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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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근대의 틀을 벗어나 현대로 가기 위해 몸부림칠 때, 클림트는 고전보다 더 먼 과거, 더 먼 세계로 역영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맥질했을 것이다. 그의 영감의 원천은 동시대 화가들의 작품이 아니라 이집트의 상형문자, 미케네와 아시리아 문명의 문양, 라벤나의 모자이크에서 나왔다. 다른 화가들이 햇빛의 인상이나 형태의 주관적 모습을 고민하고 있을 때 클림트는 오직 장식에 집착하고 있었다. (280쪽)

첫눈에 반한 그림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에 대한 느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로잡혔다고 말할 수 있는 그림 말이다. 묘하게 끌리는 그림, 클림트의 그림이 그러하다. 자꾸만 시선이 머무는 그림, 무엇이 그토록 우리를 사로잡았을까? 클림트가 그런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독특한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간직한 화가, 그를 만나러 빈으로 떠난 전원경을 따라 그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나는 클림트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사생활이 복잡했다는 것 정도만 들었을 뿐이다. 이 역시 소문 비슷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의 가족, 그의 연인, 그가 사랑한 것들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클림트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은 흥미로웠고 이 한 권의 책으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선 것 같아 즐거웠다. 클림트의 그림을 떠올리면 황금빛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게 금 세공업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이라니. 어쩌면 그를 둘러싼 가족과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데 화려한 색감과 클림트의 그림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더욱 놀라웠던 건 빈 장식공예학교 학생 신분인 어린 나이에 예술가 컴퍼니를 창립했다는 것이다. 두려움이라곤 없었던 클림트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런 도전과 혁신적인 클림트를 생각하면 19세기 말, 과거를 지향하는 듯했던 도시 빈을 떠나 새로운 이상향을 찾았을 것 같은데 아니었다. 클림트에게 빈은 그 자체로 그의 삶을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이 전부였다.

이 책의 시작도 그러하다. 빈이라는 도시와 가족. 빈의 클림트 빌라, 부르크 극장, 빈 미술사 박물관, 빈 분리파 회관 제체시온, 이탈리아 라벤나, 아터 호스의 클림트 센터로 이어져 클림트의 삶과 그의 그림을 보여준다. 예술가 컴퍼니가 의뢰받은 천장화로 인해 빈에서 입지를 굳혔고 새로운 개혁의 의지는 빈 대학 천장화의 스케치에서 대한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클림트의 확고한 의지는 스물세 명의 예술가들과 ‘빈 분리파’를 결성하여 활동으로 이어진다.

내게 중요한 점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그림을 좋아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내 그림을 좋아하는가 하는 문제다. - (《비너 모르겐차이퉁》, 1901년 3월 22일 - 94쪽)

책에서 본 클림트는 큰 키의 우람한 외모를 가졌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연약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와 남동생의 죽음을 경험하면서도 심리적으로 불안했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힘들어했다. 그가 가족이자 연인이었던 에밀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찾은 이름도 에밀리였으니까. 정신적 지주였던 에밀리에게 자신의 모든 걸 남겼다는 게 이해가 된다.

책을 통해 클림트의 그림에 대한 해설을 드는 건 기대 이상의 즐거움이었다. 겨우 책을 통해서만 접해지만 길이 34미터에 달하는 <베토벤 프리즈>는 정말 아름다웠고 놀라웠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의 경이로움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클림트 그 이름 자체가 유니크한 세계라는 걸 실감한다. 아름다운 초상화가 변화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기묘하면서도 점점 더 황홀해지는 작품.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리면서 클림트가 빠져든 건 무엇일까, 궁금할 뿐이다.

에밀리와 여름을 보낸 아트 호수에 대한 부분도 무척 좋았다. 클림트의 풍경화는 정말 매력적이다. 좀 더 많은 풍경화가 수록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책이라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클림트가 살아온 삶에 대한 이해와 그가 지향한 그림의 세계가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여전히 우리를 미혹하는 클림트의 그림, 그 안에서 그가 영원히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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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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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죽었다. 죽은 언니를 발견한 건 안타깝게도 동생이다. 잔혹하고 처참한 모습이 언니의 마지막이었다. 동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느 주말과 다름없었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언니가 살고 있는 말로로 향한다. 역에서 언니를 볼 수 없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간호사 업무가 많거나 반려견 페노와 함께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노라는 그저 언니 레이첼을 빨리 만나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노라가 마주한 건 언니와 페노의 죽음이었다. 이제 노라에게 중요한 건 범인을 잡는 일이다.

