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발견 - 어른들의 속마음을 파고드는 심리누드클럽
윤용인 지음, 양시호 그림 / 글항아리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내 취미는 독서다. 소개팅이나 낯선 자리에서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던진 그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어 버리는 악취미. 그 독서를 하는 이가 나다. 취미에 추미(醜美)는 없지만, 내 대답을 듣고 안색이 달라지면 같이 얼굴색이 변한다. TV보다 책을 더 좋아할 뿐인데, 초야에 묻혀 사는 ‘도인’ 또는 읽는 척하는 ‘재수인’으로 보는 건 뭐란 말인가.

“책만 보는 사람 아니거든요.”, “척 할 만큼의 어려운 책은 못 읽거든요.”는 변이 될 수 없다. 대답 해줄수록 이상해지니 그저 웃었고, 웃었더니 웃기는 여자가 돼버렸다. 처음엔 “그건 아니요.”라며 발악을 했는데, 이젠 웃는다. 편해진 거다. 책 본다고 인상 써야하는 것도 아니고, 읽을수록 유연해지고 가벼워지는 걸 어쩌랴. “모든 말이 맞는 말이 구려.”라며 껄껄거린 퇴계 옹이 돼버렸다.

특히나 <어른의 발견>같은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강도가 더하다. 모든 게 흐뭇하다. 말도 안 되는 주장에도 맞장구 쳐지고, 반대되는 생각도 수긍케 된다. 진정을 떠나, 개성 있고 입심 센 글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어른의 발견>은 내 입맛에 딱 이었다. 책 내용은, 점잖아야할 ‘어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점잖지가 않다. 통념에 대한 조롱과 이죽거림이 반이다. 책은 다섯 파트로 나뉜다. 결혼, 부부, 아이, 중년, 생활로 나뉘는데 모두 재미있다.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길 내용은 없고, 생각할 거리도 잔뜩 끌고 온다. 아쉬운 점은 일에 대한 파트가 없다는 거다. 여행사 사장이라도 나름의 애환이 있을 텐데, 아쉽다. 수다 떨기 좋아하니, 따로 묶어 책 썼을 거란 생각도 든다.

부제가 ‘어른들의 속마음을 파고드는 심리 누드 클럽’이다. 하지만 어른들보다는 수줍은 타는 불량소년과 장난기 넘치는 어린 사내놈이 더 많이 보인다. 심리학책으로 전혀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이 책을 읽기 전에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을 봤더니 더 같잖다. 같은 서른, 마흔인데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처음부터 공고하긴 했다. 이 책의 목적이 심리를 쉽고 솔직하게 말하는 거라고. 간간히, 심리학적인 내용이 나오긴 하나 그 내용에 슬쩍 웃으려면 심리학책 좀 봐야 할 듯하다. 심리 누드라니. 오! 윤용인, 이 사람 익살꾼이다. 

부모에 의해 자라온 십대를 지나고, 공부와 이데올로기, 연애와 사회 문제로 고민한 이십대에 이어 밥벌이의 삼십대를 거쳐서 우리는 마흔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을 중심에 두고 고민해본 시기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마흔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는 것도 자신을 제대로 찾기 전에 늙음이라는 괴물이 찾아왔다는 것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가 심리누드클럽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마흔이 넘으면 심리학 책을 뒤적일 필요가 있다. 어려운 책 말고 쉬운 책으로, 무의식과 억압과 분노 등을 읽다보면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이 보일 것이다. (p.164)

나잇살이 화두인 책이든 뭐든, 서른 이상의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내가 참 짧다는 생각이 든다. 간간히 오래 살 것을 생각지 못하고, 하루살이같이 사는걸 보면 내가 봐도 한심타. 스물하고도 여섯, 난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을 줄 몰랐다.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을 줄도 몰랐다. 그래서 이 책이 맘에 든다. 삶의 과정에서 겪게 될 무거운 주제들이지만 무거움을 덜어주는 발상전환이 고맙다. ‘어른도 별거 아니 구나.’부터 ‘나도 이런 능청을 떨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후려치고, 돌려치고, 농락하는 딴지의 중년. 이런 책을 발견하려고 심리 책을 읽어왔단 생각이 든다. 갑자기 내 악취미가 자랑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