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할머니 - 그래, 사는 게 지겨워질 리가 없어 아무튼 시리즈 50
신승은 지음 / 제철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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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아무튼 시리즈’를 검색한다. 아무튼, 뒤에 나오는 것들은 보통 일상에서의 평범한 것들이다. 그래서 때로 친근감이 가고 때로 관심이 덜 간다. 취향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된다. 물론 주제만큼이나 작가의 영향도 적지 않다. 『아무튼, 할머니』는 오롯이 할머니란 말이 나를 이끌었다. 누구나 할머니가 된다고 당연하게 여겼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인지한 순간은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조카에게 할머니가 분명했지만 내게는 할머니가 아니었다. 현재 엄마의 나이를 살고 계신 분들을 보면서 할머니가 된 엄마를 상상하려 해도 쉽지 않다. 엄마는 어떤 할머니가 되었을까. 엄마는 어떤 할머니로 살고 싶었을까.


어린 시절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자란 작가가 할머니와의 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아무튼, 할머니』는 할머니가 된 엄마, 할머니가 된 큰언니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매 순간 엄격한 잔소리를 하셨던, 담배를 피우던 할머니, 곱게 단장하고 비녀를 꼽고 병원 나들이를 하셨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작가의 할머니처럼 욕도 잘 하셨고 금기시하는 것들도 많았고 손녀에 대한 차별도 많으셨던 할머니다. 작가의 할머니처럼 손녀를 끔찍하게 여기시지는 않았다. 친할머니라서 그랬을까. 그래도 건강이 나빠지고 약해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무섭게 호통치던 호랑이를 닮은 모습이 더 나았다.


작가가 들려주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돌아가신 할머니 단 한 분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할머니, 우리가 만나게 될 할머니, 우리가 꿈꾸는 할머니, 우리가 되고자 하는 할머니다. 스스럼없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친근감이 넘치는 할머니. 병원이나 시장, 버스 정류장 같은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분들이다. 책에 등장한 것처럼 무얼 샀냐고 묻고 일면식이 없는 사이인데도 오랜 친분이 있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는 할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놀랍다. 무엇이라도 하나 더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어른이 되고부터 아이들과 학생들이 다 예뻐 보이는 그런 마음과 비슷한 것일까. 


유독 할머니들은 왜 그럴까. 할머니들은 때때로 겁이 없다. 남에게 도움을 척척 받을 수 있고, 그만큼 남에게 도움을 척척 줄 수 있다. 친구는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가 빵을 주셔서 마스크 속으로 쏘옥 넣어 먹고 온 일도 있다. 할머니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도와주고 도움받는 일은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52쪽)


작가가 만난 할머니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분들이다. 그래서 더 친숙하게 빠져들고 할머니를 응원하는 동시에 속상한 마음도 크다. 주어진 시간에 맞춰 한 번에 횡단보도를 건널 수 없는 할머니, 키오스크로 쉽게 주문을 할 수 없는 할머니, 비타민이나 처방약에 대한 안내문을 읽기 힘든 할머니. 이게 할머니의 현실이니까. 자연의 이치로 신체의 노화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어디 그뿐인가. 건물 청소를 하는 할머니, 손자 손녀를 돌보는 할머니, 자식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각 시대에 놓인 할머니의 사정은 훨씬 더 어렵다. 그러니 어쩌면 안전한 할머니, 소외받지 않는 할머니가 되는 건 작가의 말처럼 어려울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장애물이 참 많다. 또 당연히 안전한 할머니, 소외받지 않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그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여성 노인에 대한 성폭력 사건들을 사회는 어떻게 다루는가. 노인 빈곤에 대해 사회는 얼마 나 나 몰라라 하는가. 폐지를 줍는 노인들, 고물상에 가는 노인들이 킬로그램당 얼마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꿈꾸는 것은 그냥 할머니가 아니었나 보다. 친구들하고 다 같이, 안전하고, 빈곤하지 않은, 빈곤하더라도 혜택을 받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할머니를 꿈꾼다. (73~74쪽)


