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의 한 가운데에 있는 기분이다. 비가 오기 때문이다. 겨울비다.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오는 기운이 전해졌을 뿐이다. 아직 11월인데 겨울의 한복판에 외롭게 서 있는 가을 같다. 어쩌면 가을은 이미 저 멀리 떠났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본격적인 추위라고 말해야 할까. 추위가 오고 있다고 한다. 어제는 생각보다 춥지 않아서 오늘 이후의 추위가 예상되지 않는다. 다만 그저 겨울이니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고 미루고 미룬 내가 싫은 뿐이다. 치과 예약을 했다. 원했던 날짜에는 예약을 잡을 수 없었고 그보다 2주 뒤에 예약을 잡았다. 연말에 나처럼 미뤄든 일정 가운데 치과 방문이 있는 이들이 많은가 보다 싶었다.
미뤄둔 일에는 항상 책 읽기 목록이 있다.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도 그렇다. 읽은 책에 대한 리뷰, 정리한 책에 대한 기록. 기록이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바지런한 움직임이 요구된다. 제목처럼 궁금해진다. 당신은 시, 에세이, 소설 가운데 무얼 좋아하나요? 어떤 책을 먼저 읽을 것 같나요? 나라면 이 책을 먼저 읽겠다, 이런 답글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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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의 시집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며』는 출간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정현종 시인을 좋아하는 나는, 조금 더 빨리 알았어야 했다. 이 책은 10월 말에 동네 책방에서 샀다. 동네 책방을 방문한 것도 처음이고 책을 구매한 것도 처음이라 더 남다르게 기억될 책이다. 사두고 읽지는 않았다. 이 시집엔 정현종의 산문이 있어 더 좋다. 괜히 좋아서 아끼느라 읽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신승은의 『아무튼, 할머니』는 아무튼 시리즈로 이웃 님의 리뷰를 보고 읽고 싶어진 책이다. 리뷰는 이렇게 중요하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대부분 잔소리가 많지만 나이가 들면서 할머니가 했던 잔소리가 그리워진다. 누군가 내게 잔소리를 한다는 건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니까.
천선란의 『랑과 나의 사막』은 표지와 제목에 끌렸다. 그러니까 이 책에 대한 정보는 모른 채 읽게 될 것이다. 온라인 서점의 소개 글이나 리뷰도 꼼꼼하게 읽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읽고 싶은 소설이다. 나는 사막도 좋아하고 선인장은 더욱 좋아한다. 사막에 갈 수도 없고 선인장을 안아볼 수도 없지만 외롭지 않은 고독의 이미지, 텅 빈 충만의 이미지라고 할까. 세 권 다 빨리 읽고 싶다.
시를 좋아하는 이라면 시집을 먼저 읽을까? 뻔한 예측일까. 아니면 하루에 세 권을 다 읽을 수도 있겠다. 출근길이나 외출 시에는 소설을 읽고 잠깐씩 시 한 편을 읽고 침대에 누워서는 소설을 읽는 일. 이렇게 읽는 일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