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미즈타니 오사무 지음, 김현희 옮김 / 에이지21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픈 아이와 아픈 선생


미즈타니 오사무의 인터뷰 화면을 봤다. 그의 첫인상은 상당히 강했다. 자신은 암이 걸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며, 남은 시간은 더욱 더 아이들에게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을 섞은 고기로 비유한 이야기에서 그의 진지함은 자못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짙은 쌍꺼풀진 두 눈과 거칠게 정돈된 수염은 그를 초췌히 보이게 했다. 이제 한국도 얼마 남지 않았노라고, 이런 책이 않 팔리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인터뷰를 마쳤다.


미안하지만 일본에서도 베스트 셀러였던 이 책은, 한국에서도 베스트 셀러였다. 


사실 이런 류의 책은 읽기가 싫다. 남의 아픈 과거사를 듣는 이야기는 참으로 힘들다. 더구나 반사회적으로 비춰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더 슬프고, 무섭다.

소설이 아닌 실제 에세이에서 성폭행 또는 아동학대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뜨끔 할 수밖에 없다. 우연히 잡은 유미리의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가 그랬고, 이훈구의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는 숨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었다. 그나마 희망적이였던 오히라 미쓰요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도 껄끄럽긴 마찬가지였다.


불량 청소년 뒤에는 불량 부모가 항상 따라 붙는다. 사실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그렇다고 부모가 잘못했냐면 부모도 어찌보면 피해자다. 학교서 배운 애착장애가 생각났다. 반사회적 인격도 생각나고, 약물 중독도 다시 생각나게 했다. 이 책의 처음 부분에 약물중독에 대한 저자의 초창기 이야기가 나온다. 그 장의 중간에서 난 저자의 실수를 예견했다. 어쩌면 저자의 실수는 아니다. 약물에 대한 이야기는 일반인들에겐 관심도 가져선 안되는 금기 아닌가. 나도 정신간호 배우면서 처음 알았었다.


“마즈타니 선생, 그를 죽인 건 당신이에요. 본드와 각성제는 그렇게 간단히 끊을 수 있는데 아닙니다. 그건 의존증이라는 병입니다. 병은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은 그 병을 ‘사랑’의 힘으로 고치려고 했소. 하지만 병을 ‘사랑’이나 ‘벌’의 힘으로 고칠 수 있습니까? 고열로 괴로워하는 학생에게, 애정을 담아 힘껏 껴안아준다고 열이 내려갑니까? ‘너의 근성이 해이해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야단을 친다고 열이 내려갑니까? 병을 고치는 건 우리 의사들의 일이랍니다. 사랑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p. 66 ~ 67

 

 결국 이 사건은 저자가 약물과 싸움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오토바이 폭주족 수렁에 빠진 아이, 본드에 손댄 아이, 사창가를 전전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천천히 나온다.


이 책, 일단 쉽다. 사진이 많고 내용전개도 자세하기보단 간소하다. 그렇다고 저자의 수고가 옅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자세히 쓰였으면 했다. 그가 힘써왔던 자세한 과정을 듣고 싶어서 산 것인데, 조금 아쉽다. 어쩌면 이점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쉽게 잡히게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이런 책 읽기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꾸역꾸역 읽은 건 다 챙겨본 내가, 너무 앞섰던 것 같다. 내 주위엔 책에 거론된 만큼 심각한 아이들이 다행히도 없었다. 기껏해야 공부를 못하는 수준이지, 정학 맞은 친구도 없었다. 중학교 때 가출이란 걸 하는 같은 반 아웃사이더들에게 놀란 것이 전부다. 그 때 그들을 이해 못하고 경멸 찬 시선을 보냈던 어쭙잖은 내 모습이 생각이 난다.



ps. 책에 1/3이 흑백 사진이다. 그 사진 중에 진짜 뜨악했던 사진 한 장을 올린다. 손을 잘 보시라, 이유는 이 책을 읽으신 분 만이 발견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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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5-21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이 왜왜, 왜요...(이것이 궁금해서라도...책을 사봐얄까요^^?

