요 0 | URL
저도 저 장면에서 눈물이 찔끔 났어요.
제목이 생각 안 났는데 아이들 이름을 넣어서... 저 잘했죠? 발마스 님.^^

치니 2009-06-11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통이 트이지 않는 나날입니다. 도무지...

로드무비 2009-06-11 10:32   좋아요 0 | URL
바늘구멍만한 숨통을 기대하고 이것저것 끄적여봅니다.

릴케 현상 2009-06-11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친구는 일은 잘해요. 저는 인정할 건 인정합니다.<--에고고... 찔려요. 저 일은 잘 못하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ㅠㅠ

로드무비 2009-06-14 10:40   좋아요 0 | URL
산책 님, 찌찌뽕.
그런데 저는 '일도' 잘 못합니다.^^

승주나무 2009-06-2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없음

안녕하세요. 승주나무입니다.
알라딘 서재지기와 네티즌들이 함께 시국선언 의견광고를 하려고 합니다.
알라디너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참여의사를 댓글로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요는 아닙니다^^;;

즐찾 서재들을 다니면서 통문(댓글)을 돌리고 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남기는 스팸성 댓글이지만 어여삐 봐주세요~~~

http://blog.aladdin.co.kr/booknamu/2916466


2009-07-11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9-07-14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

로드무비 2009-07-15 14:56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
지가 되려 고맙죠.^^

2009-07-16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7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9-07-1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정말 그래욧. 완죤 질투 있죠

2009-09-22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