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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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한 달 단위로 나오는 스케줄에, 몇몇의 약속을 잡고 나면 나머지 날은 모두 책 보는 시간에 할애한다. 하루라도 책을 보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까지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책 볼 시간을 못가지면 짜증이 난다. 한 달 중 며칠은 부스스한 머리로 나온 배를 벅벅 긁으며 책상에 앉아줘야 하는 거다. 덕분에 만남의 즐거움보다 책 읽을 때의 즐거움이 크면 난감하다. 누굴 만나다가 집에서 읽던 책이 생각나서 피곤한 척 한 적도 있다.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을 땐, 나이트 근무 때문에 사람만나는 약속이 없었다. 거짓말 할 필요가  없어 다행이었다.

이 책이 왜 재미있을까, 뭣 때문에 날 웃게 만든 건지 생각해봤다. 첫째로 무거운 주제가 없었고, 둘째론 말도 안 되는 뻥이었지만 그렇게 맹랑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도 혼자 뒤틀어보고 상상하는 때가 많다. 혼자 낄낄대던 걸 같이 낄낄댈 수 있게 쓰는 능력이 부럽다. 작가란 그런 게 아닐 까. 가소로이 보이는 공상도 그는 쓰고, 나는 쓰지 않는 거.

진지하고 의미 있는 대답을 요구할 때 농담으로 응수 하는 능청스러움도 빛난다. 그의 의뭉스러움에 태클도 걸어 보고 싶지만, 내가 어수룩해서 잘 모르겠다. 어라, 진짜 모르겠다. 이게 어수룩한 건지 어수룩 하는 척 거짓말 하는 것인지. 소설가야 거짓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니 알 수 없을 것 같다. 이럴 때, 독자는 되바라지고 싶다.

<무방향 버스>,<유리 방패>에는 음악이야기가 없지만 <악기들의 도서관>,<자동피아노>,<매뉴얼 제너레이션>,<엇박자 D>엔 음악에 대한 조예와 철학을 조금씩 보여준다. 그래서 [김중혁의 뮤직비디오 낭독회]가 더 기대된다. 어떤 모습을 보여 주실지, 6월 11일을 곱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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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 소설가 백영옥의 유행산책 talk, style, love
백영옥 지음 / 예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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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같잖은 리뷰나 올리는 철없는 독자지만, 꼴에 한국문학을 아껴 철마다 문학 수상작들을 챙겨본다. 덕분에 발칙한 작가 한 분을 알게 됐다. 올해 세계 문학상 수상작<스타일>을 본 것이다. 꽃띠문학이네, 수상작 치고는 가볍네 어쩌네 하지만 한 번더 믿어 주기로 했다. <스타일>의 ‘글 스타일’에서 고상과 천박을 넘나드는 그 유쾌함을 봤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처럼만 써준다면 출간되는 족족 다 볼 듯하다.

일간지에 연재했던 걸 엮은 책이라 출퇴근 지하철에서 읽기 편할 거다. 분량이 많지 않은 데다, 짧은 시간에 감성과 이성의 유락(愉樂)을 얻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어디선가 그녀가 <담다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신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를 읽은 터라, 나는 그녀의 산책이 어쩐지 방황처럼 보였다. (중략) 노래에 열광하며 앙코르를 외치는 팬들을 향해 그녀는 갑자기 웃으며 V자를 그려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담다디>를 부르는게  아닌가. 그것도 그냥 부르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겅중겅중’, 장난스런 개다리 춤까지 춰가면서 말이다. (중략) 과거와 우아하게 화해하는 법에 대해 최초로 가르쳐준 고마운 선배. (p.203~204)

좀 다른 이야기인데 백영옥씨가 골드 미스인 줄 알았다. 인물 사진도 그렇고, 글 자체가 30대 독신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 인터뷰 기사에서 남편이 <스타일>의 초고를 읽고 재미있어 했다는 내용을 봤다. 결혼 했다고 해서 말괄량이 기질이 죽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안도감이 든다. 오른쪽엔 헬륨풍선, 왼쪽엔 남편의 팔짱을 낀 채 산책을 할 것 같다. 물론 구두는 마놀로 브라닉. 또각또각 구둣발이 경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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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6-0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마놀로 블라닉을 신고 걷는 건 상상도 못하겠어요. >.<

모과양 2008-06-0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저.. 마놀로 블라닉은 인터넷으로 밖에 구경 못했어요 -.,-a
 
으악! 늦었다! 가치만세 1
고여주 외 지음, 김중석 그림 / 휴이넘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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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는 될 수 있어도, 이모는 못된다. 동생이 남자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다. 여동생이나 언니의 아기라면 맘껏 안아볼 수 있을 텐데, 올케에게 난 ‘시누이’가 아닌가. 조카에게 부여받을 그 이름, ‘고모’의 환상 속엔 동화책이 놓여있다.