모과양 2005-05-2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쉽고 괜찮은 책이니, 한번 읽어보세요. ^^ 손에 대한 발견은 제 입으론 말못해요.
 
나는 공부를 못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
야마다 에이미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리뷰를 못해 (부제: 건방리뷰)


지금 쓰는 리뷰는 리뷰랄 것도 없다. 그냥 이 책 읽었다 정도의 기록이다. 나의 리뷰에 실망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이런 식으로 써보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어 봤던 분들은 이런 건방리뷰에 공감하실 것 같다. 도키다 식으로 말해보고 싶어졌다.


“도키다 히데미입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는 공부를 못해요.”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인기가 좋을까하고 중얼거리며 머리를 저었다.

“거기다 글씨도 엉망이야.”

점점, 모두들 요절복통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내가 서기를 해야 하는 거지.”

“아무도 하고 싶지 않으니까”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틀렸어. 나는 인기가 있기 때문이야.”(p.12)


고교생으로 상당히 쿨 한 도키다의 이야기다. 주변인물들도 상당히 쿨하다. 도키다를 보면서 자유로운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느낀다. 남자 고교생이 주인공인 성장문학 중 ‘나는 공부를 못해’가 조금 밑 순위지만 재미는 있다.

(고교생들 기억나는 것만 열거 : 박현욱의 “동정없는 세상”, 가네시로의 “레벌루션 No.3", 이순원의 “19세” 등)


나는 그렇게 솔직하게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녀석은 거침없다. 특히 선생님께 친구처럼 다가가는 점도 신선하다. 그와는 반대로 서로에게 맞지 않는 선생님을 만나도 언제나 굳굳하다. 행동으로 옮기든 생각만하든 자신에게 그렇게 솔직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무척 부럽다.


여기서 리뷰는 끝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도키다 식으로 말해보련다. 나의 허접리뷰야 잘 읽어 주지도 않지만, 누가 딴지를 걸던말던 쓰고 싶은 말이 생겼다.


내 리뷰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별점도 짜다. 웃기면 5별 주는 특별전형도 있지만, 책값에 민감한 고로 제값 못하는 것에는 얄짤없다. 내 리뷰에 자부심을 가져보자며 굵직하게 써볼  일은 극히 예외적인 때뿐일 것이다. 혼자 자부심을 가볍게 세워볼 때가 있긴 하다. 그 때는 질이야 어떻든 간에, 올리면 올라가는 마이리뷰 00편이라고 하는 그 숫자뿐이다. (이웃 분들에 비교도 안 될 적은 숫자긴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올리는 내가 기특하다.)


내 리뷰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나도 읽었다’는 증거용 기록이자,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review일 뿐이다. 무슨 서평대회를 위해서 섰던 것도 아니고, 좋은 서평 써달라고 공짜  책 받고 쓴 적도 없다. 순전히 피 같은 내 돈 내고 사서 내가 느낀대로, 연장된 생각을 쓴 것 뿐이다. 물론 내 리뷰로 구매의욕이 달라질 순 있겠지만, 그건 그 책을 선택할 예비 독자의 몫이다. 같은 책도 누구에겐 재미있었지만, 누구에겐 재미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는 그 순간, 그 사람이 스스로 판단할 문제지 평점이나 생각한 점이 다르다고 하여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의갖춘 비판이나, 자신은 이런 점을 느꼈었다고 달아준 덧글은 감사하다. 내가 문제 삼는 것은 조금 더 신중한 독자분들이 아니라, 서평에 집착하는 관계자 분들이다. (특히. 알바리뷰)


우리는, 책장사로 이윤을 보는 사람도 작가에게 앙심을 품은 사람들도 아니다. 나야 책값-기대 비례 원칙으로 흑심과 앙심을 동시에 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서재인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그들의 리뷰를 써주기 위해 책 읽나?


