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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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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와 대사. 드라마나 영화를 고를 때의 선택 기준이다. 저 두 가지가 마음에 들면 나머지 단점은 크게 걸리지 않는다. 소설도 비슷하다. '문제적 인물'이 나와야 이입을 하든 비판을 하든 몰입해서 볼 수 있다. '밍밍한 인물'이 나오면 아무래도 팔짱을 끼게 된다. 


 그런 점에서 <모던 하트>의 주인공 '미연'은 아쉽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런 사람이다. 


 30대 후반의 헤드 헌터. 

 전문대 출신이라는 사실에 대한 콤플렉스 있음.

 결혼에 대한 양가 감정. (결혼한 주변 사람들의 현실을 보며 스스로 위안하는 동시에 배우자가 없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초라함으로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편입되기를 바라는 욕망을 가지고 있음.)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은 것 같은데, 다음부터는 좀 별로다.


 좋아하는 남자(태환)가 채식주의자인데 그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고기를 좋아하지만 채식하는 척을 한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실수로 '씨푸드 스파게티'를 주문하곤 황급히 '까르보나라'로 주문을 바꾼다. 그러면서 채식을 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들켰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이 여자, 너무 무매력인 거 아닙니까? 내가 채식주의자인 남자라면, 그냥 있는 그대로 육식을 하는 여자가 훨씬 매력적으로 보일 것 같다. 자신의 육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성이라면, 사실 만날 이유도 없는 거지. 자신의 윤리적 선택으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사실 그 선택은 이미 윤리적일 수 없는 거니까.


 더 최악인 건, '보험용 남자'로 나오는 '흐물'에 대한 태도이다. 자신에 대해 흐물의 호감을 이용해서 미연은 흐물을 편할 대로 활용한다. 심심하면 불러서 밥 얻어 먹고 술 얻어 마시고(뒤에 가면 밝혀지지만 이를 위해 흐물은 적금도 깨고 대출까지 받았다는 설정이다.) 오라가라 아주 제멋대로다. 그러면서도 나이가 좀 있고 외모가 썩 훌륭하지 않은 흐물이 자신에 대해 연정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나서는 격한 반응을 보인다. '너 같은 놈이 감히 나를....' 불쾌하기 짝이 없다는 거다. 아 진짜, 이 인간 뭐지?


 특별히 최악이라고 여겨진 대목 하나.

태환은 커다란 흰색 꽃이 그려진 하늘색 라운드 티에 흰 바지와 흰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 촌스러운 차림 때문에, 금방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티를 입으셨군요."

(중략)

"어제 이 옷을 사면서 그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제가 취향을 자발적으로 억압해왔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조직에 속한다는 게 그런 거죠. 자신의 색깔을 자동적으로 억압하는 걸 습속으로 삼는 거."

나는 인상을 쓰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네 티가 촌스럽단 얘기를 하고 있다고. (279쪽)

 

 우와, 다시 옮겨 적으면서도 정말 속에서부터 뭔가가 치밀어 오른다. 이중언어를 쓰는 여자와 나르시시즘에 도취된 남자의 대화는 만들어진 이야기에서라도 읽고 싶지 않다. 내 기준에서는 두 인물 모두 곁에 두기 어려운, 아니 10분 이상 대화하기도 힘든 사람이다. 



 이것말고도 디테일한 '별로'가 곳곳에 나온다. 물론, 30대 후반 싱글 여성의 일상적인 내면을 현실적으로 그리려는 의도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양한 현실 중에서 특정한 현실을 그려내기로 선택하는 것이 이미 작가의 의도나 역량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배울 것도 없고, 공감하기도 힘들고, 특별히 논쟁적이지도 않은 주인공을 1인칭 서술자로 내세운 건 아쉽다. 


 주인공 말고다 다른 인물들도 대체로 별 매력이 없다. 주인공 동생, 제부, 위에서도 언급된 태환, 흐물, 등등. 주변에 있을 법하지만 친하게 지내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랄까. 그걸 보여주는 게 작가의 의도였다면 할 만은 없지만서도. 


