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콘서트 1 - 노자의 <도덕경>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까지 위대한 사상가 1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대향연 철학 콘서트 1
황광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가 엄청난 히트를 친 이후로 "~ 콘서트"라는 제목의 책들이 여러권 나오는 것 같다. 물론, "과학 콘서트"가 많이 팔린 이유는 제목에 붙은 콘서트라는 세글자 때문은 아니다. 충실하고도 재미있는 내용, 그리고 저자의 빼어난 글쓰기 실력이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콘서트의 관객이 된 듯한 재미와 정보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의 파급력 역시 한 몫 했겠지만) 출판계의 극심한 불황탓일까. 개인적으로 "과학 콘서트"이래로 "~ 콘서트"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들을 보면서 무리해서라도 '콘서트'라는 제목을 갖다 붙여야 했을 출판인들의 고뇌를 떠올렸다. 다행히 "~ 콘서트"로 나온 책들이 대체로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게 알찬 책내용 덕분인지, '콘서트'의 힘인지, 양자의 절묘한 결합으로 인한 것인지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과학 콘서트"는 목차만 봐도 제목에 '콘서트'를 붙인 이유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다른 "콘서트"들은 내가 아는 바로는 굳이 '콘서트'라는 제목을 붙일 만한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황광우의 "철학 콘서트" 역시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제목은 썩 적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책 제목 짓는 건 출판사 마음이고, 제목도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책 제목으로도 딴지 걸고 비문 하나로도 시비걸 수 있는 게 리뷰어의 권리라고 한다면 저자나 출판사도 과히 불쾌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철학 콘서트"는 쉽다. 저자가 옆에서 개인강의해주는 듯 문체도 편안하고(로빈슨 크루소와 "동물농장"으로 마르크스를 설명하는 친절함), 책 내용도 '철학'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어렵지 않다. 저자는 동서양 대표 사상가 10인을 선정해 그들의 삶과 대표저술을 통해 그들의 철학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 책의 돋보이는 부분은 그들의 저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온 그들의 삶을 드러내준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논어"에서 공자왈 하는 죽은 공자가 아닌, 너무 뛰어난 능력으로 인해 오히려 관직에는 진출하지 못 해 제자들과 밥벌이를 걱정해야만 했던 살아있는 공자를 만날 수 있다. "성서"의 존엄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저 낮은 곳에서 버려진 이들을 위해 사랑과 봉사를 실천한 평화주의자 예수와 마주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토머스 모어를 가장 많은 생각을 하면서, 가장 많이 옮겨 적으면서 읽었다. 유토피아의 의미를 '어디에서 없는 장소'에서 '이상향'으로 바꿔 놓았다는 그의 책 "유토피아". 모어가 꿈 꾼 유토피아의 많은 부분들이 현실이 되었다. 참정권과 교육권에서의 남녀 평등이 이루어졌고, 그 당시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주민 자치제는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뤄지고 있다. 물론, 모어 이전에도 유토피아를 꿈꾼 이가 있으니 바로 플라톤이다. 그 유명한 이상국가. 하지만 모어는 '철인'의 자리를 '대중'으로 대체시킴으로써 정치사상사에서 하나의 획을 그을 수 있었다. 모어의 최종 목표였던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여가시간의 증가만큼은 자본의 강한 저항으로 아직까지 온전히 실현되지는 못 하고 있으나 계속 꿈 꿔 볼 일이다. "내 목이 짧으니 자를 때 유의해주게"라는 말을 남기며 떠난 모어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 역시 옳다면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꿈을 꾸라는 것 아닐까.

 모어가 특히 인상적이라 따로 한 단락을 맡겼지만, 다른 사상가들도 꽤 흥미로웠다. 소크라테스나 공자를 읽으면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이황을 읽으면서는 이황보다는 그의 학문적 라이벌이자 나이를 떠난 우정을 나눈 철저한 반권위주의자 기대승이 궁금하다는 생각을, 마르크스를 읽으면서는 저자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이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가지 내 의견과 배치되는 부분은 노동에 대한 저자의 견해였다. 노동이 신성하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인간의 본질은 노동에 있다. -p. 219" 는 다분히 논쟁적인 발언이다. 나는 인간이란 놀 때 본성이 드러난다고 생가하고 노동은 유희하는 인간에겐 굴레라고 생각한다. 노동에 관해서라면 김훈의 말에 동의를 한다.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것이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사회에는 김훈식의 온전한 인간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제목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긴 했지만 알찬 책이다. 소개된 원전을 읽어 봐야겠다는 의지도 다지게 해주고(어디까지나 의지!) 작금의 현실과 관련해서 고민하게 해주는 부분도 많다. 철학이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사람도 빠져들게 할만큼 재미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왜 고전을 읽어야되는지 그 필요성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여전히, 앞으로도 살아서 생명력을 더해갈 고전, 그 문으로 가는 친절한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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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7-03-07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 좀 하신 분이라면 바로 원전에 도전하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콘서트라는 제목에 딴지를 걸었지만 생각해 보니 철학이라는 제목도 그다지 적합해 보이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네요. 나날이 공부할 게 쌓여만 가네요.

2007-03-07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3-0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콘서트 시리즈(?)는 대체로 평이 좋군요 ^^
조곤조곤히 적어주신 리뷰 감사합니다. 철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얼음장수 2007-03-0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했헸님/ 고쳤습니다요. 이젠 팔도 다 나아가니 팔 때문에 오타가 많다는 핑계도 못 대겠어요. 책 재미나요. 저자의 폭넓은 지식 덕분이겠죠.

체셔고양이님/ 읽어보시면 왜 좋은 평을 받는지 알 수 있을 거에요. 하긴, 저는 책 10권 읽으면 9권 이상은 그저 좋다고 헤벌레하는 편이긴 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책은 아주 쉽고 과하게 친절합니다.

프레이야 2007-03-20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료한 글로 책을 읽고 싶게 하시네요.
팔이 많이 나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

얼음장수 2007-03-2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걱정해신 덕분에 빠르게 호전되고 있습니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