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겨울 2018 소설 보다
박민정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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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정리하다 누군가가 보낸 메시지를 발견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었고 내용은 애틋했다.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이 났다. 그녀만의 언어였다.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녀와의 연락은 끊어졌다. 어떤 서운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그 메모를 바라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알게 되었고 안부를 주고받으며 속상한 일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을까. 한때는 영원을 약속했던 사이였지만 서로의 현재를 모르는 사이로 전락하기도 하는 이상한 관계. 함께 한 시간을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는 영화 속 울부짖음처럼 묻게 될지도 모른다. 소설 안에서도 소설 밖에서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 당당하고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아이돌로 활동했던 사촌의 만나 그녀가 프리터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박민정의 나의 사촌 리사, 낯선 프랑스에서 만난 인연에 대해 그들이 보낸 시간과 그 안의 내밀한 감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 처음에는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지만 그 문장에 빠져들고 있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는 서이제의 미신迷信, 딸아이를 사고로 잃고 그 상실로 인해 점차 무너진 가족의 현재를 마주하는 정용준의 사라지는 것들

 

이별과 상실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주어지는 것일까. 네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헤어진 누군가, 사라진 존재를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 자주 연락을 하고 만남을 이어갈 수 있지만 어느 순간 안부만 전하는 사이로 변하는 사람들. 가족이란 울타리에 속하지만 그런 사이가 아니라 자신할 수 없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의 절망감을 백수린은 감각적인 표현으로 전달한다.

 

잿빛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짙푸른 물결이 이쪽으로 다가오다 부서지는 모습이 보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황금색으로 빛나던 장소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바람이 불면 파라솔의 몸체가 흔들렸고 이제 끝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고 옅은 슬픔 같은 것이 가슴 안에서 서서히 퍼졌다. (시간의 궤적중에서)

 

어찌할 수 없는 죽음 그 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서이제의 미신迷信과 정용준의 사라지는 것들에서는 소중한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참혹한 일상을 느낀다. 왜 그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나. 정용준의 소설에서 어린 딸의 죽음에 대한 부분은 특히 그러하다. 아이를 돌봐주던 어머니가 왜 그때 그랬을까. 아주 작은 실수였고, 불운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가족은 조금씩 와해된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죽기로 결심했고 그 사실을 아들에게 전한다. 정용준의 소설을 읽으면서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할까 봐 내내 불안했다. 아들과의 불편한 여행, 그 짧은 시간 나누는 대화는 외롭고 쓸쓸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할까. 모르는 것 투성이인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때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아는 게 없다. 아무도 누구도 모르겠다.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애써 상상하면 떠오르는 건 온통 절망스럽고 나쁜 일들뿐이다. (사라지는 것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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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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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재밌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야기를 들을 때 반짝인다. 똑같은 이야기도 상관없다. 깊은 밤 잠자기 전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 오직 아빠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야기를 기다린다. 클래라와 수지가 기다리는 아빠는 바로 마크 트웨인이다. 『올레오 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이란 유난스러운 동화는 마크 트웨인의 아이들에게 들려준 16쪽의 미완성 원고가 그 시작이다. 긴 시간 잠들어 있던 기록이 칼데콧상 수상 작가 필립 스테드와 삽화가 에린 스테드에 의해 완성되었다. 어쩌면 이 책에 대한 기​대는 바로 마크 트웨인이 아닐까 싶다.

​동화 속 주인공 ‘조니’는 외로운 소년이다. 할아버지가 계시지만 가난하고 괴팍하다. 그런 조니에게 친구는 ‘전염병과 기근’이라는 재밌는 이름의 닭 한 마리뿐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닭을 팔아서 먹을거리를 사 오라고 시킨다. 유일한 친구를 팔아야 하는 운명이라니. 시장에서 조니는 한 노파를 만나 그녀에게 ‘전염병과 기근’을 부탁하고 씨앗을 받는다.