 너무 나쁜 말만 쓴 것 같은데, 헤드헌터의 세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 점은 좋았다. 그리고 세태 소설답게 통속적이어서 쉽게 쉽게 잘 읽힌다. 그리고 2020년에 2013년에 나온 세태 소설을 읽으면서 문화나 의식이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지를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모던하트, 정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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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한눈에 꿰뚫는 대단한 지리
팀 마샬 지음, 그레이스 이스턴 외 그림, 서남희 옮김 / 비룡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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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내 책상 한 켠엔 늘 지구본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지칠 때면 늘 지구본을 만지작거리며 상상의 날개를 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세계 일주를 한다거나, 뉴욕에서 근사한 모습으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한다거나 하면서. (지금의 나는 세계 일주는 개뿔, 뉴욕도 못 가봤다. ‘새로운 욕망(뉴욕?!)’만 늘었달까.) 그러다 슬그머니 중학생 형의 지리 부도책을 가지고 와서 통독하는 게 취미였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주요 강의 길이 순위는 기본이고 주요 자원의 매장량 순위까지도 외우는 특이한 어린이였다. 지구본을 보다 보니 지구상의 모든 게 궁금해졌고, 궁금해서 계속 읽다 보니 자연스레 외워졌던 것 같다. 지금의 나보다 초등학생 나가 더 똑똑하고 지적으로 활달했던 것 같다. 궁금하면 따지고 재지 않고 돌진.

 

몇 해 전에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푸코의 진자 실험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그 실험이 진행된 프랑스 파리가 당연히북반구라는 것을 전제하고 전달을 했는데, 몇몇 학생이 수업 후에 찾아온 것이었다. “선생님, 왜 파리가 북반구인가요?” 마음 속으로는 그럼 너는 왜 너인 거니? 왜 나는 한국인인 거니? 왜 개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거니?’ 따위의 반문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지만, 그럴 수 있나. 당황한 기색을 감춘 채 잘 설명해서 돌려보냈다.

 

그럼에도 어떻게 파리가 북반구에 있다는 걸 모를 수 있지?’라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었다. , 요즘은 초등 학생들이 지구본을 보지 않는 것인가? 아니, 지구본을 안 본다고 해도 스마트폰에 깔린 구글맵을 더 열심히 보는 거 아닌가? 아니, 다 떠나서 프랑스가 대충 어디에 있는지는 모를 수가 없지 않나? 지구본 선물하기 캠페인이라도 해야 되나? 세계 지리를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으로 정하는 정책이 필요한가?

 

이 책이면 충분한 것 같다. 어린이를 위한 책인데, 성인인 나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앞서 쓴 것처럼 나는 나름 어린 시절 세계 지리 매니아였다. 그런 나도 이 어린이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배우게 된 내용들도 좀 있다. 무엇보다 대충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세계 주요 도시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게 되니, 조금 더 그곳과 (물론, 철저히 일방적이겠지만) 가까워진 느낌도 들었다. 지도와 그림이 많아서 술술 읽을 수 있고, 지정학에 근거한 세계사와 현재의 갈등 구도도 간략하게 다뤄준다.(어린이용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다만, 그렇게 때문에 오히려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내 책상에는 지구본이 없다. 대신 가끔씩 그냥 구글맵을 켜서 여기저기 구경해 본다. 다음에는 어디를 가볼까 하고. 보다 보면 가고 싶은 데가 생기는 법이니까. 견물생심? 견지생심? 연애와 여행이 평소의 나와는 다른 나로 살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그래서 여행지에서 많은 연애가 시작되기도 하고, 연애를 하면 같이 여행을 가는 것 아닐까?) 믿는 나는 더 많은 여행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지도를 봐야겠다. 아차, 글을 쓰다 보니까 생각이 났다. 작년에 펀딩 사이트에서 여행자를 위한 세계 지도를 사놓고 집 한구석에 처박아두고 있었다. 오늘 오후에는 지도를 붙이고 코로나19가 종식을 기원하면서 여행지를 골라봐야겠다. 지구본을 만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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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싫어하는 말 - 얼굴 안 붉히고 중국과 대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정숙영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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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중국은 묘한 나라다. 교역량 1위 국가인데, 비호감 1위 국가이다. (일본일 수도 있겠다. 다만, 젊은 혹은 어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면 분명 1위일 거다.) 중국인이 자국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은 대륙을 뚫고 나오는데, 한국인은 중국을 무시한다. 거기다 최근에는 사드 문제로 온통 뒤끓었고,(여러 자료들을 종합하면 사드 문제로 인한 한국 내의 진통은 중국에서의 전국민적 분노와 비교하면 소동수준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게 사드는 영토 주권의 문제였고, 19세기 초반 아편 전쟁으로 촉발된 제국주의 침략을 떠오르게 만드는 일이었다. 중국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중국의 입장이 그렇다는 거다. 사실, 중국 관련 뉴스 볼 때마다 궁금하잖아. 중국()은 왜 저렇게까지 유난을 떠는지 궁금하다면, 일단 좀 알아야지.) 홍콩의 우산 혁명을 보면서 홍콩의 독립(자치) 열망을 탄압하는 중국에 대한 반감이 커질대로 커지지 않았는가. 책이 나온 후의 일이지만, 중국발 코로나19까지 터진 상황이다.