다른 서재인들의 도움으로 사봤으니, 미약한 리뷰지만 다른 분들께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하고 쓰시는 분들이 더 많다.


내가 올린 리뷰가 일반 독자가 아닌 집필 저자나 출판 관계자 분들께도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 탈고의 고통을 느끼고 내신 것인데, 섭한 리뷰를 써주니 속도 상하고 변명도 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책 출판을 위해 동분서주했을 모습을 떠올리며 답 메일을 보내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예비독자든, 출판관계자든, 책을 다 읽은 이웃이건 누군가를 위해 사전 검열한다는 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내 불량리뷰에 이견(異見)이 많다는 것은 알지만, 내가 리뷰를 쓰기 시작했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나를 통해 나쁜 책을 또는 좋은 책을 택했다고 인사를 해주면 맞 인사는 해드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써달라, 저런 게 좋다, 이런건 안된다는 식의 요구내지 기대는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획일된 평균적 리뷰는 많아봤자 클론(clone)이라, 클릭(click)하기만 귀찮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서로 의견은 달라도 인정 할 줄 아는 유연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ps. 이렇게 막가파 식 리뷰를 대담히 올리는 것은 이 책 저자가 일어를 쓰는지라 나의 리뷰를 읽을 가능성은 0.01%이고, 이 책을 번역한 양억관씨는 이 작품을 굉장히 오래 전에 쓰셨다.(번역 일을 처음 맡았을 때 쓰신 책이 바로 ‘나는 공부를 못해’라고 한다.) 출판사 작가정신이야 품격 좀 있어주시니, 넓은 아량으로 나의 리뷰엔 토달지 않을 것이다.


ps 2. 00님이 페이퍼에 쓰신 리뷰를 보니까 공감이 팍 가는 것이 울컥해서 쓴다. (저는 님의 리뷰 정말 좋아합니다.) 서재에 나타나면 안되는 몸인지라 이 리뷰만 쓰고 조용히 공부하러 간다.




00님 죄송합니다. 서재에 글을 남겨드려야 하는데, 리뷰 2편을 동시에 섰더니 머리가 탈진상태로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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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4-23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옛날에 이런 제목으로 리뷰 쓴 적이 있었죠... 많은 격려가 쏟아지더군요

마태우스 2005-04-23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이후의 글들이 참 마음에 와닿네요. 그래서 추천.

2005-04-23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과양 2005-04-23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이번 제 리뷰, 어떤 님께는 껄끄럽게  어떤 님께는 속 시원히 읽히겠죠.  이건 제 의견을 말해본 것 뿐이고, 상대에게 같이 동조해달라는 뜻은 없습니다. 서평 올려 주시는 님들마다 그에 대한 목적이나 생각은 다 다르니까 그대로 인정할랍니다. 저는 아주 유연합니다. ㅎㅎ


속삭이신 님. 그건 특별전형이었어요. 알고 지낸다는 것은 상호적인데, 리뷰라는 것은 평가를 빌어 일방적이니  상충되는 면이 있네요.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직접 들으니 지인의 비판도 쉬운게 아니군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치카와 다쿠지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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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읽고


이 소설이 갓 출간되었을 때, 영화도 곧 개봉된다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영화보다는 책으로 보려고 맘먹고 있었기에 영화 예고편도 되도록 보지 않으려했다. 그런데 TV방송은 날 가만히 두지 않고, 기여이 영상을 보여줬다. 비 오는 계절에 죽었던 아내가 돌아오고, 애닮은 동거를 하게 된다는 것을 근사하게 광고했었다. 수채화 같은 영상이 예고로 전개되었다. 그래서 영화도 잘 만들어졌겠거니 했다. 그런데 오늘 원작을 다 읽고 보니, 영화도 덜 만들어 졌을 듯하다.


