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말하는 의사 부키 전문직 리포트 3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지음 / 부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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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말했다.


‘의사가 말하는 의사’(이하: 의사 편)를 일주일 전에 다 읽었다. 그런데 곧바로 책 리뷰를 쓰지 못했다. 전에 쓴 ‘간호사가 말하는 간호사’(이하: 간호사 편) 리뷰가 나름대로의 파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결된 다른 시리즈의 책도 읽어보겠노라고 계획을 세웠는데, 계획만큼 쉽게 넘어가지는 못할 것 같다.


‘간호사 편’은 혹평을 한데 반해, 이 책은 호평을 하려고 한다. 독자라면 좋은 책에는 좋은 평가를 내려줘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간호사 편은 깊이 알고 있었기에 부족한 점이 띄였다면, 의사 편은 알고 있는 범위가 얕아 부담없이 읽었다. 간호사라면 껄끄럽게  느껴질 몇 구절도 있었지만, 책 전반에 대해서는 잘 만들어 졌다. 의외로 솔직하고, 매끄럽게 쓴 글들이 기대이상으로 많다. 의사를 꿈꾸거나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는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간접 관련자나, 일반인들도 읽어볼 만하다.


서문을 쓴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의 편집위원의 글을 읽어보니, 책 전체를 잘 아우르신 것 같다. ‘의사는 사람들이었다.’는 내용이 그것인데, 대부분의 필자에게도 그 점이 발견된다.


학업에 놀란 의대생들의 글에서부터 빡빡한 인턴생활, 다양한 전문의의 다양한 이야기까지 순차적으로 씌여있다. 여기서 놀랐던 사실은, 바쁘고 힘든 위치에 있는 필자의 글은 글에서도 그 각박함을 드러난다는 점이다. 반대로, 좀 유(柔)한 환경의 의사들은 글도 부드러웠다.  


의대생들의 시험 스트레스를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는 시험 도(道)가 터버린다는 내용에서 웃었다. 간호사 국가고시(이하: 국시)는 극소수의 병원을 제외하고는 합격과 불합격만 묻는다. 의사 국시는 병원 입사에까지 점수가 반영된다는 사실에 예비의사들의 치열함을 보았다. 


인턴(수련의)의 글이나 여의사들의 글에서, 예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명진 출판사에서  출판된 것으로, 기사생활을 접고 차병원 산부인과 의사가 된 여의사(임의: K여의사)의 에세이였다. 그 때 처음 접하고 놀라워했던 의국안의 성차별, 전공 선택의 눈치경쟁이 아직도 존재하는 줄 몰랐다. 책에 이정도로 표현한다면, 실제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일지 예상이 간다. 그 K여의사는 전공 선택의 과정에서 윗 선배가 이유 없이 후배를  내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병역문제, 인턴 수련점수 등 구체적인 이유가 서술된 점이 달라져있다. 의사가 아니라 여자로 대하는 환자를 보며 화를 삭히는 모습은, 나의 눈에도 불이 붙게 했다.


 

전공의의 글에는 좀 더 알찬 이야기가 많아진다. 끝내 숨진 아기의 아버지가 ‘시원섭섭하다’ 라고 말하는 소아과, 메디컬 드라마에서 희극으로만 표현돼서 섭하다는 산부인과, 신경과 정신의 차이를 열변하는 신경과, 진단없이 치료 먼저 들어간다는 응급의학과, 여성 요실금에 도움을 주고자하는 비뇨기과 등 많은 이야기가 중복 없이 잘 들어가 있다.