그러니 우리 사회는 달라져야 한다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는다. 늙으면 죽어야지 하는 할머니의 말은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뭔가 배우고 싶고 뭔가 즐겁게 살고 싶은 건 마찬가지라는걸. 집회, 농성장, 데모의 현장에 모인 여성 노동자의 외침을 간과하지 말고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우리는 모두 늙고 할머니가 되니까. 어떤 모습의 할머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책을 통해 만난 할머니 가운데 ‘까치산 할머니’라 불린 유창숙 영화배우를 드라마에서 만나기를 기대한다. TV에서 보면 단번에 알아볼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할 수 있는 할머니. 우리가 꿈꾸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닐까. 『아무튼, 할머니』를 읽으면서 돌봄이나 희생이라는 프레임에 할머니를 가두지 말아야 한다고 느낀다. 작가가 만든 노래로 공연하고 영화를 만드는 작업 현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처럼 당당하고 멋진 할머니를 응원한다. 그런 할머니가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몫이라고. 


나는 무엇이 될까. 할머니가 될까. 어떤 할머니가 될까.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 할머니가 될까. 우리 할머니처럼 욕을 잘하는 할머니가 될까. 아네스 바르다 감독님처럼 영화를 계속 찍는 할머니가 될까. 흰머리는 염색을 할까, 흰 눈처럼 새하얗게 둘까. 눈 온 다음날 우리 집 옥상처럼 하얀 머리에 듬성듬성 초록색 염색을 할까. 그때도 공연을 할까. 그때도 꿈을 꿀까. 할머니처럼 용한 꿈을 꿀까. 지금처럼 할머니 꿈을 꿀까. 살고 볼 일이다. (166~167쪽)


나의 할머니를 생각하고 할머니가 되지 못한 엄마를 그리워하고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할머니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할머니가 되어 살아가는 사회가 책에서 만난 것보다는 나은 사회였으면 좋겠다. 안전한 사회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고 즐겁게 살아가는 할머니가 되면 좋겠다. 할머니가 된 친구와 함께 신나고 재미있게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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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2-01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돌아가신 지 오래된 외할머니 생각이 나요. 여리고 순하고 곱디곱기만 했던 분이었어요. 큰소리 한번을 안 내셨지요. 우리의 할머니는 어떤 모습일지 또 할머니가 된 울엄마 모습도 떠오르고 많은 생각이 드네요. 할머니를 마지막 작위라고 어느 수필가가 그랬어요. 아무튼 시리즈 좋은데 이 책도 마음에 들어 냉큼 담아갑니다. 작위 받고 계속 여기서 자목련 님 만날 수 있기를... 할머니가 되지 못한 엄마를 그리워하시는 자목련 님. 토닥토닥^^ 세상은 시끄럽지만 12월의 첫날 화창하게 보내세요.

자목련 2022-12-02 10:46   좋아요 1 | URL
할머니는 아무 무서운 분이셨는데도 가끔 그리워집니다. 나이가 들고 점점 노년의 삶에 대해 어렸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과 생각이 들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엄마는 특히^^*
프레이야 님, 지금쯤은 부산도 제법 추울 것 같아요. 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

라로 2022-12-01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할머니들과 좋은 추억이 일도 없어서 그런가 할머니 생각은 안 나지만, 제가 할머니가 된다면 정말 좋은 할머니가, 무조건 사랑해 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이 책의 부제가 더 인상 깊네요.

자목련 2022-12-02 10:4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부제가 더 멋져요!
라로 님은 사랑이 가득한 예쁜 할머니가 되실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옆모습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북포레스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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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에서 ‘조제’는 특별한 주인공이다.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랑과 연애의 중심에 선 여주인공 ‘조제’. 『잃어버린 옆모습』에서도 다르지 않다. 조제를 둘러싼 남자들의 애정 공세와 그들을 향한 조제의 복잡한 내면 심리의 묘사가 탁월하다. 프랑수아즈 사강만이 쓸 수 있는 사랑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번 『잃어버린 옆모습』에서는 사랑에 매달리는 쪼잔하고 지질한 모습이 한층 더 돋보인다. 