영화에서는 그럴듯한 반전비밀이 숨어있는 것처럼 말하던데 책에선 추론해결보다, 지문이해가 얻는 점이 많다. 인과관계에 너무 치우치지 않는다면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광고로 기대치만 높이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약간의 불안장애를 가진 남편 닷쿤과 6살 아들 유지, 그리고 아카이브 별(사후세계)에서 돌아온 엄마 미오가 같이 생활하고, 추억하고, 사랑한다. 아내가 떠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닷쿤과 유지도 귀엽고, 다시 사랑의 설렘을 경험하는 닷쿤의 모습도 좋다. 미오의 기억회복을 위해 중간중간 회상하는 장면이 많다.


미오와 다쿠미(닷쿤)는 고교 때부터 서로를 알았지만 아주 늦된 연예를 한다. 서로의 감정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삐쩍마른 몸에 짧은 머리, 안경으로 가려졌던 여고생 미오와 적잖은 괴짜 고교생 다쿠미는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런데 긴 머리와 콘텍트 렌즈로 바뀐 미오를 보는 순간 다쿠미가 하는 말이 있다. 이 내용에서 두 문장이 와 닿았다.

너는 어딘지 몹시 여자다웠다. 커피스푼의 요정이 아니라 따스한 피부와 좋은 향기를 풍기는 한창 나이의 여성이었다.

나는 남자애들에게는 전혀 관심 없어. 그러니까 나를 가만 놔둬!

그런 얘기는 한마디로 내비치지 않았다.

나를 봐줘. 그리고 좋아해줘.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타고난 성품이 몹시 단순해서 어떤 일이나 눈앞에 보이는 대로만 이해하는 사람인지라 네가 내뿜는 사인을 있는 그대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잘 알았어. 너를 좋아할게 (p.129)


마지막시간에, 미오와 닷쿤이 서로에게 하는 질문과 대답들도 남는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어.”(p.304)


“나는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었어요?”

“행복하지. 벌써 충분할 만큼. 당신이 나 같은 사람과 결혼해준 것만으로도 벌써 넘칠 만큼 행복했어.” (p.305)


그리고 작가가 하는 말이 있다.

‘흡혈귀가 아니라 흡루귀(吸淚鬼)의 소설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 별것 아닌 소설도 잘 훌쩍이는 눈물 많은 사람인데, 지금 아주 건조하다. 책의 배경은 비가 촉촉이 내리는 연두 숲의 모습인데, 현실의 배경은 황사가 까끌히 몰아치는 4월이기 때문일까? (책 읽고 울사람은 없을 듯하다. )


미오는 비의 계절이 끝나면 아카이브 별로 돌아간다고 한다. 나도 짧은 리뷰를 끝내고 나면 고시 행성으로 돌아가야한다.


ps. 일본에서도 인터넷 소설이 뜨고 있는 줄 몰랐다. 작가가 인터넷 소설로 연재하던 것이 이렇게 뜬 거란다. 그래서 그런지, 문장이 굉장히 짤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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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타기 문원 세계 청소년 화제작 6
이시이 신지 지음, 서혜영 옮김, 문병성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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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이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그네타기〉는, 처음부분부터 주인공 남동생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등장한다. ‘삐닥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부분을 읽자마자 번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힙합그룹 에픽하이(Epik High)의 타블로(Tablo 본명: 이선웅)이다. 타블로가 스탠포드대학 영문학 석사 출신인 것은 TV방송을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다른 MC(mic checker 즉 랩퍼)들과는 달리, 공중파TV에 자주 등장했다. 마니아층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었던 힙합을 논리적으로 말했고, 문학적 역량을 빌어 와 닿는 가사를 썼으며, 독특한 입담으로 방송가를 누볐다. 


그가 음악을 위해 한국행을 택했을 때 영문학 교수들이 직접 말렸다고 한다. 타블로의 문학적 재능이 부러울 따름이다.

