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성거리는 삶 헤매고 떠도는 삶 술에 취해 주정도 하
고 실수도 하는 삶이 세계입니다 고상한 영혼 따윈 없죠
형이상학도 없습니다 모두가 언어죠 후회도 언어 기쁨도
언어 모래도 언어 지금 저리는 팔도 언어 어제 들른 카페
도 언어 당신도 언어입니다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이
고 당신의 한계죠 당신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입니다 당신
은 당신의 눈을 볼 수 없고 당신은 지금 추운 들판, 거리,
마른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당신의 시야 속에 있습니다
당신의 시야가 세계이고 세계의 한계죠 사유는 결국 미친
짓이죠 무슨 영혼, 진리, 본질 따윈 버리세요 잊으세요 망
각하세요 세계와 거리를 두지 마세요 그저 사세요 영혼
따위에 속지 마세요 진리를 찾지 마세요 삶이 그대로 진
리입니다 당신의 진리가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진리죠
오전엔 눈이 오고 오후엔 해가 납니다
- 이승훈 詩 <우리가 할 일은 웃는 것이다> 全文
좀전 달걀을 꺼내려 냉장고 문을 여는데 냉동실 앞에 붙은 이상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삶.은. 나.물.
인생은(삶=나물) 나물이라고?
이게 뭔 소리여?
깜짝 놀라서 잠시 냉장고 문을 여는 것도 잊었다.
뒤이어 나의 메모가 속속 눈에 들어왔다.
분홍새우살
밥 한 공기
매생이
...
며칠 전 나물을 삶고 보니 양이 너무 많아 밀폐용기에 반 덜어 얼려두었다.
텔레비전 모 프로그램에서 본 살림의 달인인지 여왕인지가 문득 생각나
냉동실에 보관된 식품과 식재료 목록을 적어 붙여두었던 것.
시인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저 살라는데,
나는 '삶'자만 봐도 가슴이 철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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