기억남는 구절이 있다면, 마취통증의학과를 선택한 의사가 친구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나는 물었다. “너처럼 공부 잘한 애가 왜 흉부외과를 선택했냐?”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내 앞에 죽지 않고 도착한 환자를 반드시 살리기 위해서 흉부외과를 선택했다.” (p.144)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도 많고 새롭게 안 것도 많지만 여기서 줄인다. 지금 당장 내 앞에 죽기직전의 사람이 나타 날리도 없지만, 그 구절을 다시 보니 머리가 섬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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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3-30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의대도 사람 사는 사회고, 나름의 낭만이 있답니다. 근데 밖에서는 의대생이 아주 죽을만큼 힘든 줄 알고, 의대생들도 자신들만 힘들게 공부한다는 생각을 하지요. 저도 뭐, 그런 줄 알았어요. 근데 다른단과대 학생들도 공부 참 열심히 하더군요. 사법고시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고시나 기타 취직시험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니 열심히 공부하는 게 꼭 의대생만의 일은 아닌 것 같더이다..... 제 생각입니다.

모과양 2005-04-22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타과 학생분들도 참 열심히 공부하시죠.
마태우스님은 여기 왜 글 안쓰셨어요? 가장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이 다음 기회에는 기초 의학을 비롯하여, 기생충학 교실도 좀 알리시고 인류평화공존을 위해 살고 있는 녀석들 사진도 좀 올려주시지요.

마태우스 2005-03-30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안쓴 게 아니라 못썼습니다 흑흑 원고청탁을 아무도 안해서요...

모과양 2005-03-30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쪽 출판사에 기꺼이 다리 놓아드리겠어요. 원고 생각나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팀 버튼 지음, 윤태영 옮김 / 새터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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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의 머리 속이 궁금하다.


팀 버튼 감독의 첫 영화를 ‘가위손(Edward Scissorhands)’으로 보았다. 조니 뎁이 맡은 가위손 캐릭터에 흠뻑 빠져있을 때, 팀 버튼은 세상에서 가장 여린 사람이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 (Nightmare Before Christmas)'의 잭이 엉뚱한 사고를 치고 다녔을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장난꾸러기였다.


‘팀 버튼 감독 풍이다’라고 하면 간단히 해결될 듯 한 그의 영화적 세계는 다음과 같다. 햇빛보다는 네온사인에 눈이 부시고, 따뜻할 때도 있지만 소름이 쏟을 듯이 축축하고 차갑다. 차가움을 지나쳐 얼려버릴 듯한 괴상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웃기다. ‘화성침공(Mars Attack)’의 올드 팝송 음파장(音波長)처럼 황당하고, '유령수업(Beetlejuice)'의 위노라 라이더처럼 깜찍하다.

  

컴컴하고 우울한 이야기가 주된 팀 버튼 영화는, 무서운 것을 싫어할 어린 나에게 이상하리 만치 애정이 갔다. 특히 ‘배트맨(Batman)’의 악인들이 아무 근거 없이 총질하는 막무가내가 아니라 나름의 상처를 간직하고 인간적 면을 일부러 숨기는 악인임을 알았을 때는 주인공보다 더 좋아해줬다.


영화관련 TV프로에서 본 바에 의하면 감독은 공포영화와 B급 SF영화를 탐닉했고, 어린 날을 우울하게 보냈다고 했다. 팀 버튼 속에 살아있는 그 우울한 소년은 책에서도 모습을 드러난다.


태생적인 실수로 태어나 부모에게도 버림 받는 이야기, 또래에게 놀림 받는 이야기는 뭔가가 걸리적 거린다. 사랑받을수록 더욱 상처받는 이야기도 나오며, 사랑받기를 갈구하지만 더욱 멀어지는 이야기도 나온다. 자신이 이해하는 방식과 세상이 이해하는 방식이 충돌할 때는 엽기적 결론이 난다. 유독(有毒)소년 로이가 오존층에 구멍 내는 이야기에만 웃었을 뿐, 이 책은 가볍게 웃어넘길 책이 못된다. 혹시 팀 버튼이 학대받고 성장한 것이 아닐까하는 우려까지 될 정도다.


그의 머리 속에는 뭐가 들어있는 지 궁금하다. 그 속을 들여다보기엔 내 머리먼저 지끈거릴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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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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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와 구라동네

 

(*쓰고보니, 줄거리가 많이 들어나는 군요. 책을 읽으실 분들은 뒤에 좋은 서평이 많으니, 제 것보다는 뒷 서평을 참고하세요.)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수상작 중에 내가 읽은 책은 은희경의 ‘새의 선물’, 박현욱 ‘동정 없는 세상’, 박민규의 ‘지구영웅 전설’이다.