 

타블로는 어린시절부터 문학‘끼’를 보인 아이였다고 한다. 학교에서 그림일기를 쓰라고 하면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도깨비들이 우리 가족을 납치했다’는 식으로 일기를 썼다고 한다. 장난도 심한 편이여서, 부모님께는 거짓말하는 말썽꾸러기로만 보였었다고 한다. 훗날, 끼를 엿보신 선생님을 통해 문학적 재능을 꾸준히 키워왔음은 쉽게 짐작이 간다. 몽상가적인 기절, 장난꾸러기, 왕성한 지적 호기심, 뛰어난 작문실력 등은 지금의 타블로에게도 찾아 볼 수 있다.


주인공 남동생에게서 어린 타블로가 끄적거리던, 문학도의 면모가 오버랩 되었다는 말을 꺼내기 위해 긴 이야기를 했다. 타블로가 밝다면, 주인공 동생은 어둡다는 것이 다르다.

 

책 속의 서술자는 천재남동생을 둔 누나이다. 동생의 창작노트를 우연히 찾아 다시 읽어보면서, 옛 기억을 더듬어 가는 것이 전개 부분이다. 그네타기를 좋아하는 동생은 나무 그네위에서 기묘한 이야기들을 써내려간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어린아이의 그 것이라 하기에는 상당히 독특하다. 뒤에 더 큰 의미를 알 수 있는 그네이야기는 애처럽고, 동물 습성에 대한 이야기는 좀 무섭다. 특히 코끼리 롤링이라는 내용에서 ‘윽’소리가 나왔다. 


동생은 그네를 통해, 목소리를 잃는 사고를 당한다. 또 그네를 통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말한다. 그리고 남매는 그네에 나란히 앉아, 편하게 들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동생의 세계를 초월한 듯한 시선, 동생을 이해가는 누나의 시선이 계속 교차한다. 동생의 표현, 누나의 이해가 조금씩 맞물려 간다.


내게 이런 동생이 있다면, 참 난감할 것 같다.  


작가가 일본인이라, 줄곧 일본인으로 상상을 해왔었는데, 뒤에 가서 백인으로 바꿔버렸다. 책 내용도 혼란이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못 따라 잡은 것 같아 혼란이다. 


반전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는 조부모에 대한 이야기와 엽서이야기를 포함하여, 이〈그네타기〉혼란스러움을 많이 남긴다. 




ps. 타블로가 중학교 2학년 때, 문예창작반 친구에게 15만원을 받고 이야기를 써줬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것이 취미인 꼬마가 있었다...... 가정에 문제가 많아 늘 외톨이인 그 아이는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는데, 신기한 건 그 아이가 그린 그림이 장면이 실제 현실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결국엔 가정을 파멸시키고.....’란 내용이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친구가 그 이야기로 스토리 대회에서 1등까지 해버린 것이다. 그 일로 친구는 하루아침에 달려져 버렸고, 주위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

 

 그 때 글이 가진 위력을 실감한 타블로. “지어낸 이야기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어!”

타블로는 억울한 마음 한 켠에 이야기란 것이 갖고 있는 힘을 알게 됐다고 한다.  


ps2. 타블로에 관한 이야기는 성기선의〈공부의 왕도〉이선웅 편에서 참고했다.


ps3. 코끼리 롤링의 실제 여부가 궁금해, 지식검색을 해봤다. 나와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딱 한 분 있었다. 그래서 책 덮고 처음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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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툰 5 - 아빠 사랑해요 비빔툰 (문학과지성사) 9
홍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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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우의 ‘비빔툰’을 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 구독한 한겨레 신문 때문이었다. 그런데  1년 만에 구독해지를 해버렸다. 따라서 다운이가 기저귀 갈자마자 굳바이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남아있던 기억은 당시 같은 계열의 만화였던 이광수의 ‘광수생각’, 이우일의 ‘도날드 덕’보다 더 편했다는 정도일 뿐 크게 남지는 않았다. 광수생각은 약간 극단으로 치닫는 면이 있었고, 도날드 덕은 주변 책의 일러스트로 등장하는 편이 더 나았다. 비빔툰은 그보다는 말랑말랑하고 따스해 보인 것이 다였다.