주인공 나기찬은 늘 지각을 한다. 지각을 피하기 위해 기찬은 ‘뭐든지 파는 가게’에서 요상한 시계를 사온다. 자명종의 이름을 단 그것들은 ‘한다면 한다’는 식으로 기찬을 깨우고, 기찬은 ‘할테면 해봐’란 식으로 잔다. 결국 우스꽝스런 일들을 치르고서야 깨닫는다. 스스로 지각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거다.

‘내일은 정말 정말 일찍 일어나야지. 꽃! 일찍 일어날 거야.’
기찬이는 집에 가는 길에도,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굳게 다짐했어요.

기특한 것.
이 책에 말하고자 하는 건 ‘마음의 힘 중요하다’란 거다. 맞는 말.
이래서 동화책은 고모의 책장에 꽂힐 수 밖 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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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발견 - 어른들의 속마음을 파고드는 심리누드클럽
윤용인 지음, 양시호 그림 / 글항아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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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취미는 독서다. 소개팅이나 낯선 자리에서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던진 그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어 버리는 악취미. 그 독서를 하는 이가 나다. 취미에 추미(醜美)는 없지만, 내 대답을 듣고 안색이 달라지면 같이 얼굴색이 변한다. TV보다 책을 더 좋아할 뿐인데, 초야에 묻혀 사는 ‘도인’ 또는 읽는 척하는 ‘재수인’으로 보는 건 뭐란 말인가.

“책만 보는 사람 아니거든요.”, “척 할 만큼의 어려운 책은 못 읽거든요.”는 변이 될 수 없다. 대답 해줄수록 이상해지니 그저 웃었고, 웃었더니 웃기는 여자가 돼버렸다. 처음엔 “그건 아니요.”라며 발악을 했는데, 이젠 웃는다. 편해진 거다. 책 본다고 인상 써야하는 것도 아니고, 읽을수록 유연해지고 가벼워지는 걸 어쩌랴. “모든 말이 맞는 말이 구려.”라며 껄껄거린 퇴계 옹이 돼버렸다.

특히나 <어른의 발견>같은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강도가 더하다. 모든 게 흐뭇하다. 말도 안 되는 주장에도 맞장구 쳐지고, 반대되는 생각도 수긍케 된다. 진정을 떠나, 개성 있고 입심 센 글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어른의 발견>은 내 입맛에 딱 이었다. 책 내용은, 점잖아야할 ‘어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점잖지가 않다. 통념에 대한 조롱과 이죽거림이 반이다. 책은 다섯 파트로 나뉜다. 결혼, 부부, 아이, 중년, 생활로 나뉘는데 모두 재미있다.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길 내용은 없고, 생각할 거리도 잔뜩 끌고 온다. 아쉬운 점은 일에 대한 파트가 없다는 거다. 여행사 사장이라도 나름의 애환이 있을 텐데, 아쉽다. 수다 떨기 좋아하니, 따로 묶어 책 썼을 거란 생각도 든다.

부제가 ‘어른들의 속마음을 파고드는 심리 누드 클럽’이다. 하지만 어른들보다는 수줍은 타는 불량소년과 장난기 넘치는 어린 사내놈이 더 많이 보인다. 심리학책으로 전혀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이 책을 읽기 전에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을 봤더니 더 같잖다. 같은 서른, 마흔인데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처음부터 공고하긴 했다. 이 책의 목적이 심리를 쉽고 솔직하게 말하는 거라고. 간간히, 심리학적인 내용이 나오긴 하나 그 내용에 슬쩍 웃으려면 심리학책 좀 봐야 할 듯하다. 심리 누드라니. 오! 윤용인, 이 사람 익살꾼이다. 