조제는 미국에서 생활하다 미국 남자 ‘앨런’을 만나 결혼해 파리에 돌아와 살고 있다. 조제를 향한 앨런의 집착과 편집증으로 인해 결혼 생활은 파국에 이르렀다. 파리에서 좋은 커플로 보이기를 원하는 앨런에 의해 참석한 사교 모임에서 조제는 연상의 사업가 ‘줄리우스’를 알게 된다. 줄리우스의 도움으로 앨런의 극단적 조치로 2주 동안 감금생활을 하던 조제는 집 밖으로 탈출한다. 그 뒤 줄리우스는 조제의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세가 싼 집을 알아봐 주고 잡지사에 취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파리의 사교계에서는 조제와 줄리우스의 관계를 인정한다. 정작 조제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조제의 지인도 줄리우스가 원하는 건 뭐든 갖는 사람이라고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조제는 그저 자신을 돌봐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사실 소설 밖 독자의 눈에도 조제를 향한 줄리우스의 흑심이 눈에 선하다. 젊고 예쁜 조제를 선의로 도와준다고? 그런 남자는 부모나 형제 빼고는 없다. 조제는 앨런과의 결혼 생활에 지졌고 좋아하는 그림에 대한 기사를 쓰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다. 주변의 상황을 살피고 의심할 여유도 없었다. 어쩌면 조제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지도 모른다. 줄리우스가 적극적 구애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적어도 현재까지는 말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결코 심연을 좋아하는 그런 취향을 가지지 않을 거야.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늘 아침에 짧은 사냥 노래를 휘파람을 불면서 잠에서 깨어날 거야. (94쪽)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고 꼼꼼히 생각하면 줄리우스의 숨겨진 진심은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파리의 평균 집값에 미치지 못하는 집세, 줄리우스와 동반한 모임에서 조제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말이다. 줄리우스의 의도를 파악한 건 미국으로 간 앨런이 아프다는 시어머니의 연락을 받은 후였다. 앨런의 상태가 진짜든 거짓이든 조제는 뉴욕으로 향했고 줄리우스는 조제가 머물 호텔과 비서를 보내고 잡지사에 연락을 취하고 자신도 미국으로 향했다. 병원에 입원한 앨런은 여전히 조제를 원했고 조제는 헤어질 결심을 단단히 했다.


뉴욕에서 만난 줄리어스는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충실히 했다. 조제와 함께 해변을 거닐고 휴식을 취했다. 그곳에서 조제는 줄리어스가 신경안정제와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줄리우스가 해변에서 쓰러졌다. 줄리우스의 약한 모습에 조제는 놀랐지만 그의 청혼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돌아온 파리에서 그들은 여전히 좋은 사이로 지냈다. 하지만 조제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등장했다. 시골에 사는 수의사 ‘루이’였다. 조제와 루이는 사랑에 빠졌다. 파리와 시골이라는 거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루이와의 만남으로 줄리우스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루이와의 관계를 알려야 하는 게 중요했다. 그러던 차 조제는 잡지사에서 멋진 제안을 받았고 기뻐함과 동시에 줄리우스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내가 본 것은 언제나 그의 옆모습이었다. 그는 몸짓이 없고 눈길이 없는 남자였다. 또한 앨렌에게 감금이 된 나, 뉴욕의 호텔에서 눈물에 젖은 나, 해변의 피아니스트에게 매혹된 나를 본 남자였다. 나에 대한 특별한, 멜로드라마적인 어떤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남자였다. (210쪽)


그렇다. 자신이 누렸던 모든 것이 그로부터 나왔다는 걸 알았다. 이제야 조제는 자신이 잘 안다고 여긴 줄리우스를 생각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달랐다.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조제는 바로 잡지사를 나와 집을 떠났다. 루이가 있는 시골로 향했다. 줄리우스의 연락은 차단했다. 루이와 함께 살면서 아이를 갖은 조제는 파리 근교로 이사할 계획을 세운다. 모든 게 완벽했기에 파리에서 줄리우스를 만났을 때도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줄리우스는 조제가 자신에게 돌아온 것으로 착각했다. 심지어 루이의 아이를 가졌다고 했는데도 조제와 아이가 모든 자신 거라고 울부짖었다. 조제는 경악했다. 세상에나 줄리우스도 앨런과 다르지 않았다. 두 달 후 줄리우스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지독히도 평행이고 지독히도 낯선 서로의 인생 속을 지나갔다. 우리는 오직 옆모습으로만 서로를 보았고, 결코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소유하기만을 꿈꾸었고, 나는 그에게서 달아나기만을 꿈꾸었다. 그게 전부였다. (233쪽)


