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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김대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흥미로웠지만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건 책 뒤편에 실린 참고문헌 서적 소개부분이었다. 그 중 현대전의 주요한 전략인 공중폭격에 대한 꼭지를 읽으면서 폭격의 잔인성과 비인간성에 분노를 감추기 힘들었는데,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에세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전직 폭격수였던 하워드 진의 육성을 통해 그 괴로움을 다시 한 번 겪어야 했다. “항공대에 소속되어 3만5천피트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한다는 건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다는 것, 비명 소리도 듣지 못하고, 피도 보지 못하고, 토막난 시체도 보지 못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현대의 전쟁에서, 원거리에서 잔학행위가 자행되는지, 저는 아주 잘 압니다. 제가 그 때 바로 이런 일을 했습니다”(p. 294) 3만5천피트 상공에서의 폭탄투하는 크레이지 아케이드에서의 폭탄설치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전직 폭격수였던 하워드 진이 전쟁이 끝난 후, 제대군인 원호법 아래에서 무료로 대학교육을 받고, 그 후 대학교수 생활을 하면서 주도했던 흑인민권 운동과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등에 대한 회고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당연히, 이 책에서는 역사학자로서의 하워드 진보다는 사회운동가로서의 하워드 진,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하워드 진의 모습이 부각된다.
하워드 진이 남부의 스펠먼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기에 당시 남부의 인종차별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검둥이 여자애와 한 차에 타고 있으면서 뭐가 무질서한 행동이냐고 묻는 겁니까?”라고 경찰이 버젓이 추궁하는 그곳에서 하워드 진은 한가하게 강의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그는 차별에 맞서는 학생들의 조직적인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했다. 하나의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 흑인민권운동은 그 작은 행동들의 결합과 반복으로 이후 전국적인 앉아있기 운동으로 번지면서 운동의 성과를 일구어 내게 된다. 여기서 하워드 진이 주목하는 것은 비단 운동의 성과만이 아니다. 오히려 전국적인 운동과 그로 인한 변화를 가능케 한 최초의 작은 행동의 의미를 중요시한다. 사회변화의 길목에는 누구도(정치인, 거대 언론)주목하지 않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꿈틀대는 작은 움직임들이 있다는 것이다. 반전운동 초기에,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전쟁에 찬성하는 상황에서 조직된 수백명으로 이루어진 집회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것이 나중엔 십만명이 운집하는 반전집회를 만들어 내고 68년을 거쳐 전국적인 반전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은 움직임들, 사소한 변화들에 대한 하워드 진의 신념은 책 전반에 걸쳐 여러차례 확인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 희망을 전파하는 하워드 진의 열정은 어떤 부분에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손석춘의 소설 “아름다운 집”의 주인공 이진선은 신학문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안고서 들어간 대학의 입학식을 이렇게 기록한다. “오늘의 입학은 입사인지도 모른다.” 때는 1938년, 조선의 현실은 대학생이 신학문의 꿈을 키우며 학문에만 정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학문조차 제대로 펼칠 수 없었던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의 대학생의 얼마나 복받은 것인가. 하지만, 오늘날의 대학생에게도 대학 입학은 곧 바로 입사일 뿐이다. 완전히 다른 의미로 말이다. 이 황량한 대학 풍경 속에서 대학생으로서의 사회에 대한 고민은 거의 실종되었고, 운동이라는 말은 ‘스포츠’라는 조소 속에서 희화화된 지 오래다.
다시 하워드 진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무수히 많은 학생 운동가들이 하워드 진과 함께 운동을 조직하고 활동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사회의식이 특별히 투철하고, 그들의 상황이 다른 무엇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참담했기 때문일까? 남부의 인종차별과 베트남 전쟁이라는 외적 조건은 분명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른 시대에 비해 특별히 많은 고민을 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고 각종 차별과 불평등 역시 각처에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의 학생과 지금의 학생들을 둘러싼 외적 조건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본질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때의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가게 만들고, 지금의 학생은 각종 고시, 취업준비에 모든 걸 걸게 만들었을까? 자본에 대한 사회전반의 예속 강화 등의 (내가 잘 모르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학생들을 이끌 수 있는 선생님의 존재 유무이다. 즉, 지금 한국에는 ‘하워드 진’이 없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발언일까. “나는 학생들이 내 수업을 통해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안정된 침묵을 버리고 목소리를 높여 발언하고 불의를 볼 때마다 그에 맞서 행동하게 되기를 바랬다”(p.253) 라는 교육관을 가진 선생님에게 배울 수 있었다는 것, 그 교육관을 몸소 실천한 선생님을 옆에 둘 수 있었다는 것이 그 때의 학생들이 사회 변화의 주체로 앞장설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을까.
비관주의로 무장한 채 절망을 말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절망의 목소리들의 합으로는 무엇도 바꿀 수가 없다. 역사를 낙관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역사에서 희망의 흔적을 찾아 거기에서 희망을 발견할 때 현실을 조금씩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수십년간 각종 운동을 주도하고, 수많은 대학생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하워드 진이 하는 말이니 거기에는 거역하기 힘든 진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달리는 기차 위에서 중립을 취한다는 건 결국 달리는 방향으로 간다는 걸 의미할 뿐이다. 어영부영 갈피 못 잡고 있다가는 나 역시 기차가 가는 방향으로 딸려가게 될 것 같다. 기차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끔 하기 위해 더 공부하고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또 어렵겠지만, 작은 움직임이라도 만들 수 있는 믿음을 키워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통해서 하워드 진이 내게 하고자 했던 말도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뱀발) 그러고 보니 이 책을 몇 년전 친한 친구 녀석에게 선물을 해줬었는데, 그 때는 이 책의 내용도 모르고 하워드 진에 대해서도 이름만 몇 번 들어본 정도였던 것 같다. 정말 생각없이 살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