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어떤 책을 얼마큼 읽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100권 읽기 같은 목표도 없고요. 고전을 읽어야겠다는 다짐, 인문학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 같은 건 없어요. 예전에는 그런 계획 세우기에 바빴죠. 계획을 세웠으니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노력도 있었고요. 한데, 이제는 끌리는 대로 그냥 읽어요. 그냥 좋아서요. 읽는 인간이지만, 성찰을 하거나 하지 않아요. 물론 그러면 더 좋겠지요. 그런 부담을 갖고 시작하면 읽기가 힘들어져요.
좋아하는 게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할까요. 사실, 무기력해지는 일상에, 다시 존재나 쓸모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아파지는 날들이라 살짝 무릎이 꺾이는 것 같다고 할까요. 그래도 이상하게 읽어야 할(?) 책이 있으면 조금 마음이 놓여요. 그래, 나는 읽어 할 책이 있지, 하면서요.
책을 읽는 일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죠.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많고요.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과 시가 점점 어렵게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또 그냥 읽어요. 이해하려 애쓰지 않고 건너뛰기도 하면서 말이에요. 그러다 보면 다시 돌아가기도 하고 반복해서 읽기도 하고요. 아니면 도중에 그냥 멈춰도 좋아요. 나중에 다시 생각날 때가 있어요, 그럼 그때 읽어요. 읽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한 번 해보세요. 한 권의 책을 다 읽어야 하는 부담으로 책 자체에 대한 흥미를 읽어버리면 안 되니까요.

그럴 때는 재미있어 보이는 책, 뭔가 궁금해지는 제목이나 내용을 보고 선택해도 좋아요. 최근에 자음과모음에서 『시소 첫번째』가 나왔죠. 제목이 무척 재밌죠? 사실, 저는 시소 프로젝트에 대해 몰랐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발표된 시와 소설을 한편씩 선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젊은작가상이나 소설보다 시리즈와 비슷한 맥락인 것 같은데요. 자음과모음이 영리한 게 시와 소설을 같이 실었으니 소설을 읽는 독자, 시를 읽는 독자, 모두 공략한 마케팅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시가 더 궁금해서 이 책이 끌렸거든요.
그리고 드디어 『환희의 인간』을 곁에 두었어요. 아, 이 책은 읽기도 전에 떨려요. 살짝 몇 군데 펼쳐봤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다는 게 와락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다 『악스트 Axt 2022.1/2』 에서 김연덕 시인이 『환희의 인간』에 대한 글을 쓴 꼭지를 발견했다죠. 그러니 어쩌겠어요. 이 책은 미리 좋은 책이라고 말하려고요.
책으로 이어지는 책이라고 할까요. 한강의 인터뷰를 읽고 누군가는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소설들을 읽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내가 모르는 책들과의 만남, 그 역시 책이 주는 선물이고 책이 좋은 이유지요. 그래서 읽어요, 그래서 좋아하고요. 나에게 좋은 책들이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또 좋은 책이 될지도 모르니까요.