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연인들에게 돌려받지 못한 물건이 제법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 선물한 물건이 아니라 빌려준 것들을 돌려받지 못했다. 100권이 넘는 책, 노트북. 물론, 이제는 돌려받을 생각도 없다. 왜 그녀들은 돌려주지 않았던 것일까? 내가 돌려달라고 하지 않아서일까. 어색함과 불편함을 무릅쓰고 돌려달라는 연락 정도는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노트북은 그냥 선물한 셈 치고 잊었지만, 책은 그 시기를 보낸 나의 기억들이 담겨 있는지라 돌려달라는 연락을 한 적이 있었다. 두어 번 알겠다고 돌려주겠다고 대답을 하고선 어떤 이유때문인지 막상 돌려주지는 않았다. 찾아가서 화라도 내야 하는 것인가. 더욱 애절하게 부탁이라도 해야 하는 것인가. 둘 다 자신이 없다. 그냥 그녀를 굳이 다시 마주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오해할 수밖에 없겠다. 이건 그녀를 미워해서가 아니다.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가끔 찡하다. 벅찼던 느낌, 행복했던 순간들, 격하게 토해냈던 아픈 말들, 그리고 그 나머지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시간들이 가끔 떠오르면 위로받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녀를 다시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속내를 간혹 친구들에게 내보이면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내가 상처받은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포장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 역시도 조금은 했던 것 같다. 나도 내 감정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김연수의 신간을 손에 들었다. 이번 소설집의 맨 앞에 수록된 <벚꽃 새해>는 선물로 준 태그호이어 시계를 돌려달라는 옛 여자친구의 연락을 받은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혹시 헤어진 연인으로부터 물건을 잘 돌려받는 비책이라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당연히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죽음을 암시하라가 비책일 수 있겠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니까 탈락) 그런데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마음을 문장으로 적어 놓아 둔 것 같은 다음 문장 때문이었다.
옛 애인을 다시 만나서는 그녀가 그토록 예뻤을 줄이야 미처 몰랐다며 속으로 후회를 삼키는 일은
영화에나 나오는 판타지일 뿐이라는 게 평소 성진의 지론이었다. 그간 사랑했던 여자들을 그는 여전히 사랑하고, 또 그런 식으로 영원히 사랑할 테지만 그건 '다시' 사랑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뜻이었다. 그건 한번 우려낸 국화차에 다시 뜨거운 물을 붓는 짓이나 마찬가지니까. 아무리 기다려봐야 처음의 차맛은 우러나지 않는다. 뜨거운 물은 새로 꺼낸 차에다만. 그게 인생의 모든 차를 맛있게 음미하는 방법이다. 마찬기지였다. 봄날의 거리에서 재회하니 그런 식으로 정연은 예뻤다. 그에게 예뻤던 여자들은 여전히 예쁘고, 또 그런 식으로 영원히 예쁘겠지만 '다시' 예쁠 수는 없었다.
- <벚꽃 새해> 18~19p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문장이다. 처연하면서도 따뜻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사랑했다면 '다시'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일 지도 모르지, 라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도 덧붙여 본다. 그나저나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은 저런 문장을 읊조리고도 옛 애인과 재회를 한다. 그리곤 그 날 만난 어떤 할아버지로부터 "어쩌다 이런 구석까지 찾아왔대도 그게 둘이서 걸어온 길이라면 절대 헛된 시간일 수 없는 길이라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옛 연이이 들은 말이지만. 그리고 할아버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오늘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공감대를 얻고 자연스럽게 헤어진다. 물론, 이건 '다시'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랑하는 과정일 것이다.
나는 저렇게 할 자신은 없다. 결국 빌려준 책을 받는 일도 힘들어지겠지. 그렇다면 그녀는 그 책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굳이 보지는 않더라도 눈에 가끔 띄기는 하겠지. 가끔씩 '다시' 사랑할 수는 없지만, '영원히' 사랑할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조금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