나에게 ‘문학동네 작가상’이란 쓸만한 꾼을 알선해 주는 일종의 인력소개소다. 같은 인력소에도 돈 쓸만한 미장이와 돈만 쓸 미장이가 있듯, 그들의 솜씨를 실눈을 뜨고 가늠해 봐야한다. 1년에 한 번 들르는 문학동네 인력소에서 일꾼을 뽑는 기준은, 그들이 얻어온 별의 숫자였다. 4별 들고 나온 다가온 천명관씨를 선택했다. 이번에 고른 미장이는 자신이 개발한 특이한 연장을 들고 와서는, 거친 모래만으로  벽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처음 그의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춘희의 등장과 고래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약간 당황했다. 집채만한 몸뚱이를 말하는 것이라며, 섯불리 결론을 내고 빨리 ‘고래’를 읽었다. 이유는 극의 전개가 매우 빠르면서도, 웃겨서 눈을 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서히 맞물리는 서사구조에 우연을 많이 등장 시키지만, 화자가 손잡고 데려 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독특해서 우연을 끼지 않으면 데리고 올 수 없는 구조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런 우연을 좋아하게 됐다. 다음에는 어떤 특이한 인물이 등장할지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소설 속 인물 중에 제일 멋진 캐릭터는 온갖 역경을 “깡”으로 밀어부쳤던 금복이었다. 글의 마지막에 커밍아웃을 하는 바람에 경악하기도 했지만, 워낙 강력한 캐릭터였으므로 文처럼 이해의 눈길을 보낸다. 레즈비언으로 당당히 여성의 모습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할 이야기가 더 많지 않았을까 한다. 굳이 금복을 외형적으로 남자를 만들어야 했을 이유가 있나 싶다. 그래도 작가를 이해하는 점은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가 너무나 웃긴 비현실적 세계였기 때문이다. 산골은 그런대로 조용한 현실세계였다면, 어촌과 평대는 갈수록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였다. 금복이 만나는 사람들도 컬트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뿐이었다.


이름에서부터 살기와 실소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칼자국도 재미난 인물이었다. 창백하고, 날카로운 이미지가 떠오르는 칼자국의 얼굴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의 트레이드 흰 양복과 2개씩 남은 손가락은 일본 코믹만화 인물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특히 나오꼬와의 러브스토리를 들었을 때, 박장대소를 멈출 수 없었다. 삼지창에 찔려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낌없이 유머적으로 활용됐다는 점에서 칼자국은 작품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작품의 끝을 이루는 화재사건에서, 그가 라이터를 들고 등장하는 설정도 괜찮은 것 같다.


무지의 법칙에 충실했던 걱정의 미련스러움은 안타까웠다. 존 웨인을 질투하는 모습 보면서, 작가가 보통이 아니다를 외쳤다. 걱정의 단순무식 캐릭터는 뒤에 춘희를 통해 또 다시 유전되는데, 안타까운 운명의 굴레법칙이었다. 그의 딸 춘희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마녀 유바바의 아들과 비슷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금복이 거지꼴을 해 다닌 것을 과감히 삭제하고, 생뚱맞게 코끼리 마구간에서 출산하는 장면도 재미있었다. 그 페이지를 읽으면서, 코끼리 변의 쾌쾌한 냄새가 내 방까지 전해질 듯한 느낌이 들어 빨리 넘겼으나, 춘희의 기분이 안정되는 낌새가 생기면 수시로 코를 막아야 했다. 생뚱맞게 등장한 코끼리점보는 금복의 딸, 춘희와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개체로 등장한다. 점보는 코끼리다운 어눌함으로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아프리카 철학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국밥집 노파가 극장의 비상구를 걸어잠그는 대목에서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쌍둥이 자매의 서열관계 이야기를 할 때 작가의 장난스러움에 두손두발까지  몽땅 들어주었다. 