 

중국에 가 본 적도 없고,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할 가능성도 거의 없는 내가 이 책을 읽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다 못해 친구랑 싸울 때 싸워도 친구가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고 격한 반응을 보이는지가 궁금한 법 아닌가. 정보를 얻기 위해 읽은 책이었고, 책의 내용도 이러한 목적에 충실한바,(다행히 저자의 문장이 정확하고 간결하다. 그런 점에서 언론인이 쓴 책은 대체로 가독성이 좋은 듯하다.) 서평도 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진행해 보자. 제가 또 한 요약합...

 

1. 홍콩, 대만, 마카오 vs 티베트

홍콩, 대만, 마카오는 일국양제’(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 곧 중국이라는 하나의 나라 안에서 자본주의라는 체제 허용)의 적용을 받고, 티베트는 그렇지 않다. 티베트는 그냥 중국 안의 한 도시(라는 원칙하에 중국은 통치한). 사화·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다른 체제를 인정해주는 홍콩, 대만, 마카오 역시 중국의 일부이기에 이들을 독립된 국가로 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우산혁명 발발의 원인이 된 중국 본토식 국민교육 과목 도입을 홍콩에 추진했고,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만 국기를 들었던 쯔위는 중국 네티즌들의 항의 때문에 죄인처럼 사과해야 했다. 홍콩과 대만이 올림픽에 참가하지만, 자세히 보면 중국대만’, ‘중국홍콩으로 출전한다. 모두 일국양제의 일환이며 장기적으로는 홍콩, 대만, 마카오를 평화적으로 흡수 통일하기 위한 중국의 전략이다.

티베트는 더 중요한 문제다. 티베트 문제의 기저에는 중국 vs 서구(사실상 미국)’의 대립 구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달라이라마를 알고(달라이라마는 서구 종교계의 슈퍼스타.), 티베트 인권 문제, 테비트 분리 독립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선전 활동과 티베트에 대한 지원 때문이다.(라고 중국은 주장한다.) 실제 미국은 1960년대에 이미 티베트 독립운동에 매년 170만 달러를 지원했으며, 그 이후에도 달라이라마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미중 무역 분쟁이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던 2018년 초에 미국이 티베트 인권 문제를 슬그머니 거론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었을 터. 관련하여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하나 인용해 본다.

독일 자동차 회사 다임러는 보편적 진리를 말하는 달라이라마의 명언을 평범한 광고 문구로 썼지만이는 다른 한편으로 티베트와 달라이라마에 대한 서구 사회의 경외와 존경심도 느끼게 한다.


모든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면 더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 광고는 중국인들의 분노를 샀다중국을 대상으로 만든 광고는 아니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이 광고가 중국까지 가는 데는 1초도 안 걸렸을 텐데벤츠는 자신의 가장 큰 고객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깜빡했었던 듯하다불매 운동 소리가 나오지 벤츠는 급히 중국인의 정서를 무시해 거듭 죄송하다.”는 사과 성명을 내고 머리를 조아렸다. (69)

 

중국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야 됨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겠다.

