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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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최저시급이 확정되고,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학생에게 소송을 당하고. 노동자를 위한 정확한 임금과 법은 너무 멀다는 생각. 그러니 이 책은 더 많은 이들과 법을 만드는 이들이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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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2-07-07 09: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 뉴스를 거의 못보고 있는데 연세대 관련 뉴스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이제 이런 일이 더 나오겠구나 싶더라구요.

수이 2022-07-07 12:08   좋아요 2 | URL
저도 라디오로 들었는데 졸업생들이 너무 수치스럽다고 또 단체 성명서 내고 그러더라구요. 연대 법대 졸업생들이 팀 꾸려서 청소노동자분들 변호 맡는다는 뉴스 듣고 잘 풀리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어요

자목련 2022-07-11 17:53   좋아요 0 | URL
점점 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mini74 2022-07-08 1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학생뒤엔 누가 있을까요란 의심도 들고 ㅠㅠ 약자에 대한 혐오와 이기심을 고작 20살이 ? 한창 정의로울 나이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어리둥절하기도 합니다. 참 슬프네요 ㅠㅠ

자목련 2022-07-11 17:56   좋아요 0 | URL
청소노동자의 휴계실과 샤워실에 대한 뉴스를 보고 여전한 실태에 놀랐습니다. 최소한의 요구도 들어주지 않는 사측의 태도도 여전하고요.

미미 2022-07-08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지하는 학생들이 훨 많던데 소송한 학생들 떳떳하지 못할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자신이 소송에 참여했다고 당당하게 공개도 못하겠죠. 저도 사두기만 했는데 읽어봐야겠습니다.

자목련 2022-07-11 17:57   좋아요 1 | URL
읽으면서 화가 많이 나는 책입니다. 우리의 현실이라는 게 취재를 통해 내가 몰랐던 노동의 실태를 알게 돼 부끄럽기도 했고요.
 
최후의 증인 - The Last Witness
유즈키 유코 지음, 이혁재 옮김 / 더이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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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죄는 다른 거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 인간이 범한 죄를 정확히 처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고.” (247쪽)


최근에 법정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기 때문일까. 소설에서도 무조건 검사가 아닌 변호사의 승소를 바라고 있다. 정작 범인의 죄 유무는 상관없이 말이다. 일본 여성 작가 유즈키 유코의 장편소설 『최후의 증인』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제목을 통해 짐작 가능하듯 재판에 관한 것이다.


소설은 하나의 살인사건이 발생으로 시작한다. 호텔에 투숙한 중년 연인 중 여성이 남성을 향해 나이프를 겨운다. 그리고 시작된 재판 장면, 피의자를 향한 여자 검사 쇼지의 질문이 날카롭다. 그에 비해 상대 남자 변호사 사카타의 활약은 눈에 띄지 않는다. 피의자의 목욕가운과 살해도구인 나이프에 남겨진 지문, 검사는 유죄를 확신하고 피의사를 몰아붙인다. 주변 인물의 증언도 마찬가지다. 피해자와 피의자는 연인이었고 그로 인해 치정의 살인이 목적이라고 말이다.


뭔가 놀라운 반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리숙한 모습의 변호사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변호사 사카타는 전직 검사로 도쿄에서 변호사 사무실이 있다. 재판이 진행 중인 법정은 도쿄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지방 도시다. 도코가 아닌 곳까지 온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 자신의 상사였던 이의 부하 검사와 재판을 해야 하는 사카타. 그가 사건을 맡은 이유는 사건 전개가 흥미로울 것 같아서다. 정말 이런 이유로 변호를 맡는 게 가능하긴 할까. 뭔가 비밀이 있는 듯 보이지만 작가는 그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다.