붉은 벽돌과 고래, 원시적인 삶을 아무 꺼리낌 없이 선택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혹시 작가가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관광한 적이 있지 않을까 추측을 해본다.


작가가 보통 입담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책이 나오자마자 샀을 것이다. 내게는 입담꾼 등장이 소설출판계의 질을 떠나, 무척 반가운 일이다. 웃기면 무조건 용서하는 문학적 평가기준이 따로 있는 덕에, 그에게 별 5개를 준다.  


능숙한 미장이는 큰집 일을 다 마칠 때까지 흙 한 점도 흘리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고 했다. 이 미장이는 흙을 한 점도 흘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연신 흙을 흘리면서도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벽을 메워가고 있다.  


ps. 천명관씨의 등단작품 ‘프랭크와 나’를 찾아 읽으려고 검색했더니,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의 단편집 ‘새우’가 빨리나왔으면 좋겠다. 출판사 구라동네는 단편집 ‘새우’를 빨리 출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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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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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난 하루키의 팬이다. 하루키를 처음 만나게 것은 ‘스푸트니크의 연인’이었다. 뒤에 하루키를 국내에서 유명하게 만든 ‘상실의 시대’를 읽었고, 재미없었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읽었었다. 그리고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끝으로 내가 끝까지 읽은 하루키 장편소설은 끝나버렸다.


다른 장편들도 읽어볼 만하다고 추천되는 책이었음 에도 잘 읽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하루키는 장편소설보다 단편을 더 잘 쓴다는 인상과, 난해한 장편보다 번뜩이는 상상력이 드러나는 단편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하루키의 단편소설은 다 찾아 읽지만, 장편은 읽다가 그만둔 책이 많다. 그래도 하루키의 팬이라 스스로 칭하는 만큼, 수필집은 조금씩 챙겨 읽는다.


해변의 카프카(상)만 읽은 현재로써는 쓸 내용이 별로 없다. 미스터리적인 이야기에 조금 놀랐고, 전혀 어울리지 않던 이야기가 서서히 조합되어 가는 듯하더니 하편을 읽으라며 끝내버리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몇 줄 쓴다면, 재미있었다. 특히 고양이와 이야기를 하는 나타가 이야기는 뒤에 잔인한 장면도 있었지만, 엉뚱스러우면서도 재미있었다.


해변의 카프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 도서관 쇼파에 푹 파묻혀 책을 읽는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의 모습이다. 하루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이런 책 읽는 풍경이 무척 마음에 든다. 다른 작품에서도 도서관 소재를 하루키는 자주 등장시킨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도서관 지하실에 감금되어 뇌를 빨리게 될 사내이야기였다.) 도서관 쇼파에 앉아, 어려운 고전을 손에 쥐고 우아하게 책읽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초현실주의 그림이 되어버려 실망스럽긴 하지만, 하루키표 도서관이야기에 실망해 본적은 없었다.


그래서 주인공이 왜 하필 하고 많은 장소 중에 도서관을 무대로 삼는지 추측을 한번 해 보았다.

 

주인공을 가출 전부터 도서관 다니는 사람으로 설정해 놓았다. 도서관 좋아하는 이들은 생각의 성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주인공은 가출이라는 극단적인 환경변화를 통해 성장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책을 읽으며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주인공 자신이 만들어 가고 있었다는 성장류의 무대장치가 아닐까 한다.


15세 소년의 주인공이 가출을 한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소년이 되기 위한 것과 아버지의 저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주인공 주변에 쌓인 방대한 책을 통해 주인공의 구원을 찾을 수도 있다는 의미도 될 듯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도서관의 사서인 오시마 상이 카프카에게 전하는 말 중에 책을 인용하는 말이 많다는 점도 도서관과의 뭔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가출하는 것이 책을 읽는 것 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 무척 불안정한 방법이다. 그 불안정함을 보완해 주는 것이 소극적이지만 안정적인, 책을 허락 하던 도서관 근무가 아닐까 한다.