 

 

“이 씨앗은 엄청 힘든 상황이 왔을 때에만 심어야 해요. 심고 나서는 확신을 갖고 결과를 기다려요. 봄에 씨앗을 심고, 동이 틀 때와 밤 12시 정각에 물을 줘요. 항상 씨앗을 돌봐주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요. 불평하고 싶어도 참아야 합니다. 꽃이 피면, 그 꽃을 먹어요. 그 꽃이 당신을 배부르게 해 줄 거고, 당신은 두 번 다시 허기를 느끼지 않을 거예요.” (59쪽) 

 

짐작했겠지만 할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고 조니가 ​받아온 씨앗을 먹고 그만 죽음을 맞는다. 조니는 노파의 말대로 열심히 씨앗을 키우고 그 꽃을 먹고 신비한 능력을 갖는다. 동물들과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조니의 유일한 친구가 닭이었던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은 아닐까.

 

인류를 세상 온갖 부질없는 다툼으로부터 구원해 낼 절호의 한마디를, 인간들이 어쩌다 한 번만이라도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니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와서 기뻐.”(88쪽)

 

 

조니는 동물들과 함께 지내면서 도난당한 왕자를 찾는 모험을 떠나게 된다. 각자의 능력을 발휘한 동물들과 왕자를 찾는다. 행복한 결말이라고 해야 할까. 흥미로운 건 필자인 필립 스테드와 마크 트웨인이 동화를 이끌어가기 위해 나누는 대화다. 그리고 이곳(현실)과 그곳(동화 속 세상)에 대한 구분이다. 그건 마치 어른과 아이의 세상에 대한 것과 같게 느껴진다. 상상력도 사라지고 친구의 소중함도 잃어버린 어른. 조니로 대표되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아이의 모습.왕자를 구하고 그곳에서 만난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조니. 그들은 왕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혼자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다르다는 건 인정하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말이다.  

 

이곳에서는 조니 나이의 소년이 돈을 다발로 모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뭐든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그곳, 조니가 살고 있는 땅에서는 아무리 돈을 벌어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딱 한 가지만은 살 수가 없는데, 그것은 바로 진정한 친구이다. (…) 끊임없이 어리석은 폭력에 휘말리는 인간을 구원해 낼 절호의 말을. 인간들이 어쩌다 한 번만이라도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니는 말했다. “여러분을 알게 돼서 정말 기뻐요.” (152쪽) 

 

짧은 동화에서 두 딸을 위해 매일 이야기를 만들었을 아빠 마크 트웨인의 사랑이 느껴진다. 그 사랑에 필립 스테드의 상상력과 아름다운 그림이 더해진 동화는 세상의 많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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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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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내용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읽는 게 좋을까, 아니면 약간의 정보를 갖고 시작하는 게 좋을까. 모두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장르물이나 추리소설 경우에는 정보가 독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전의 경우는 다를까?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에 대해서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내 경우 이 소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시작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울프의 소설이 그러하긴 하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올랜도는 올랜도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놀랍게도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흥미로운 소설이다. 우리의 주인공 올랜도는 16세의 아름다운 소년이다. 영국의 귀족 신분으로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의 친척이다. 모두가 그를 흠모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가 모두 남자라고 알고 있던 그가 여성이 된 것이다. 이후로 그는 여성으로 불멸의 연인처럼 거의 300년 가까이 살아간다. 울프가 1928년에 쓴 소설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제 소설로 들어가 보자. 아름다운 소년 올랜도에게 당연히 사랑이 찾아온다. 이전과는 다른 사랑이었다. 러시아 공주 사샤와 사랑은 올랜도에게 전부였다. 그녀와 함께라면 세상 어디라도 좋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배신하고 만다. 올랜도의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하인과 가정부는 그를 걱정한다.

 

인생이 산산조각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죽음의 손가락이 삶의 소용돌이 위에 놓여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매일 소량씩 죽음을 복용하지 않으면 삶을 이어나갈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가장 비밀스러운 통로로 뚫고 들어와,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바꿔버리는 이 이상한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62~63)

 

이별과 배신의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 그는 이제 달라졌다. 은둔생활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왔다. 귀족이라는 신분을 적극 활용하여 연회를 열어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올랜도가 원하는 건 얻을 수 없었다. 올랜도는 자신만의 글()을 원했고 한 시인과 만났다. 그에게 시와 문학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세속적인 욕망에 좌절한다. 여전히 아름다운 올랜도는 여인들의 추종의 대상이지만 사랑의 실패는 그에게 환멸을 안겨줄 뿐이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가 위해 콘스탄티노플에 특사로 가기를 청한다.