프랑수아즈 사강은 언제나 사랑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잃어버린 옆모습』에서 앨런과 줄리우스는 조제를 사랑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부를 걸어 사랑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사랑이 아니다. 1974년에 발표될 당시에는 사랑으로 인정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22년 현재 앨런과 줄리우스의 말과 행동은 가스라이팅과 폭력에 해당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구속하는 건 범죄일 뿐이다. 일방적인 강요나 설득이 아닌 서로가 교감하고 감정을 인정하는 게 사랑이다. 루이와 조제의 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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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의 한 가운데에 있는 기분이다. 비가 오기 때문이다. 겨울비다.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오는 기운이 전해졌을 뿐이다. 아직 11월인데 겨울의 한복판에 외롭게 서 있는 가을 같다. 어쩌면 가을은 이미 저 멀리 떠났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본격적인 추위라고 말해야 할까. 추위가 오고 있다고 한다. 어제는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오늘 이후의 추위가 예상되지 않는다. 다만 그저 겨울이니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고 미루고 미룬 내가 싫은 뿐이다. 치과 예약을 했다. 원했던 날짜에는 예약을 잡을 수 없었고 그보다 2주 뒤에 예약을 잡았다. 연말에 나처럼 미뤄든 일정 가운데 치과 방문이 있는 이들이 많은가 보다 싶었다.


미뤄둔 일에는 항상 책 읽기 목록이 있다.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도 그렇다. 읽은 책에 대한 리뷰, 정리한 책에 대한 기록. 기록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바지런한 움직임이 요구된다. 제목처럼 궁금해진다. 당신은 시, 에세이, 소설 가운데 무얼 좋아하나요? 어떤 책을 먼저 읽을 것 같나요? 나라면 이 책을 먼저 읽겠다, 이런 답글은 어떨까요?





정현종의 시집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며』는 출간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정현종 시인을 좋아하는 나는, 조금 더 빨리 알았어야 했다. 이 책은 10월 말에 동네 책방에서 샀다. 동네 책방을 방문한 것도 처음이고 책을 구매한 것도 처음이라 더 남다르게 기억될 책이다. 사두고 읽지는 않았다. 이 시집엔 정현종의 산문이 있어 더 좋다. 괜히 좋아서 아끼느라 읽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신승은의 『아무튼, 할머니』는 아무튼 시리즈로 이웃 님의 리뷰를 보고 읽고 싶어진 책이다. 리뷰는 이렇게 중요하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대부분 잔소리가 많지만 나이가 들면서 할머니가 했던 잔소리가 그리워진다. 누군가 내게 잔소리를 한다는 건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니까. 


천선란의 『랑과 나의 사막』은 표지와 제목에 끌렸다. 그러니까 이 책에 대한 정보는 모른 채 읽게 될 것이다. 온라인 서점의 소개 글이나 리뷰도 꼼꼼하게 읽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읽고 싶은 소설이다. 나는 사막도 좋아하고 선인장은 더욱 좋아한다. 사막에 갈 수도 없고 선인장을 안아볼 수도 없지만 외롭지 않은 고독의 이미지, 텅 빈 충만의 이미지라고 할까. 세 권 다 빨리 읽고 싶다. 


시를 좋아하는 이라면 시집을 먼저 읽을까? 뻔한 예측일까. 아니면 하루에 세 권을 다 읽을 수도 있겠다. 출근길이나 외출 시에는 소설을 읽고 잠깐씩 시 한 편을 읽고 침대에 누워서는 소설을 읽는 일. 이렇게 읽는 일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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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1-28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절입니다. 지금 절정의 Novembering을 하고 있잖습니까. 도서관 창 밖으로 보이는 야산이 느므느므 좋습니다. ˝좋다˝ 보다 더 적절한 술어를 찾기가 힘듭니다.
참. 저는 에세이 빼고 시와 소설을 좋아합니다. ^^;;

자목련 2022-11-29 16:50   좋아요 1 | URL
댓글을 쓰시던 시각에 도서관에 계셨을까요? 절정의 Novembering을 맘껏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골드문트 님을 가을 타는 남자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ㅎ
요즘엔 시 리뷰는 올라오지 않던데요, 기다리겠습니다^^*

hnine 2022-11-28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권을 동시에, 돌려가며 읽어요^^

자목련 2022-11-29 16:51   좋아요 1 | URL
동시에 즐겁게 읽는 일도 좋아요^^
나인 님, 책과 함께 따뜻한 오후 이어가세요!