 


2. 백두산에 대한 오해

1은 대한민국이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백두산 문제는 우리 문제다. 동북공정과 맞물려 중국의 백두산 공정(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창바이산이라 부르며 중국의 10대 명산으로 지정했다.)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일단 FACT1962년 체결된 조중변계조약에 따라 백두산 천지의 54.5퍼센트를 북한이, 45.5퍼센트를 중국이 가지고 있다. 우리가 백두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남다른 애정(단군신화가 시작된 민족의 영산) 때문에 중국의 움직임에 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한 글쓴이의 제안이 제법 설득력있게 들린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중국 사랑은 유별나다. 아내가 중국인일 뿐만 아니라, 2015년에는 칭화대에서 ‘무려’ 중국어로 20분간 연설을 해 중국인들의 호감을 샀다. 중국에서 차단된 페이스북이 다시 서비스될 수 있도록 구애 작전을 펼친 것이다. 러브콜은 다음 해인 2016년에도 이어진다. 3월 18일 톈안먼 광장 앞에서 조깅하는 모습이 페이스북에 올라와 화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이슈가 부각되었다. 하필이면 엄청난 스모그가 베이징을 덮어버린 날이라 전 세계는 마크 저커버그의 중국 사랑보다는 뒤로 펼쳐진 뿌연 톈안먼 광장에 더 놀라워했다. 타이밍도 안 좋았다. 양회가 열리는 3월은 중국이 부정적인 이슈는 안 보여주고 싶은 때인데, 국제적인 유명 명사가 베이징의 미세 먼지를 전세계에 알린 셈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체면 구길 일이다. 페이스북은 어쩌면 이때 ‘미운 털’ 점수 1점을 획득했을지도 모른다. (131쪽)



3. 국내 정치 및 미디어 통제

덩샤오핑의 문화대혁명은 복잡·미묘하다. 훙위병 코스프레를 위한 문혁 굿즈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한편, 문화대혁명 시기 포스터를 배경으로 당시의 혁명 가곡과 시진핑을 우상화한 노래를 부른 사회주의 찬양 걸그룹 ‘56 둬화’(이런 걸 보면 중국이 문화 강국이 되기는 요원해 보인다.)는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달리 89년 천안문 사건은 복잡·미묘하지 않다. 절대적 금기이기 때문이다. 천안문 사건, 6.4, 1989. 6. 4, 모두 중국 포털의 검색 금지어이며 SNS에서도 차단당한 단어다. 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만든 군대인 인민해방군이 인민을 짓밟았으니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할 수 없는 중국이 선택한 방법은 철저한 통제와 검열인 것이다.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까? 과오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통치력이 생기는 게 이치일 텐데.

천안문 사건 외에 대표적인 보도 금지어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내용 이외의 경제 뉴스’, ‘의제를 희화화하지 않기’, ‘스모그 문제등등. 이 중 스모그 문제와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중국 사랑은 유별나다. 아내가 중국인일 뿐만 아니라, 2015년에는 칭화대에서 ‘무려’ 중국어로 20분간 연설을 해 중국인들의 호감을 샀다. 중국에서 차단된 페이스북이 다시 서비스될 수 있도록 구애 작전을 펼친 것이다. 러브콜은 다음 해인 2016년에도 이어진다. 3월 18일 톈안먼 광장 앞에서 조깅하는 모습이 페이스북에 올라와 화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이슈가 부각되었다. 하필이면 엄청난 스모그가 베이징을 덮어버린 날이라 전 세계는 마크 저커버그의 중국 사랑보다는 뒤로 펼쳐진 뿌연 톈안먼 광장에 더 놀라워했다. 타이밍도 안 좋았다. 양회가 열리는 3월은 중국이 부정적인 이슈는 안 보여주고 싶은 때인데, 국제적인 유명 명사가 베이징의 미세 먼지를 전세계에 알린 셈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체면 구길 일이다. 페이스북은 어쩌면 이때 ‘미운 털’ 점수 1점을 획득했을지도 모른다. (131쪽)