카프카에게 가출하라고 말을 건네는 까마귀 소년이 등장한다. 그런데 난 까마귀 소년이 등장할 때 마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환자가 떠오른다. (정신과 책 내용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던, 조니 워커(다무라 고이치)는 마술적 사고를 하는 분열형 인격장애(schizotypal personality disorder) 같다. (분열형 인격장애 특징 중 관계망상, 피해의식, 의사소통의 괴이성 등이 있다)


‘해변의 카프가(하)’도 그들의 기이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해변의 카프카(상)’도 읽다가 그만둔 책에 포함된다. 그런데 다시 잡아봤다. 모두들 재미있다고 했었고, 책을 읽을 시간도 많았기 때문이다. 해변의 카프카의 다 읽고 나니, 그 동안 왜 하루키 장편을 읽다가 중도포기 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루키의 다른 장편소설도 이런 느낌이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현재 내 앞에 해야 할 과제가 있으면 책을 포기 하는 것이었다. 하루키 문장이 약간 난해한 면도 있는데다가, 소재도 비현실적인 것이 많기 때문에  머리가 더 복잡해져 버리기 전에 중요도가 낮은 일부터 제껴지듯 소설 먼저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키가 쓴 문장을 이해할 만큼의 시간확보도 필요했으므로, 나름대로 타이트했던 전 생활에서는 다시 읽을 생각도 못한 것이다. 그래서 비현실적이지만 빨리 끝나고, 쉬운 내용이었던 하루키 단편소설이 더 좋았나 보다. 바쁠 때 읽으면 기분전환도 되고, 하루키의 장난스러움에 같이 웃었던 것 같다.


지금은 시간도 많고, 할 일도 없으니 해변의 카프가(하)를 다 읽고, 그동안 못 읽었던 다른 장편도 챙겨 볼 수 있을 듯하다. 어쩌면 이 시기가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 꼭 챙겨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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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변명 대학병원 건강교실 6
서민 지음 / 단국대학교출판부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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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변명

‘닳지 않는 칫솔’, ‘대통령과 기생충’에 이어 3번째로 읽는 서민님의 책이었다. 이제 ‘소설 마태우스’만 읽으면 서민 명작 Ⅳ시리즈는 다 읽는 것이다.


펴낸 곳이 단국대학교출판부다. 출판사만 보고 이 책의 선택을 망설이지는 않길 바란다. 나 또한 출판사를 좀 따지고 책을 고르는 편인데, 이 책은 평범한 대학출판물이 아니었다. 병원로비에 비취되어 있는, 대학병원이 서비스차원에서 내놓는 심심한 대학출판물이 아니었다. 만약 당신이 단국대부속병원 로비에서 이 책을 발견한다면 당신의 경미한 통증따위는 잊게 될 것이다.


난 이 책을 살 때부터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평에서 별 5개가 꽉 채워진 책은 아주 귀하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기대를 넘어 만족이며, 만족을 넘어 작가에 대한 이해다.


‘대통령과 기생충’을 읽다보면, 기생충은 인류와의 평화공존을 원하며, 기생충학자는 기생충으로 세계인류 평화에 공헌하려는 사람임을 강조한다. 처음 그 글귀를 읽었을 때, 원래 재미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기생충의 변명’을 읽으면서 작가가 진짜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책에서는 험난한 기생충 연구여정을 재미있게 풀어나가는데, 그 속에서 느껴지는 연구의 어려움이 보통이 아니었다.


동양안충 이야기를 비롯, 지역사회 사례조사, 서민법칙에 대한 내용은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안타깝게 보이는 그의 행보가 있기에 오늘날 우리는 안전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감사해야 할 일이다.

