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것이 나쁜 일에 국한된 건 아니다. 말하고 싶은 순간이 오지 않았을 뿐, 말하고 싶은 때가 오면 말하게 되는 것들이다. 누군가 그 말을 재촉한다. 누군가 그 말을 강요한다. 가깝다는 이유로, 자신이 그것에 대해 안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들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좋은 의도라는 걸 알면서도 선뜻 말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저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그게 전부라는 걸 사람들은 의심한다.


이주란의 단편집 『별일은 없고요?』은 그런 마음을 안다고 말한다. 그런 마음이어도 괜찮다고, 과장된 표현을 요구하거나 속내를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이다. 이주란의 단편은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가라앉은 마음이나 지그시 누른 슬픔 같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소설집을 읽는 게 답답하거나 불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주란의 소설은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 사고, 이별을 암시할 뿐 자세한 내막은 들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 아직은 때가 오지 않는 말들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표제작 「별일은 없고요?」를 포함한 8개의 단편 가운데 몇 편은 두 번째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바로 그 사실을 알아차린 단편도 있고 중반 이상 읽고서 기억한 단편도 있다. 이주란 소설의 특징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그리는 것, 그 안의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것, 전반적으로 상실을 다루지만 지독한 슬픔을 뿜어내지는 않는다고 할까. 그래서 한편으로는 돌림노래나 도돌이표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삶이란 반복적인 돌림노래와 비슷하지 않는가. 관계는 늘 어렵고 쉽게 오해하는 대신 오해를 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면서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 상대를 안다고 생각한 마음이 얼마나 오만한가, 얼마나 부족한가 깨닫기도 한다.


이주란의 소설은 그런 마음을 인정하라고 괜찮다고 위로한다. 마음이 기우는 대로 말하고 싶은 때가 오면, 지금이 아니라 그때 말해도 괜찮다고 말이다. 표제작 「별일은 없고요?」에서 수연은 연인과 헤어지고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가 일하는 지방의 원룸으로 온다. 낯선 동네를 오가며 산책하고 엄마가 밥을 해주는 곳에서 일하는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두 번째 읽으면서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새집이어도, 아무튼 언젠가 그 방에서도 누군가는 죽을 수 있어.” (25쪽)


누군가는 죽을 수 있다는 건 모두가 죽을 수 있다는 것, 죽음과 상실이었다. 「별일은 없고요?」의 뒷이야기처럼 여겨지만 인물의 이름은 다른 「사람들은」에서는 얼마 전 엄마를 잃은 은영의 집에 직장 동료였던 은영이 며칠 신세를 지겠다고 연락이 온다. 집 주인인 은영이 일하러 나간 사이 은영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데, 나중에 은영의 엄마도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상실을 겪은 이에게 잦은 안부를 묻고 괜찮냐고 묻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정말 그럴까. 혼자만의 방식과 애도의 기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두 은영이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애도를 하는 「어른」 속 경아의 곁에는 아줌마가 있다.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관계지만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고 시골 동네를 산책하고 두부를 사러 가고 곁에 머물러 주는 어른이다. “울고 싶은 만큼 울었어?”(103쪽)라고 물어주며 아줌마는 돌아가신 고모 이야기를 꺼내며 경아에게 “마음 놓고 울라는 거야”(104쪽)란 마음을 건넨다. 아줌마와 지내며 아줌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인해 경아는 위로를 받는다.


아줌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나눠 받고 있다는 무자비한 따뜻함 때문이었다. ( 「어른」, 114쪽)


그런가 하면 남편을 잃고 대학 후배의 집에서 지내는 「파주에 있는」 현경은 매일 후배가 전하는 안부와 염려를 받는다. 집 밖을 나가지 않는 현경은 첫사랑이었던 재한의 메일을 받고 외출을 한다.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며 사람들의 분주함을 마주한다. 재한은 소소한 일상을 건네며 그저 곁에서 걸어준다. 그리고 헤어질 때 잘 살라고 말한다. “잘. 잘 살아야 돼.” (275쪽)라는 그 말에 담긴 진심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이주란의 소설은 밋밋하다고 할 수도 있다. 사건의 개요나 핵심 설명은 찾을 수 없다. 그러니까 폭풍이 몰아치는 순간이 아닌 그 이후의 감정들에 집중한다고 할까. 그 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보내야 할 삶이고 버티고 견뎌내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실의 슬픔, 부족한 애도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그것이 지독한 슬픔이라 할지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들은 말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말하지 않고.


그러고 싶으니까 그러는 것 같아.

응?

결국엔 자기가 결정하는 거지.

뭘?

행동, 태도, 반은, 그러니까…… 모든 것.

모든 것?……

거의 대부분.

마음이 어떤 쪽으로 아주 많이 기울면 어쩔 방도가 없잖아. (서울의 저녁」, 21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