햇살과함께 2022-11-28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무튼 시리즈요~!

자목련 2022-11-29 16:52   좋아요 2 | URL
살짝 알려드리면 저도 아무튼 시리즈를 먼저 읽고 있습니다 ㅎ

책읽는나무 2022-11-28 2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시집은 잘 읽질 않았었는데, 그래서 예전 같았음 소설이랑 에세이요!!!!! 했을텐데,
요즘 디킨슨이랑 에이드리언 리치 시를 읽고 있다 보니...외국 시라서 적응을 못하기도 하지만, 또 은근 읽을만 하기도 하고??
그래서 요즘은 세 권 다 읽고 싶습니다ㅋㅋ
그 중 고르라면 소설 먼저 읽을 것 같기도 하구요?^^
비가 오나 보군요?
여긴 저녁에 비가 온다더니 아직 오진 않고 조금 습하기만 합니다.
곧 추워진다니 건강 조심하세요^^

자목련 2022-11-29 16:54   좋아요 2 | URL
저는 많이 접하지 못해서 그런지 외국 시는 훨씬 어렵게 느껴져요.
세 권을 다 읽고 있다고 하시니 어떤 책들을 읽고 계실까 궁금하네요.
이곳은 어제 비가 많이 내렸어요. 그리고 아주 많이 추워졌어요.
나무 님도 따뜻하게 지내세요^^

공쟝쟝 2022-11-28 2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를 읽지 않는 그런 사람이지만 ㅋㅋㅋㅋ 시요 라고 대답하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겨울이라기엔 너무 따뜻한 오늘 같은 가을비엔 누구들은 축구를 보더라도 전 소설을 읽으려고 합니다아!

자목련 2022-11-29 16:56   좋아요 2 | URL
음, 공쟝쟝 님은 시도 잘 읽으실 것 같아요. 분석도 잘 하실 것 같고요.
조만간 쟝쟝 님의 서재에 시집이 등장할 것 같은 예감이~~
어제 비 내리는 밤에는 전반전까지 축구를 보고 침대에 쏙.
쟝쟝 님의 소설이 궁금해지는 오후입니다^^*

공쟝쟝 2022-11-29 20:05   좋아요 1 | URL
제가 읽은 소설은…. 조만간 페이퍼에서 밝히도록 하겠사와요 ㅋㅋㅋ

감은빛 2022-11-29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권을 야금야금 조금씩 읽을 것 같아요. 특히 시집은 오래 두고 읽는 편이예요. 한번에 읽으면 아까우니까요. 제일 먼저 다 읽는 건 아마도 소설일 것 같구요.

겨울비라고 불러야 할까요? 예전에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배철수 님이 이 시기의 추위를 단풍추위라고 부르더라구요. 그럴듯하다고 여겼어요. 내일부터는 정말 추워진다고 하네요. 몸은 추워도 마음만은 따뜻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자목련 2022-11-29 16:58   좋아요 1 | URL
야금야금 조금씩 읽는 재미도 남다르지요. 그러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도 하고요. ㅎ
한번에 읽으면 아까운 시집, 그래서 쌓이는 게 시집인지도 모르겠습니다,ㅠㅠ
‘단풍추위‘ 기억해두었다가 내년에 쓰고 싶은 말이네요. 감은빛 님도 따뜻하고 다정한 날들 이어가세요^^

구단씨 2022-11-29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가장 좋아하지만,
지금은 소설과 에세이를 같이 뒤적이고 있네요.
추운 건 싫은데 이불 속에 파묻혀 책 읽기에는 좋은(?) 날입니다. ^^

