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젖은 수건처럼 널브러져 지낸다. 친구는 내 말을 믿지 않지만 진정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다. 더위가 너무 힘들어서, 쨍쨍한 햇볕과 최선을 다해 울어대는 매미의 소리에 지쳐서 하루하루를 그냥 보낸다. 분명 후회하겠지만 그건 그때의 내가 알아서 해주길 바라며.
그래도 조금씩 날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이상한 정도다. 밤에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지내는 날이 생겼다. 말복인 내일이 지나면 그날들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더위가 사라진 건 아니고 나의 콧잔등에 땀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입추가 어제였고 가을은 아직 멀리 있다. 알고 있다. 그래도 기다린다. 여름과 겨울엔 다음 계절을 애타게 기다린다. 하나의 계절에 우뚝 멈춰 선 것처럼 보이지만 계절은 흐르고 계절은 이동하니까. 읽지 않으면서 책을 사는 마음은 버려야 할 욕심이지만 책을 샀다.

공현진의 소설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표지가 너무 좋지 않은가. 이 계절과 딱 맞는 표지에 표제작인 단편이 좋았던 기억에 남아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 로베르트 발저의 『장미』의 표지도 근사하지 않은가. 잠자냥 님의 리뷰가 좋아서 더욱 궁금하다. 발저의 다른 책이 책장에 있고 읽지 못했지만 우선은 장미에 눈길이 간다.
작년에는 복날 삼계탕을 직접 끓여먹느라 고생했지만 올해의 말복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치킨을 주문할까 생각 중이다. 폭염과 폭우가 이어진다. 적당한 더위, 적당한 비는 이제 만날 수 없다. 시원한 소나기를 만날 수 없는 여름이 돼버렸다. 과해서 힘든 여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