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디테일>을 흥미롭게 읽었다. 도쿄에서 배우는 마케팅에 대한 통찰로 읽어낼 수도 있고, 색다른 도쿄 여행기로 읽어낼 수도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중에도 세심하게 관찰하게 꼼꼼하게 기록하는 저자(생각 노트)의 태도에서 배운 바가 많았다. '아,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이라야 책 제목에 '디테일'을 넣을 수 있겠구나.' 실제 책을 쓰기 위해 간 여행이 아니라 그냥 휴가 차 간 여행이었는데 우연히 퍼블리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게 되어 나오게 된 책이라는 걸 알고 나니, 준비된 사람이 빛을 보는 건 분명한 것 같다. <도쿄의 디테일>에는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놓치기 쉽지만 그래서 돋보이는 도쿄의 빛나는 디테일들이 흥미롭게 소개되어 있다. 


 초록불 신호 연장 버튼, 도시락 안에 함께 들어 있는 물티슈(식전)와 이쑤시개(식후), 호텔 로비에 있는 커스터마이징 가이드북, 남녀의 사용 습관 차이에 착안한 남성용/여성용 수건 등등. 이외에도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는 내용도 많고, 생각을 유도하는 제안도 많다. 성실한 독자인 나는 저자의 제안을 내 방식대로 소화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을 너무 열심히 해서인지 어젯밤에 배가 너무 고팠다. 배달의 민족 어플을 켜고 야식 메뉴에서 1인분을 주문할 수 있는 곱창집에서 곱창 볶음을 주문했다. 1인 가구를 위한 메뉴부터 얼마나 반가운가. 가게 입장에서야 최소주문금액을 높게 설정하고 기본 판매 단위를 크게 잡는 게 유리하고 편하겠지만, 나같은 1인 가구 입장에서는 그런 가게에 주문을 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튼,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는데, '배달 곱창의 디테일'을 경험했다.


 

 '아끼면 망하고 퍼주면 흥한다' 류의 문구야 어디서든 많아 보여서 별로 특별할 건 없었다. 하지만, 이 가게만의 디테일이 3가지 있었다.

 첫째, 포장 용기. 대부분의 배달 곱창은 곱창 볶음을 큰 용기에 넣고, 그밖에 소스 등은 별도의 작은 용기에 넣어서 보내주었다. 하나씩 포장을 뜯는 것도 귀찮고, 무엇보다 먹은 후에 하나하나 디 씻고 치우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 가게는 하나의 도시락 모양의 용기에 곱창 볶음과 소스, 피클을 다 넣었다. 덕분에 음식을 먹은 후의 뒤처리가 한결 수월했다. 음식을 먹는 순간만이 아니라 음식을 먹은 후의 시간까지도 배려한 사장님의 고민이 느껴져서 좋았다. 

 둘째, 소스. 보통 곱창 볶음을 시키면 볶을 때 들어가는는 빨간 소스만 주는 경우가 많다. 이 가게는 상큼한 마요네즈 소스도 같이 줬다. 보기에도 예쁘고 먹어 보니 입맛도 돋우는 게 괜찮았다. 기존의 정형화된 구성에서 변화를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심한 게 보여서 좋았다. 

 셋째, 마늘 후레이크. 마늘 후레이크를 곱창 볶음에 올려줬는데 이 역시 새로워서 신선했다. 새롭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건 기존의 것에 대해 고민했다는 뜻이니까. 남들이 하는 데서 한 끗의 새로움을 추가하는 것. 그런 게 디테일이 아니겠는가? 곱창 볶음에 필요한 건 획기적인 혁신이 아니라 익숙함에서 살짝 벗어난 조그마한 새로움이 아닐까? 배를 두두리면서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돌이켜 보면 스케일에는 대체로 시큰둥헀지만, 디테일에는 언제나 끌렸다. 디테일은 관심과 관찰력, 성실함과 집요함의 종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테일을 살리고 그걸 설득력있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분야에서건 먹고 살 길은 있다고 믿는다. 곱창 볶음 배터지게 먹고 왠지 모를 죄책감에 뭐라도 적어 봤다. 쓰고 보니, 이 글에는 한 끗의 디테일이 없는 것 같아 부끄럽다. 







도쿄의 디테일, 교토의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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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30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게 사장님의 디테일이 빛을 발하려면 그걸 알아주는 고객이 있어야 가능한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가게 사장님이 신경 썼어도 고객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런 점에서 이 페이퍼는 매우 디테일이 살아있습니다. 그저 음식이 왔구나, 먹자 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앗 이건 여기에서 디테일을 살렸군, 하고 관찰하고 후기로 적어내는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디테일의 끝판왕인것입니다!!

얼음장수 2020-07-30 18:07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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