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첫날 영화 <밀양>을 보고 주일에 집 근처의 교회를 찾았다.
남편은 조기축구 팀에 빼앗기고 딸아이는 바둑대회에, 그래서 혼자였다.
시장 볼 때 지나가면서 찜해둔 교회가 있었는데 걸어도 걸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거다. 그 날따라 햇빛은 왜 그렇게 따가웠던지.
전에 살던 동네에서 온 가족이 마지막으로 갔던 교회가
구리에 소재한 모 교회와 유명한 감자탕교회.
구리의 그 교회 목회자는 세간에 '똥퍼' 목사님으로 알려졌는데
오래 전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달동네의 가파른 골목을 오르내리며
양 어깨에 '바께스' 가득 인분을 퍼나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전에 '활빈당'이라는 이름의 천막교회 활약상을 책으로 읽고 관심을 가졌었고.
그런데 똥퍼 목사님의 설교 내용이 수상했다.
재벌 경영인들의 조찬모임에 가서 기도하고 온 걸 은근히 자랑하지 않나
고관대작들과의 사적인 어울림을 설교 중간중간에 끼워넣는 것이다.
그는 '걸핏하면 데모하고 파업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그렇게 비판적일 수 없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빈민의 친구를 자처하던 사람이 대놓고 재벌과 기업주 편이 되다니!
우리 부부는 투덜투덜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 현재 그는 '뉴라이트' 운동 단체의 핵심인물로 알려져 있다.)
감자탕교회는 제일 인상적이었던 게 예배 전 싱글벙글 기쁜 얼굴로 주차를 안내하는
남자 성도들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신나고 행복해 보일 수 없었다.
감자탕식당이 1층에 있어 그렇게 불리는 교회는 좁고 허름했고
우리 가족은 5분쯤 늦게 도착하면 건물 맨 꼭대기층의
태권도장으로 직행하기 일쑤였다.
주일마다 그 태권도장은 임시 예배실로 사용되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텔레비전 앞에서 쭈그려 앉아 보는 예배도 좋았다.
딸아이는 그곳의 아이들과 함께 과자를 먹으며
내 수첩에 개발괴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교인수를 감당 못해
부지를 확보하고 가까운 곳에 교회를 새로 짓기로 한 것이다.
예배를 분위기로 보는가 하겠지만 나 같은 인간은 좀 그런 면이 있다.
이야기를 하려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생략하고.
아무튼 교인들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는 처음 보았는데
목사님의 설교 또한 잔잔한 듯하면서 파워풀했다.
설교 멋지고 교인들 은혜 충만하고,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 부부는 옮긴 새 성전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지내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오게 되었다.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의 연기는 거의 접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나는 그보다 송강호가 짝사랑하는 여자 전도연을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고
역전 광장에서 교인들과 가스펠송을 부르며 동작까지 그대로 따라하는 모습을 보며
우습고 흐뭇해 시선을 떼지 못했다.
주일 아침 완장을 차고 팔을 휘저으며 교회 앞에서 주차를 인도하는
그 능청스런 모습은 또 어떻고.
"자매님, 자매님같이 불행한 사람은......", 사람의 면전에 대고 이렇게 전도하던
그 약사 같은 무신경한 이들이 교회에는 너무 많다.
가족 이기주의에 필적하는 교회 이기주의.
자신의 신앙에 도취된 건 좋은데 타인에게 서슴없이 막말을 던지는 사람들.
스스로를 나이롱 신자라고 표현하는 사람들 중에서 도리어 미더운 면을
발견할 때도 있다.
역전 광장에서 율동과 함께 찬송을 부르며 전도하다
반건달인 친구들이 찾아오자 팀에서 빠져나와
포장마차 뒤에 숨어 담배를 피며 황홀해 하던 송강호의 그 표정.
<밀양>을 보고 난 주, 어언 몇 달 만에 혼자 교회를 찾은 건
영화 속의 그 얼굴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였을까.
사실은 그날, 키우던 토리가 오늘내일 하는 등 마음속이 복잡해
긴 교회 의자에 앉아 실컷 울고 싶었는데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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