비빔툰 5편을 챙겨볼 정도로, 오랫동안 눈여겨 본 계기는 이소라의 라디오 때문이었다. 당시 고정 개스트로 한창완(세종대 에니메이션학과 교수)씨가 나오셨는데, 그의 비빔툰 평론이 마음에 짠하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인데, 한창완씨의 목소리와 설명이 돋보인 방송이었다.


온갖 육아법을 섭렵한 활미는 다운이를 최신 육아법에 따라 조심스럽게 대한다.

꿀이나 바나나 이유식 등 엄선된 이유식으로만 챙겨준다. 병균이 옮을까봐 허락 없이 아기 만지는 사람도 경계한다.


어느 날, 불가피한 일이 있어 친정집에 다운이를 맞기고 외출을 나간다. 돌아온 활미는 다운이 입주위에 붙은 고춧가루를 보고 경악을 한다.


“누가 애기한데 고춧가루든 음식을 먹였어!”

“.......”

“아기들은 이런 거 먹지 못한단 말이야. 아직 약한 아기장에 누가 고춧가루 음식을 먹였어?”

“......”


화를 삭히던 활미 뒤로, 고개숙인 친정엄마가 클로즈업 된다.


‘다운이가 너무 귀여워서...... 그래서...... 뽀뽀해주고 싶었어.’


물론 이 내용은 비빔툰의 앞권에 실린 내용이다. 한창완씨의 그 만화평론으로 ‘비빔툰’의 진가를 알게 되었고, 그 후 쭉 챙겨봤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비빔툰 5편을 보고 느낀 것은, 표지에 보이는 ‘아빠 사랑해요’에 대한 연장생각이다. ‘아빠 사랑해요’라고 쓴 사람은 유치원에 들어간 다운이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글 쓴 다운이보다 그 옆에서 구경하는 딸 겨운이다. ‘아빠가 사랑해요’가 보인다. 딸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이랄까, 어른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딸의 행동특성이 잘 묘사됐다. 둘 다 똑같은 외모에 머리모양만 바꿨을 뿐인데, 겨운이가 더 귀엽게 그려졌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인 활미가 많은 시간을 겨운이와 지내다보니, 아빠가 보는 딸보다는 엄마와 뒹구는 딸이 더 많지만 정보통으로 투영된 작가가 아빠 쪽이다 보니 달라 보인다. 

 

겨운이 같은 딸이라면 참 이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나의 초보엄마 생활도 공상하게 한다. 그러나 큰 딸을 애처롭게 보고 계신 노련한 우리 어머니  먼저 이해 해드려야 할 것 같다.

 

다운이도 개구쟁이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아들로 나온다. 그런데 오빠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해서 그런지 겨운이가 좀 더 관심받는 중심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다운이가 겨운이를 질투하는 모습은 잘 나오지 않는다. 딱 한편 회귀(p.153)라는 제목에 나오긴 하지만, 활미가 다운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아 부정적이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런 센스있는 부모를 지향하는 고로, 정보통과 생활미가 보여준 부모상이 좋게보인다. 평범한 가족 구성원이긴 하지만 가족 범주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내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비빔툰이 더이상 큰 영향을 줄 것같지는 않지만 엄마의 역, 형제의 필요성, 딸의 가치 등을 다시 보게 했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주인공 정보통과 생활미, 아들 다운이, 딸 겨운이가 만들어가는 에피소드를 보면서 작가는 모범아빠일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아동심리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일 듯하다. 아이들의 시각을 참 잘 포착하는 것 같다. 그가 그린 그림에, 언제나 공감을 가진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다 읽고 나면 더 읽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 시사적인 만화보다 이런 만화를 더 좋아하는 면도 있지만, 계속 비빔툰을 연재해줬으면 좋겠다.


겨운이가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있을 쯤이면 그 가족들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나는 그 때쯤이면 둘 중 하나다. 새끼들에 시달려 문화생활과는 멀어지거나, 노처녀끼리 놀다가 피폐한 문화생활을 하거나.

 

ps. 결론은 '겨운이가 부럽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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