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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생전에 전인권 씨는 대학 강단에서 수강생들에게 꼬박꼬박 '~씨'라는 말을 붙여서 호명했다고 한다. 나아가, 학생이 선생에게 "전인권 씨, 질문이 있는데요!"라고 말하거나, 신문기자가 대통령에게 "노무현 씨!"라고 부르며 자유롭게 토론하는 날이 오길 기대했다고도 한다.(p.12) 그런 날이 언제 올지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그가 얼마만큼 평등한 커뮤니케이션을 열망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이러한 비권위주의적인 태도가 그가 태생적으로 권위주의적이라는 더 큰 진실을 가릴지도 모른다고 경계하는 양심적이고 건강한 사람이기도 하다. 어찌 이런 선생님을, 아니 이 저자에게 애정을 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가 태생적으로 권위주의적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그 역시 한국의 전형적 가정에서 성장한 '동굴 속 황제'이기에) 그가 권위주의를 싫어하긴 싫어하는 모양이다. 책을 마무리하는 부분에 이르러 이런 말까지 덧붙이는 걸 보니 말이다. "당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 직장, 단체 등이 권위적인가 아닌가를 알아보고 싶다면, 그곳에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된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거나, 구성원 중 누군가 할 말을 못하고 있는 분위기라면 분명 문제가 있는 곳이다." (p. 297) 뻔한 이야기지만 이 발언의 의미를 새기며 생활하는 이는 몇이나 될까? 머릿말을 통해 파악한 저자의 면모는 저자에 대한, 나아가 책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전인권 씨는 지독하리만치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자신의 유년기를 복기해 낸다. 그의 이 처절한 솔직함에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는 '아니, 이 사람 이렇게까지 말하면 가족 생활, 사회 생활에 지장 생기는 것 아닌가' 하고 주제넘은 걱정까지 들게 할 정도이다. 그의 솔직함은 여태까지의 자신의 인생이 실패였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 실패의 원인을 한국 가정에서의 그의 성장과정에서 찾는 것이 일환이기에 단순히 유년기를 회상하고 추억하는 수준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지루하게 반복된다는 인상도 종종 풍기지만, 대체로 공감할 수 있다. 나아가, 나 자신의 유년기를 돌아보고 나의 정체성 형성에 대해 반성해 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참 고맙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한국의 남자 아이에게는 적용하기 힘들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니를 사랑한 남아가 아버지를 강력한 경쟁자로 여겨야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인데, 애초에 한국의 가정에서는 경쟁자로서의 아버지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들은 꽤 오랫동안 어머니와의 동침권을 확보하고 목욕탕도 시장도 함께 간다.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공간에 머무르며 어머니와는 내외할 뿐이니 아들이 아버지를 경쟁자로 여길 건수가 도통 없을 수밖에 없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난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엄마 옆에서 엄마의 젖가슴을 주무르면서 동침하며, 원래 엄마와 아빠는 떨어져 자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의 가정이야 또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정설로 여겨지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정면으로 반박한 부분은 나의 동의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대목은 아버지(가족)-선생님(학교)-대통령(국가)로 이어지는 수직적 위계에 대한 분석이었다. '군사부일체'를 빌리지 않더라도, 아버지 말씀 잘 듣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며 대통령을 존경하라는 말은 어린 시절 귀에 못 박히도록 듣지 않았는가. 결국 위에 열거한 3가지 공간 모두 '아버지의 언어'가 지배하는 공간, 아버지(선생님, 대통령)을 매개하지 않고는 다가갈 수 없는 공간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다. 동시에 가족-학교-국가라는 공고한 카르텔을 구축해 개인의 자아를 옭아매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하는 문제는 역시 '정당하게 아버지를 살해하기'를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 살해'란 내 안에 존재하는 아버지, 내가 가정에서 동굴 속 황제로 자라면서 만들어낸 이상적인(실재로는 지독하게 권위적인) 아버지상을 되돌아보고 제거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버린 자신을 구하는 길이며, 결국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임을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이 글을 읽는 남성들이여. 그리고 나여. 그렇게 솔직해질 각오가 되었는가?
한 아이의 유년기에서 아버지, 어머니 못지 않게 중요한 존재가 형제, 자매다. 그리고 전인권 씨는 실제로 형제, 자매가 4명이나 있었다. 허나, 책에서는 자신의 유년기에 영향을 끼친 형제, 자매와의 일화는 소홀히 다루어졌다. 물론 이 책의 기본 구도가 나-아버지-어머니로 이루어진 삼각형이었겠지만, 특히 한국에서 동기간의 관계가 갖는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그 부분은 좀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는 이 책을 쓴 동기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패했고 불행하기 때문에 행복해지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라고. 이 책을 읽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는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 독서의 효용은 어차피 개인차가 있는 거니까. 이 책이 최소한 자신이 누구인지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머릿말과 맺음말이라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본문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