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안 죽어 - 오늘 하루도 기꺼이 버텨낸 나와 당신의 소생 기록
김시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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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개나리를 연상시키는 표지에 절로 시선이 멈춘다. 거기다 제목까지 독특하다. 그런데 나는 왜『괜찮아, 안 죽어』를 ‘괜찮아, 죽지 마’로 읽었는지 모르겠다. 응급실에서 죽음의 고비를 마주한 환자를 상대했던 저자의 이력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급한 마음에 말하자면 이 책은 너무 유쾌하고 따뜻하다. 동네 병원의 일상이라고 할까. 아니면 단골 할매 환자들이 들려주는 굴곡진 인생의 맛이라고 할까. 뭐라 표현하든 상관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면 기분 좋은 에너지가 내 안에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다.

 

의사라는 직업은 뭔가 권위적이고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동네 의원에서 만나는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씩 혈압약을 처방받으러 오는 할머니, 감기 때문에 오거나 그냥 안부를 전하러 오는 환자들의 수다를 들어주는 아들 같은 원장 선생님이었다. 처음부터 환자들과 친밀한 사이였던 건 아니다. 2층에 위치한 병원에 힘들게 찾아오는 할머니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들의 사정에 귀를 기울이면서부터다. 그러니 홍시를 주고 내려갔다가 똑바로 세워서 보관하라는 말을 하기 위해 다시 올라오는 마음, 뜨거운 옥수수 바로 먹어야 맛있다며 가지고 온 정성을 어찌 마다할 수 있을까.

잘 쓰려고 애쓴 모양도 없이 보통의 일상이라서, 평범한 하루하루가 쌓인 이야기라서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작은 읍에 사는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라 더욱 그랬다. 대기실에서 처음 만나 할머니들은 바로 언니 동생이 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궁금하지 않은 당신들의 사연을 풀어놓는데 전혀 이상하지 않다. 돌아가신 할머니, 내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마 그들과 같지 않을까 잠깐 상상하는 시간.

“환자한테 이거 하지 말라 저거 하지 말라 그러지 마.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재밌게 살다 죽는 게, 먹고 싶은 거 힘들게 참으면서 오래 사는 거보다 백배는 더 좋아. 그니까 나 맥심도 마실 거고, 떡도 먹을 거야. 커피 달달하게 타서 백설기하고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지?” (74쪽)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은 아니지만 어디서나 죽음은 존재한다. 동네 병원에서도 그러하다. 그 안에서 사소한 즐거움을 발견하는 환자와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의사가 있다. 당뇨, 혈압처럼 평생 먹어야 하는 병과 동행하는 삶을 곁에서 지켜본다. 죽음과 친구가 되어 살아가는 노년의 삶, 그들에게서 듣는 고단한 인생은 때로 눈물겹고 때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그들만이 알려주는 생의 기쁨은 또 얼마나 크고 다양한가. 남겨질 아내가 불편 없이 약을 처방받기를 바라며 사전답사 격으로 병원을 찾은 할아버지의 애틋한 사랑, 학생 환자였다가 대학생이 되고 취직을 하여 소식을 전하러 온 청춘, 저자에게 모두 특별하고 소중한 환자였다.

 

응급실처럼 다급한 움직임은 아니지만 정겨운 소란이 끊이지 않는 그곳. 나도 한번 그들의 틈에 끼어 웃고 싶다. 그들이 일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들려주는 멋진 하모니가 아름답다. 괜히 화가 나고 사는 게 우울한 날, 들을 수 없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리운 날, 슬그머니 펼치면 좋을 책이다. ‘정’이라는 폭죽이 만든 불꽃이 환한 빛을 안겨줄 테니까.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의료진의 노고를 생각한다. 더불어 그들과 우리의 일상이 보통의 그것으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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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미즈키 히로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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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직원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언제나 그렇듯 서로가 원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시급의 상승은 소규모 사업장을 운영하는 이들과 영세 자영업자에게는 많은 부담이 된다고 들었다. 더 좋은 사회로 나가기 위한 제도이지만 보완해할 점이 아직 많은 듯하다. 노동 현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받고 일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체감하기는 어렵다고 할까. 조카의 경우도 그랬다.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지만 그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지 못했다. 조카는 자신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러니까 노무사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회사가 지급하지 않으려 했던 급여를 받은 것이다. 미즈키 히로미의『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를 읽으면서 조카의 일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노사 간의 대화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 발생하는 일들은 이미 익숙하다.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 시위 현장이나 긴 줄다리기 끝에 극적인 타협을 이룬 결과나 법정 분쟁으로도 해결이 나지 않아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접했기 때문이다. 노사 간의 대립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게 노무사가 아닐까 싶다.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서로에게 최선의 방법을 제시하는 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이 책은 재미없고 딱딱한 업무에 관한 설명서가 아닐까 예상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내용이 맞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직장 내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적절한 거리 조절에 대한 조언이라고 할까. 


