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자살토끼
앤디 라일리 지음 / 거름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자살토끼의 연구정신


영화의 한 장면도 나오고, 고대 건물의 모습도 나오고, 토끼의 발명품과 일반 전자제품도 나온다. 그런데 하나같이 자살을 위한 도구로 나온다. 익히도록, 뚫리도록, 눌리도록, 찔리도록, 잘리도록, 폭발하도록 자신을 도와줄 자살도구가 넘친다. 자살토끼의 위트도 정도가 넘친다.


연두색, 흰색, 검은색이 그림책에 표현된 컬러의 전부다. 흰색의 자살토끼가 신체전면을 드려내는 경우도 있지만, 몸을 숨겨 귀만 내놓는 모습은 연두색 바탕에 더 튄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앙증맞은지,  귀엽기까지 하다. 대체적으로 쉽게 읽히는데, 조금 머리를 굴려야 읽혀지는 내용도 있다. 어려운 자살방법을 이해한 쾌감은 다시 찾은 생의 환희에 버금간다.


섬뜩하게 죽은 토끼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사과가 두 쪽 나듯 깨끗이 잘리거나, 형체가 재로 변해 별 부담이 없다. 그런데 자살시체가 되어 응급실로 실려 올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강한 여운이 남는다. 


책을 덮으면서 의문점이 하나가 생겼다. ‘왜 독약은 마시지 않을 까?’하는 점이다. 현재 전문응급의학센터는 4가지의 분야로 운영된다. 외상 팀, 심혈관 팀, 화상 팀, 독극물 팀이 그것이다. 이 것으로 독극물을 마셔, 강을 넘는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삼켜 버리는 독극물도 책 속에서는 다르게 이용한다. 자살토끼가 물 조리개에 염산을 붓고, 자신은 꽃 변장을 한 채 기다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이는, 물 조리개를 꽃 쪽으로 들려 한다.


염산을 맞으면 화상 입는다. 화상도 생명에 위협적이지만, 직접 마시는 것보다 미션성공 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 자살토끼는 쉬운 방법을 두고도 어렵게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것 외에도, 자살토끼는 상식에서 한참을 벗어난 방법으로만 자살을 시도한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하는 것이 보다는, 무언가에 의해서 자살이 돌아오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더구나 체력적 힘도 들어야하고, 무서운 계획도 기상천외하게 짜야 된다. 자살에 상식과 표준을 따지는 것이 웃기지만, 자살토끼의 이런 비상식적 ‘자살’이 ‘살자’의 상식이 아닌가 싶다.


ps. 앤디 라일리 작가는 자살은 못할 것 같다. 천장에 줄을 메면, 또 돌아온 자살토끼가 작가 대신 몸을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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