 

새로운 곳에서 대사로의 삶을 시작하는 올랜도. 터키에서 대사의 역할도 의미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다른 대사를 만나고 국가의 주요 인사와 만남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외교관의 의무로 당연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시간은 그의 신분을 공작으로 올려놓았고 수여식이 끝나고 그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그녀가 여자가 되었고 대사가 아닌 집시의 삶을 선택한다. 집시들과 자연에서 생활하면서 그녀는 행복했지만 그곳에 정착할 수는 없었고 떠나야만 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삶에서 올랜도의 남은 삶은 쭉 여성이었지만 그에게는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존재했다고 봐도 좋다. 어떤 상황에서는 남성성이, 어떤 상황에서는 여성성이 나타났다. 환경에 적응하듯 말이다. 우리 안에 내재된 성, 그것은 하나로 국한된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올랜도는 여자가 되었다-이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점에서는 올랜도가 남자였던 이전과 꼭 같았다. 성의 변화가 비록 그들의 미래를 바꿔놓기는 했으나, 그들의 정체성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123) 그러나 우리로서는 그저 올랜도가 30세까지는 남자였다가 여자가 되었고, 그 뒤로는 쭉 여자였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124)

 

누군가 궁금할 것이다. 우리의 올랜도는 어쩌다가 여자가 되었을까. 대단한 사고가 발생했던 건 아닐까. 아니 처음부터 여자였던 것일까. 그러나 중요한 건 그(그녀)가 올랜도란 사실이다. 어떤 성을 가졌냐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점 말이다. 어쩌면 울프는 이 점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소설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다가오는 건 바로 글쓰기다. 올랜도가 끊임없이 쓰는 원고 말이다. 16세 소년이었던 올랜도가 쓰기 시작한 참나무는 항상 그녀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고 움직이게 한다. 올랜도가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원고는 벌써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시 참나무의 원고였다. 올랜도는 이 원고를 벌써 여러 해 동안 위험한 여건에서도 지니고 다녀, 여러 쪽에 얼룩이 졌고, 어떤 것들은 찢어져 있었고, 집시들과 함께 살 때는 종이가 없어서, 여백에 빼곡히 써넣고, 쓴 것에 줄을 긋고 해서, 원고는 마치 꼼꼼하게 짜깁기를 해 놓은 천 조각 같았다. 책의 첫 장을 열어보니, 그녀 자신의 소년다운 필체로 적은 1586년이라는 날짜가 보였다. 거의 300년간 이 작업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208)

 

올랜도는 협정을 잘 처리했기 때문에, 지극히 행복한 상황에 있었다. 그녀는 자기 시대와 싸울 필요도 없고, 그것에 굴복한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바로 그 시대에 속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고로 이제 그녀는 글을 쓸 수 있었고, 실제로 글을 썼다. 그녀는 쓰고, 쓰고, 또 썼다. (234)

 

소설에서 올랜도의 삶은 192836세까지 다룬다. 300년 가까이 산 인물이기에 소설을 통해 영국의 시대적 변화도 만날 수 있다. 화려했던 엘리자베스 1, 빅토리아의 최전성기, 산업혁명 그 후 습한 영국의 일상까지 세세하게 그려냈다. 울프는 장난삼아 쓴 소설이라 말하지만 올랜도의 성격, 복잡한 마음의 상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작정한 듯) 보여준다. 옷차림, 올랜도의 집, 그 주변의 인물에 대한 묘사,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등장하는 것들(기차, 백화점, 서점)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았다.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올랜도는 정말 특별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어렵고 난해한 울프의 세계, 그럼에도 그 깊이를 알고 싶다.