소설은 살인사건의 재판 진행 과정과 함께 7년 전 일어난 사건을 교차로 들려준다. 7년 전 이곳에서 의사인 다카세와 미스코의 초등학교 5학년 아들 스구루가 사망했다. 비가 오는 날 학원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호를 위반하고 음주운전 차에 치여 숨졌다. 친구가 그 모든 걸 목격했지만 경찰은 비 때문에 잘못 본 거라고, 운전자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아이의 잘못으로 죽은 거라고 결론을 맺는다. 기소조차 되지 않은 사건에 부모는 경찰과 검사를 만나 항의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건설회사 사장인 가해자 시마즈가 경찰과 유착했다는 게 뻔했다.


7년이 지났지만 다카세와 미스코는 그 슬픔과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진행 중인 사건의 당사자다. 미스코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시마즈에게 접근했다. 그 과정에 미스코가 말기 암을 진단받는다. 다카세는 아내를 말리지만 단호한 아내의 모습에 동의한다. 미스코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하나하나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미스코는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복수의 성공만을 바랄 뿐이다.


재판의 진행과정은 검사 쇼지의 일방적인 승리처럼 보인다. 재판이 끝나는 마지막 날 사카타가 기다리는 건 한 명의 증인이다. 사건을 의뢰받고 재판을 진행하는 지금까지 증인에게 증언을 부탁했다. 하지만 사카타가 찾아올 때마다 증인은 거부했고 마지막 날 그가 법정에 나올지는 알 수 없다. 판결이 나오는 날, 등장한 최후의 증언. 그의 증언으로 반전이 시작된다. 7년 전 교통사고의 죽음과 현재 사건의 연결점, 드디어 밝혀지는 진실까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유즈키 유코가 숨겨놓은 트릭에 감탄한다. 놀랍고 뛰어난 결말을 말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재미와 스릴이 넘친다. 그만큼 빠져드는 소설이다. 더불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부와 권력으로 사건을 음폐하고 유리한 쪽으로 결론을 만드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한다. 사카타의 말처럼 죄를 지은 이는 마땅히 죄를 받아야 하고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보편의 진리를 말이다.


“재판의 목적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겁니다. 재판이 검사나 변호사를 위해 있는 게 아닙니다. 피고인과 피해자를 위해 있는 거지요. 죄를 제대로 처벌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되는 겁니다.” (351쪽)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놓쳐서는 안 되는 소설이다. 일상의 무게에 치진 이들에게 기막히게 멋진 도피처를 선사한다. 다가올 휴가철에 함께 한다면 더욱 즐겁고 신나는 휴식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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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수영장 수박 수영장
안녕달 글.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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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 시작되었다. 쏟아지는 장맛비가 멈춰도 차오르는 습도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더위 때문인지 입맛이 사라진다. 시원한 커피만 찾게 된다. 불쾌지수는 높아지고 숨겨졌던 화가 폭발할까 두려울 지경이다. 나 같은 증상으로 힘들다면 그림책을 추천한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기분에 날개가 달린 듯 나쁜 기분은 멀리 달아난다.



아이나 조카가 있다면 이미 만났을 것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꺼내는 그림책이 아닐까 싶다. 바로 안녕달의 그림책 『수박 수영장』이다. 이런 그림책은 할 말이 없다. 그냥 보면 된다. 그냥 즐기면 된다. 그냥 시원한 수박 속으로 풍덩, 그러면 끝!여름이 시작된 시골 마을 모두가 기다리던 수박 수영장이 개장을 했다. 소식을 들은 아이들이 수박 수영장으로 모여든다. 너도 나도 신나게 수박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며 논다. 아, 이런 맛난 아이디어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수박을 먹다가 생각했을까. 걱정 근심 따위는 모두 잊고 놀기만 하면 된다. 유년 시절 고대하며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떠오른다. 시골 마을에서 변변한 놀 거리도 없었고 방학숙제만 가득했는데 방학은 왜 그렇게 기다렸을까.