책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주인공 히나코는 신입 사회보험노무사다. 그녀는 직원이 네 명인 야마다노무사사무소에서 일한다. 정식 직원이 아닌 파견직으로 일했던 히나코는 노무사 자격증을 땄다. 3개월마다 갱신되던 파견직에 대한 불안이 공부를 하게 만들었다. 히나코의 업무는 사무소에 일을 의뢰한 클라이언트(그러니까 사 측)를 만나 업무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책은 연작 소설의 형식으로 히나코에게 배당된 업무를 소개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6개의 사연은 우리네 직장에서 만나는 동료이거나 주변의 친구의 경우처럼 익숙하다. 


첫 번째는 퇴사 후 발생하는 실업수당에 관한 이야기로 어떤 형태로 퇴사를 했는지가 관건이다. 책의 사례의 경우는 부당 해고의 경우 실업수당이 바로 지급되는 것으로 나온다. 회사의 경우는 자발적인 퇴사라 주장하고 퇴사자는 부당 해고라 주장하니 그 사실 확인을 밝혀야 한다. 사 측에 고용되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사 측의 편에서 일을 진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다양한 조사가 필요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다가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 원하지 않게 퇴사를 한 친구가 생각났다. 친구는 실업급여를 잘 받고 있을까. 


두 번째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에게 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며 많은 업무를 할당하는 점장이 등장한다. 열심히 일하면 계약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는 아르바이트생은 조카를 보는 듯해 많이 속상했다. 열정페이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세 번째로 기업의 취업규칙을 정하는 데 있어 회사에 유리하게 하려고 임신, 출산에 대한 조항을 교묘하게 조절하는 사연에는 분노가 폭발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 더 좋은 복지를 배려하는 게 아니라 임신한 직원으로 다른 직원의 업무가 많아진다고 직원들을 이간질하는 사장이라니. 결혼 후 육아로 인해 경단녀가 된 수많은 엄마들이 분개할 사연이다. 그 외에도 산업재해에 대한 정의와 해석, 부서마다 다른 업무로 인한 재량 노동시간 적용을 두고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있다.


히나코는 노무사 이전에 파견직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사업자와 근로자의 사이를 조율하면서 조금씩 성장한다. 사적인 감정을 빼고 객관적으로 그들을 볼 수 있는 능력 말이다. 법을 지키면서 노사가 모두 원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는 노무사란 직업이 참 좋은 것 같다. 현장에서 느끼는 피로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도 히나코의“일의 보람이란 사실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그 일로 감사를 받는 것.” (315쪽)말처럼 노무사란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니 멋진 일이 아닐까 싶다.


고용주는 고용주대로, 직원은 직원대로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바라는 목적이 있기에 노무사의 역할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모두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는 사연이다. 내 주변의 누군가는 사장이고 다른 누군가는 직원이니까. 이런 유용한 내용을 적절한 재미와 함께 읽을 수 있는 한국판 노무사의 이야기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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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수전 팔루디 지음, 손희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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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이나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수전 팔루디의 저서는 필독서라고 알고 있다. 나는 그녀가 어떤 형태로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잘 모른다. 여성운동, 여성학,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나 에세이를 접한 게 전부다. 그러니 내게는 수전 팔루디의 『다크룸』을 읽는 일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읽은 건 아니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폭력적이고 무서운 아버지가 엄마와 이혼 후 오랜 시간 연락을 끊고 지낸 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때문이다. 안부가 아니라 자신의 근황에 대해 설명한 편지였다.