자목련 2022-11-29 17:00   좋아요 1 | URL
소설과 에세이를 뒤적이는 날들!
집콕, 방콕이 많아지겠지요. 따뜻한 걸 곁에 두고 책을 읽는 시간으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지음, 윤진 옮김 / 엘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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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삶을 구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의에 빠진 이에게 어떤 희망이나 길을 제시할 수는 있다.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다. 문학이 삶의 전체가 되거나 일부가 되는 건 지극히 사적인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문학을 특히 글쓰기를 갈망하는 이들은 많다. 무엇을 쓰는가가 중요할까. 아니면 쓰려는 자가 되려는 게 중요할까. 2021 공쿠르상 수상작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의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복잡한 마음을 불러오는 소설이었다. 복잡하다는 건 소설이 어렵기도 했고 소설을 통해 작가 음부가르 사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타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작품을 통해 문학의 시원이나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 노력하는 글을 쓰고자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민족의 정체성을 다루거나 역사의 한 장면을 다루는 소설 말이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의 경우도 다르지 않게 다가왔다. 1990년 세네갈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로 정규교육을 받은 작가 음부가르는 소설 속 화자인 ‘디에간 라티르 파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이자 세네갈의 문화와 역사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그가 있기까지 지난 성장과정이나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것이 문학의 질료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작품과 작가를 일정 부분 동일시할 수밖에 없다. 


‘디에간’은 음부가르가 그랬듯 세네갈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글을 쓰는 작가다. 아프리카 출신의 유망주 정도 되겠다. 타국에서 타국의 언어로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문학적 재능으로만 판단하고 평가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흑인과 아프리카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런 그가 세네갈 출신의 문학 선배라 할 수 있는 ‘T.C. 엘리만’의 소설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을 알게 된다. 1938년에 발표된 소설, 단 한 권의 책을 끝으로 문학계는 물로 프랑스에서 사라진 사람, 엘리만을 추적하게 된다.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을 했지만 책도 출판사도 찾을 수 없다. 실재의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돌 정도다. 


그럴수록 디에간은 그에게 빠져든다. 그러다 운명처럼 세네갈 출신의 여성작가 ‘마렘 시가 D.’를 만나고 그에게서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과 엘리만에 대해 듣게 된다. 출판 당시 책에 쏟아졌던 찬사와 엘리만을 ‘흑인 랭보’라 칭했던 이야기, 그 뒤를 이은 비판과 비평. 소설이 아프리카 세네갈의 기원 신화와 같고 심지어 엘리만이 여러 작품을 차용한 콜라주였다며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고. 그러나 엘리만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침묵만 고수하다 결국 자취를 감췄다고. 이쯤 되면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의 내용과 묵묵부답 엘리만의 진실이 궁금해진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디에간이 엘리만의 흔적을 찾는 과정을 들려주는 동시에 그와 관련된 인물들이 들려주는 엘리만에 대한 기억을 다룬다. 파리에서 시작해 마렘 시가 D.를 만나는 암스테르담, 마렘 시가 D.에게 엘리만을 들려주는 아이티 시인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세네갈의 다카르까지 그 여정은 엘리만 한 사람만의 인생이 아닌 다양한 세대의 인생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시대를 살았고 어떤 문화를 경험하고 어떤 차별과 어떤 고통을 견디며 살았는지 말이다. 


엘리만이 책을 쓴 1938년 아프리카 세네갈과 프랑스의 관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세네갈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 엘리만에게 프랑스는 어떤 나라였으며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은 곧 디에고의 정체성과 문학에 대한 질문과 맞닿는다. 디에고뿐만 아니라 파리에 살고 있던 아프리카 출신의 작가들과 ‘마렘 시가 D.’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30년대가 아닌 21세기에도 과거의 역사는 사라질 수 없으니까. 현재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수상한 음부가르까지도.