맑고 투명한 수박 물에 첨벙거리며 놀 때 태양은 뜨거워지고 노는 아이들을 위한 구름 장수의 구름 우산과 먹구름 샤워가 등장한다. 솜사탕 같은 구름 우산과 먹구름 샤워(소나기)는 정말 예쁜 표현이다. 해가 질 때까지 지치지 않고 밖에서 놀았던 어린아이가 되어 그림책 속 아이들과 하나가 된다.



놀이는 언제나 아쉽다. 수박 수영장이 문을 닫는 게 아쉽다. 하지만 내년에도 수박 수영장이 문을 열릴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여름 대표 과일 수박의 맛은 여름이 제일 맛나듯 시원하고 달콤한 그림책 수박 수영장은 요즘이 제 철이다. 입에 수박 한 조각 베어 물고 마음으로 수박 수영장에서 즐겁게 수영하는 시간, 여름이 좋은 이유가 아닐까. 아이들과 물놀이를 가거나 휴가를 떠날 때 이 책을 챙겨간다면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멋진 어른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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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7-03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아요~ 진짜 이런 수영장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목련 2022-07-04 16:40   좋아요 1 | URL
네, 정말 예쁜 그림책이에요. 이 여름에 더위를 식혀주는 멋진 수박수영장을 상상해요!
 
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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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오래 하면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간보다는 정성과 노력이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전문가란 타이틀을 달지 않더라도 스스로 경지에 도달했다고 느낀다면 성공적이다. 각각의 분야에는 전문가가 있지만 각자의 삶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그건 만족과는 다를 것이다. 우리네 인생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빨리 답을 알려주지 않으니까. 살면 살수록 삶을 비루하고 치사한 것들을 쌓아올린 허무한 성 같으니까.


김훈의 단편집 『저만치 혼자서』 속 인물들도 다르지 않았다. 단단해지기는커녕 허약하고 약한 존재라는 걸 확인할 뿐이다. 삶이란 소중한 누군가와 동행하는 게 아니라 결국엔 혼자라는 걸 말이다. 부조리함으로 둘러싼 사회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명태와 고래」 속 이춘개가 그러했다. 아버지에게 배운 물질로 살던 그가 조업 중에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명태를 잡으러 간 게 전부였다. 북에서 6개월 만에 돌아온 그는 여러 정보기관에서 조사와 심문을 받았다. 그게 끝이이어야 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명태를 잡으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춘개의 삶의 주인은 그가 아니었다. 6년 후 간첩죄로 수감되었다. 엉뚱하게 흐르는 삶을 이춘개는 막을 수 없었다. 그런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휴전 상태로 남과 북이 대치한 땅에서 산다는 걸 때때로 잊는다. 나는 경험하지 않았기에, 겹겹이 쌓인 공포와 고통을 알지 못한다. 「명태와 고래」 와 결은 다르지만 전사자의 유해를 찾는 「48GOP」 를 통해 국가의 폭력과 전쟁의 비극을 느낀다. 그저 개인의 삶이라 치부할 수 없는 아픔이 전해진다. 김훈은 슬픔을 구체화하거나 절망을 극대화하지 않는다. 김훈의 인물은 조심스러울 정도로 감정을 절제한다. 그것으로 인해 삶의 참담함을 전할 뿐이다. 어떤 감정은 가만히 바라볼 때 확연하게 드러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안달복달한다고 원하는 쪽으로 나가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과감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건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단했던 지난 생에 대한 연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굳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묻지 않아도 서로를 알 것 같은 노년의 두 남자의 일상을 그린 「저녁 내기 장기」 와 퇴직을 하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며 대장 내시경 검사를 미루는 남자의 이야기 「대장 내시경 검사」는 헛헛한 마음을 만날 수 있다. 치열하게 살았던 젊은 시절의 숱한 감정들이 모두 타버려서 재만 남은 게 괜히 서럽게 다가온다.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그 시간이 곧 도래할 것만 같다.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고 거북해서 발음이 되어지지 않는다. 감정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세월은 다시 세월을 풍화시킨다. (「대장 내시경 검사」 중에서)