부모에 의해 자라온 십대를 지나고, 공부와 이데올로기, 연애와 사회 문제로 고민한 이십대에 이어 밥벌이의 삼십대를 거쳐서 우리는 마흔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을 중심에 두고 고민해본 시기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마흔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는 것도 자신을 제대로 찾기 전에 늙음이라는 괴물이 찾아왔다는 것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가 심리누드클럽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마흔이 넘으면 심리학 책을 뒤적일 필요가 있다. 어려운 책 말고 쉬운 책으로, 무의식과 억압과 분노 등을 읽다보면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이 보일 것이다. (p.164)

나잇살이 화두인 책이든 뭐든, 서른 이상의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내가 참 짧다는 생각이 든다. 간간히 오래 살 것을 생각지 못하고, 하루살이같이 사는걸 보면 내가 봐도 한심타. 스물하고도 여섯, 난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을 줄 몰랐다.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을 줄도 몰랐다. 그래서 이 책이 맘에 든다. 삶의 과정에서 겪게 될 무거운 주제들이지만 무거움을 덜어주는 발상전환이 고맙다. ‘어른도 별거 아니 구나.’부터 ‘나도 이런 능청을 떨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후려치고, 돌려치고, 농락하는 딴지의 중년. 이런 책을 발견하려고 심리 책을 읽어왔단 생각이 든다. 갑자기 내 악취미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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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심리치유 카페 서른 살 심리학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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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순례를 하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을 봤다. 잠시 서서 책장을 넘겨보다가 제자리에 꽂아 놓았다. 사 볼만 하다는 건 알겠는데, 이런 류를 그 동안 너무 많이 읽어온게 아닌가 싶었다. 덕분에 작가의 필력과 경험의 강도를 비교하는 재미도 알게 됐으나, 딱 봐도 뭘 말할지 알것 같아 심드렁했다.

 “당신이 옳아. 당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

힘들고, 지칠 때 마다 심리학책을 찾았더랬다. 어느 순간, 친구보다 더 많은 위로와 격려를 해줬고 술잔 따위는 필요치 않게 해주었다. 그래서 심리학책을 더 많이 주워 삼켰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프로이트와 융을 몰라서 읽는 게 아니었다. 책을 읽을 때 마다 ‘왠 년’이 나타났다. 나랑 닮긴 했지만 거부하고 싶은, 낮선 처자가 눈물과 콧물을 범벅한 채 나타났다. 그 처자와 함께, 껴안고 울어다 보니 하이 파이브를 하며 책 구절을 따로 옮기는 기행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다. 내가 다 아는 내용에 한 번 더 손을 뻗혔던 것은 그래서다. 제목에서 말했던 것처럼 ‘서른 살’에 좀 더 초점을 뒀을 것을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다. 울기 만하던 어린 처자보다 서른을 넘긴 처자의 깊은 속내나 미래 따위를 보고 싶었다. 

서른 살이 넘으면 인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 서서히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간에 대한 인식은 더 절실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할 수 있게 한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은 진심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어떻게 이 짧은 인생을 사는 것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생긴다는 점이다. (p.290~2901)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살아온 세월만큼의 경험이 우리 내부에 쌓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직간접적인 수많은 경험을 통해 인생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게 된다. (중략)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자신의 욕망에 좀 더 솔직해지고, 충실해지며, 과감해진다. 이제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요구하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서로의 기쁨을 나누며 행복한 순간들을 만들어 가게 된다. 따라서 나이 들어 하는 사랑은 더 열정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서른 살이 넘으면 이전 사랑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의 위험한 함정을 피해 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사랑의 한계를 알기에 상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뒤늦게 만난 상대의 소중함을 알기에 상대를 더욱 배려하면서 서로가 원하는 더 깊고 절실한 사랑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은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긴다는 것이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을 겪어 오면서 저마다 다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씩 키워 왔다. 그래서 적어도 상대가 나와 맞는 사람인지, 상대의 의중이 어떤지에 대해 나름대로 파악할 수 있고, 따라서 잘못된 상대와 잘못된 사랑에 빠질 위험성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p. 296~297)

그동안 프로이트와 융을 몰라서 힘들었던 것이 아니다. 자신을 몰라서 힘들었다. 서른 살이 되든 마흔 살이 되든 여전히 힘들 것임을 안다. 여전히 내 자신을 몰라서 쩔쩔맬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는 좀 다르다. 그때는 힘듦이 연륜과 지혜로 채워지라 기대한다. 그래도 여전히 힘들다면? 또 심리학책을 읽으면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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