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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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다. 먹고 싶지 않다. 먹으면 안 된다. 갖고 싶다. 갖고 싶지 않다. 가져도 되는가? 뜬금없는 나열에 이게 뭔가 싶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의심. 그 욕구를 자제하고 절제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닌 사회의 규범과 시선의 기준에서 벗어난 욕망은 충족되어서는 안 되는가? 아사이 료의 『정욕』을 읽고 든 생각이다. 바른 욕망(正欲)이라니, 도대체 바른 욕망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나의 모든 욕망은 바른 것인가? 그것을 정하는 이는 누구인가.


그런 의미에서 아사이 료의 『정욕』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읽기도 전에 궁금증을 불러오고 읽은 후에도 정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니까. 소설적 재미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 소설이 어떤 소설이냐고, 괜찮은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 작가는 소수와 약자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 연대를 이끌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성향을 오픈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을 향한 편협한 시선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라고 할까. 소수의 선택을 존중하고 취향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봐야 할까. 이제 소설을 이야기해 보자.


남들과 다른 성향을 지닌 이들이 있다. 이를테면 소수, 혹은 비주류에서도 다른 범주에 속하는 이들이다. 다수가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 그들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당할 피해나 손실을 알고 있다. 아니,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선뜻 소수를 응원하거나 그들의 편에 설 용기를 내지 못할 때가 많다. 『정욕』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로, 그들의 사정과 형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평범한 초등학생이 아닌 등교 거부를 하고 유튜버가 된 초등학생과 그의 가족, 연애나 결혼 출산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침구 판매 여사원,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 없고 가족 이외의 남자와 접촉해 본 적 없는 여대생, 이성의 모든 관심을 한몸에 받는 외모를 지녔지만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 남학생. 그들은 주변에서 건네는 말과 시선이 불편하다. 일일이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도 없고 설령 설명한다 해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애당초 나는 이 세상이 설정한 커다란 길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42쪽)


이쯤에서 궁금할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각자 취향이 다르니까 그럴 수 있고 그게 뭐 어떠냐고 말이다. 침구 판매 여사원, 남학생의 욕망이 사람이 아니라 특정한 사물에 대한 페티시즘이라면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놀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은 이성이 아닌 사물에 끌린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사실 보통의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큰 관심도 없지만 막상 남다른 취향에 대해 알게 된다면 끊임없이 꼬집고 파고들기 마련이다.


소설은 소수에서도 소수인 그들이 연대하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나아가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삶이 있다고, 내가 알 수 없는 욕망도 존재한다고 말이다. 얼핏 그런 의도는 나쁘지 않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욕망이 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면 달라진다. 도덕성, 인간 존엄성에 위배된다면 용납될 수 없다. 그 지점에 대해 작가는 언급을 회피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물론 소설 속 이런 문장은 우리 사회가 소수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부족하다는 걸 각인시키기에 훌륭하다.


어엿한. 평범한. 일반적. 상식적. 자신이 그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째서 반대편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사는 길을 좁히려고 할까. 다수의 인간 쪽에 있다는 자체가 그 사람에게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정체성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누구나 어제 본 건너편에서 눈뜰 가능성이 있다. 어엿한 쪽에 있던 어제의 자신이 금지한 항목에 오늘의 내가 고통받을 가능성이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이 살기 쉬운 세상이란 곧, 내일의 내가 살기 쉬운 세상이기도 한데. (329쪽)


모든 욕망과 다양성을 생각한다. 그 가운데 내가 속한 범주의 욕망과 다양성도 있을 것이다. 나의 그것은 존중받지 못하는가. 존중받고 있는가. 그것은 다수가 아닌 소수에 속한 것인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에 어떤 욕망은 그 자체로 삭제되거나 존재 자체를 거부당할 수도 있다.


다수의 결정과 선택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어떤 면에서 그건 부당한 힘을 과시하는 행태를 지녔다. 다수와 소수가 균형을 맞춰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건 당연하다. 균형점을 정하는 일은 어렵고 함부로 강요할 수 없다. 그러니 바른 정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우선을 내가 모르는 삶이 있다는 것, 나는 끝내 알 수 없는 삶이 있다는 것, 그것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해도 나쁘지 않다.


재미와 함께 질문을 던지고 없던 의문을 끄집어 내는 소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라는 전략적인 한 줄 광고는 탁월하나 동의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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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4-12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이거 다락방 님도 과하다! 그랬는데 자목련 님도 비슷한 생각이신 것 같습니다?!
저도 읽기는 읽어야 하는데... ㅎㅎㅎ

자목련 2024-04-14 17:56   좋아요 0 | URL
지금은 다 읽으셨을 듯^^

다락방 2024-04-29 22:19   좋아요 0 | URL
이거 블랑카 님도 페이퍼 쓰셨는데 저랑 비슷하게 느끼셨던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4-04-12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소설이었군요.
저는 인문학 서적인 줄 알았어요^^

자목련 2024-04-14 17:57   좋아요 1 | URL
제목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은오 2024-04-13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자목련님 두분 다 그저 그렇다고 하시는데.... 리뷰를 읽을수록 그래서 오히려 더 궁금해지는 마음. 악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4-13 20:2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내가 읽어야겠다~!!

은오 2024-04-13 23:38   좋아요 1 | URL
읽고계십니까?! ㅋㅋㅋㅋ

잠자냥 2024-04-14 00:24   좋아요 1 | URL
내일 아침부터….

은오 2024-04-14 10:21   좋아요 0 | URL
아침부터.... 멋잇어...

잠자냥 2024-04-14 10:26   좋아요 1 | URL
🤯🔫

자목련 2024-04-14 17:58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서 읽으세요^^

그레이스 2024-04-22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정욕이었네요
저는 제목 한자를 못보고 표지만 지나치듯 봐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