간직할 만한 추억 하나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삶이란 추억보다는 상실이나 아픔으로 채워진다. 노량진 고시원에서 함께 공무원 공부를 하며 짧은 기간 동거했던 영자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는 「영자」 가 애틋한 이유다.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조금 서로의 영역에 침범했어도 괜찮았을 젊음인데 마음 한 자락 들어갈 여유가 없다. 나중으로 미룰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게 젊음이라서 그럴까. 고만고만한 삶을 위로하며 격려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돌이켜지지 않는 것들을 돌이킬 수는 없을 것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저절로 돌아서지도 않을 것이었다. (「영자」 중에서)


결국엔 죽음으로 연결되는 삶이라는 걸 아는 게 인생일까. 사는 게 뭔지도 모르는데 죽는다는 건 어찌 알 수 있을까.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되는 삶의 이치일까. 평생 신을 따르고 봉사하며 살았던 수녀들이 죽음을 앞두고 생활하는 ‘도라지수녀원’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고 위로하는 젊은 신부의 이야기 「저만치 혼자서」 와 끔찍한 일을 당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재수생 연옥을 구조한 대원이 여자가 살려고 무얼 자꾸 잡으려 했다는 과정을 들려주는 「손」 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리는 뭔가를 꽉 부여잡고 산다. 단 한 번 주어진 죽음은 혼자 감당할 몫이다.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갈무리는 『저만치 혼자서』 속 인물처럼 저만치 혼자서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후회와 아쉬움이 아니라 한 톨의 미련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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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어리랏다 2022-07-1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우연히 들어와 읽는데 책리뷰들이 술술 읽히고 공감가고 재밌어요~~ 자주 올께요!!^^

자목련 2022-07-18 15:02   좋아요 0 | URL
살어리랏다 님, 반갑습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시원한 오후 이어가세요^^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 신진 작가 9인의 SF 단편 앤솔러지 네오픽션 ON시리즈 1
신조하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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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누리호 2차 발사가 성공했다. 방송을 통해 높이 날아올라 저 멀리 우주 속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감동적이고 뿌듯했다. 이제 정말 우주의 시대가 펼쳐지는 것일까? 일상으로 더 가까이 다가온 SF의 세계, 문학계에서도 SF는 더 넓고 다양해졌다. 네오픽션에서 출간한 신진 작가 9명의 SF 단편 앤솔러지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는 더 이상 상상이 아닌 미래의 어느 날을 보여준다. 우리를 도와주는 단순한 기능의 인공지능 AI가 아니라 일상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삶의 전반을 지배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조금 무섭기도 하고 조금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표제작 이세형의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는 제목 그대로 감정을 파는 이야기다.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정말 감정을 팔게 되는 건 아닐까. 소설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여자와 색소폰 연주가인 남자는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를 통해 만난다. 연인에게 이별을 전하는 역할로 둘 다 대신 나온 것이다. 그렇게 만난 둘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어느 날 AI를 통해 감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연락을 받는다. 그동안 그들이 대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제 세상은 모든 분야에 AI가 장악한다. 심지어 상대와 화해를 할 경우에도 심리상태를 분석한 AI가 문자를 보낸다. 감정을 소모할 일이 없으니 불편한 일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데이터의 시작이 된 두 남녀는 경제적으로는 부족할 게 없었지만 결국 헤어졌고 남자는 과거의 자신을 돌아본다. 누군가에게 색소폰을 연주하며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일, 그때마다 남자는 다양한 감정을 체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남자는 돈을 주고 감정을 체험한다.


