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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옆모습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북포레스트 / 2022년 11월
평점 :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에서 ‘조제’는 특별한 주인공이다.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랑과 연애의 중심에 선 여주인공 ‘조제’. 『잃어버린 옆모습』에서도 다르지 않다. 조제를 둘러싼 남자들의 애정 공세와 그들을 향한 조제의 복잡한 내면 심리의 묘사가 탁월하다. 프랑수아즈 사강만이 쓸 수 있는 사랑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번 『잃어버린 옆모습』에서는 사랑에 매달리는 쪼잔하고 지질한 모습이 한층 더 돋보인다.
조제는 미국에서 생활하다 미국 남자 ‘앨런’을 만나 결혼해 파리에 돌아와 살고 있다. 조제를 향한 앨런의 집착과 편집증으로 인해 결혼 생활은 파국에 이르렀다. 파리에서 좋은 커플로 보이기를 원하는 앨런에 의해 참석한 사교 모임에서 조제는 연상의 사업가 ‘줄리우스’를 알게 된다. 줄리우스의 도움으로 앨런의 극단적 조치로 2주 동안 감금생활을 하던 조제는 집 밖으로 탈출한다. 그 뒤 줄리우스는 조제의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세가 싼 집을 알아봐 주고 잡지사에 취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파리의 사교계에서는 조제와 줄리우스의 관계를 인정한다. 정작 조제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조제의 지인도 줄리우스가 원하는 건 뭐든 갖는 사람이라고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조제는 그저 자신을 돌봐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사실 소설 밖 독자의 눈에도 조제를 향한 줄리우스의 흑심이 눈에 선하다. 젊고 예쁜 조제를 선의로 도와준다고? 그런 남자는 부모나 형제 빼고는 없다. 조제는 앨런과의 결혼 생활에 지졌고 좋아하는 그림에 대한 기사를 쓰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다. 주변의 상황을 살피고 의심할 여유도 없었다. 어쩌면 조제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지도 모른다. 줄리우스가 적극적 구애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적어도 현재까지는 말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결코 심연을 좋아하는 그런 취향을 가지지 않을 거야.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늘 아침에 짧은 사냥 노래를 휘파람을 불면서 잠에서 깨어날 거야. (94쪽)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고 꼼꼼히 생각하면 줄리우스의 숨겨진 진심은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파리의 평균 집값에 미치지 못하는 집세, 줄리우스와 동반한 모임에서 조제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말이다. 줄리우스의 의도를 파악한 건 미국으로 간 앨런이 아프다는 시어머니의 연락을 받은 후였다. 앨런의 상태가 진짜든 거짓이든 조제는 뉴욕으로 향했고 줄리우스는 조제가 머물 호텔과 비서를 보내고 잡지사에 연락을 취하고 자신도 미국으로 향했다. 병원에 입원한 앨런은 여전히 조제를 원했고 조제는 헤어질 결심을 단단히 했다.
뉴욕에서 만난 줄리어스는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충실히 했다. 조제와 함께 해변을 거닐고 휴식을 취했다. 그곳에서 조제는 줄리어스가 신경안정제와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줄리우스가 해변에서 쓰러졌다. 줄리우스의 약한 모습에 조제는 놀랐지만 그의 청혼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돌아온 파리에서 그들은 여전히 좋은 사이로 지냈다. 하지만 조제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등장했다. 시골에 사는 수의사 ‘루이’였다. 조제와 루이는 사랑에 빠졌다. 파리와 시골이라는 거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루이와의 만남으로 줄리우스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루이와의 관계를 알려야 하는 게 중요했다. 그러던 차 조제는 잡지사에서 멋진 제안을 받았고 기뻐함과 동시에 줄리우스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내가 본 것은 언제나 그의 옆모습이었다. 그는 몸짓이 없고 눈길이 없는 남자였다. 또한 앨렌에게 감금이 된 나, 뉴욕의 호텔에서 눈물에 젖은 나, 해변의 피아니스트에게 매혹된 나를 본 남자였다. 나에 대한 특별한, 멜로드라마적인 어떤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남자였다. (210쪽)
그렇다. 자신이 누렸던 모든 것이 그로부터 나왔다는 걸 알았다. 이제야 조제는 자신이 잘 안다고 여긴 줄리우스를 생각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달랐다.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조제는 바로 잡지사를 나와 집을 떠났다. 루이가 있는 시골로 향했다. 줄리우스의 연락은 차단했다. 루이와 함께 살면서 아이를 갖은 조제는 파리 근교로 이사할 계획을 세운다. 모든 게 완벽했기에 파리에서 줄리우스를 만났을 때도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줄리우스는 조제가 자신에게 돌아온 것으로 착각했다. 심지어 루이의 아이를 가졌다고 했는데도 조제와 아이가 모든 자신 거라고 울부짖었다. 조제는 경악했다. 세상에나 줄리우스도 앨런과 다르지 않았다. 두 달 후 줄리우스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지독히도 평행이고 지독히도 낯선 서로의 인생 속을 지나갔다. 우리는 오직 옆모습으로만 서로를 보았고, 결코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소유하기만을 꿈꾸었고, 나는 그에게서 달아나기만을 꿈꾸었다. 그게 전부였다. (233쪽)
프랑수아즈 사강은 언제나 사랑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잃어버린 옆모습』에서 앨런과 줄리우스는 조제를 사랑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부를 걸어 사랑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사랑이 아니다. 1974년에 발표될 당시에는 사랑으로 인정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22년 현재 앨런과 줄리우스의 말과 행동은 가스라이팅과 폭력에 해당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구속하는 건 범죄일 뿐이다. 일방적인 강요나 설득이 아닌 서로가 교감하고 감정을 인정하는 게 사랑이다. 루이와 조제의 사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