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이런 시간을 갖는 건 좋다. 의미 있는 시간이라 해도 무방하다. 내가 읽은 소설을 정리하는 시간. 1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만난 책들. 올해 출판된 책은 아니고 내가 읽은 책 가운데 좋았던 책을 골랐다. 몇 권을 읽었을까, 그 숫자에 매몰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적은 양의 책을 읽는 일도 곤란하다. 일정한 패턴, 일정한 독서의 시간은 중요하니까.
기다린 만큼 만족도도 높았다고 하면 너무 지나칠까. 아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던 단편집.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그런 소설이었다. 단편 하나하나를 읽는 시간이 참 좋았다. 예전의 소설과 다르게 뭔가 특별한 변화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제목처럼 이토록 평범한 소설이지만 그게 가장 김연수 다운 소설이다. 가만가만하면서도 툭하고 가슴을 치는 순간과 마주할 때면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중에서)
장편소설로는 최근에 읽은 김혜진의 『경청』과 이주혜의 『자두』다. 김혜진은 이번 소설에서 말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너무도 쉽게 내뱉는 말들과 글들에 무게를 생각한다. 우리에게 침묵이 아닌 듣기의 시간이 왜 중요한지. 상대가 원하는 바를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공감하는 것. 설령 공감하지 못하더라고 인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주혜의 『자두』는 돌봄에 대한 소설이다.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돌봄이다. 가족의 부양과 돌봄, 이제는 사회가 적극적으로 제도를 만들고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
아줌마, 근데요.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요.
아이가 묻고 그녀가 답한다.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지.
대화는 조금씩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불신과 두려움 같은 것을 밀어내며 스스로 반경을 넓힌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녀는 아이의 마음속에 불이 켜진 것 같다고 느낀다. (『경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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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작가의 소설도 좋았다. 처음 읽은 안윤의 단편집 『방어가 제철』에서 느껴지는 쓸쓸함과 상실은 충분한 애도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감정은 고유한 것이니 우리는 함부로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건 감정을 떠나 삶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김지연의 『마음에 없는 소리』를 읽다 보면 우리는 자신의 삶보다는 타인의 삶에 충실하려 애쓰고 있구나 느낀다. 취업, 결혼, 그 무엇을 선택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신이라는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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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어려움을 탈피하거나 고통을 달래기 위한 방법으로 환상은 때때로 적절한 처방이 된다. 이유리의 『브로콜리 펀치』에서 죽은 아버지가 화분이 되거나 마음이 힘들고 아플 때 신체이 일부가 무언가로 변하는 일, 그로 인해 고통은 말이 아닌 몸으로 표현된다. 확고한 SF가 아니더라도 독자를 상상의 그곳으로 초대한다. 그런가 하면 김초엽의 『방금 떠나온 세계』에서는 SF 소설로 미래를 보여준다. 나와 다른 존재와 공존하고 연대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을 말한다.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한 김초엽의 장편보다 이 소설집에 오래 마음에 남았다.
소설을 좋아하지만 한국소설에 비해 외국소설은 애정의 크기가 조금 작다. 그래도 이런저런 통로로 알게 된 외국 작가와 그의 소설을 읽는 기쁨은 크다. 내 맘대로 골라본 외국소설. 올해의 최고 소설이라면 내게는 단연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운 마음』을 꼽겠다. 최근에 작가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가 더 많은 글을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안타까웠지만 고통에서 벗어나 평온하기를 바란다.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것에 국한시킬 수 없는 소설이다. 우선, 너무 아름다운 소설이고 빠져나올 수 없는 문장. 미혹의 시간이었다. 행복한 미혹이라고 할까. 황홀한 늪이라고 해도 좋겠다. 처음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을 접했을 때에는 여성작가라고 확신했다. 부드럽고 감성적인 따뜻함이 있다고 할까. 아무튼 요즘 나는 누가 책을 추천하라고 하면 『가벼운 마음』을 가장 먼저 말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장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품은 사랑, 우리를 충분히 안다고 믿는 사랑에서 벗어나야만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하지 않을 것들을 할 때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설사 그들에게 말한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고, 붙잡을 수 없고, 그들이 던져준 사랑의 망토로 덮을 수 없으며, 우리 속에 머물러 우리의 일부를 이루기 때문이다. (『가벼운 마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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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페랭의 『비올레트, 묘지지기』도 아름답고 좋은 소설이었다. 죽음을 통해 돌아보는 생애, 인간의 삶이란 무엇으로 채워지고 가장 찬란한 순간의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상실과 상처와 애도의 조각들이 모여 우리의 생을 만드는 게 아닐까.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티끌 같은 나』는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이 맞다. 그럼에도 그들의 삶이 결코 타인의 그것이 아니면 우리의 것이라는 묘한 울림을 안겨준다. 여성으로의 시간과 존재, 삶에 대해서 말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늦게 만난 편이다. 그러나 늦게 만나서 내게는 더 좋았던 단편집이다.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겪는 슬픔과 좌절에 대해 그것을 위로하고 견디며 나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같거나 다른 풍경들의 삶.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도 그런 의미에서 상통한다.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인생, 저마다의 생에서 욕망하고 갈등하며 살아온 시간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오, 윌리엄! 』에서도 그렇다. 가장 소중했던 시간, 지우고 싶은 순간, 그 모든 게 나를 구성하는 삶이었다. 산다는 건 그런 거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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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하민 라바투트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어렵지만 매력적인 단편집이다. 역사적 실존 과학자들의 연구가 세계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었는지 들려준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진다. 지금의 세상이 오기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일들은 얼마나 많을까. 충돌과 이해가 어떤 쪽으로 편승해서 현재를 만들었을까.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류』는 전쟁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여전히 전쟁이 멈추지 않는 세상, 전쟁의 승패를 떠나 그것이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는 어디서도 치유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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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지 못하는 좋은 소설은 많고 그것을 다 읽기란 어렵다. 그저 닿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읽게 된다면 좋은 인연이 될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작가와의 만남, 책과의 인연은 오래도록 유지되고 삶의 한순간을 지탱한다.
올해 소설을 읽으면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별점에 관한 것이다. 조금 인색해졌다고 할까. 많은 이들이 별점 5개를 주는 소설에는 나는 별 하나를 빼고 주변에 더 알리고 싶은 소설의 경우에는 별점 4개에서 하나를 더 추가한다. 특별한 울림이 없는 소설에는 재미를 떠나 별점 3개를 준다. 근데 확고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다르다. 소설의 좋고 나쁨은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별점에서 자유로워지면 홀가분하면서 훨씬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