참기 어려운, 추잡스러운, 부르주아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그게 바로 우리 삶이야. 문학을 하려고 애쓰는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학에 대해 말하는 것. 말하는 것 역시 살아 있게 만드는 한 가지 방식이니까. 문학이 살아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아무리 무용하고 아무리 비극적인 희극이고 무의미할지언정 그래도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닐 수 있지. 우리는 문학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 듯 굴 수밖에 없어. 이따금, 아주 드물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가끔 정말로 그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증명해야 하니까. 우리가 바로 그 증인이야, 파이. (76쪽)


음부가르는 문학이 결코 무용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프랑스의 식민지가 아닌 세네갈의 역사나 그들의 전통과 영혼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것이까. 아니면 제국주의와 전쟁의 잔혹함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엘리만의 목소리를 빌려 대신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엘리만을 만나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를 편집하고 만든 샤를과 엘리만의 다툼에서 엘리만은 ‘문학은 원래 약탈의 유희라고, 자기 책은 바로 그걸 보여준다고 대답했고요. 독창적이지 않으면서 독창적이기, 엘리만은 그게 바로 자기의 목표 중 하나라고, 문학은, 심지어 예술은 그렇게 정의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자기의 또 다른 목표는 창작의 이상을 위해 모든 게 희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라고’(271쪽)


프랑스가 세네갈을 지배하지 않았다면 엘리만 같은 인물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미지의 땅을 발견하고 문명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옳은 방법은 무엇일까.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새로운 문화로 태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 반드시 식민지화가 진행되어야만 할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상처와 고통은 제목 그대로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으로 남았다. 소설 속 프랑스와 세네갈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과 우리의 역사도 그러하다. 역사가 문학으로 재탄생되는 일이 의미를 지니면서도 아픈 이유다.


어쩌면 문학 속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문학은 시커멓게 반짝이는,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관과 같다. (526쪽)


그러니 문학은 삶의 일부이면서 전체가 될 수도 있다. 안타깝고도 아름다운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속 인물들에게 문학이 그러했듯. 문학은 스스로를 증명하는 도구이자 역사를 재조명하는 통로가 된다. 삶을 구원할 수는 없겠지만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운 모두에게 글을 쓴다는 건 내면을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일이며 시시각각 변하는 나를 직시할 수 있는 길은 아닐까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다른 것을, 또 다른 것을, 다시 또 다른 것을 요구한다고. 마침내 그 목소리가 조용해지면 당신은 다른 것, 굴러다니고 달아나는 다른 것, 당신 앞에 놓인 다른 것의 반향과 함께 길 위에, 고독 속에 남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새벽을 기약할 수 없는 밤 속에서 언제나 다른 것을 요구한다.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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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행성서비스센터, 정상 영업합니다 네오픽션 ON시리즈 4
곽재식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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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설렘과 동시에 어떤 공포가 함께 한다. 막연하게 우주여행을 하거나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편리함을 생각하던 때와 다르게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는 미래의 일상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편하고 좋은 것들만이 아니라 공존, 존재, 존엄에 대한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에 대한 쉽지 않은 고민들.


활발한 작품과 방송 활동을 통해 그의 책보다도 이름을 먼저 알게 된 곽재식 작가의 연작 소설집 『은하행성 서비스센터, 정상 영업합니다』에서 말하는 것들도 그렇다. 자유롭게 우주를 여행하고 각기 다른 행성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우리에게도 이런 미래가 도래하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이 책은 잡지 『독서평설』에 1년간 연재하며 사랑을 받은 단편 12편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집이다. 그러니까 잡지의 특성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쉽고 재미있게 쓴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굳이 독자층을 청소년을 대상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은하행성 서비스센터’의 사장 미영과 이사 영식은 다양한 의뢰를 받아 행성을 방문한다. 우주선을 타고 행성을 찾아다니는 미영과 영식의 눈에 비친 12행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게는 미영과 영식의 모습이 맥락은 다르지만 여러 행성을 다니며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는 어린 왕자처럼 느껴졌다. 철통 행성부터 파동 행성, 정지 행성, 양육 행성, 의미 행성, 생명 행성, 영원 행성, 재생 행성, 기억 행성, 통제 행성, 진공 행성, 매매 행성까지 12개의 행성은 어떤 행성인지 상상하며 읽을 수 있다.