책에는 주제에 맞게 기생충이야기가 서술되어있고, 그에 대한 흑백 참고사진이 첨부되어있다. 누가 기생충의 몸체를 보길 원하며, 기생충의 징그러운 이미지를 각인 시키길 원하겠는가 마는 저자는  묵묵히 참고사진을 챙겨놓는다. 나는 여기서 저자가 보여주는 학문에 대한 자부심과 연구에 대한 경외감을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 분야의 사람이다. 원한다면, 컬러판 사진을 첨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흑백사진을 첨부했다. 이는 비위약한 독자를 세심히 배려하기 위해서 택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기생충 충격영상을 처음 대면하여, 기생충의 재미난 이야기도 듣기도 전에 책을 덥을, 안타까운 독자도 넓게 수용할 듯하다. 책값을 맞추기위해 출판사가 단순히 흑백 일괄처리했다면, 더이상 할말은 없다. 그래도 이해를 돕기위해 사진을 찾아보던 저자의 부지런 함이 누락되는 것은 아니니까.

70년대도 아닌데 생각보다 기생충학자가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서민님의 책을 접한 동료나 선후배는 실적이 없다며 그를 타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려를 해줘야 한다. 나같이 기생충학에 대한 편견을 버릴 이가 생기는 것을 안다면, 공로상이라도 줘야한다.

이젠 기생충이 낯설지 않다. 그의 책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어 학습된 것도 있으며, 어느 순간 기생충에 관심이 생겨, 교양 생물서적에서 기생충이야기를 먼저 골라 읽는 버릇이 생긴 까닭이다.


책을 읽으면서 서민님이 기생충학자가 아니라, 전문의로 간다면 어떤 과가 어울릴지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설득력 있게 연결해 본 과>

흉부외과: 가장 중요한 메이저 과이나 그만큼 수술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그럼 마음 여린 서민님은 어쩌라고.

신경외과: 신경외과의 특성상 빠른 진단과 처치가 필요한데, 행동이 조신하고 여유 있으신 서민님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성형외과: 여자라면, 모두 미인이라고 부른다. 대상자가 요구하는 기준과 주치의가 주장하는 미적 견해차로 의료사고 낼 듯.

정형외과: 정형외과는 다른 과와는 달리 서열이 굉장히 세다. 그럼 누구에게나 골고루 나눠주시던 서민 유머를 수술 방에 불려온 실습생이나 인턴들만 누릴 수 있을 듯.

산부인과: 여성들에게 상냥하고, 아이들을 좋아할 듯하여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이긴 하나,  고된 과가 산부인과이다. 그래서 제외.

외과: (이제 일반외과라는 말은 사라진다. 아무것도 없이 외과라고 한다.) 칼 솜씨로 모든 것이 갈라지는 외과. 그러나 서민님의 칼 솜씨는 별로일 듯

소아과: 신생아와는 잘 어울릴 듯한데, 학령전후 아이들은 서민님과 어울리기를 거부할 듯  그럼 서민님이 상처받는다.

(심장 신장 내분비...)내과 : 만성 장기환자가 많은 과다. 그래서 유머에 능하고, 마음 따뜻한 전문의가 필요하다. 여기에 서민님이 필요하다.

가정의학과: 1차 진료를 하는 곳으로 서민님과 잘 어울린다. 만약 개업을 한다면 서민님의 의술과 인술에 감동할 환자가 많을 것 같다.

 

그래도 서민님은 기생충학과가 가장 어울린다. 그가 아니면, 이렇게 기생충들의 변명을 도와줄 이가 없다.


기생충학회지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임상 병리과에 속한 기생충학과, 자신이 속한 기생충학 교실이 다르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았다. 그가 그의 교실에서 좋은 논문과 재미난 기생충이야기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날 그 날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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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2-2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모르고 마내우스님 서재에서 퍼갔네요..
죄송합니다.
읽다가 모과양님 서재라고 착각을해서.....
용서빕니다.............

모과양 2005-02-23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도 마태우스님 팬? 용서해 드립죠 ㅎㅎ

2005-02-23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23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울보 2005-02-23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이제 왕펜이 되었지요..

모과양 2005-02-23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클럽 창단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