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노래 - 노래와 함께 오래된 사람이 된다 아무튼 시리즈 49
이슬아 지음 / 위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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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형씨 유튜브에 작곡가 김형석 씨와 B2B 멤버 이창섭 씨(이날 초면이었음)가 나온 편을 봤다. 정재형은 여러 방송을 통해 웃기고 따뜻하고 실없어 보이기를 망설이지 않는 사람인 줄 알고 있었지만, 김형석이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인 줄 몰랐다. 힘을 쭉 빼고 툭툭 던지는데 50분 짜리 방송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박진영이 '너의 뒤에서'를 작사하고 신이 나서 김형석한테 흥분해서 자랑했더니, 김형석이 "그런데, 그거 심의 통과가 되겠어?"라고 했다는 일화 등등. 그리고 정재형과 김형석이 끊임없이 서로 놀리고 흑역사를 꺼내면서 깔깔거리는데, 얼마나 친해 보이던지, 좀 부럽더라. 그러니까 친함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겠지만, 나한테는 흑역사를 편안하게 던지면서 상처주지도 상처받지도 않는 관계가 친함인 것 같다. 그래서 에픽하이 멤버들을 보고 있으면 늘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고. 웃긴 이야기말고도 음악과 일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도 중간중간 잘 녹아 있어서 보면서 생각할 게 많은 영상이기도 했다. 


 특히, 정재형과 김형석이 한참 후배인 이창섭의 고민을 경청해 주고(방송 내내 그렇게 깔깔대던 두 사람이 음악인 후배가 직업적 고민과 직업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말할 때는 한번도 끼어 들지 않고 진지하게 듣고만 있는 모습이란), 그 고민에 대해 이미 경험을 한 선배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들을 편안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해주는 걸 보면서, '저런 대화 방식을 잘 기억해 둬야지. 경청하고 경청을 바탕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한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어.'라는 다짐. 


 그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의 재능을 시기하지 않는 건 매우 중요하면서 아름다운 덕목이라고. 왜 안 그렇겠는가. 특히 예체능 쪽에서는 뛰어난 제자를 보면 뿌듯하고 성장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나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에 대해 비록 못난 마음일지언정 시기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을 테니까. 


 나의 경우에는 어릴 때는 뛰어난 글쟁이들의 글을 동경했던 것 같고, 20대에는 그들의 재능을 질투하기도 하고 그들의 재능과 비교되는 나의 모습에 좌절했던 것 같다. 이제는 깨끗한 마음으로 그 재능을 아끼고 그 재능 덕분에 읽을 수 있는 글에 감사해 한다. 이슬아 씨의 글도 그런 마음으로 읽는다. 이슬아는 재능만이 아니라 악착같이 꾸준히 써낸 끈기로 이뤄낸 성취겠지만, 사실 매일 꾸준히 써내는 끈가야말로 재능이고, 그 이전에 자신이 매일 꾸준히 쓸 수 있다고 믿는 마음자체가 이미 범인들은 가지기 어려운 믿음이다. 


 '노래'를 테마로 한 이 책에는 여러 웃긴 에피소드와 잔잔한 에피소드와 묵직한 에피소드가 잘 섞여 있다. 


 한편 가왕이 아닌 이들의 노래도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뭔가를 못하는 방식 또한 제각각 다르다는 사실에 나는 자주 놀라곤 한다. 어떤 사람의 못함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잊을 수가 없다. 잘 못 불렀는데도 좋아죽겠는 노래를 맞딱드릴 때마다 음악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기분이다. (9쪽)


 다들 그런 경험들이 있지 않나? 노래방에서 누군가가 정확하게 잘 부르는 노래보다 누군가가 개성있게 못 부르는 노래를 더 경청하고 거기에 더 매력을 느낀 경험. 못 불러도 주눅들지 않고 관객의 시선따위 안중에 두지 않고, 온 세상에 나와 노래만 있다는 느낌으로 노래에 빠져서 제멋대로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게 노래방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이그노벨상 측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가라오케(노래방 자동 반주 기계)를 발명한 이노우에에게 이그노벨 평화상을 수여했다. "인간이 타인에 대한 인내심을 갖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제시함으로써 평화 공존을 이룩함." (15쪽)    


 대한민국의 노래방이 과연 평화 공존에 이바지하는 바가 더 큰지 향락적 유흥에 대한 탐닉으로 공공선에 해악을 끼치는 바가 더 큰지는 모르겠지만, 가수와 관객의 역할을 바꾸어 가면서 서로의 노래를 공유한다는 노래방의 본질은 이그노벨상 측의 수상 이유를 수긍하게 있는 면이 있기는 하다.


 낄낄대면서 놀리고, 울먹이면서 열창하고, 뜨겁게 술잔을 부딪칠 수 있는 누군가가 그리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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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2-26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생은
정말로, 간절히
노래 잘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정재형, 김형석, 둘 다 재능 엄청 많아 보여요^^

얼음장수 2023-12-27 10:59   좋아요 1 | URL
개성있게 못 부르는 인생도 나름 만족하며 살지만, 저도 정말 다음 생에는 락스타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200명 앞에서 무대를 망친 기억이 한이라서요 ㅋㅋ
연말 따뜻하게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