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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말하는 의사 ㅣ 부키 전문직 리포트 3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지음 / 부키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의사들은 말했다.
‘의사가 말하는 의사’(이하: 의사 편)를 일주일 전에 다 읽었다. 그런데 곧바로 책 리뷰를 쓰지 못했다. 전에 쓴 ‘간호사가 말하는 간호사’(이하: 간호사 편) 리뷰가 나름대로의 파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결된 다른 시리즈의 책도 읽어보겠노라고 계획을 세웠는데, 계획만큼 쉽게 넘어가지는 못할 것 같다.
‘간호사 편’은 혹평을 한데 반해, 이 책은 호평을 하려고 한다. 독자라면 좋은 책에는 좋은 평가를 내려줘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간호사 편은 깊이 알고 있었기에 부족한 점이 띄였다면, 의사 편은 알고 있는 범위가 얕아 부담없이 읽었다. 간호사라면 껄끄럽게 느껴질 몇 구절도 있었지만, 책 전반에 대해서는 잘 만들어 졌다. 의외로 솔직하고, 매끄럽게 쓴 글들이 기대이상으로 많다. 의사를 꿈꾸거나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는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간접 관련자나, 일반인들도 읽어볼 만하다.
서문을 쓴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의 편집위원의 글을 읽어보니, 책 전체를 잘 아우르신 것 같다. ‘의사는 사람들이었다.’는 내용이 그것인데, 대부분의 필자에게도 그 점이 발견된다.
학업에 놀란 의대생들의 글에서부터 빡빡한 인턴생활, 다양한 전문의의 다양한 이야기까지 순차적으로 씌여있다. 여기서 놀랐던 사실은, 바쁘고 힘든 위치에 있는 필자의 글은 글에서도 그 각박함을 드러난다는 점이다. 반대로, 좀 유(柔)한 환경의 의사들은 글도 부드러웠다.
의대생들의 시험 스트레스를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는 시험 도(道)가 터버린다는 내용에서 웃었다. 간호사 국가고시(이하: 국시)는 극소수의 병원을 제외하고는 합격과 불합격만 묻는다. 의사 국시는 병원 입사에까지 점수가 반영된다는 사실에 예비의사들의 치열함을 보았다.
인턴(수련의)의 글이나 여의사들의 글에서, 예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명진 출판사에서 출판된 것으로, 기사생활을 접고 차병원 산부인과 의사가 된 여의사(임의: K여의사)의 에세이였다. 그 때 처음 접하고 놀라워했던 의국안의 성차별, 전공 선택의 눈치경쟁이 아직도 존재하는 줄 몰랐다. 책에 이정도로 표현한다면, 실제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일지 예상이 간다. 그 K여의사는 전공 선택의 과정에서 윗 선배가 이유 없이 후배를 내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병역문제, 인턴 수련점수 등 구체적인 이유가 서술된 점이 달라져있다. 의사가 아니라 여자로 대하는 환자를 보며 화를 삭히는 모습은, 나의 눈에도 불이 붙게 했다.
전공의의 글에는 좀 더 알찬 이야기가 많아진다. 끝내 숨진 아기의 아버지가 ‘시원섭섭하다’ 라고 말하는 소아과, 메디컬 드라마에서 희극으로만 표현돼서 섭하다는 산부인과, 신경과 정신의 차이를 열변하는 신경과, 진단없이 치료 먼저 들어간다는 응급의학과, 여성 요실금에 도움을 주고자하는 비뇨기과 등 많은 이야기가 중복 없이 잘 들어가 있다.
기억남는 구절이 있다면, 마취통증의학과를 선택한 의사가 친구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나는 물었다. “너처럼 공부 잘한 애가 왜 흉부외과를 선택했냐?”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내 앞에 죽지 않고 도착한 환자를 반드시 살리기 위해서 흉부외과를 선택했다.” (p.144)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도 많고 새롭게 안 것도 많지만 여기서 줄인다. 지금 당장 내 앞에 죽기직전의 사람이 나타 날리도 없지만, 그 구절을 다시 보니 머리가 섬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