4. 모욕적 표현

이웃 나라들간에 경멸하고 조롱하는 표현이야 어디에건 있게 마련이다. 중국인을 경멸하는 표현으로는 짱꼴라’, ‘짱깨’, 그리고 왕서방이다. (한국인을 경멸하는 중국식 표현은 빵즈(고려 몽둥이)’이다.) 공적으로는 쓰지 않는 앞의 2개에 비해서 왕서방이 특히 문제다. 언론에서 특히 즐겨 쓰는 이 표현에는 탐욕에 눈이 먼 미개한 중국인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인이 뭐하기 시작하면 값이 천정부지로 오른다는 관용적인 표현도 사실 중국을 은근히 졸부로 깔보는 시선이 들어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지 않나? “중국은 한국보다 더 많은 출연료를 준다. 큰돌을 벌었다.”는 발언이 화근이 되어 곤욕을 치른 한국 연예인들이 있다는 소식까지 접하고 보면, 조금 신중하고 조심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것 말고도 파룬궁, 노조, 영유권 분쟁, 일대일로 사업 등에 대한 내용이 조금 더 있는데, 앞의 내용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반복되기도 해서 요약은 이 정도로 마친다.

 

생각해볼 만한 부분은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인권, 언론의 자유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럼, 미국이 남미에서 저지른 짓은? 중동에서 일으키거나 조종한 전쟁들은? 이런 반문도 반문이지만, 우리가 특정 이슈에 대해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고 있다면, 다른 관점으로 한번 바라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그게 당사자 국가라면 더욱 더 필요하다는 게 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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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거짓말을 한다 - 구글 트렌트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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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부하지만,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롭다. 특히 구글 검색을 통해 밝히는 인간의 진짜 내면은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싶을 정도. 구글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실업률을 보다 빠르게 파악하는 방법은 특정 지역의 포르노 검색 비율을 확인하는 것이고, ‘대체로아마도라는 단어가 여성의 입에서 많이 나온 소개팅은 분명히 실패할 확률이 크며,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지보다 남편이 게이인지를 더 많이 검색한다. ‘게이 포르노를 검색한 직후에 가장 많이 검색하는 단어는 동성애 테스트이고, 부모는 자식에 재능에 관한 질문은 여아보다 남아에 대해 많이 하지만 외모에 관한 질문은 남아보다 여아에 대해 많이 한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여아가 남아에 비해 지적으로 활달하며, 남아의 비만율이 여아의 비만율을 웃돈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사례가 매우 많다. 여기서 거론한 사례가 흥미롭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거다실제로 학문 연구에서도 구글 검색 데이터를 점점 진지하게 활용하는 추세라고 한다. 직관적으로도 대부분의 여론 조사나 설문 조사보다 구글 검색 데이터가 더 정확할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고 저자가 단순히 저런 사례를 흥미의 차원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사례 분석을 통해 빅데이터의 특징과 가치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며, 빅데이터를 사회적으로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인종주의를 경계하는 오바마의 두 번에 걸친 연설을 분석하면서 실제로 인종주의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챕터가 대표적이다. 저자(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정치적으로도 옳지만 교훈적인 방식보다는, 유색 인종을 운동 선수, 군인과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방식이 실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어떤가? 흥미로지 않은가?

 

게다가 이 책은 빅데이터가 할 수 없는 일과 빅데이터로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말하는 균형감각도 갖추고 있다. 빅데이터가 할 수 없는 대표적인 일은 주가 예측이고, 빅데이터로 해서는 안 되는 대표적인 일은 채용 과정에 SNS 기록을 활용하는 일이다. 책을 읽으면 저자가 빅데이터에 (좋은 의미로) 미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정도의 애정을 가잔 사람이 이 정도의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미덕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몹시 추천하는 이유는 저자의 유머 감각 때문이다. 시종일관 유머러스하다. 장난기가 넘치고 때로는 짓궂기도 한데, 덕분에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웃으면서 읽을 수 있다.

 

메모장에 따로 갈무리한 문장 중 이 책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하나 인용하면서 마친다.

 