 

*소설에서 올랜도는 변화한다. 그 변화(성장)을 위한 장치로 잠이 등장한다. 사샤와의 이별 후 올랜도는 깊은 잠(일주일 동안)에 빠졌고, 터키에서도 여성으로 변화하기 전 술에 취해 잠에 빠졌다. 집시의 생활을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기 전에도 마찬가지도 올랜도는 잠에 취한다. 아들을 낳기 전 과정을 묘사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로 잠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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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5-2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정보도 없이 읽었다가 낭패를 너무 많이 봤네요.... 약간이라도 알면 좋은거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당하고도 정보없이 읽네요. 습관이 참 안고쳐져요ㅎㅎ

자목련 2019-05-21 17:5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떤 책은 너무 많은 정보에 실망하기도 하지요. 그런 면에서 리뷰도 책의 정보에 속하는 거라. ㅎㅎ

coolcat329 2019-05-2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프의 책은 단 한권도 안읽고 또 모르지만 이런 환타지 소설을 썼다니 몰랐네요. 性이 바뀌다니 재밌고 무엇보다 300년간 살면서 시대를 다 경험했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시대별 변화의 흐름을 알 수 있어 유익할듯도 싶습니다. 언젠가! 꼭 읽도록 기억해두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 2019-05-21 17:58   좋아요 1 | URL
네, 말씀처럼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기회가 되면 영화를 보고 싶어요.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소설이었습니다. coolcat329 님,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로링 2019-06-30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를 먼저 본 케이스라 책을 봐야할지 또다른 고민이네요..영화는 진짜 꼭 보세요~틸다 아닌 올랜도는 상상하기 힘들정도예요..영상도 너무 멋지고..
 
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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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의사는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간주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화자인 는 그저 상한 음식을 먹었을 뿐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오랫동안 방치된 냉장고 속 음식을 살기 위해 먹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안의 독이 나를 이렇게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회복되는 과정에 같은 병실의 기묘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의 한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바로 조몽구란 남자의 인생을 지배하고 함께 살아온 독에 대한 이야기다.

 

‘독’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마비, 살인, 공포, 죽음이란 말이 따라온다. 우리는 위협하는 존재(독거미, 독버섯, 독사)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태생적으로 독을 몸에 지닌 남자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조몽구는 자신을 그렇게 설명한다. 작가인 아버지 조영로에게서 이어진 독과 그걸 해독하는 유일한 약인 어머니 고운선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이어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가진 어머니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기에 더욱 자신에게 죄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 어려서부터 두통으로 힘겨워했던 조몽구를 유일하게 이해하고 달래주는 존재도 어머니였으니까.

 

조몽구는 두통 때문에 항상 이마에 대고 있어야 했다.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딱히 방법을 없었고 이로 인해 어린 시절 학교에서 친구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얼핏 주인공 조몽구는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처럼 보일 뿐 독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삼촌 수호의 등장으로 소설은 독에 대한 다양한 설명과 반대의 개념인 약이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사실 이 소설은 무척 어렵고 복잡하다. 독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떠나서 그것을 몸으로 직접 연구하고 실험을 하는 수호와 그런 수호를 통해 자신 안의 독에 대해 확신하는 몽구의 욕망과 심리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수호가 몽구에게 인생을 설명하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공감하면서도 말이다.

 

인생이 뭔지 한마디로 말할 수 없겠지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인생의 매 순간은 독과 약 사이의 망설임이야. 망설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오래 주저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돼. 어느 순간 약은 독이 되어버리니까.” (100)

 

소설엔 독을 연구하고 그것에 빠져들거나 스스로 독과 함께 거주하면서 그것에서 약을 발견하는 삶을 사는 인물로 수호뿐 아니라 몽구와 운명적으로 연결된 부모와 유약하게 태어나 갖은 질병으로 삶 자체가 힘든 자경과 그의 오빠 정우, 술이라는 독을 품고 살아온 아버지를 독주로 인해 죽음으로 몰고 간 군대 동기 광수,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저마다 보편적인 삶이 아닌 특수한 환경에서 자랐다. 자신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독을 품거나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약을 찾으려 애쓰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살아남으려면 자기만의 독을 가지고 세상과 싸워야 해. 하지만 에 대항해서 우리를 지키게 하는 도 얼마든지 있어. 독이 약이 되고 약이 독이 되는 거야. 너는 늘 두통에 시달리느라 거기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지.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한순간도 멍하니 보내는 일이 없이 항상 깨어 있는 거야. 네 두통은 너를 마비시키지 않고 각성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하는 독이자 약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을 만나면 약이 되고 원한을 만나면 독이 돼.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우리의 하루하루는 독과 약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지.” (198~199)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소설은 더욱 복잡하게 독을 보여준다. 독으로 인한 삶의 파면과 그럼에도 독에 매몰되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라고 할까. 소설을 읽을수록 화자인 독자는 가 조몽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의 몸에 가득한 독이 빠져나가는 동안 경험한 환각이 만들어낸 인물 혹은 괴물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궁금증으로 두렵다.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될 수많은 독과 약을 우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자기만의 독을 가지고 세상과 싸워야 한다는 수호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그것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다만 독을 발견하고 사용하는 타이밍이 다를 뿐일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책 한 장 한 장에는 독이 묻어 있어. 네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모두 넘기고 나면, 그로 인해 중독되고 탈진하여 죽음에 이르게 돼. 그러나 너는 그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지.” (520)