 

저자는 2004년 여름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발신자는 아버지였고 내용은 자신이 태국에서 성전환수술을 받았고 현재 여성으로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으니 이름도 이제는 '스티브 팔루디'가 아닌 '스테파니 팔루디'라고 말이다. 아버지는 미국이 아닌 헝가리에 거주하고 있었고 저자는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아버지와 딸의 만남이 아닌 그녀와 나의 만남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수술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고 현재 여성으로의 삶에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여성인 자신에게 친절하고 배려하는 태도에 좋아했다. 70세가 넘은 여성에게 친절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말이다. 그녀의 집에는 여성스러운 옷이 가득했고 사진도 많았다. 마치 한 단 번도 남성으로 살아오지 않은 것처럼. 그러나 그녀에게는 여전히 과거 아버지가 보였던 성향도 존재했다.

 

저자는 아버지의 결정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가장이었고 마초맨 그 자체였다. 무엇이 그를 여성으로 살고자 했을까. 저자는 태국에서 수술 후 회복을 도와준 아버지의 지인들과 아버지와 같은 사례를 분석한다. 성전환 수술을 했지만 완전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신체적인 외형은 다른 성으로 바꿀 수 있겠지만 내면에는 항상 정체성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수술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나 사회적 시선, 그 모든 것들은 그들에게 감내하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중성인 것 같아요, 하지만 중성이 되지 싶지는 않아요.” “사람들은 구분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경계에 있는 사람들조차 구분이 필요하죠. 그래야 경계에 있을 수 있잖아요. 정체성이 있어야 해요.” (217쪽)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정체성’이다. 저자가 아버지인 그녀와 헝가리에서 그녀의 과거에 대해 추적하면서 마주하는 그녀의 삶은 고통과 혼란 그 자체였다. 아니,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헝가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그에게 애정을 쏟지 않았다. 부모의 이혼 위기에서 자신의 존재로 인해 재결합을 했다는 걸 말하면서는 딸인 저자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자신은 가정을 지켰지만 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딸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고 아버지를 버렸다고 화를 냈다. 아버지가 감추고 싶었던 그녀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다. 헝가리를 점령한 나치는 유대인을 수용소로 보냈고 그곳에서 많은 이들이 죽었다. 아버지의 가족도 전쟁에서 죽음을 맞았다. 당시 아버지는 유대인인 아닌 나치를 선택했고 나치 행세를 하면서 그의 부모를 구했다. 그리고 이후에 헝가리를 떠나 덴마크, 브라질, 미국으로 왔다. 유대인이었지만 철저하게 자신을 속여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 미국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만난 어머니와 결혼 후에는 미국 사회가 원하는 삶을 선택했다. 이 역시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정체성은 사회가 너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야. 사람들이 인정한 대로 행동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적이 생긴단다. 나는 그렇게 살았어. 그래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지.” (517쪽)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헝가리의 역사를 알아야 했다. 책에는 헝가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설명한다. 전쟁 당시 유대인의 실상, 정권의 흐름, 그리고 아버지가 거주하는 현재의 헝가리의 상황까지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꺼내기 싫어하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저자는 아버지의 친구와 친척들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두 번의 아이를 잃고 얻은 아들을 냉대한 어머니. 자신들을 나치로부터 탈출하게 만든 아들에게 유산으로 천 원도 안 되는 금액의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까지.

 

2004년부터 10년에 걸쳐 헝가리를 방문해 아버지와 아버지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과거의 현장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은 600여 쪽의 이야기로 부족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헝가리의 역사에 집중할 수도 있다. 어렵기만 할 것 같았던 기대와는 달리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저자의 이야기 무척 진솔하다.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치매로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저자의 모습은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저널리스트도 아닌 그냥 아버지를 오래 돌보고 싶은 딸의 모습이다.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 그렇게나 자주 그랬던 것처럼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유대교도인가 기독교인가? 헝가리인인가 미국인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너무 많은 상반되는 것들이 함께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의 누워 있는 몸을 보면셔, 나는 생각했다. 이 우주에는 단 하나의 구분, 단 하나의 진정한 이분법이 있구나. 살과 죽음,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녹아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622~623쪽)

 

한 사람을 온전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드러난 외면으로 짐작하는 것들, 그 이면에 숨겨진 어둡고 깊은 내면을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저 가능할 거라 바라면서 더 가까이 다가가고 노력하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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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지구 벙커X - 강영숙 장편소설
강영숙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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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가 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성적 판단을 쉽게 할 수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갇히고 만다. 정부의 대책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세상에 의지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나와 같은 처지의 누군가에게 의심 없이 다가갈 수 있을까? 더 이상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는 이야기, 바로 강영숙의 『부림지구 벙커 X 』다