경찰이 조사를 시작했고 형사는 노라에게 질문을 한다. 언니를 해칠 만한 이가 있는지, 언니에게 어떤 변화가 느껴졌는지,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묻는다. 노라는 언니에 대해 자신이 아는 사실을 모두 말한다. 과거 15년 전 열일곱 살의 언니가 폭행을 당한 사실, 결혼을 하려고 했던 남자가 있었다는 것, 간호사로 일하면서 피곤해한 점. 그러나 그런 것들은 범인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이 들려준 일들이 더욱 놀라웠다. 페노는 보통의 애완견이 아니라 방범용으로 훈련된 개였고 언니는 말로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노라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범죄현장인 언니의 집으로 갈 수 없는 노라는 경찰이 구해준 헌터스에 머물면서 범인을 찾기로 한다. 15년 전 그 남자가 언니를 살해한 범인이라고 확신하면서 말이다.

 

언니의 집에 방문한 사람, 이웃, 모두가 다 의심스럽다. 노라는 언니의 집 주변에서 언니를 관찰하고 지켜본 이의 흔적으로 보이는 담배꽁초를 발견한다. 하지만 경찰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15년 전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술에 취한 십 대 소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았다. 언니의 행동이 불량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후로 레이첼과 노라는 비슷한 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마다 법원을 찾았다. 그러나 언니를 폭행한 범인은 찾을 수 없었다. 노라는 이번에도 범인을 잡지 못할까 봐 불안했다. 언니가 지났을 거리, 언니가 만났을 동네 사람들을 관찰하고 접근을 시도한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레이첼과 어떤 사이였는지 파고든다. 노라의 용의주도함과 집요함에 빠져들게 된다. 그들 가운데 범인이 있을까. 레이첼을 왜 죽였을까. 범인에 대한 궁금증과 용의자를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때문에 누군가는 이 소설을 심리 스릴러, 추리 소설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언니 생각을 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추억 하나가 꼬리를 물고 다른 추억으로 이어지고, 시간은 전혀 흐를지 않는 것만 같다. (202쪽) ​

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언니를 꼭 껴안았을 때 느꼈지던 언니의 체중이 기억난다. 시간이 느릿느릿 흐른다. (273쪽)

 

하지만 이 소설에서 돋보이는 건 노라와 레이첼이 함께 보낸 시간이다. 노라의 시선에 따라 레이첼의 삶을 들여다보며 둘만의 추억과 상처를 보여준다. 십 대 소녀 시절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울다 웃고 싸우기도 했던 시절, 같이 먹었던 음식, 같이 본 풍경, 바다. 알코올중독이었던 아버지는 그들에게 울타리가 되지 않았고 오직 자매만이 서로의 보호자였다. 레이첼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라는 도왔고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둘 사이에는 묘한 갈등이 있었고 그것은 노라가 범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키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폭행, 살인, 스토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오는 이야기, 단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소설이다.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보다는 죽은 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압도적인 소설이라 해도 좋겠다. 작가는 상실감에 빠진 노라의 감정을 섬세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내 전달한다. 멈춰진 레이첼의 일상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애절한 슬픔이 통증으로 남을 뿐이다.

빨간 립스틱을 좋아하는 언니는 앞으로 다시는 손등에 여러 가지 립스틱을 발라보며 약국 진열장 앞에 서 있지 못할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개봉하면 휴일에 보려고 했던 영화도 못 볼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좋아하는 판 콘 토마테를, 퇴근 후 토마토와 마늘을 으깨고 올리브오일을 뿌린 다음, 구운 빵에 문질러 그걸 부엌에서 선 채로 먹는 일도 없을 것이다.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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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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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소설 속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동병상련, 혹은 그래도 그들보다는 나은 것 같다는 나름의 위안. 아니면 단순한 재미와 즐거움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장류진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즐거움』을 읽으면서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알려진 대로 소설은 잘 읽혔다. 지루하거나 무겁지도 않고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아도 될 그 정도였다. 그러나 앞선 독자나 출판사, 언론의 칭찬은 과한 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건 맞다. 그러나 특정 세대, 그러니까 딱 30대를 위한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작가가 자기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소설에 풀어냈고 그 역시 30대이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소설의 소재나 작가의 시선은 신선하다 할 수 있다.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월급이 고스란히 포인트로 적립되었다는 것, 직장 생활의 고단함과 월급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시대가 다르지만 직장인의 스트레스는 여전하니까. 입으로는 모두 등등한 수평적 관계를 유지한다고 하면서도 지위의 권력을 놓으려 하지 않는 모습과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한 후에야 가능할 것 같은 복지에 대한 약속은 씁쓸했다. 제목에서 어떤 공포를 짐작할 수 있는 「새벽의 방문자들」는 혼자 사는 여성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택배 주문 시 수령인의 남자 이름으로 하거나 무인 택배함을 이용하는 일, 엘리베이터를 혼자 탈 수 없는 두려움. 인상적이었던 건 새벽에 소설 속 주인공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을 찾아오는 남자들의 평범함, 그것을 사회적 문제인 성매매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저 하나의 상황을 확장시켜 이야기로 만든다는 점이 장류진의 장점일 것이다.