감정적 체험이 시장을 통해 돈으로 거래되는 시대가 정말 올지도 모른다. 물질적 풍요로 인해 타인의 아픔이나 상처를 알지 못하는 시대, 위험에 빠진 누군가를 구하려면 그 경험을 구매한 사람만이 가능한 시대. 소설 속 상상이라 할지라도 너무 두렵다. 인간 자체가 AI가 되는 시대라고 해야 할 테니까. 인간 고유의 감정, 인간 고유의 존엄을 잃어버린 미래를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


클레이븐의 「도덕을 도매가에 팝니다」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도덕을 구매하는 세상이라니, 정녕 도덕이라는 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주인공 정수는 택배 일을 하는데 도덕 베타 버전 4.0을 구매하지 못해 그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도덕은 신규 버전은 빠르게 출시되는 데 그걸 구매할 여력이 없다. 생계를 위해 누군가는 다른 이의 도덕을 훔치고 죄를 지는 이들은 화형에 처한다. 도덕을 규정하는 자, 누구인가. 정부 권력이겠지만 그런 잔혹한 미래는 상상으로도 별로다.


강윤정의 「대통령의 자장가」는 대통령 지수의 아이가 납치되면서 시작한다. 여기서 아이란 대통령의 인공자궁 속 아이를 말한다. 여성의 자궁이 아닌 남성의 자궁에서도 아이가 자랄 수 있는 시대란 설정이 흥미롭다. 그것도 어려운 이들에게는 인공자궁을 선택할 수 있다. 대통령이 인공자궁을, 그것도 특정한 브랜드를 선택했다는 게 정치적인 공격을 받는다. 소설은 대통령의 인공자궁을 무사히 구해해는 과정과 더불어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으로 추리소설의 재미를 안겨준다. 인간의 몸이 아닌 곳에서 생명이 잉태되고 자라는 일, 어쩌면 곧 등장할지도 모른다.


이성탄의 「정신의 작용」은 인간의 정신을 업로드해 사후에도 남긴다는 놀라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다. 이른바 영생 프로젝트. 죽음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기를 바라는 영원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할까. 그러나 연구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업로드한 뇌, 그러니까 디지털 자아가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휴머노이드와 가상세계의 AI가 가득한 세상에 누군가는 AI 우울증을 앓고 이도 있다. 영생 프로젝트의 연구자인 수연도 그렇다. 자신의 상황을 들려주는 수연에게 팀장 연경이 묻는 말은 현재의 우리네 모습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진짜 소통의 총량이 있는데, AI와 대화하면 그동안 쌓아둔 걸 오히려 갉아먹게 된다는 건가요?” (「정신의 작용」, 259쪽)


우리는 과연 진짜 소통을 하고 있는 걸까. 스마트폰을 통해 대면이 아닌 비대면으로 다양한 것들을 해결하는 시대에 적응하느라 진정한 소통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면 모두 그쪽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끝내 감정까지 구매하고 소설처럼 도덕이나 규범, 문화까지 정부가 규제하는 사회가 온다면 그건 인간의 사회일까.


무뇌증이지만 인간의 뇌를 이식받아 변호사가 된 등장하는 신조하의 「인간의 대리인」처럼 언젠가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대결하게 된다면 그 들 중 누구를 선택할까. 가격적 경쟁력을 따진다면 인간 변호사와 인공지능 변호사 중 누가 더 높은 수임료를 받게 될까. 질문이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을 돕는 존재로 등장한 휴머노이드를 소재로 한 지금까지의 소설은 인간과의 우정이나 인간에 대해 알아가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게 끝일까.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들을 조종할 것이고 그들에게 선이 아닌 악을 택하게 할 수도 있다.


죄인을 돕는 건 죄가 없는 성자만이 가능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건 사람이 아닌 신의 아들이었듯이 인간을 변호할 수 있는 건 인간이 아닌 자일 것이다. 그래서 기계들의 은밀한 물음에 대해 나의 대답은 늘 같다. 나는 항상 인간의 변호사다. (「인간의 대리인」, 39쪽)


언제나 그렇듯 SF 소설은 놀라운 상상력과 다양한 세계로 이끈다.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는 작가의 이력이 다양한 만큼 소재 역시 그렇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소설이 현실로 실현되는 시대가 다가오니 가벼운 재미에서 멈출 수 없다.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서로를 인정하고 연대하는 그런 미래를 그리는 소설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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