소설은 지진이 휩쓸고 간 부림지구의 벙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진으로 인해 도시는 무너졌고 삶은 망가졌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많은 이들이 부림지구를 떠났다. 대규모 제철 단지였지만 현재는 쇠락한 도시가 돼버렸다. 그런데다 지진 발생 후 폐허로 전락해버렸다. 정부는 부림지구를 오염된 곳으로 지정하고 사람들을 근처 N시로 이주시킨다. 주민과 협의된 사항이 아니었다. 이주 조건으로 몸에 칩을 이식해야 한다. 그들을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생존자인 이재민들은 오염된 사람들로 치부한다. 소설 속 화자인 40대 여성 유진은 부림지구에서 태어나 자랐고 떠났다가 돌아왔다. 그러니까 부림지구의 흥망성쇠의 역사와 함께 한 것이다. 유진은 지진 후 흙더미에서 구조되었고 이재민이 되어 벙커에 살게 되었다. 유진과 같이 벙커에 사는 이들은 다양하다. 인격장애를 앓는 십 대 소녀, 신문기자였던 남자, 교수 출신의 노부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 그들을 이끄는 대장, 지진 역학 조사를 하는 연구원 등이다. 소설의 초반은 유진과 연구원의 인터뷰 과정으로 지진을 겪은 이들의 심리를 상당하는데 그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다.

“지진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연구원이 물었다. 평소에 하던 어떤 놀이 경험을 떠올려보라고도 했다.

“놀이 경험요? 지진은 그냥 다 무너지는 거예요. 겪어놓고도 그렇게 말해요? 놀이에 비유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41~42쪽)

 

지진은 지진인데, 무엇을 떠올릴 수 있단 말인가. 이 부분에서 나는 몇 해 전 경험한 태풍의 공포가 살아났다. 베란다 유리창을 날려버린 태풍, 그것은 죽음이었다. 지진과 태풍 같은 재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소설 속 유진을 비롯한 이들처럼 삶을 이어갈 뿐이다. 어둡고 축축한 좁은 공간에서의 생활은 비참하다. 정부가 그들에게 지급한 건 최소의 생존 키트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부림지구의 벙커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대장을 중심으로 허물어진 도시를 돌아다니며 혹시 모를 생존자를 찾거나 먹을 것을 구한다.

​부림타운을 돌아다니는 게 하루 일과였다. 단순히 산책만 하는 것은 아니었고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살아 있는 무언가를 구하러 다녔다. 대장이 먼저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다 내가 대장을 따라나섰고, 나중엔 해나도 함께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올 때마다 나뭇가지를 이용해 벙커 개폐구를 잘 가리는 걸 잊지 않았다. 우리의 벙커는 우리가 꼭 지켜야 했다. (72쪽)

​소설을 읽는 이들은 모두 2017년에 발생한 포항의 지진을 생각할 것이다. 아니, 지금 우리에게 닥친 바이러스의 공포를 대입한다. 목적은 다르지만 방역복을 입고 벙커 주변을 다니며 이재민을 찾는 이들의 모습마저도. 유진이 살고 있는 벙커 X도 그들의 손길을 피할 수 없다. 그들 중 일부는 N 도시로 향하고 유진과 몇 명만 돌아온다. 어떤 미래도 꿈꿀 수 없는 현실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공간은 벙커가 유일했다. 정신적 안정이 가능한 장소라고 할까.

지금 내가 가진 유일한 소유물은 더러워진 정맥류 스타킹과 지진으로 인해 다 부서져버린 이 삶뿐이다. 벙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벙커에서는 그래도 좋았다. 좋았던 시간, 앞으로 그런 시간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염된 지역에 남은 우리만이 이제 부림지구의 주인이었다. (290쪽)

앞으로 어떤 재해와 재난이 우리에게 닥칠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어느 미래엔 소설과 현실을 따로 떼어낼 수 없는 날들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겪는 상황을 잘 이겨낸다 해도 미래는 희망과 공포가 함께 온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희망이 아닐까. 유진에게 벙커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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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3-17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진 같은 재해는 사람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거군요 지진이지만 지금 일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소설 속 일이 소설만은 아니다는 느낌도 들어요 지금이 지나가면 또 다른 일이 일어나겠지요 그렇다 해도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할 텐데...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라져도 살아 있다면 살아가겠지요 그게 좀 슬프기도 하지만...