   

보편적이지 않은 독이라는 주제를 독특하고도 폭넓게 파헤친 소설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산재한 독을 생각한다. 모르기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독,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치명적인 독.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까다로운 소설로 남을 듯하다. 그것과는 별개로 미묘한 여운이 남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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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가 되어 간다는 것 - 나는 하루 한번, [나]라는 브랜드를 만난다
강민호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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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의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란 제목은 이 책을 통해 들려줄 이야기가 경영이나, 마케팅이 아닐까 짐작하게 만든다. 그래서 누군가는 자기 계발서로 분류할 것이다.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이 말이 짐작대로 어렵고 재미 없는(?)내용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보통의 에세이라 할 정도로 편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브랜드와 마케팅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부분 광고, 전략, 상품, 서비스로 비슷할 것이다.

 

무엇을 팔고자 할 때 필요한 것들에 대해, 혹은 그것을 얻고자 할 때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팔고 산다는 개념은 물건에 대해 국한된 게 아니라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물론 마케터를 꿈꾸거나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현실적인 조언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분석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으로 들어가 보면 「끊임없는 일상의 관찰」과 「꾸임없는 브랜드의 통찰」로 나눠 브랜드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끊임없는 일상의 관찰」부분에서 마음이 많이 움직였다. 보통의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로,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선배로 진실한 조언을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직장인’과 ‘직업인’의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하는 부분이나 자신의 이력(초졸, 검정고시,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들려주면서 자신을 성장하게 한 원동력으로 결핍과 열등감이라고 말하는 진솔한 태도가 무척 좋았다.

 

어쩌면 경험자로 혹은 전문가의 입장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신감에 찬 우월감 비슷한 이야기라ㅗ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을 발견하는 순간 그것은 감동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 전해지는 건 그런 감동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 말이다. 막연하게 취업을 하고 직장에 출근하고 일을 하면서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과 나와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런 조언처럼 말이다.

 

일이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일은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당신은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얼마만큼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 하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가 생각한 것보다 더 위대한 사람입니다. 단지 아직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54쪽)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궁극적으로 무엇일까요? 결국 무슨 일이든 그 시작과 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118족)

 

결국엔 ‘나’라는 브랜드와 다른 누군가가 만나 무언가를 이루는 것, 그것이 모두가 지향하는 일의 가치라는 사실을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건 아닐까.

 

「꾸임없는 브랜드의 통찰」에서는 브래드를 만드는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조언한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브랜드, 광고 공식, 리더의 역할,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전략에 대한 사례를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 확인시킨다.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이런 적절한 설명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말 한마디에는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내뱉는 한마디의 언어는 생각의 프레임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마 신용카드의 이름이 신용카드가 아닌 외상카드나 부채카드였다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이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87쪽) 

 

어떤 직업에 속하든 어떤 위치에 있든 누구에게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아니, 일을 떠나 ‘나’라는 가치를 만들고 브랜드를 원하는 모두에게 훌륭한 책이다. 오늘만 사는 게 아니라 내일이라는 미래의 가치를 꿈꾸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대중을 움직이는 차별적 가치는 누구에서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생각, 누군가의 행동, 누군가의 발견에 새겨진 이름의 가치가 곧 브랜드인 것입니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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