 페이스북 세상에서 여자친구는 남자친구와 다녀온 행복한 휴가 사진을 26장 올린다. 실제 세상에서는 이런 사진을 올린 직후, 구글에 '남자친구가 나와 성관계를 갖지 않으려 해요'라는 질문을 올린다. 이때 그 남자친구는 <최고의 몸매, 최고의 섹스, 최고의 구강성교>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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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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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시기에 <그것이 알고 싶다>의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사건을 봤다. 그러면서 한창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사건으로 시끄러웠을 때 회사 선배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선배는 쌍둥이 자매의 편에서 확실한 증거도 없으니 마녀사냥식으로 매도하지는 말자고 했고, 나는 이만하면 증거가 확실하니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자식이 다니는 학교에 아버지가 시험지와 답안지를 볼 수 있는 보직을 맡는다는 상황 자체가 문제가 있으며, 조선시대의 상피제도처럼 자식과 부모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은 특히니 민감한 문제니까. 개인의 양심과 도덕성에 의존해야 하는 기존의 시스템 하에서는 유사한 일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 '공정성'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그 선배(내가 태어난 해야 대학에 들어간)는 다른 부분에서는 대체로 열려 있으신 분이었음에도, 나의 주장이 과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밀레니얼 세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계산적이고 이기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밀레니얼 세대는 오히려 공정성을 중시하고 정당한 절차와 규범을 중시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사건에 유난히 크게 분노한 이유를 단순히 그들이 최근까지도 입시 경쟁을 했기 때문에, 혹은 그러한 부정이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 경쟁이 불공정한 환경에서 이루어졌고, 그것이 그 불공정을 야기하는 시스템에서 비롯되었기에 그토록 분노하는 거다. 그들이 '경쟁'이라는 가치를 이전 세대보다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맞지만, 그 '경쟁'이 공정한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은 자주 무시된다. 이 책에서도 공시생들이 공시를 준비하는 주된 이유로 '공정한 경쟁'을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거다. 심지어 많은 밀레니얼 세대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라도 그것이 공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주어지면 그것을 거부한다. 


  기성 세대가 밀레니얼 세대를 '가르쳐야' 될 대상으로 보는 건 곤란하다. 이미 그들은 나름의 윤리 의식을 갖추고 있고, '가르치지 않는 사람'에게만 배우고자 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가르치려고 해도,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했던 MB로 다가올 뿐이다.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배우려는 태도, 그게 힘들다면 그들을 관찰하는 태도만이라도 가져보자. 책에도 인용된 알리바바의 CEO 장융의 말. 


"많은 사람들이 바링허우가 문제다쥬링허우가 문제다라고 하는데  세대들한테는 문제가 없다문제는 우리다그들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우선이다."(138쪽)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에게 요즘 어떤 깨달음이나 생각의 단서를 주는 건 또래 혹은 동생들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CEO들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책에 나왔던 가장 인상적인 사례를 하나 보자. 

   대기업은 '역멘토링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겸비한 경영진이나 선배들이 11 신입 사원에게 진솔한 지도와 조언을 해준다는 '멘토링프로그램을 반대로 차용한 것이다쉽게 말해서 대표 신입 사원들이 본인이 속한 조직의 임원에게 역으로 본인의 진솔한 조언을 해준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프로그램은  달도 가지 못해 폐지되었다회사에서 내세운 표면적인 폐지 사유는 '임원이 참여할 시간이 아직은 부족해서'였지만실제로는 '너무도 솔직한 신입 사원의 의견을 임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였다 부서에서는 근무한  1년이 되는 사원이 임원에게 "상무님은 회의 시간에 본인의 의견만 말하고반대되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답정너 스타일입니다부서 회의도 강압적이어서 부서원들이 솔직한 의견을 제시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다음에 벌어진 일은 그리 놀랍지 않다솔직한 역멘토링에 얼굴이 굳어진 임원이 관리자에게 신입 사원 교육을 똑바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214쪽)


 어디, 저 CEO만의 문제이겠는가. 사실 후배(부하)가 선배(상사)한테 감동받는 지점은 자기가 용기내서 한 말을 상대방이 일단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일 때다. 그 순간 후배는 선배와 동료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다. 지금 내게 월급을 주는 분과 함께 일하게 된 계기도 까마득히 어린 내가 젋은 혈기에 던졌던 (지금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다수 무리가 있어 보이기도 하는) 맹랑한 제안에 대해 "그런 비슷한 시도를 예전에도 했던 적이 있었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도 다르고 무엇보다 사람도 다르니 진지하게 한번 고민해 보자."라고 답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설령 월급을 못 받는 한이 있어도 이 회사를 다닐 거다. 


 '먼저 안 게 오류가 되는 시대'라는 평가는 가혹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너무 밀레니얼 세대의 좋은 면만 썼다는 생각도 든다. 그건 밀레니얼 세대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폄하하고 옛날 기준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서다. 그리고 나는 90년생은 아니고 85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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