「철통 행성」은 말 그대로 철통같은 보안을 유지하는 행성으로 은하연합계열 단체와는 교류를 하지 않은 행성이다. 그러니 외부의 소식을 들을 수 없고 우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다. 소행성이 철통 행성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러 간 미영과 영식은 그들을 외계인이라 부르는 응대관을 만났다. 외부와 교류가 단절된 상태라 은하교통연합에서 보낸 연락 사항을 보는 일조차 어려웠다. 어떤 기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 소행성이 철통 행성에 떨어졌고 행성의 중요한 조각 작품이 무너졌다. 그런 와중에도 행성 사람들은 행정처리는 답답 그 상태였다. 자신들의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는 이유를 내세운 소통 단절로 재앙으로부터 행성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외면하는 것이다. 


「파동 행성」에서는 농업 행성으로 좋은 말을 해주면 잘 자라고 나쁜 말을 해주면 잘 자라지 못한다는 걸 증명하는 행성이다. 그러기 위해서 식물을 개조해야 했고 그런 식물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직원이 필요했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먹거리와는 차원이 다른 괴상한 식물들이 가득한 행성이라고 할까. 그 안에는 진짜는 없는 게 아닐까. 어쩌면 파동 행성은 위선과 가짜로 진심을 포장한 행성은 아닐는지. 


「양육 행성」에서는 누구를 양육하는 것일까? 식물, 로봇, 동물을 떠올리지 않을까. 놀라지 말길, 행성에서 양육하는 건 바로 사람이다. 혹여 그 사람이 그 행성을 탈출할 기회를 찾지 못하는 게 아닐까 미영과 영식은 그를 찾았다. 그런데 원하는 모든 걸 로봇이 다 해준다며 사람은 그곳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로봇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지만 로봇이 사람을 기르는 거라는 생각은 미영과 영식만의 것일까. 양육 행성을 읽으면 그려지는 미래가 내게는 섬뜩했으니까.


그런가 하면 「의미 행성」에서는 그들의 존재 자체에 의미를 찾으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목동 자리 공동에 살고 있는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 한복판에 있는 은하계에 살고 있어서 그 은하계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한 것이다. 세상에는 다른 은하계도 많다는 걸 모르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던 것이다. 사실, 그 행성은 은하계의 부유한 사람들의 재미로 만든 행성이었다. 누군가에는 너무고 간절한 궁금증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재미에 불과하다니.


“저희는 언제나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왜 우주라는 것이 생겨났는지, 왜 세상에 중력과 전자기력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지, 무엇 때문에 그냥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세상에 이렇게 있는 것인지, 별이 빛나고 해가 뜨고, 계절이 바뀌고 그에 맞춰서 생명체가 태어나 죽고, 이런 게 다 뭐하자는 것인지, (…) 이 우주에서 우리가 왜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저희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의미 행성」, 84쪽)


뇌 수술 상품권이 생긴 김에 뇌 수술을 받겠다는 미영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기억 행성」에서는 뇌 속에 컴퓨터를 심고 난 후에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뇌 속에 컴퓨터가 있다고 상상하면 모든 건 하나도 없는 완벽한 지식을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데 뇌 속의 지식에 대한 저작권은 누구의 것일까? 내 뇌에 있으니 내 것이 아닐까. 소설 속 저작권 분쟁은 먼 미래의 우리의 일일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저는 뇌에 컴퓨터를 설치하면 항상 뭐든 정확히 기억하고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뇌 컴퓨터용 백과사전 구독권을 구입하시면 됩니다. 한 달 사용료는 저렴하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프리미엄판을 설치하시면 단순 기억 이외에도 감각 연동도 가능합니다.” (「기억 행성」, 151쪽)


곽재식이 초대하는 상상의 미래는 흥미진진하고 기발하다. SF 소설의 재미를 맘껏 느낄 수 있다. 12행성 방문 기록지는 이게 끝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더 다양한 행성들을 방문하게 될까 궁금하다. 그 안에서 펼쳐질 미래의 모습은 얼마나 놀랍고 신기할까. 


아무 행성이나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호기심이 닿는 대로 끌리는 대로 행성에 발을 내딛기를 바란다. 우주여행이 현실이 된 지금, 우주의 우리가 알지 못하는 행성에서는 소설보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인을 기다리는 우주인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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