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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진중권의 최대 화두는 신체다. 독일에서는 독일의 습속에 따라 주조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한국식으로 변형되어 적응한 진중권의 몸은 저자의 말마따나 간사하기 짝이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같은 맥락에서 무엇보다 정직하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이 몸에 새겨진 흔적을 통해 압축 근대화로 인해 전근대, 근대, 탈근대의 3가지 층위가 혼재한 한국인을(한국사회를) 분석해보겠다는 이 책의 분석 방법 역시 조금 낯설 수는 있을지언정 꾸밈은 없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게끔 한다. 사실,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진중권, 이름 석 자만으로도 읽고 볼 일이다.
책은 한국의 근대화를 다룬 1부, 근대화 속에 내재된 전근대성을 해부하는 2부, 전근대성이라는 모순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생겨난 탈근대성을 분석하는 3부로 크게 나뉜다. 낯선 시각으로 한국인의 습속을 냉정하게 분석하겠다고 하는데, 그 시각이 얼마나 낯선지, 분석은 얼마나 정교한지 얼마간의 기대감과 또 얼마간의 의심을 가지고 읽어보기로 했다.
1부의 주요 텍스트는 신문 기사이다. 현재 한국의 근대성을 탐구하는 것이 목표이니 만큼, 한국사회의 현재적 징후를 미시적으로 드러내는 신문기사를 주 텍스트로 삼은 것 같다. 진중권에 따르면 한국의 근대화는 곧 군대화다. 이는 당연히 군인들이 정권을 잡았던 박정희 시대의 강력한 유산이다.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에 100km 산악 행군, 해병대 극기 훈련 체험을 의무사항으로 포함시키는 기업문화가 한국이 아니면 어디에서 가능하겠는가. 농경사회의 시간 관념과 노동 문화에 익숙했던 한국인들의 몸이 국가권력의 ‘인간개조’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자본주의적인 신체가 되었다는 저자의 분석은 뼈아픈 진실이다. 정말로 평균적 한국인은 박정희가 만들어낸 프랑케슈타인이란 말인가.
2부의 주요 텍스트는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이다. 한국의 전근대성을 해부하는 부분에서 서구 사회의 문명화를 다룬 책을 주요 텍스트로 삼았다는 것은, 서구에서 이뤄졌던 근대화 과정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수행되지 않아 전근대성이 상당 부분 잔존해있다라는 분석이 뒤따를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진중권이 서구 중심주의적인 시각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본다라는 비판을 받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어차피 한국의 근대화라는 것이 자의든 타이든 간에 서구의 근대화를 모델로 설정해서 따라간 것이니 만큼, 근대화된 서구를 기준으로 한국의 전근대성을 파헤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합당해 보인다. 차라리 조금 더 나아가 서구적 근대화 자체를 비판하거나, 한국이 서구를 모델로 근대화를 진척시켜야만 했나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한다. 더구나 진중권이 낯선 시각(독일에서의 유학경험)으로 한국사회를 읽어보겠다고 한 만큼 얼마간 서구중심주의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마치 홍세화를 읽으면 프랑스가 민주주의의 천국 같고, 박노자를 읽으면 북유럽이 지상의 파라다이스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3부는 월터 옹의 “문자문화와 구술문화”를 바닥에 깐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해방직후만 해도 전국민의 문맹률이 90%에 달하는 사회였고 사정이 많이 나아진 지금도 실질적인 문서 해독능력이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달리는 구술문화적 특성을 가진 사회이다. 이 구술문화의 특성을 영상문화의 차원으로 구현시켰기에 한국이 디지털 강국, 게임 강국으로 성장했다는 분석은 흥미롭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신세대의 보수성을 분석하는 진중권의 시각이다. 요즘 세대는 이미지의 세대, 이미지는 곧 비선형적인 시간의식을 의미한다. 이 비선형적인 시간의식이 선형적 시간의식을 근간으로 하는 역사의식의 결여를 낳아 신세대의 보수성이 비롯되었다는 접근은 날카롭다. 3부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또 하나의 핵심 주제는 디지털 시대의 복제문화에 관한 것이다. 원본을 대신하는 복제, 원본 없는 복제,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복제를 뜻하는 ‘시뮬라크르’로 설명할 수 있는 디지털 복제 시대에서 짝퉁은 진품을 만들어내고, 아우라의 전면적인 파괴가 발생한다는 저자의 설명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 책의 집필동기에는 아무래도 ‘황우석 사태’가 깊이 자리하는 것 같다. 프롤로그의 시작도 “황우석 사태”와 관련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책 전반에 걸쳐 ‘황우석 사태’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거침없이 비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최대 텍스트는 ‘황우석 사태“일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기에 진중권의 시선은 신선했고, 특유의 글빨 역시 여전했으며, 상대를 가리지 않고 내리꽃는 그의 비수가 선사하는 카타르시스는 짜릿했다. 저자의 말대로 앞으로 한국인의 신체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새로운 존재미학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