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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루프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11
박서련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4월
평점 :
학창 시절 로맨스 소설을 쓰던 아이가 있었다. 반장이었다. 소설은 인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반장과 그리 친하지도 않았거니와 예나 지금이나 로맨스 소설에는 큰 과심이 없기에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박서련의 첫 청소년 소설집 『고백루프』를 읽고 뜬금없이 그 아이는 계속 소설을 썼을까 궁금해졌다. “청소년은 소설을 쓸 수 있고, 소설 쓰던 청소년이 결국 소설가가 되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라는 박서련의 말 때문이다. 나의 학창 시절과는 다르게 현재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학 캠프나 공모전, 예술고등학교도 많으니 박서련처럼 고교 시절에 소설을 쓰고 소설가가 된 이들도 많을 것이다.
『고백루프』 에는 모두 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1부에 수록된 「솔직한 마음」, 「안녕, 장수극장」, 「엄마만큼 좋아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의 감정과 마음을 잘 보여준다. 「엄마만큼 좋아해」 속 화자는 여섯 살 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솔직한 마음」의 ‘나’는 아이돌 그룹의 막내로 학교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다.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게 아니다. 걸그룹의 멤버 하나가 그룹 내 따돌림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막내인 ‘나’도 가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반 아이들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기는커녕 기사를 믿고 대놓고 따돌린다.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원래 왕따였던 아이 ‘원따’의 주변을 서성인다. 일부러 말을 걸고 매점에 가자고 말하지만 돌아오는 건 차가움뿐이다. 무대에서 빛나게 노래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실체도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십 대란 나이에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안녕, 장수극장」은 가장 평범하면서도 진솔한 이야기였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장수극장’은 문을 닫는다. 고등학생인 ‘나’는 부모님을 대신해 매표소를 지킨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할아버지가 만든 극장이고 ‘장수’는 나의 아버지 이름이다. 그런데 학생회장 선배가 축제 때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한다. 놀라운 건 아버지가 직접 정성스럽게 영상을 촬영했다는 거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축제 때 학생회장이 담은 영상을 통해 동네 어른들이 장수극장을 추억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장수극장은 단순한 극장이 아닌 동네의 역사였고 동네의 기억이자 추억이었다. 내가 소읍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안녕, 장수극장」은 남다르게 다가왔지만 회장의 말에 뭉클하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어른이 되면 우리 모두 다른 길을 걷겠지만 우리가 이 마을에서 자란 기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장수극장을 잊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축제도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 (「안녕, 장수극장」, 61쪽)
학창 시절 벗어나고 싶었던 곳을 그리워하고 더 넓은 곳을 원했던 마음은 어느 순간 애틋함으로 변한다. 그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이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이 소읍도 옛 모습과 흔적을 찾기 힘들다.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말이다. 청소년기를 보낸 공간과 그 공간을 함께 누린 친구들, 그 시절이 얼마나 눈부시고 아름다운지 그때는 모르는 게 아쉽다. 하긴 이런 마음을 십 대엔 나도 몰랐으니까.
2부의 「보름지구」 와 「고―백―루―프」는 SF 요소를 적절하게 살린 소설이다. 미래에 지구를 떠나 달에서 거주하는 「보름지구」 속 청소년 ‘나’는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게 한국 명절인 추석을 소개한다. 송편은 그 맛을 설명할 수 있지만 지구에서 달을 보면 소원을 비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달이나 화성에서의 거주가 한낱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니 푸른빛 도는 지구를 보며 소원을 비는 일도 가능할지 모른다. 표제작인 「고―백―루―프」 특정한 날이 똑같이 반복되는 설정으로 친구의 고백을 받고 수락해야만 벗어날 수 있다. 동성 친구를 향한 진심의 고백, 그 고백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3부의 두 소설은 작가가 고등학교에 쓴 것이다. 엄마가 암으로 죽고 철원을 떠나 언니가 사는 서울로 올라와 적응해야 하는 「가시」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새엄마와 단둘이 살 「발톱」은 상실과 애도를 겪고 서로 의지해야 하는 마음이 담겼다.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힘든 십 대의 상처와 방황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비슷한 구도와 설정이지만 가족과 타인을 향한 십 대의 마음을 가장 잘 묘사한 게 아닐까 싶다. 혼자라는 두려움과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지 어쩔 줄 모르는 마음과 서툰 행동이 그러하다.
청소년 소설답게 십 대의 이야기를 실감 나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냈다. 그래서 당사지인 청소년이 읽는다면 더욱 공감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로 확장해 나갈 것 같다. 소설을 쓰고 있는 청소년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기 부여가 되고 응원을 건네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