희선

자목련 2020-03-18 12:0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지진은 과거의 일이고 현재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생각나요. 소설을 소설 속의 일로만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희선 님 건강하고 환한 봄날 보내세요^^*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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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주변의 반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너무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반응이다. 그것이 걱정하는 마음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래도 때로는 적극적인 관심이 피곤하다. 나의 감정도 추스르기 힘든데 그들의 감정까지 걱정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들어서다. 다른 하나는 그저 기다리는 마음이다.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보통의 일상에 대해 공유하려는 이들이다. 밥은 먹었는지, 날씨가 춥다거나 꽃이 피었다거나 하는 그런 보통의 이야기를 건넨다. 내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주기를 바라고 묻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오히려 전부다 털어놓는다. 이상한 일일까. 아닐 것이다. 섣불리 질문하기보다는 상대를 살피는 배려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기에 그렇다. 이주란의 단편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읽으면서 소설 속 화자의 주변에 그런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기다리는 일, 그냥 가만히 곁에 있어주는 일이 어려운 일도 아닌데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조급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감정의 흐름도 그렇게 흘러가길 원한다고 할까. 그래서 어떤 상처가 회복되기까지 평균 시간이 없는데도 그러기를 바라는 거다. 괜찮냐고 묻는 대신 괜찮을 거라고 단정해버리는 습관처럼 말이다. 이주란의 단편집에 등장하는 이들은 최근에 일을 그만두었거나 어떤 일로 인해 무척 힘들어하는 상태에 놓였다. 작가는 친절하게 그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상황만으로 실직을 했거나 이직을 했다는 걸 알려준다. 표제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 화자인 ‘나’ 조지영은 언니를 잃었다. 언니가 남긴 조카 송이와 엄마와 셋이서 함께 산다. 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조카 송이를 돌보며 서점에서 근무하는 모습만 볼 수 있다. 서점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 조카의 숙제를 봐주고 간식을 만들어주고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집들이 약속을 잡으며 별문제 없이 살아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곳곳에는 슬픔이 묻어난다. 새 학기를 잘 적응하는 조카를 보면 기쁘면서도 슬프다. 익숙한 듯 익숙해지지 않는 언니의 부재와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지난날들이 다시 오시 않다는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밤. 그날들은 지났고 다른 날들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사실에 잠시 안도했던 적이 있었으나 어쩌면 그 사실이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모든 날들을 비슷하게 만들며 살고 싶었다. 나 혼자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한 사람을 위한 마음」, 38쪽)

이주란의 이 소설집은 연작소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조카와 엄마가 계속 등장하고 나의 주변 인물 역시 같은 이니셜로 등장한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처럼 함께 살지 않지만 서로 집을 오가며 조카를 돌보고 나를 잘 아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는 언니가 세상을 떠났지만 「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에서는 동생인 조지영의 자살로 그녀의 언니인 조수영이 동생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H에게」에서는 수영과 지영으로 짐작할 수 있는 자매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한다. 가난한 일상, 아버지의 부재, 낡고 허름한 월세방, 불안정한 직장 생활.

최선을 다하지만 통장 잔고는 늘어나지 않고 직장동료나 친구들은 그 모든 게 내 잘못인 양 조언을 한다. 이별과 상처에 대해서도 그들의 시선으로만 상대하는 것이다. 슬픔과 고통이 같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그래서 이 소설집의 화자는 조금 달라지려고 한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걸 받아주는 일도 그만하고 싶다.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과거와는 다른 삶으로 걸어가는 느낌이다. 그 느낌은 소설을 읽는 이들에게도 전해진다.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가끔 넘어지면서 살고 싶다. 무리해서 뭔가를 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것이 싫다.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 88쪽)

나는 앞으로 정말 미안할 때만 미안하다고 말하고 살 것이다. (「일상생활」, 134쪽)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대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하다. 일부러 밝은 분위기를 유도하지 않는다. 하나의 작은 점들을 이어 선을 만들듯이 아주 천천히 회복되도록 내버려 둔다고 할까. 그런 점이 나는 더 좋았다. 뭔가 대단한 발전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는「일상생활」속 꿈 모임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미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알고 있다. 어떤 후회와 지난날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삶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살아낸다. 감당할 수 없는 일상에 놓인 이들에게 괜찮냐고 묻는 이야기들, 그 속에 슬그머니 속상한 내 마음도 꺼내고 싶다. 한없이 울고 싶은 날, 그냥 곁에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반려동물처럼 그렇게 나를 위로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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