 

수없이 많은 이력서와 자소서를 쓰고 아르바이트와 계약직을 전전하다 드디어 첫 출근길 아침 풍경을 묘사한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과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직장동료의 결혼 준비를 들려주는 「잘 살겠습니다」, 그리고 결혼 칠 년 만에 장만한 집에 대한 애착과 그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들인 도우미와의 갈등을 그린 「도움의 손길」은 가장 보편적인 청년의 모습으로 보였다. 급여를 30일로 쪼개어 하루 평균 지출비용을 정하고 살아야 하는 마음, 받음만큼만 돌려주겠다는 의도, 부모 세대의 관심을 간섭으로 여기는 태도. 「도움의 손길」의 경우, 독자가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와 반전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장류진이 소설에서 그들의 깊은 고민이 너무 가볍게 표현된다는 점이다. 그 가벼움의 무게를 내가 체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꿈을 위해 현실과 타협할 수 없어 하루하루 위태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년의 일상인 「다소 낮음」, 반대로 다큐멘터리 피디가 뒤고 싶었지만 현실은 식품회사의 회계팀 취직한 「탐페레 공항」에서는 이전 소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탐페레 공항」에서 화자는 이력을 위해 졸업 전 휴학을 하고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한 더블린으로 가는 도중에 경유지인 핀란드 탐페레 공함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짧은 시간 만난 노인에 대한 기억이 찌들어가는 현실을 울컥하게 만든다. 안정적인 직장 생활의 숨 막히는 현실과 불안정한 감정의 조화가 나쁘지 않았다.

 

어떤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결국엔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좋은 소설이 나에게도 해당될 수는 없다. 베스트셀러가 모두 좋은 소설이 아니듯 말이다.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처음 맛본 음식과도 같았다. 설렘과 기대가 있었다. 나중에 다시 찾을 음식일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처음이라 그렇다고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그런 즐거움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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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5-0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서 마음에 남는 무언가가 거의 없는 그런 책이었던 거 같아요. ㅎㅎ

자목련 2020-05-12 16:50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모두 다 좋다고 하는 소설인데, 저만 이상한가 싶기도 하고. ㅎ

수다맨 2020-05-13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은 고민이 너무나 가볍게 표현된다‘라는 표현에 크게 동의합니다. 디테일을 다루는 솜씨는 뛰어난데 작가가 추구하는 창작의 방향이 직장인들의 속물성이나, 삼십대 여성의 전형성을 포착하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꽤 괜찮은 수준의 세태소설들의 모음집‘이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만 깊은 호감이 가지는 않더군요.

자목련 2020-05-15 10:35   좋아요 0 | URL
네, 특정 세대의 이야기를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 안에서도 몇 몇 집단과 부류만 집중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 소설집 외에 다른 곳에서 만난 단편에서도 그런 느낌이 이어지니 당분간 이 작가에 대한 관심은 없을 듯해요. 비 오는 금요일, 건강하고 편안하게 보내세요^^*

야툽 2020-05-18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류진 작가의 다른 단편을 읽고 싶어도 ‘냉장고장고장고 고장은 아닐거야‘의 후유증이 너무 커서 못 읽고 있습니다. 남는 게 없다는 점이 이 책을 비판하는 독자들의 공통점이네요.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많이 읽은 소설이라지만 저는 오히려 깊이가 없어 충격이었습니다

자목련 2020-05-20 15:55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장류진 작가의 등단 당시 출판사와 언론의 찬사 때문에 얼마나 대단한가 싶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랬어요. 너무 쉽고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출신
사샤 스타니시치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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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이에게서 혹 만난 적이 있냐는 질문을 받은 횟수가 적지 않다. 호감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불쾌하다. 특별해지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를 특정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불편해하는 나를 눈치채지 못한 상대는 학교나 직장, 지역에 대한 질문을 계속한다. 공통점을 발견하는 일은 좋은 일일까. 아무런 정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일은 어려운 것일까. 가만히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린다. 이름, 성별, 나이, 고향, 가족관계,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로 시작한다. 다른 건 무엇이 있을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나열, 친구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기억들, 이 정도뿐 더 확장되지 않는다. 상급 학교에 진학했을 때, 사회생활을 하면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지금의 나에 대해, 나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 적이 없다. 그러니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지 않았고 돌아가시기 전 약간의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기억을 붙잡으려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냥 지금의 나이기 때문이다. 『출신』의 작가 사샤 스타니시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태어난 나라에서 성장하고 그곳에서 원하는 삶을 살았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의 이력을 가질 수 없었다. 열네 살의 나이에 1992년 보스니아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난민 출신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현재의 나를 이야기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과거에서 이어진 나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살아오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그들과의 추억을 꺼내야 한다. 때로는 상처와 아픔이 나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것은 친절한 시간은 아닐 것이다. 삶에 있어 불친절했던 시간들을 소환하는 일, 그것이 바로 출신에 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현재 2018년 3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화자인 ‘나’가 독일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재가 아닌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할머니와 자필 이력서를 쓰는 ‘나’가 기억하는 과거는 같은 듯 다르다. 할머니의 기억에는 ‘나’가 태어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비셰그라드의 모든 것이 있다. 용을 퇴치한 전설이 있고, 조상들을 묘신 공동묘지가 있고, 전쟁에 대한 기억이 있다. ‘나’에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춤을 추는 모습, 어머니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 사촌들과 놀았던 선명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 ‘나’는 그곳이 아닌 독일에서 보낸 날들에 대한 기억이 촘촘하게 박혔다.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낯선 곳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에 둘러싸여 사춘기를 보내야 한다면 어떨까. 다시 처음부터 독일어를 배우고 친구를 사귀면서도 적응하면 할수록 더욱 살아나는 이방인이라는 자각은 어쩔 수 없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집 안에는 재활용 쓰레기 더미에서 구한 물건이 있고 힘들어하는 부모님을 마주하는 일은 열네 살 소년이 감당할 수 있는 일상이 아니다.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하루하루 공사장을 전전하는 아버지가 자신에게는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기에 더욱 방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이델베르크에서 보낸 시절이 나쁜 건 아니다. ‘나’와 같은 형편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그대로 이해하고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 아지트였던 아랄 주유소에 모였던 이들, 여자친구 리케,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치아를 치료해 준 하이마트 박사. 어디서든 하루를 견디고 지탱할 수 있는 누군가가 존재했다. 나쁨이 아니라 좋음, 절망과 분노가 아니라 단순한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그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편견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또 공격적이고 야만스럽고 불법적이지 않은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알뿌리와 싹, 다른 식물에 붙어사는 식물. 엄밀히 말하자면, 본의 아니게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없는 우리는 어디에 있든 늘 하던 대로 행동하면서 계몽 의식을 고취시키고 있었다. (210쪽)

 

나의 반항은 출신의 숭배뿐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속감은 지지했다. 나를 원하고 내가 있고 싶은 곳에서는 소속감을 갖고 싶었다.(295쪽)

 

결국엔 그 모든 것이 ‘나’를 도왔고 완성시켰다. 나를 이야기한다는 건, 나를 존재하게 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자인 ‘나’가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과거를 함께 탐험하고 그것을 기록하면서 점점 자신의 뿌리에 대해 다가가는 모든 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발견하는 건 당연하다. 할머니에게 이끌려 방문한 오스코루샤에서 만난 친척 가브릴로 노인에게 듣는 이야기가 나의 역사인 것이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조상들의 이야기와 상상할 수 없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 그 모든 것이 ‘출신’이다. 조금은 복잡하고 난해하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은 이 두 문장으로 가장 완벽하다. 설명할 수 없는 뜨겁고 거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들이 뛰쳐나와 온전한 형상으로 존재한다고 할까.

 

나의 할머니가, 그리고 할머니만 볼 수 있는 거리의 소녀가 바로 ‘출신’이다. (88쪽)

 

어머니에게 출신은, 고향 땅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움찔하는 몸짓 같은 것이다. (162쪽)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건 아니다. 치매로 인해 과거를 헤매다 죽음을 맞는 할머니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삶에는 여전히 부재로 존재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 누군가에는 소중한 이가, 누군가에게는 특정한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다른 것으로 채워진 어떤 공간이, 누군가에는 어떤 나라가 그럴 것이다. 사샤 스타니시치의 소설을 통해 나의 근원을 돌아본다. 내가 놓친 그것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가 남긴 사진을 찾는다. 나와 닮은 구석은 어디인가, 전혀 나 같지 않은 얼굴과 표정. 어떤 과거를 살았든 여기저기 부유하는 시간을 보냈든 중요한 건 그들이다. 그들의 이름과 얼굴이 나의 출신이다. 존재의 시작은 어디인가, 끊임없이 묻고 고뇌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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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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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강화길의 <음복>은 다시 읽으니 더 선명해지고,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는 고유한 작가의 결이 보인다고 할가. 여하튼 괜찮았다. 김초엽도 나쁘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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